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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전라도의 숨은 명산] 장보고의 기운 가득한 국내 최대 난대림

글·사진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산행고문기
  • 입력 2021.01.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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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상왕산 644m

정상 데크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이곳에 서면 입체 영화를 보는 듯한 풍광이 펼쳐진다.
정상 데크에 설치된 스카이워크. 이곳에 서면 입체 영화를 보는 듯한 풍광이 펼쳐진다.

상왕象王은 불교에서 ‘부처’를, 코끼리 중 가장 큰 코끼리를 말한다. 완도 상왕산象王山(644m)은 완도의 맹주이며 지붕이다. 완도군에 있는 54개 유인도와 147개 무인도 중 가장 높고 골격 또한 다부지다. 다도해를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이어서 새해 일출 산행지로 인기가 좋다.

상왕산은 전체적으로 육산이지만 숙승봉(461m), 업진봉(544m), 백운봉(600m), 상왕봉(644m), 심봉(600m)은 암봉이다. 암봉이 다섯 개라 오봉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봉우리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저마다 최고의 조망과 위엄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상왕산을 궁복산弓福山으로 소개했다. 궁복弓福은 ‘해상왕’으로 불리는 장보고張保皐(?~841)의 아명이다. 1,200년 전 활동한 장보고는 동아시아 정사正史에 당당히 기록된 세계적인 신라인이다. 그는 완도를 거점으로 신라, 당나라,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 페르시아 지역까지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었다.

그러나 장보고가 암살당한 후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그를 따르던 완도 주민은 전북 김제로 강제 이주했고, 때문에 완도는 500여 년간 버려진 섬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분에 울창한 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게 되었다. 

대신리에서 조망바위로 가는 길은 숲이 울창해 주변 지형을 살피기 힘들 정도다.
대신리에서 조망바위로 가는 길은 숲이 울창해 주변 지형을 살피기 힘들 정도다.

울창한 숲, 난대림의 보고

상왕산은 난대림의 보고寶庫다. 능선들은 거대한 녹색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하다. 지정된 등산로 외에는 개척산행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시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이 울창하다. 산으로 들어서면 대낮에도 밤처럼 깜깜하다. 

상왕산 종주코스로 많이 이용하는 대구미코스는 경사가 급하다는 서인창(65) 전남산악연맹 이사의 의견에 따라 대신리를 들머리로 택했다. 이 코스는 등산객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완만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백운봉까지 올라서면 계속 내리막이어서 체력부담도 적다.

대신리 앞 77번 지방도로에서 5분 정도 농로를 따라가면 이정표와 산행개념도가 있다. 상왕봉까지 3.7km라고 적혀 있다. 숲에 들어서면서부터 상록수가 하늘을 찌른다. 시야 분별이 안 될 정도로 울창해 GPS가 없다면 위치 파악도 힘들 지경이다. 

등산로는 선명하다. 5분 정도 걸으면 헬기장처럼 넓은 경주최씨 묘역을 지난다. 경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긋하게 오른다. 고도에 따라 숲의 표정이 달라진다. 서어나무군락지를 지나면 어느새 동백나무가 빽빽하고, 곧이어 소사나무 군락지가 자리를 대신한다. 최씨묘역에서 30분, 들머리에서 1.5km지점에 삼거리가 있다. 정상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좌측은 청해포구 방향이다. 5분만 더 가면 거대한 암릉지대와 만난다.

상왕산은 육산에 가깝지만 곳곳에 거친 암벽도 있다.
상왕산은 육산에 가깝지만 곳곳에 거친 암벽도 있다.

사방이 트여 있는 조망바위(350m)에서 보는 풍광은 앙상한 겨울산이 아니다. 동서로 오봉능선이 힘차게 뻗어 있고, 남으로는 화흥포항, 서쪽으로는 푸른 바다와 섬, 북으로는 완도수목원의 광활한 산림지대가 두루 조망된다. 상왕산의 매력은 사시사철 푸름에 있다. 희귀식물들과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암릉지대를 벗어나면 열대우림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 아름드리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다. 인적이 거의 없지만 길은 선명하고 선답자의 표시기가 곳곳에 보인다. 8분 정도면 ‘범혜사’ 방향 이정표를 지난다.

장보고가 당나라와 교역할 때 금값으로 팔았다는 황칠나무 군락지를 지나 30분 정도 오르면 이정표와 산행개념도가 있다. 이곳은 대구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심봉 0.3km, 상왕봉 0.8km’를 가리킨다. 정상은 좌측으로 90도 꺾은 방향으로 올라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거칠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죽과 뒤엉켜 있고 집채만 한 바위를 우회하기도 한다. 다섯 개 봉우리 중 하나인 심봉은 낙타 혹처럼 불쑥 솟아오른 단일 화강암봉이다. 깎아지른 암봉 뒤쪽으로 안전하게 오르는 길이 있다. 심봉에 서면 동서남북 막힘이 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완도읍을 비롯해 신지대교, 장보고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기묘한 형태의 바위 전시장을 지나 정상인 상왕봉에 오른다. 서인창 이사는 “‘상왕봉’이란 이름을 되찾기 위해 지역 산악인들의 노력이 컸다”고 말한다. 2017년 6월 23일부로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제2017-1797호)에 의거, 산명을 상왕산으로 제정했고 정상 봉우리명을 상왕봉으로 개정했다.

백운봉 표지석은 자연석 위에 음각 글씨를 새겼다. 뷰 포인트 중 한 곳이다.
백운봉 표지석은 자연석 위에 음각 글씨를 새겼다. 뷰 포인트 중 한 곳이다.

상왕봉에는 스카이워크가 설치되어 있어 아이맥스 영화관 같은 파노라마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고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신지도, 청산도 등을 사열하듯이 내려다본다. 넓은 데크가 깔려 있어 백패킹 마니아에게도 인기가 좋다.

정상에서 백운봉까지는 약 2.5km 거리다. 하느재까지 1.4km가량 완만한 내리막이고 두 개의 전망데크를 지난다. 하느재는 동서로 가르는 임도다. 근처에 제2전망대가 있다. 2층 높이의 목조 전망대로서 상왕산 주능선과 바다가 보인다.

붉가시나무로 만든 숯을 생산했던 가마터를 지난다. 이곳에서 백운봉까지는 1km 정도 거리다. 꾸준하게 올라 커다란 바위 지대를 지나면 순식간에 시야가 트이며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와 만난다.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숲인지 산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상록수림이 펼쳐져 있다. 백운봉 표지석은 왼쪽 화강암 돌무더기 위에 있다. 네모난 식빵조각 닮은 자연석에 ‘백운봉’이 암각되어 있다.

업진봉까지는 30여 분 완만하게 내려간다. 커다란 후박나무와 성벽 같은 암벽도 지난다. 업진봉은 다른 봉우리와는 다르게 평평한 바위지대에 위치한다. 등산로에서 약간 비껴나 오른쪽에 있다. 표지석 아래는 수직 벼랑이다.

업진봉에 서면 숙승봉이 가깝게 보이고 강진 주작산(475m), 해남 두륜산(700m), 장흥 천관산(723m)까지 보인다. 장보고와 이순신 장군의 배들이 힘차게 다녔을 다도해 풍광은 리아시스식해안이 보여 주는 남도만의 특징이다.

심봉은 화강암 단일 암봉이다. 안전하게 우회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심봉은 화강암 단일 암봉이다. 안전하게 우회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환상적인 동백나무 터널

이제 완만하게 내려간다. 분지처럼 넓은 갈림길에서 숙승봉은 왼쪽 임도를 버리고 우측 언덕길로 올라가야 한다. 작은 절벽을 만나지만 철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숙승봉은 팽이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100여 m 높이 암봉에는 철 계단과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동·서·북쪽이 모두 시원하게 열려 있어 조망이 좋다. 하산은 우측 계단으로 내려선다.

숙승봉에서 불목리 저수지까지 내려가는 길은 사납다. 잔자갈이 많이 깔려 있어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환상적인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터널 길은 힘듦을 잊게 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발그레하게 피어 있는 동백의 꽃말은 ‘너만을 사랑해’다.

걷기길잡이  

■대신리 경로복지센터~조망바위~대구미갈림길~심봉~상왕봉~제2전망대(하느재)~백운봉~업진봉~숙승봉~불목저수지(약 11km, 약 5시간 40분 소요)

■대야리주차장~건드렁바위~상왕봉~하느재~백운봉~송곳바위~대야리주차장(약 9.4km, 약 4시간 30분 소요)

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완도공용버스터미널까지 하루 2회(08:10, 막차 17:20) 버스가 운행한다. 5시간 소요. 요금 우등 4만100원. KTX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간 다음, 광주송정역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환승하면 4시간 30분 소요된다. 

완도에서 대신리로 갈 경우는 완도공용버스터미널 앞 개포사거리에서 완도~남창버스(06:50~15:50, 평일 6회) 운행, 대신리에서 내린 뒤 도보로 10분 이동하면 된다. 

문의 완도교통 061-554-4978.

볼거리 

장보고와 관련된 유적들만 찾아 다녀도 반나절 이상 걸린다. 장보고기념관과 2021년 3월에 개관할 한상명예의전당, 장도 청해진유적지, 해신 드라마촬영장, 장보고대교, 장보고 동상이 있다. 완도읍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완도타워가 있는 동망봉을 가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완도수목원은 770여 종의 희귀 난대식물이 분포하는 국내 최대의 난대림 자생지이자 난대수목원이다. 입장료 어른 2,000원. 동절기에는 09:00~17:00까지 개장하며 10인 이상이면 인터넷을 통해 숲해설가를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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