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It Now] 탕춘대성 암문은 '지옥의 귤게이트'

입력 2021.02.08 09:52

창간 51주년 환경 캠페인 르포
클린하이킹 북한산둘레길 7코스 옛성길 구간…쉼터마다 귤껍질 가득

이미지 크게보기
북한산 능선을 배경으로 만든 정크아트 <쓰레기 버리지 마‘소’>와 정지훈, 김강은씨.
사건의 냄새가 났다. 길이 아닌 곳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흔적은 분명히 단서가 될 것이다.
추리극에서 숱하게 목격한 클리셰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둔 햐얀 자갈처럼 이를 따라가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씩 수거하며 흔적을 좇았다. 수풀을 헤치자 나타난 건 쉬어가기 좋은 널찍한 반석. 주변에는 한바탕 회식을 한 듯 플라스틱 양념통과 막걸리통이 버려져 있다. 클린하이커스가 따라간 ‘흔적’은 바로 ‘귤껍질’이었다.
북한산둘레길 7코스 옛성길 구간은 귤껍질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쉼터,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 탕춘대성 암문 등 옛성길의 주요 명소마다 버려진 지 얼마 안 된 귤껍질들로 가득했다. 귤껍질은 겉에 묻은 농약으로 인해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있는 쓰레기다.
이미지 크게보기
옛성길 들머리는 하산 후 버린 쓰레기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들머리 주변은 쓰레기 천지
클린하이커스 김강은, 정지훈씨와 함께 북한산둘레길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인원 구성을 최소화했다.
북한산둘레길 21구간 중 이번에 선택한 곳은 7코스 옛성길. 거리는 2.7km로 짧지만, 제법 고저 변화가 있어 걷는 재미가 있는데다가 서울 시가지는 물론 북한산 비봉능선까지 양쪽으로 경치가 빼어나 인기가 높은 코스다. 또 북한산둘레길 중 유일하게 성문(탕춘대성 암문)을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쓰레기가 많이 없으면 8코스 구름정원길까지 더 걸어보기로 하고 구기터널, 한국고전번역원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클린 산행을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불심원에 닿는다. 불심원 바로 뒤가 옛성길 구간이 시작되는 입구다.
이미지 크게보기
바위 틈새에 귤껍질과 젓가락들을 수거하고 있는 김강은씨.
“일단 조금 줍고 시작해야겠는데요?”
일견 잔설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입구 양옆에 쓰레기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맥주캔과 물통 등 등산객들이 하산 후 집까지 쓰레기를 가져가기 귀찮은 나머지 길 양옆에 던져놓은 모양이다.
국립공원에 설치된 쓰레기 수거함을 철거하고 ‘국립공원 쓰레기 제로 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14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쓰레기를 집까지 되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오르막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소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아늑하다. 구기터널 위로 부쩍부쩍 고도를 높인다. 쓰레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지 크게보기
옛성길은 멋진 전망과 아늑한 소나무숲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수거한 쓰레기를 든 채 걷고 있는 김강은, 정지훈씨.
처음 만나는 능선에 오르자 든든한 성문이 나타난다. 탕춘대성 암문이다. 탕춘대성이 지나고 있어 길 이름도 옛성길이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 성곽과 북한산성을 잇는 약 5.1㎞의 성이다. 인왕산에서 시작해서 북한산 비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암문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쓰레기들이 속출한다. 지난 주말에 누군가 버린 듯 귤껍질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등산로에서 한 걸음 떨어진 너른 바위 틈새에도 귤껍질과 나무젓가락이 잔뜩 버려져 있다. 심지어 소나무 가지에도 귤껍질이 걸려 있다. 소나무는 졸지에 귤나무가 된 처지였다. 이곳은 ‘쓰레기 투기 금지’ 플래카드가 붙은 곳이다.
“‘흘린’ 쓰레기를 주울 때는 실수일 것이라 생각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줍는데 이렇게 ‘던져버린’ 쓰레기를 주울 때는 참 마음이 안 좋네요.”
이미지 크게보기
소나무에 걸린 귤껍질을 수거하고 있는 정지훈씨.
귤껍질은 이곳뿐만이 아니라 길을 걷는 내내 계속 발견됐다. 옛성길 구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명소(옛성길 전망대)에도 사방이 귤껍질이었다. 작정하고 버린 쓰레기에 모두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한창 쓰레기 수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때, 엉뚱한 곳에 걸린 산악회 리본이 발견됐다. 산악회 리본은 길이 헷갈리는 곳에서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걸린 곳은 길도 없는 쉼터다. 오직 홍보가 목적인 리본인 셈이었다. 산악회 리본은 타포린, 부직포 등 질기고 잘 썩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깔끔하게 쉼터를 정리한 뒤 길을 잇는다. 등산로에서 오른쪽에 솟은 낮은 언덕을 올라가니 철탑이 들어선 공터. 쓰레기를 탐색하던 시선이 잠시 늠름한 북한산 비봉능선에 뺏긴다.
이미지 크게보기
탕춘대성 암문에서 쓰레기를 향해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있는 정지훈, 김강은씨.
보현봉에서 흘러나온 능선은 족두리봉을 일으켜 세우고 불광동 쪽으로 가라앉는다. 늠름한 비봉 옆에 앙증맞게 솟은 사모바위가 마치 어미새와 아기새 같다.
워낙 주운 쓰레기가 많아 이곳에서 정크아트를 펼친다. 창작의 고통은 잠깐, 마침 공터의 바위가 소의 등걸을 닮았다. 모두가 흰 소의 해를 기념해 소를 만들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오른쪽 뿔은 부러지고 코뚜레는 버려진 ㄷ자형 쇠말뚝으로 박아 넣었다. 공해로 고통 받는 소가 올해에는 웃을 수 있기를 빌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본래의 이정표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산악회 리본은 자연 경관과 환경을 훼손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1970~1980년대 생산된 콘티빵 봉지가 여전히 썩지 않은 채 수거됐다.
50년 지나도 안 썩은 ‘콘티빵’ 봉지
구름정원길로 진행하려는 차,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날씨가 흐려졌다. 곧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를 확인하고 곧장 홍은동 돌산 축구장 방면으로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쓰레기 수거를 위한 집게와 봉투를 모두 여민 상태로 걸음을 서두르는데 김강은씨가 등산로 한가운데 파묻힌 무언가를 발견하곤 클린하이커스를 집결시켰다. 옹기종기 모여 땅을 한참 파내자 그 속에서 모습을드러낸 건 1970~1980년대 판매됐던 콘티빵 봉지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500년 이상이 지나야 분해가 된다고 한다. 단 비닐의 경우 10년쯤 지나면 갈갈이 찢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땅에 묻힌 경우에는 찢어지지 않고 지속적인 오염을 유발한다.
이제 클린하이킹을 마치고 포방터에 내려선다. 고의적으로 버린 쓰레기들을 줍느라 유독 마음이 안 좋았던 하루였다. 그때 한가득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일행들의 행색을 본 ‘우리농산물 홍은점’ 사장이 기꺼이 쓰레기를 버려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선한 영향력이 계속해서 퍼져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날 수거한 쓰레기의 총 무게는 2.5kg이다.
GREEN PEOPLE
“생활 속 환경운동, 업사이클링을 아시나요?”
정지훈 클린하이커스
이번 클린하이킹에 함께한 정지훈씨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생활 속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자원이나 물건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새활용’이라고 한다.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리사이클링)’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손재주가 있어서 교회에 버려진 의자가 있으면 가져와서 가구를 만들곤 하시던 걸 자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지갑은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라이탁’ 이고, 가방은 제가 직접 친구의 가죽공방에 의뢰해서 만든 겁니다.”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앞다퉈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페트병 재생섬유로 친환경 티셔츠를 만들고, 노스페이스는 리사이클링 소재를 적용한 재킷을 신제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마모트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 원사를 뽑아낸 티셔츠를 선보였다. 이젠 가성비와 성능, 디자인에 국한됐던 등산 장비 선택의 기준에 ‘친환경’도 포함돼야 하는 시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