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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환경-자연 영화⑤] 프라미스드 랜드, 개발과 환경 사이… 셰일가스를 둘러싼 명암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0.12.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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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가스shale gas’는 오랜 세월 동안 모래와 진흙이 쌓여 단단하게 굳은 탄화수소가 퇴적암(셰일)층에 매장되어 있는 가스를 일컫는다.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채굴하는 기존 가스와 화학적 성분이 같아 난방용 연료나 석유화학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가스다.

미국, 중국, 중동, 러시아 등 세계 31개국에 약 187조4,000억㎥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셰일가스는 전 세계가 향후 6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셰일가스는 기존의 원유보다 3,000m나 깊은 곳에 셰일층을 형성한다. 따라서 기존의 천연가스와 같은 수직 시추는 불가능하며, 수평 시추를 통해서만 채굴할 수 있다. 1800년대에 셰일가스가 발견되었음에도 이러한 기술적 제약 때문에 오랫동안 채굴이 이뤄지지 못하다가, 2000년대 들어 수평정 시추 등이 상용화되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 셰일가스의 강자가 바로 미국이다. 2010년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2000년에 비해 15배나 확대되었으며, 미국은 2009년 이후 러시아를 제치고 천연가스 1위 생산국에 등극했다. 셰일가스 덕분에 미국은 최대 원유소비국에서 자체적으로 원유 소비량을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원유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미국 정부는 개인 땅에서 셰일가스가 나오면 그 토지 주인의 소유권을 인정해 준다. 그런 까닭에 개인이나 민간기관의 투자가 활발하다. 자기 집 안마당에서 채굴하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미국보다 더 많은 양의 셰일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이 셰일가스 강국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개인의 광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원칙상 개인 소유의 토지가 없다. 내 집 마당에서 셰일가스가 나와도 모두 국가에 귀속되므로 개인·민영기관의 투자가 활발하지 못하다. 

셰일가스 개발에는 ‘프래킹fracking’이라 부르는 강력한 물(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 분사가 필요한데, 미국은 전역에 파이프라인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 거의 모든 지역이 수로로 연결돼 있어 채굴에 필요한 물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하다.

이 셰일가스의 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 영화가 바로 <프라미스드 랜드Promised Land>(감독 구스 반 산트, 2012)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이 낙후된 농촌 지역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대기업 임원이 나타나 당신이 거주하고 있는 땅 밑에 엄청난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고, 그걸 개발하게 허락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황폐한 땅을 직접 찾아와 개발해 주고, 거액의 보상금을 안겨 준다니 감사무지感謝無地일 뿐”이라고 즉각 대답하겠지만, 현실 세계에 ‘공짜 점심’은 없다. 

사실 셰일가스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프래킹에 쓰이는 화학 첨가물을 통한 식수 오염이 가장 문제다. 

실제 2009년 루이지애나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되면서 소 17마리가 폐사한 사례가 있다. 또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셰일가스를 추출할 때 석탄이나 기존 천연가스 추출 때보다 더 많은 메탄가스가 공기 중에 들어가 온실효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는 이러한 환경 파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 ‘글로벌’의 협상 무패 기록을 가진 최연소 부사장 ‘스티브’(맷 데이먼)는 동료 ‘토마슨’(프란시스 맥도맨드)과 함께 셰일가스 매장 지역인 매킨리에 파견된다. 주민들을 설득해 글로벌이 매킨리 일대의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계약서를 받아내는 것이 스티브의 임무다. 그는 뉴욕 본사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어 이번 협상의 성공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곳은 전통적인 낙농 지역인데, 경기 하락으로 주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스티브는 마을 주민들과의 협상 및 계약을 낙관했다. 게다가 그는 개발권을 따낸 실적이 사내에서 가장 월등한 직원이었다. 

“저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시골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는 얘기지요. 천연가스는 그들에겐 기회예요.”

그런데 그는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힌다. 지역 내 고교 과학교사 ‘프랭크’(할 홀브룩)가 주민들을 설득해 셰일가스 채굴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프랭크는 명문 MIT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자 보잉사의 임원 출신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스티브는 “셰일가스야말로 친환경 무공해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한편 주민들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장담하고, 지역 의회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공세를 펴지만, 프랭크를 위시한 반대파의 반발이 심한 데다 환경단체 활동가 ‘더스틴’(존 크래신스키)까지 가세해 개발 반대 움직임을 독려한다. 그들은 “엄청난 화학물질이 투입되는 수압 파쇄 방식의 채굴이 마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개발 여부는 마을 투표에 부쳐진다. 

얼핏 우리가 익히 봐온 뻔한 구도인데도 106분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건 이른바 개발론자들의 주장이 무척 현실적이라는 데 크게 기인한다. 스티브는 차분한 어조로 설득한다. 

“대출로 아이들 대학 보내고 대출을 갚지 못해 땅이 은행으로 넘어간다면 그때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땅속에 돈을 묻어두고 왜 힘들게 사는 겁니까?”, “서명만 하면 개발 들어가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목돈이 들어오는 거죠. 백만장자가 되실 거예요.”

감독은 스티브가 제시한 거액의 보상금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 주며, 이 문제가 간단한 도덕적 문제가 아님을 드러낸다. 

“이 개발 건에 중립이란 건 없습니다. 천연가스를 반대하면 계속 석유, 석탄을 쓰겠다는 건데, 아니면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줄일지 얘기해야 하는 건데, 그 논쟁은 하지 않고 싶은 거잖습니까?”

자신이 속한 거대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알게 된 스티브가 깊은 회의 속에서 고민을 거쳐 내린 결론은 익숙하면서도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아이다호>, <굿 윌 헌팅>, <파라노이드 파크> 등 화제작으로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따뜻한 유머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1998년 <굿 윌 헌팅>으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은 할리우드 대표 멀티 플레이어 맷 데이먼이 구스 반 산트 감독과 공동으로 각색한 <프라미스드 랜드>는 2013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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