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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감동산행기] 간월산에서 누린 만추의 서정

박정도 부산시 사하구 다대로
  • 입력 2021.01.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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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억새처럼 유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억새처럼 유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만추의 서정이 물씬 풍기는 계절,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여서 바깥나들이를 꾀하게 됐다. 나들이에는 뭐니 뭐니 해도 산행이 최고다. 산은 청정지역이고 생업의 현장에서 받은 갖가지 피로나 권태를 마음껏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가을이어서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산을 찾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간월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간월재 억새평원으로도 유명한 간월산은 한국인 누구나가 즐겨 찾는 명산의 하나다. 약 1,540년 전 이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산 이름을 간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1861년(철종 12)에 간행된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에는 이 산이 ‘看月山간월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등억리의 사찰은 ‘澗月寺간월사’로 표기되는 등 간월산의 표기가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간월산의 높이는 1,069m이다. 주변에는 가지산加智山, 고헌산高獻山, 운문산雲門山, 백운산白雲山, 능동산陵洞山, 천황산天皇山, 신불산神佛山 등의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져 있어 영남알프스로 불린다.

산행 당일 날씨는 무척 좋아 저절로 휘파람마저 나왔다. 배낭에 갖가지 간식과 도시락을 준비해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인지 심신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배내2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산행은 사슴농장을 거쳐 억새평원을 구경하고 간월산 정상을 밟은 뒤에 역순으로 내려오기로 정했다. 별달리 부담스러운 산행코스는 아니어서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오전 10시, 가을 정취를 누리려고 온 산행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복장을 갖춘 산행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산행객 무리에 섞여 임도를 따라 산을 올랐다. 길이 가파르지 않고 더군다나 임도여서 소풍가는 기분으로 산을 올랐다. 가족, 연인, 친구 등 모두가 동반자와 다양한 수다를 떨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먹는 음식이고,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여행은 사랑하는 이와 같이 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듯 산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여서 그런지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하얀 구름은 조각배처럼 파란 하늘을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그림 같은 가을풍경이었다.

부드럽게 강함을 이기는 억새처럼 살고파

산길이 완만해서 정상까지는 어렵지 않게 금방 오를 수 있었다. 간월산 정상에 서니 조망이 일품이었다. 마치 세상을 평정한 장군처럼 느껴졌다. 바람마저 살랑살랑 부니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었다. 산을 오른다고 흘린 땀방울은 선선한 산바람에 깨끗이 말랐다. 

산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듬뿍 충전한 뒤에 인증사진을 찍고 평평한 바닥을 찾아 점심을 즐겼다. 누가 밥맛이 없다고 했던가? 보온도시락에 담아온 찰밥에 김치, 달걀말이, 멸치볶음, 어묵볶음 반찬은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다. 밥을 먹은 뒤에 단감과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충분하게 쉬며 피로를 푼 뒤에 억새평원으로 향했다. 

간월재 억새평원은 소문처럼 장관이었다. 지금껏 내가 본 억새군락 중에서 가장 넓고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늦가을의 산이나 들판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거나 황량해 보이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마저 땅으로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자리를 지킨다지만 그렇다고 바람이 모든 것을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니다.

평원엔 은빛 찬란한 억새들이 주옥같은 가을풍경을 연출하며 물결처럼 넘실대고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폭우에 빗물이 밀려와도 유연한 몸짓으로 제자리를 지키며 장관을 이룬 모습이 경이롭게 보였다. 이런 억새를 보고 있으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평범한 진리가 와 닿는다. 

억새밭에서 많은 사진을 찍고 지인들에게도 전송했다. 억새 사이에서 사진을 찍으니 나이도 한층 젊어 보였고 앞으론 세상을 억새처럼 유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간월재 억새평원에서 충분하게 추억을 만든 뒤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간월산 산행에서 만추의 서정을 듬뿍 누리고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매우 홀가분했다. 내일부터 다시 생업 현장에서 신바람 나게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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