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산행] 땅의 할애비, 따라비 오름을 오르다

입력 2021.02.01 09:23

제주 쫄븐갑마장길 가이드
고려 때부터 말 방목장으로 이용…분화구 3개 가진 따라비오름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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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 위에 꽃과 나무가 자라는 꽃머체.
‘갑마장길’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걷기 길이다. 가시리는 중산간 지대에 위치하고 표선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면적이 넓다. 때문에 가시리는 고려 때부터 말 방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때 제주의 13개 말 목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목마장이 있었고, 최고 등급의 국마國馬를 기르던 갑마장甲馬場 또한 이곳에 있었다. 갑마장길은 이 갑마장을 중심으로 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목장의 경계선인 잣성, 그리고 삼나무와 편백나무숲을 이은 20km 걷기 길이다. 2011년 주민들이 힘을 합쳐 길을 냈다.
갑마장길엔 ‘미니’ 버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갑마장길의 딱 절반인 10km 거리의 ‘쫄븐갑마장길’이다. ‘쫄븐’은 ‘짧은’이란 의미의 제주 방언이다. 갑마장길을 개장한 이듬해인 2012년 11월 개장했다.
쫄븐갑마장길은 정석항공관주차장에서 유채꽃 프라자~꽃머체~행기머체~따라비오름~잣성~큰사슴이오름을 지나 원점회귀한다. 말이 뛰어다니던 이 길은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의 경기 코스로 이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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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쫄븐갑마장길은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유채꽃 프라자에서 걷기 시작하면 짧은 숲을 지난다. 이곳에선 ‘꽃머체’를 살펴볼 수 있다. ‘머체’는 지하에 형성된 용암돔이 오랜 세월 동안 흐르면서 지상으로 나온 것으로 전문용어로는 지하용암돔, 즉 ‘크립토돔Cryptodome’이라고 부른다. 돌무더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머체는 단순한 바위라기보다는 나무나 여타 식물들과 공존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꽃머체는 돌무더기를 뚫고 참꽃나무와 구슬잣밤나무가 자라는 모습이다. 머체 위의 나무에서 꽃이 핀다 해서 꽃머체라 부른다. 바위 사이를 비집고 뿌리를 내린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바닥에는 초록 이끼와 양치식물이 가득하다.
꽃머체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도로 건너 ‘행기머체’가 있다. ‘행기’는 물을 담는 놋그릇을 뜻한다. 머체 위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 하여 행기머체로 불린다. 이 머체는 높이 7m, 직경 18m로 동양에서 가장 큰 크립토돔이다.
행기머체를 지나면 가시천을 끼고 계곡과 숲이 이어진다. 길을 걷는 도중 나무로 만든 문 같은 곳을 여러 번 지나게 되는데 ‘ㄹ’자로 돌아들어가는 모습이 특이하다. 이렇게 해두면 사람은 쉽게 오갈 수 있지만 말은 긴 몸을 돌리지 못해 지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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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정상에 서면 드넓은 갑마장 초원과 풍력발전소 등의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제주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잣성
가시천을 지나면 길이 넓어지고 따라비오름(342m)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름 입구까지는 거의 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이다. 곳곳에 리본과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어느 곳에서든 출발지로 되돌아가는 길이 있어 힘들다면 쉽게 탈출할 수 있다.
‘따라비’는 ‘땅의 할애비’라는 뜻의 ‘따애비’에서 유래했다. 이름대로 따라비오름 주변에는 여러 오름이 있는데, 400m쯤 떨어진 새끼오름은 따래비의 아들 격이고, 새끼오름과 1km쯤 거리를 둔 모지오름은 며느리, 그리고 모지오름과 330m 거리를 둔 장자오름은 손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계단과 흙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따라비오름 정상부에 닿는다. 따라비오름에는 굼부리, 즉 분화구가 3개다. 커다란 분화구 안에 3개의 작은 분화구가 또 있는 특이한 형태다. 봉우리는 6개에 이른다. 보통 알고 있는 오름과는 생김새가 확연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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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곳곳에서는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정상’으로 부를 만한 큰 봉우리는 2개, 서쪽 봉우리에 서면 큰사슴이오름과 풍력발전단지,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 동쪽 전망대에서는 발아래 갑마장과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대부분 오름이 하나의 길만 있는 반면 따라비오름은 사방으로 길이 나 있어 마음 끌리는 대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따라비오름에서 내려오면 다시 삼나무숲과 만나고 옆으로는 잣성길이 함께한다. ‘잣성’은 목장과 목장의 경계이자 말을 가두기 위한 돌담이다. 이곳의 잣성은 제주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이다.
잣성길이 끝나고 국궁장을 지나면 큰사슴이오름으로 갈 수 있다. 옛날엔 사슴이 살았었고, 오름의 생김새가 사슴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 화산활동으로 쏟아진 용암들이 중턱에서 멈춰 굳어졌기 때문에 화산 평탄면의 원지형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다른 오름에 비해서 조금 가파르다. 정상에선 가시리 풍력발전소와 갑마장의 초원, 억새밭 등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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