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산행] 호랑이배꼽막걸리+아산 영인산, 예술가 가족이 만들어 ‘술이 예술’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이경호 차장
  • 취재협조 대동여주도
    입력 2021.01.14 08:41

    평택 쌀과 현미가 주재료… 40일 발효 60일 숙성 ‘완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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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막걸리의 맛을 후대에 전하겠다는 신념으로 탄생한 호랑이배꼽막걸리. 왼쪽의 술은 증류식 소주인 ‘소호’이다.
    산꾼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술을 잘 마신다. 잘 마신다기보다는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에게 술 한 잔은 풍류를 더 즐기게 하는 도구인 셈이다. 이왕 마시는 술이라면 좋은 술, 우리의 술을 마시는 게 나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좋은 막걸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경기도 평택의 ‘호랑이배꼽막걸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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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배꼽양조장을 만든 이계송(왼쪽) 화백과 둘째 딸이자 현 대표인 이혜인씨.
    와인 제조 기법으로 만든 막걸리
    ‘호랑이배꼽’이라는 이름이 생소하고도 재밌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막걸리 이름이 ‘지역 이름+재료+막걸리’ 식으로, 예를 들자면 ‘공주알밤막걸리’처럼 지어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문학적인 스토리입니다. 먼저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기질입니다. 세계에서 호랑이를 이렇게 친근하게 표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곶감으로 호랑이를 물리치니까요. 한반도가 호랑이 모양인 것도 참 신기하지요. ‘배꼽’은 부모와 자식을 이어 주는 탯줄을 의미합니다. 옛 막걸리의 맛을 후대에게 이어 주겠다는 뜻을 두었습니다. 이 둘을 합쳐 ‘호랑이배꼽’이지요. 두 번째 의미는 평택의 위치가 호랑이(한반도)의 배꼽자리여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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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에를 치던 잠실을 발효공간으로 쓰고 있다. 무려 70년 된 흙집이다.
    호랑이배꼽양조장의 창업주 이계송(72) 화백은 지금 양조장이 있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양조장 입구의 67년 된 낡은 한옥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함평 이씨집성촌으로 이 화백의 선대까지 따지면 600여 년을 이곳에서 산 셈이다. 
    그런데 화가가 어떤 연유로 막걸리를 만들게 되었을까. 원로 서양화가인 이 화백은 일찍이 프랑스 등 해외를 다니면서 술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술은 그저 마시고 취하기만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좋은 술을 제대로 즐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관계를 돈독히 하며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고 평화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 화백은 호랑이배꼽양조장이 그저 막걸리를 만드는 장소가 아니라 맛과 멋, 예술이 함께하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 또한 평택에서 나는 농산물로 좋은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길 바라고, 그로 인해 농촌이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이런 철학과 다짐으로 이곳에 양조장을 낸 것이 2010년의 일이다. 
    “처음엔 배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저희 집안에서 정미소와 배 과수원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배 와인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머물며 와인 제조 기법을 익힌 이 화백은 첫 도전을 위해 과수원에서 나온 배 600상자를 모조리 와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농림축산식품부에 허가를 받으러 갔다. 
    “당시 담당 공무원이 ‘나주에 있던 배 와인 양조장이 모두 망했다’며 저를 극구 말렸어요. 그리곤 ‘요즘 막걸리가 유행이니 그 기술로 막걸리를 만들어보라’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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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은 호랑이(한반도)의 배꼽자리인 평택에 자리했다.
    당시는 한창 막걸리 열풍이 일던 때였다. 대중적인 막걸리가 우후죽순 나왔다. 하지만 이 화백은 그런 빤한 술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좋은 술’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술’은 곧 ‘소비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술’이었다. 
    좋은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조부모님이 방앗간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깨진 쌀과 부산물로 가양주를 만드셨어요. 그때 어깨 너머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호랑이배꼽막걸리는 으깬 생쌀로 술을 빚는다. 보통의 막걸리가 쌀을 찐 고두밥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다. 고두밥으로 술을 빚으면 발효가 빨라 일주일, 늦어도 한 달 안에 술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생쌀을 사용하면 훨씬 발효가 늦어져 40일가량 발효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발효 후에는 60일 동안 저온 숙성하는 기간을 거친다. 한 병의 막걸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총 100일이 걸리는 셈이다. 
    “생쌀에 현미를 더합니다. 쌀 껍질을 함께 넣음으로써 맛과 영양이 더해집니다. 이것은 포도를 껍질째 넣어 만드는 와인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추럴 라이스 와인이라고 부릅니다.”
    호랑이배꼽막걸리는 프랑스 보졸레누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방부제를 일절 넣지 않는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첨가물도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보졸레누보는 비싸서 좋은 술이 아닙니다. 보졸레누보는 ‘빨리 생산해서 빨리 마셔야 하는 와인’입니다. 신선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높은 겁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막걸리는 ‘(아무렇게나)막 걸러낸 술’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 전통술임에도 막걸리는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호랑이배꼽은 ‘이제 막 걸러낸 가장 신선하고 순수한 생막걸리’입니다.”
    호랑이배꼽막걸리는 생쌀과 현미로 담근 밑술에 두 차례 덧술을 섞는 삼양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이렇게 만든 고급 막걸리는 지게미가 적고 맛이 걸쭉하지 않고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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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 이정표 역할을 하는 호랑이 풍향계. 일본인 작가가 만든 정크아트이다.
    완전히 발효해 속 편한 막걸리
    이 화백의 둘째 딸이자 현 대표인 이혜인(40) 대표가 호랑이배꼽을 내 왔다. 막걸리라 하면 으레 밥그릇 같은 잔이 떠오르는데 호랑이배꼽은 와인잔에 따라 마신다. 
    “호랑이배꼽은 한 번에 쭉 마시는 막걸리가 아닙니다. 와인처럼 한 모금 마시고 그 풍미를 즐기는 술입니다. 그래서 와인잔에 따라 마시는 걸 추천해요.”
    막걸리를 목으로 넘긴 후 입을 다물고 혀를 굴려 남은 풍미를 느낀다. 기존에 마셨던 막걸리와는 달리 산뜻하고 깔끔한 맛이다.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때는 은은한 배향이 나더니 목 넘김을 한 후 입에는 고소한 곡물향이 머문다. 향이 세지도, 톡 쏘는 맛도 없지만 입에 남는 풍미가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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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배꼽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양조장 한 편의 카페 겸 갤러리.
    “도수는 6.5도이지만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기보다는 식사 전 반주로 어울리는 술입니다. 보통의 막걸리가 파전이나 도토리묵무침처럼 조금 자극적인 안주가 어울리는 반면, 호랑이배꼽막걸리는 가벼운 스낵이나 오이 같은 채소와 잘 어울립니다. 생선회와도 잘 어울리고요.”
    막걸리를 마셨는데 트림이 나오지 않는다. 은근히 취기가 오르지만 속이 편하다. 비결을 물어보니 “술을 제대로 익힌 덕분”이란다. 
    “막걸리가 병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서 넘치는 것은 발효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미숙주여서 그래요. 호랑이배꼽막걸리는 발효를 완전히 마치고 병에 담는 완숙주이기 때문에 흔들어도 더 이상 끓지 않아요. 그래서 속이 편하고 트림도 나지 않는 거죠.”
    흔히 ‘술 맛은 물이 좌우한다’고 한다. 호랑이배꼽에서 만드는 술은 양조장 앞마당의 지하 암반수를 사용한다. 이 일대는 화강암 지반으로 이루어져 물맛이 부드럽고 깔끔하다. 원주에 물을 타서 만드는 막걸리이기에 물 또한 비법이다. 
    이혜인 대표는 막걸리와 함께 한 가지 안주를 내왔는데, 다름 아닌 준치김치였다. 알고 보니 이 준치김치는 이 화백의 아내인 이인숙씨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이인숙씨는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이며 준치김치 명인이기도 하다. 이 준치김치는 오로지 이 양조장에 직접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다. 
    호랑이배꼽양조장은 ‘한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표방하고 있다. 술을 만드는 사람도 이 화백과 아내, 두 딸이 전부다. 양조장이라고 해봤자 생가 옆에 있는 70년 된 흙집이 전부다. 
    “옛날에 누에를 치는 잠실이었어요. 흙으로 만들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막걸리 발효에도 아주 효과적입니다.”
    이 화백 가족은 모두 예술인이다. 첫째 딸 이혜범씨는 패션 디자이너이고, 현 대표를 맡고 있는 둘째 딸 이혜인씨는 사진작가로 일했다. 예술인이 술을 만드니 술이 예술일 수밖에 없다. 
    병 디자인도 예술이다. 720㎖짜리 막걸리 패키지의 호랑이 그림은 이 화백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 글씨도 이 화백이 썼는데, 좀 색다르게 보이기 위해 취중에 눈을 감고 왼손으로 썼단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동화에 나오는 손 글씨처럼 정감 있다.  
    350㎖짜리 패키지와 유리잔 등에 들어가는 귀여운 호랑이 그림은 첫째 딸이 디자인했다. 증류식 소주인 ‘소호笑虎56’ 패키지에 들어간 호랑이 그림은 이 화백의 ‘상춘’이란 작품을 그대로  가져왔다. ‘술 마시는 동안 항상 봄이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 
    “‘호랑이배꼽’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엔 루돌프 뿔을 단 호랑이 그림이 들어간 한정판을 출시했어요. 이제 전통 막걸리도 트렌드를 따르고 주도해야 햐는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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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배꼽막걸리는 무려 100일 동안 발효·숙성시킨다.
    술과 문화가 만드는 공간되길
    호랑이배꼽막걸리는 대형마트나 식당에서 구입할 수 없다. 오로지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인터넷몰에서만 주문할 수 있다. 유통 과정이 아무리 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전해지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택배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어 처음부터 생막걸리를 고집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좋은 내 고장 술을 만들고, 그것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양조장을 찾아 주면 그것으로 족해요. 여기에 더불어 저희 양조장이 지역 문화를 나누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또 지역 농민들과 상생하는 공간이었으면 하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해대교를 배경으로 노을이 진다. 약간 취기가 오르니 차가운 바닷바람이 선선한 산바람으로 느껴진다. 좋은 술 마시고 산에 가고 싶어진다. 좋은 술과 좋은 산, 참 좋은 조합이다. 참, 음주산행을 말하는 것이 아닌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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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배꼽양조장 전경.
    호랑이배꼽양조장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이다. 양조장 견학과 단양주 체험, 증류주·담금주 체험을 할 수 있다. 양조장에서는 호랑이배꼽막걸리를 비롯해 증류식 소주인 ‘소호’도 맛볼 수 있다. 소호는 36.5도와 56도 제품이 있다. ‘소호’는 오로지 양조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양조장 온라인 쇼핑몰(smartstore.naver.com/tigercalyx)에서 호랑이배꼽막걸리를 주문할 수 있다. 호랑이배꼽 생막걸리 720㎖ 2병 1만4,000원. 350㎖ 4병 1만4,000원. 
    체험 ·구입 문의 031-683-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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