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 집 쓰레기를 왜 산에?…인왕산 2km에 음식쓰레기 가득

입력 2020.11.03 09:33

창간 51주년 환경 캠페인 | <1> 현장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 클린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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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만발한 인왕산에 클린하이커스가 출동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가벼운 등산이 유행하면서 서울 인왕산도 ‘SNS 산행 성지’로 등극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쓰레기도 많아지기 마련, 클린하이커스가 한양도성길 인왕산 코스로 출동했다.
10월 6일 오전 10시, 출발지인 돈의문 터에 모인 7명의 클린하이커스 멤버(김강은, 이은민, 고원상, 강문희, 김상규, 곽신혁, 진형준)들은 오늘은 또 어떤 기상천외한 쓰레기가 나올지 걱정반 기대반이다.
초록색 ‘클린하이커스’ 스카프를 배낭에 두르고 양 손엔 집게와 클린백을 들고 출발한다. 마을길을 조금 걸어 한양도성 입구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쓰레기 줍기가 시작된다. 운동기구가 있는 초입의 쉼터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집게를 든 무리가 등장해 신기해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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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바위에서 피케팅 준비를 하고 있는 멤버들.
“저희는 클린하이커스고요, 산에 다니면서 쓰레기 줍는 모임입니다.”
강은씨의 친절한 설명에 아주머니들이 “기특하다”며 웃어 보인다.
“누군지 몰라도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산에 버리는 사람이 있어. 한두 명이 아니야. 클린백 얼마 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한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몰래 쓰레기를 버릴 만한 장소 한두 곳을 콕 집어 주셨다. ‘설마 진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저희가 깨끗하게 치우고 올게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다시 도성을 오른다. 마을이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주로 생활 쓰레기가 나왔다. 야식으로 시켜먹었을 법한 족발 뼈, 반찬으로 먹었을 법한 조개·꼬막껍데기가 나왔다. 산에 가져와서 먹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이다. 집 쓰레기를 산에 버린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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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쓰레기를 활용해 ‘환경파괴로 고통스러워하는 곰’정크아트 작품을 만들었다.
“다른 산에서도 가끔 이런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긴 하는데, 이건 좀 심하네요.”
오늘 클린하이킹이 만만치 않으리란 예감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할머니가 말한 ‘봉투째 버린 쓰레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을을 맞아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잠시 쓰레기에 대한 걱정을 잊고 꽃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본다. 뒤로는 인왕산 암봉이 살짝 끼어들었다. 파란 하늘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곱다.
다시 산행을 시작, 길옆으로 난 샛길까지 샅샅이 살피며 쓰레기를 줍는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물티슈와 마스크 쓰레기가 부쩍 많다. 페트병은 산행 초반인데도 클린백 절반을 채웠다. ‘배낭에서 빠진 거겠지’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외진 곳에 교묘하게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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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음식물 쓰레기…담배꽁초도 한 가득
산책삼아 오를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쉬운 코스라 그런지 음료 담는 테이크아웃컵도 많이 나온다.
“이건 대포인가? 왜 대포 넣는 곳에 버려둔 거지?”
포문에 정확히 꽂아둔 테이크아웃컵을 발견한 신혁씨가 “신박한 아이디어의 쓰레기 투기법”이라며 놀라워했다. 한양도성은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자 문화재다. 이런 곳에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는 어떤 이에게 “인성 문제 있어?”라고 묻고 싶은 순간이다.
“앗, 저 컵라면 주웠어요!”
길 옆 바위 틈새의 쓰레기를 줍던 강은씨가 외쳤다. 진짜 컵라면이다. 그것도 유통기한이 남은 컵라면이다. 배낭에서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위치가 애매하고, 누가 나중에 먹으려고 숨겨놨다고 보기에도 다른 쓰레기와 뒤섞여 있어 이상하다. 컵라면의 사연이야 어쨌든 강은씨는 “오늘 일당을 벌었다며” 즐거워했다.
“쓰레기도 줍고 일용할 양식도 얻고. 이게 클린하이킹의 매력 아니겠어요?”
인왕산 정상에는 날 좋은 가을을 맞아 등산 온 인파로 붐볐다. 2㎞ 남짓의 구간을 온 것뿐이지만 벌써 7명의 클린백이 가득 찼다. 정크아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제까지 주운 쓰레기를 쏟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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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컵라면 주웠어요!” 김강은씨가 멀쩡한 컵라면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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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인 한양도성에도 쓰레기는 많았다.
“오늘 유난히 담배꽁초를 많이 주웠어요. 도심과 가까워서 더 그런 거겠죠. 그래서 이번 작품 주제는 ‘산에서 담배 피우지 맙시다’로 정했어요.”
깨진 항아리 조각으로 담배 필터를 만들고 흰색 병뚜껑과 즉석밥 용기 등으로 나머지 담배 모양을 만들었다. 빨간 라면 봉지로는 불꽃을 만들고 조개껍데기로는 연기를 만들었다. 모자를 주운 김에 담배 피우는 사람도 만들었다. 철사로 얼굴 모양을 만들고 족발 뼈로 담배를 든 손가락까지 디테일하게 만들었다.
재미있는 정크아크 작품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 작품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 치우면 되지만 담뱃불로 산불이 나면 한순간에 잿더미가 돼요. 아차하면 늦어요. 우리 모두 한 순간의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요."
서울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정상에 서면 담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산에서만큼은 담배 연기 대신 맑은 공기만 마시고 싶다. 산 잘 타는 사람이 멋있는 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자연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멋있는 ‘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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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상 클린하이커스.
Green People
매달 두 번 서울 산 청소하는 제주 사나이
고원상 클린하이커스
이날 클린하이킹에는 제주도 사나이가 있었다. 1년 넘게 클린하이커스로 활동하며 매달 최소 두 번은 서울로 날아와 클린하이킹에 참여하는 고원상(35)씨다.
“어렸을 때부터 산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여덟 살 때쯤 외삼촌과 함께 한라산에 갔었는데, 산 중턱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내려와서 목욕탕에 갔던 기억 등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그게 제 첫 산행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1년에 한 번씩 한라산을 올랐는데, 그때 어른들이 ‘산을 잘 탄다’고 칭찬하셨어요. 그 말 듣는 게 기뻐 산을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는 SNS 활동을 하던 도중 ‘클린하이커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취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제주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죠. 좋아하는 것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에 나부터 산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클린하이커스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클린하이커스 내에서 그는 ‘선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선한 또라이’란 뜻이다. 표현은 조금 과격하지만 회원들은 그의 착함과 유쾌·발랄함을 매우 좋아한다.
제주도에서 서울을 자주 오고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한데 그는 “전혀 수고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클린하이커스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장거리를 오고가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그는 클린하이커스에서 받은 선한 영향력을 고향인 제주에도 전파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자신부터 ‘Do it now’를 실천한다. 평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탄소를 줄이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리브 노 트레이스! 산에서는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 봐요! 산과 자연에서 사는 생물을 위해 흡연, 스피커로 음악듣기 등은 하지 말아주세요. Do it now! 지금부터 실천해도 늦지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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