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하이킹] 그래도 나는 ‘선뽕’을 믿는다

  • 글 김강은 벽화가 사진 조덕래 사진작가
    입력 2020.11.20 09:46

    서대문구 안산… 집게 대신 삽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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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조합으로 만난 안산 클린하이커들.
    서울 서대문구의 ‘안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 중 하나다. 높이 295.9m, 최단거리 코스로 2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정도로 야트막하지만 산 둘레를 크게 돌아 걷는 안산자락길부터 정상부의 단단한 암릉, 탁 트인 시야까지 적지 않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코스도 다양해서 매번 늘 처음 가는 산 같다. 오늘은 안산의 새로운 길을 더듬어 걸으며 클린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함께한 클린하이커들은 독특한 조합이다. 기존의 열혈 멤버 4명과 새로운 사람들이 더해졌다. 필자는 성신여자고등학교 외벽에 ‘모로코리아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술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국민공공외교프로젝트였으며, 이때 함께했던 참가자들이 덜컥 좇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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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시대부터 생겨난 쓰레기, 마스크를 줍고 있다.
    서대문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데크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고,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숲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하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클린하이킹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하는 단골멘트가 있다. 
    “여기는 쓰레기가 별로 없네요! 관리가 잘 되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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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운동화가 오랜 세월 썩지 않고 잔해로 남아있다
    하지만 예상은 늘 빗나간다. 미로 같은 길을 걷다가 고도를 높이니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다. 10명의 클린하이커들이 흩어져 주웠다. 그러다가 등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경악스러운 장면을 발견했다. 맛있게 먹고 버린 옥수수대 더미와, 마치 산이 쓰레기통이라도 된다는 듯 막무가내로 버린 페트병과 쓰레기. 
    이어서 수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옛날 라면봉지, 가방과 신발 등 생활쓰레기 잔해를 캐냈다. 집게가 아니라 삽이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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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스러운 클린하이커스의 자화상을 표현한 정크아트
    무심코 버린 쓰레기, 썩지 않아

    클린하이킹에 처음 참가한 지혜는 “생각했던 것보다 쓰레기는 정말 잘 썩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렴풋이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을, 직접 목격하니 더 깊이 와 닿았다는 것이다. 등산로를 벗어나 비집고 들어가다 보니 다리엔 가시와 도깨비풀이 한가득 박혔다. 
    클린하이커스들이 다함께 달라붙어 다리에 붙은 가시를 떼어 주었다. 쓰레기는 봉지와 클린백을 가득 채우고도 끝없이 나왔다. 누군가는 이런 우리의 행동을 보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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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둥치 안에 끼워 버려진 쓰레기. 숨겨서 버리는 쓰레기가 더 회수하기 어렵다.
    “그렇게 쓰레기를 주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어차피 버릴 사람은 계속 버릴 건데.”
    하지만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우리의 행동이 단지 쓰레기 줍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이 가득 차오르는 시간이라면. 우리의 가치 있는 행동, 즐거운 모습이 또 누군가에게 닿아 함께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면. 선한 영향력은 나비효과처럼 지구의 모습을 바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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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의 디자인으로 보이는 라면봉투를 주웠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산뽕에 취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필로폰(히로뽕)만큼 산행의 즐거움에 빠져든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선뽕’에 취했다. 서로가 주고받는 선한 영향력에 취한 것이다. 더러운 쓰레기를 줍기 위해 매달 몇 회씩 모이며 “하하호호” 즐거운 것은 아마 우리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선뽕’이 곧 전국으로 퍼져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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