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20] 항상 꼴찌였던 그녀, 익스트림스포츠 마니아로 거듭나다

입력 2021.01.12 09:20

국내 7대륙 최고봉 최연소 완등 김영미

강원도 평창 산골의 한 소녀는 1999년 대학 입학 후, 우연히 지나가다 본 산악부 동아리 문을 두드린다. 하하호호 웃으며 산보를 다니는 동아리라 생각했으나 1년에 적어도 100일, 많게는 150일을 산에서 지내며 덩치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새내기 땐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눈물 흘린 날도 많았다. 특히, 그녀는 산악부에서 가장 느렸다.
그런 그녀가 20년이 흐른 2020년 ‘제58회 대한민국체육상 시상식 및 2020 체육발전 유공자 포상 전수식’에서 거상장을 받고, 대학산악연맹에서 올해의 산악인상을 수상했다. 수직의 세계인 등반은 물론, 수평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트레일러닝과 사이클, 사선의 세계인 산악스키까지 망라하는 전천후 익스트림스포츠 마니아로 거듭난 산악인 김영미(40)다.
“처음 산악부에 들어왔을 땐, 제가 뒤처지면서 폐를 끼치는 게 너무 싫었어요. 방학이면 20일 이상 장기훈련을 하는데, 대관령에서 시작해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했어요. 해뜨기 전부터 형들과 함께 학교 인근 저수지 주변을 달리기도 했죠. 요즘 말하는 트레일 러닝이에요. 달리면서 코피를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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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바이칼호 종주 중 시베리안 허스키와 교감하고 있는 김영미.
김영미의 산에 대한 열망을 선배들은 놓치지 않았다. 백두대간 일시종주 외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등반 경력이 없던 대학교 4학년 시절, 한왕용 대장의 14좌 완등 마지막 원정에 참가하며 히말라야 설산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녀는 에베레스트 신 루트 개척 등반, 7대륙 최고봉 등정, 국내 여성 최초 히말라야 알파인스타일 등반(암푸1 초등) 등 굵직한 업적을 성취했다.
“20대의 삶은, 산과 함께 불같이 뜨겁게 지나갔어요. 가진 것이라곤 열정밖에 없었어요. 기업 후원은 없었지만 모교 산악부와 박영석 대장님이 7대륙 최고봉 릴레이를 위한 최고의 후원자가 돼 주셨죠. 이들에 대한 최선의 보답은 안전히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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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는 2018년 백두산 트레일러닝 대회 50km 부문에 출전, 6시간 59분 42초에 골인하고 완주 메달을 받았다.
김영미는 안전한 등반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침에 수영으로 시작해서 사이클 100km를 타고, 저녁에는 암장운동도 했다. 배낭에 10kg의 물을 채워 야간 산악구보도 했다. 스피드를 갖추기 위해 트레일 러닝과 사이클, 산악스키 등 익스트림 스포츠도 섭렵했다.
“7대륙 최고봉 릴레이의 마지막 산인 에베레스트는 혼자 갔어요. 출국 한 달 전에 집주인이 방을 빼라고 해서 짐을 신혼인 동기 집에 옮겨놓고 가을까지 6개월 동안 원정을 나갔죠. 짐도 제가 출국한 후 선배들이 옮겨줬어요. 작은 것부터 등정의 모든 순간까지 혼자 이룬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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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는 2008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며 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자로 이름을 남겼다.
세 차례의 비극, 그리고 새로운 모험
이처럼 수직의 세계인 고산 등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녀는 세 가지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 루트 등반 중 친오빠나 다름없는 오희준과 이현조 두 선배의 주검을 지켜봤고, 2009년에는 14좌 완등 레이스 중인 고미영 대장의 추락사 소식을 베이스캠프에서 전해 듣고 곧바로 철수했다. 2011년엔 강기석, 신동민, 박영석 대장의 사고로 이루 말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 김영미는 한동안 사람들과 단절하고 운동에 집중했다. 오르막을 달린 후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들으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꼈고, 또 누군가에게는 없을 내일의 삶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중하고 귀한 삶을 허투루 살면 안 된다고, 더 단단히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김영미는 당시를 회고하며 “지금껏 쌓아온 것을 모두 포기하고 트라우마를 평생 간직하고 사는 삶은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며 “한 걸음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수직의 위험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지만, 매일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비워 내고 나면 무거운 마음이 좀 가벼워 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의 단서를 암푸1 등반 중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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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선자령 동계종주 중인 김영미.
“2013년 암푸1 초등 등반은 정상 등정까진 순조로웠는데 하산 때 세르피니 패스를 넘으면서 폭설로 고립, 뜻밖의 탈출을 감행했어요. 눈이 저렇게 많은데, 연료가 떨어져 물 한 컵 시원하게 마시지 못하고 러셀을 했죠. 최후엔 장비도 다 버리고 간신히 마칼루 로지에 닿았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침낭 속에 있어도 체온이 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어요. 힘을 다 써버린 줄 알았는데, 아침이 되니 어디서 에너지가 채워졌는지 다시 걷고 있더라고요.”
수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매일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방법. 즉 수평의 세계에서 추구하는 알피니즘에 대한 고민은 2017년 바이칼호 724km 종주로 결실을 맺는다. 최고 수심 1,637m에 이르는 바이칼호 위를 90kg 무게의 식량과 연료, 장비가 실린 썰매를 끌고 걷는 건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했다. 이따금 들리는 얼음 깨지는 소리와 얼음판 아래 시커먼 물 속 공포와 매순간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등반은 외줄타기 같아요. 날씨 같은 운적인 요소도 따르고, 하산에 대비해 늘 어느 정도 힘을 보존해야 됩니다. 하지만 수평의 탐험에서는 비교적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었죠. 매일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길 끝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했죠.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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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화천 DMZ 랠리에 출전한 김영미.
강릉에서 평창 집까지 2박3일 걸어서 가다 
현재 김영미는 2016년 이래 매년 노스페이스가 주관하는 트레일러닝 대회(TNF100) 레이스 디렉터로 활동한다. 더 좋은 대회를 만들기 위해 홍콩과 중국 백두산 천지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대회에 직접 선수로 출전했다. 2019년에는 서울시 주관으로 처음 열린 서울100K 대회 레이스 디렉터로 트레일 러닝 활동 저변을 넓혔다.
대회 주관자로서의 끼는 대학교 산악부 때부터 충만해 있었다. 김영미는 종강하면 학교가 있는 강릉부터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연결한 루트를 따라 2박3일을 걸어 평창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설악가>에 나오는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이란 가사에 영감을 얻어 설악산 계곡길을 연결한 24시간 무박종주를 했다. 나름의 낭만산행 코스를 계획, 실행한 것이다. 김영미는 이를 두고 “정상도 좋지만, 산에는 낭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의 낭만성을 추구하는 것도 알피니즘의 일환이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그저 등반이나 모험을 통해서 내가 반 발자국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알피니즘도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수행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삶의 무대에서 한걸음 더 내딛기 위해 애쓰는 노력, 이것도 알피니즘 아닐까요?”  
등반 경력
2003 가셔브룸2봉·브로드피크 등반
2004 일본 북알프스 동계 종주, 
클린마운틴 K2 원정대 참가, 빈슨매시프 등정
2005 데날리 등정, 엘브루스 등정
2006 아콩카과 등정, 에베레스트 등반 
(북릉~북동릉 루트), 칼스텐츠 등정
2007 킬리만자로 등정
2008 에베레스트 등정 (남동릉), 
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
2007, 2008, 2009  에베레스트 등반 (남서벽 신 루트)
2009 로체 등정
2008, 2009, 2013  가셔브룸2봉 등반
2011, 2012, 2013  알프스 등반
2013 네팔 암푸1(6,840m) 초등
2014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2017 시베리아 바이칼호(724km) 단독 종단
2018 알프스 몽블랑 산악스키 등반
2016 ~ 현재  TNF100강원 (10, 50, 100km) 레이스 디렉터 
2019 1회 서울100K (10, 50, 100km) 레이스 디렉터 
수상 경력
2011 아시아 산악스키 선수권대회 겸 
제8회 강원도지사배 산악스키대회 여자 엘리트경기 2위 
2012 아시아 챔피언십 일본 산악스키 대회 4위
2013 박영석 특별상
2014 엄홍길휴먼재단 도전상
2016 제12회 산림청장배 
전국 산악스키대회 여자청년부 2위
2019 서울특별시장 표창
2020 체육훈장 거상장, 대학산악연맹 올해의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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