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IKING] 홍천 팔봉산… 얕잡아 보다 두 손 두 발 다 쓰게 되는 산

  • 글·사진 김강은 벽화가
    입력 2021.02.13 15:59

    8개 정상석 찾는 재미 쏠쏠~ 산행판 도장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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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갑내기 친구 언주와 팔봉산에 올랐다. 8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오르며 정상석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팔봉산은 낮고 작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높이 330m 남짓한 산이다.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다. 하지만 높이에 비해 아주 유명하다. 산세가 만만치 않아서 얕보고 올랐다가 벌벌 떠는 등산객도 적지 않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동행과 함께하는 산행을 추천한다. 
    1년 전 동갑내기 친구 언주와 함께 팔봉산을 다녀왔다. 그녀는 기획자로, 나는 걷기 여행가로 만나 지금까지 산 친구로 연을 맺고 있다. 
    지하철로 여정을 시작했다.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역에 도착해 버스로 한 번 더 이동한다. 긴 이동 끝에 도착한 겨울 팔봉산에는 짙푸른 녹음도, 새하얀 눈도 없었다. 차고 건조한 공기처럼 심드렁한 마음이 들었다. 좁은 산비탈을 치고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점점 험악해지는 바위를 잡고 오르자, 깨달았다. 제대로 왔구나! 산의 허리를 둘러싸는 홍천강을 바라보니 가슴이 웅장해지고, 숲이 없어 더 도드라지는 바위의 질감과 형세는 눈에 콱 박혔다.  
    더욱 재미난 건 1봉부터 8봉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나드는데,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점잖은 사람도, 기운 센 사람도 예외 없다. 사족산행이다. 봉우리를 넘을수록 산세는 더욱 험해진다. 한 발짝도 허투루 걸을 수 없어 바짝 긴장한 채 집중한다. 
    정상석 인증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팔봉산에선 봉우리마다 숨겨져 있는 표지석을 찾아내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행판 ‘도장 깨기’이자 등산이 ‘게임’이 되는 순간이다. 세 번째 봉우리에 올라섰다. 일자로 흐르던 홍천강이 S자 몸매를 뽐내며 굽이친다. 저 멀리 두릉산, 용문산, 종자산 능선이 아스라이 바라다 보인다. 최고의 자연 상영관이다. 
    우리는 작은 돌 소파에 자리 잡았다. 그 동안의 근황, 농담 섞인 장난말, 고민과 격려가 오간다. 산이라는 공간 속에서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를 쉽게 허물 수 있다는 것, 산이 갖는 푸른색 힘이다.
    진로가 불투명하던 시기, 처음 만난 산은 뜨거운 성취감과 자존감을 선물해 주는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산은 내게 쉼표가 되었다. 팍팍한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과 황홀한 시간을 마주하는 곳이다. 지금은 관계라는 울타리를 새로 짓는 곳이다. 
    상황과 역할에 걸맞은 가면을 수시로 바꾸어 써야 하는 사회, 속마음 터놓을 곳 마땅치 않은 현실 속에서 1년 사귄 친구와 10년의 세월을 함께한 친구처럼 내 알맹이를 꺼내 놓을 수 있는 곳이다.
    산의 향기도 사람 냄새도 그립다. 눈 소식이 들릴 때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내가 놓치고 있는 걸까 조바심이 난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다리를 다쳐서 산에 찾지 못할 때, 산 선배들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성급할 필요 없어.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어.”
    몸 아닌 마음이 너덜한 코로나 시대에 떠올려야 할 문장이기도 하다. 조바심 낼 필요 없다. 슬퍼할 필요도 없다. 아름다운 산은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참고사항: 팔봉산 3월 해빙시까지 전면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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