[DIN] “흘린 쓰레기보다 나쁜 건 ‘은폐’ 쓰레기”

입력 2020.09.10 10:21

클린하이커스 7명 참가해 대모산 능선 구간 쓰레기 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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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아트<쓰레기 버리면 안 ‘돼지!’>앞에서 찍은 클린하이커스 단체사진. 뒷 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인갑, 김연실, 심재학, 이한솔, 이은인, 김윤경, 곽신혁, 김강은.
“대모산? 얼마 전에 가보니 깨끗하던데?”
쓰레기 수거 산행인 클린하이킹 예정일 직전 날, 우연히 만난 한 아웃도어 동호인이 청천벽력 같은 제보를 했다. 몇 달 전, 본인이 대모산을 찾았을 땐 등산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모산은 지난 2019년 5월 산자락에 72종 5만9,500여 본의 식물자원이 심어진 야생화원이 개장하면서 한층 더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대모산~구룡산 능선에 쓰레기가 꽤 많다는 말이 많아 인원 섭외, 일정 확정까지 다 마친 상태여서 선뜻 변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클린하이킹 경험을 통해 내심 ‘설마 산에 쓰레기가 없을까?’라는 우려 아닌 우려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걱정은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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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이 달려들어 흙에 거꾸로 박혀 있던 밥그릇을 발굴해 냈다.
기나긴 장마가 이어지다가 잠깐 하늘이 숨을 돌리는 틈을 타 클린하이커스 8명과 함께 대모산大母山(293m)을 찾았다. 벽화가 김강은씨와 김윤경, 김연실, 이은민, 심재학, 곽신혁, 황인갑, 이한솔씨가 함께 의기투합했다.
산행 기점인 수서역 6번 출구에 이르자 반겨주는 건 무수히 많은 등산객의 인파. 토요일 오전, 잠시 비가 멎은 틈을 타 산을 즐기고자 모인 사람들이었다. 곳곳에서 휘날리는 산악회 깃발들의 모습이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다. 한 등산객은 “비가 언제 올지 모르는 장마철 날씨로 인해 탈출이 용이한 둘레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인파 사이로 초록색 스카프를 두른 클린하이커스들을 콕콕 찾아내 집결, 일렬로 길게 늘어진 등산 행렬에 휩쓸리듯 산행을 시작했다. 들머리 나무 계단 옆으로는 ‘궁마을’ 안내 표지판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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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혁씨가 벤치 밑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궁마을은 능선 상에서 북서쪽 방면에 펼쳐지는 수서동 400~500번지 일대의 주택가를 일컫는다. 성종 원년(1470)에 세종대왕의 손자인 영순군이 대모산에 예장되고, 영순군의 아들 3형제가 머물며 삼궁三宮이라 불렸기 때문에 이 마을을 궁촌宮村이라 부르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나지막한 오르막을 사뿐사뿐 밟아 오른다. 초입에는 딱히 눈에 띄는 쓰레기들이 보이지 않는다. 큰 쓰레기는 가끔 인근 카페의 플라스틱 컵 따위가 등산로 아래 사면에 굴러다닐 따름이고, 실수로 흘린 것으로 보이는 과자봉지 끄트머리 정도만 포착됐다.
점차 고도를 올리면서 곳곳에서 산을 따라 오르는 샛길들이 등산로에 겹쳐 들어온다. 인근 아파트로 빠지는 산책로, 명품 강남둘레길 중 4코스인 대모산 둘레숲길이자 서울둘레길 4코스인 대모산 둘레길, 자곡동 쟁골마을로 가는 길 등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대모산 능선을 걸으려면 ‘대모산 정상’ 이정표만 따르면 된다.
대모산을 걷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살피다 보니 흥미롭게도 ‘맨발 산행’을 하는 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대모산은 일명 ‘맨발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맨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16년부터 맨발걷기 시민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맨발걷기 숲길 힐링스쿨’이 매주 토요일 일원동 한솔공원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등산로 대부분이 부드러운 흙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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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먹고 버린 옥수수속대를 김강은씨가 수거했다.
“어떻게 이게 산에 왔죠?”
이제 본격적으로 대모산 능선에 올라탄다. 그러자 길 양 옆 곳곳에 설치된 벤치들이 자주 보인다. 클린하이커스 곽신혁씨는 “벤치가 있으면 쓰레기가 있다. 병이나 플라스틱에 담긴 음료를 마시면서 흘린 뚜껑 등이 무조건 있다”며 즉각 달려든다. 아니나 다를까 벤치 아래와 벤치 전방 사면에서 무수한 쓰레기들이 쏟아진다. 클린하이커스 모두 각자 ‘분량’을 채우자며 앞다퉈 쓰레기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 오랫동안 내린 비 탓인지 노란망태버섯을 위시해 수많은 버섯들이 떨어진 이파리들 사이에 송송 솟아 있어 버섯에 익숙하지 않은 클린하이커스들의 헛걸음을 부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쓰레기들이 산에 와 있지?”
모두 쓰레기 수거에 열을 올리던 때, 벤치 앞 사면을 뒤적거리던 김윤경씨가 탄식을 뱉으며 빨간색 머그컵을 들어올린다. 연달아 이은민씨는 “여기 좀 도와줘”라며 무수한 꼬막 껍질들을 걷어 올렸다. 심재학씨와 황인갑씨는 땅에 묻혀 있던 소주병과 새우깡 봉지를 발굴하며 “이건 먹은 뒤 의도적으로 묻은 것”이라며 “흘린 쓰레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이런 ‘은폐’ 쓰레기들이 수거할 때도 힘들고, 속상한 마음도 든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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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아트에 사용할 쓰레기를 선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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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파묻은 과자봉투와 소주병을 파내고 있는 심재학씨와 황인갑씨.
습한 날씨, 구슬땀을 흘리며 쓰레기를 주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대모산 정상으로 나아가던 차, 전날 예보와는 달리 3시간 일찍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구룡산까지 쓰레기를 주우려던 계획을 수정, 얼마 남지 않은 대모산 정상으로 빠르게 오른 뒤 정상에서 정크아트를 꾸미기로 한다. 두 시간 남짓 수거했기에 쓰레기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역시도 기우였다. 이미 클린하이커스들의 클린백은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도 쓰레기 수거를 향한 열정을 식히진 못했다. 등산로 남쪽으로 이어진 입산금지 철조망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서도 연신 허리를 숙여 쓰레기를 주웠다. 비를 뚫고 대모산 정상 데크에 오르자, 클린하이커스의 노고를 갸륵히 여긴 탓인지 비가 그치고 서울 시내의 모습이 넘실거리는 운해와 안개 사이로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대모산 정상 데크 위에 모은 쓰레기를 한데 쏟아놓고 작품을 구상한다. 김강은씨는 즉각 “빨간 머그컵을 코로 만들고 눈물 흘리는 돼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바나나 껍질은 돼지의 귀가 되고, 잔뜩 주운 꼬막은 눈물이 됐다. 소주병과 플라스틱 커피 잔, 막걸리 통이 몸통을 이뤘다. 환경오염에 고통 받아 우는 돼지의 꼬막 눈물을 보며 다시 한 번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기고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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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 정상에 조성한 정크아트. 작품명은 <쓰레기 버리면 안 ‘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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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실 클린하이커스
GREEN PEOPLE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저를 산으로 이끌었어요!”
김연실 클린하이커스
대부분의 클린하이커들은 등산을 다니다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목도하고, 자연스럽게 클린산행에 관심을 갖는다. 재밌게도 김연실씨는 이와 정반대로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SNS에서 클린하이커스 활동을 보고 클린산행에 입문했다. 이전에는 1년에 1~2번, 국내 여행을 떠났을 때 지역 명산을 잠깐 들러보는 정도였다고 한다. 
“예전에도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가 쓰레기를 줍곤 했어요. 그런데 성격상 왠지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SNS에서 김강은씨의 클린하이킹 활동을 보고 올해 4월부터 시작해서 이번까지 여섯 번 참석했습니다.”
김씨는 “혼자 주울 땐 눈치가 보였으나 같이 주우니 눈치도 안 보이고, 재미도 있어서 계속 참여하게 됐다”며 “또한 SNS를 통해 클린하이커스들과 생활,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서로 일찍 일어나기 챌린지 등을 하면서 동기부여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채식주의자다. 엄밀하게는 ‘페스코 베지터리언’으로 해산물까지만 먹는다. 채식주의자가 된 것도 환경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3년 전 인터넷으로 미국에 ‘농장동물보호소’란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말 그대로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들인 닭, 돼지 등을 위한 보호소예요. 도살장에서 상품가치가 없어 도살되지 않은 동물들이나 경영 포기, 차 전복 등의 이유로 버려진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이에요. 한국에는 전무후무한 기관이라 관심을 갖고 있다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인턴십을 신청, 미국으로 건너가 두 달 동안 수의사보조 등의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려면 꼭 채식주의자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채식을 접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어요.”
채식주의자들은 종종 ‘별종’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곤 한다. 특히 육식 반대 등의 시위를 벌일 때면 일반 대중들의 매서운 반발에 부딪치곤 한다. 이에 대해 김씨는 “과도기라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생활 습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그저 ‘채식을 통해 내가 이렇게 좋아졌다’는 걸 담담히 보여 주며 동물과 환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조금 더 많아지기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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