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산행] 희양산막걸리+문경·괴산 희양산, 실리콘밸리 출신 주인장이 빚은 ‘풀바디’ 막걸리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김종연 기자
  • 취재협조 대동여주도
    입력 2021.03.25 09:34

    취미로 막걸리 빚다가 양조장까지 세워… 유기농 우렁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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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나눠 마시려고 ‘맛 좋은’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 두술도가가 탄생했다. 희양산막걸리는 두술도가의 첫 작품이다.

    우리나라 막걸리는 대개 지역명이나 재료를 앞에 붙여 이름을 짓는다. 예를 들면 포천이동막걸리, 공주알밤막걸리, 강화인삼막걸리 식이다. 산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몇몇이 있다. 금정산성막걸리, 소백산막걸리 등이다. 이번에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산 이름을 쓰는 막걸리를 소개한다. 문경 ‘두술도가’에서 만드는 ‘희양산막걸리’다.

    클래식이 흐르는 술도가

    ‘두술도가’는 경북 문경 가은읍 ‘가은아자개장터’ 내에 있다. 이 장터는 가은의 오일장이다. 2014년 중소기업청에서 선정한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어 지금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문경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자개장터 입구를 지나 오른쪽에 ‘두술도가’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한옥 모양 건물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걸리 익는 냄새가 풍긴다. 구수한 막걸리 냄새와 어우러지는 것은 구식 턴테이블에서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이다.

    “코로나에 더해 요즘은 여행 비수기라 뜻하지 않게 이렇게 여유를 즐길 시간이 납니다. 좋은 일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좋은 일이겠죠? 하하.”

    두술도가의 주인장 김두수(52)씨는 평소 생각하는 양조장 사장의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막걸리보다는 와인을 만들 법한 분위기다. 가수 이문세를 은근히 닮기도 했다. 목소리도 조금 비슷하다. 우연인지 턴테이블 위에 놓인 LP도 ‘이문세 4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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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술도가’란 양조장 이름은 주인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사실 그는 막걸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았다. 양조장 주인장이 된 현재 ‘제2의 인생’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IT 분야에서 일했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관련 회사를 5년 정도 다녔죠. 반도체 분야는 좁은 분야를 깊게 연구합니다. 제가 맡은 일만 하기에 그 뒤의 결과를 알 수 없어요. 그런 점이 좀 지루하고 답답했어요.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아내 이재희(51)씨를 만나 결혼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농촌으로 가기로 했다. 2005년 귀국한 부부는 귀농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귀농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터를 잡은 곳이 문경 희양산 아래 가은읍 원북리였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농사를 다 지었다. 특별한 농사기술을 가진 것이 없어 청년 농부들과 귀촌 농부들이 모여 만든 ‘희양산공동체’에서 복숭아 등 과수원 일도 해보고 텃밭에 되는 대로 채소도 길러봤다. 작게 짓는 농사가 돈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두수씨 부부는 행복했다.

    “자기가 하는 일만 아는 반도체 분야와 달리 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관여하고 지켜보고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밭 갈고 씨 뿌리고 관리하고 수확하고 포장해서 파는 것까지 우리 손으로 다 했으니 몸은 힘들어도 보람이 컸죠.”

    하루 일과가 끝나면 희양산공동체 친구, 형님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다. 술 좋아하는 김 대표에게 그 시간은 귀한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희양산 자락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쌀인 ‘우렁쌀’이 잘 팔리지 않아 고민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쌀은 남는데 술은 사서 마시니 남는 쌀로 술을 만들면 일석이조 아닌가?’하는 생각이오. 그래서 우렁쌀로 술을 빚어보기로 했어요. 그게 희양산막걸리의 시작이었던 거죠.”

    김 대표는 독학으로 술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 술은 마시기만 좋아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 비법도 없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과생’ 특기를 살려 발효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전통주 시장을 개척한 배상면 선생이 지은 <전통주제조기술>을 교과서 삼아 공부했다. 만든 술은 공동체 식구들이 마음껏 시음하고 평가해 주었다.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 김 대표는 어느새 술 만드는 일이 정말로 좋아졌다. 술 만들기를 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2년 정도 연구하고 공부한 끝에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2018년 아자개장터의 빈 건물을 양조장으로 꾸며 ‘두술도가’ 간판을 내걸었다.

    두술도가의 ‘두’는 말술이란 뜻의 ‘말 두斗’자이기도 하고 중국의 주신酒神 두강杜康의 ‘두杜’자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큰 의미는 ‘김두수’의 ‘두’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술도가’는 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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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에서는 이제까지 희양산막걸리 병의 변천사를 둘러볼 수 있다.

    9도, 15도가 제일 맛있어

    “우리끼리 마시려고 해서 만든 막걸리라 맛을 최우선으로 했어요. 그래서 알코올 도수가 6도가 아니라 9도와 15도예요. 이 도수에서 가장 맛이 좋았거든요.”

    희양산 우렁쌀로 만드는 ‘희양산막걸리’는 밑술에 5일 정도 걸리고, 덧술을 해서 3주 정도 발효시키는 이양주다. 이렇게 만든 막걸리는 바로 포장하지 않고 저온 창고에서 한 달가량 잘 숙성시킨다. 덕분에 탄산이 적고 깊은 맛이 난다.

    “희양산막걸리는 우리가 흔히 마시던 달달한 막걸리와는 조금 달라요. 단맛, 신맛, 떪은맛, 쓴맛이 공존합니다. 와인으로 치자면 ‘풀바디Full Bodied 와인’이라고 할까요.”

    김 대표가 희양산막걸리 두 잔을 내왔다. 각각 9도와 15도짜리다. 먼저 9도짜리를 맛본다. 입안을 적시는 깔끔함 후에 단맛이 적은 드라이함이 느껴진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시고 떫은맛이 균형 있게 퍼진다. ‘어른이 마시는 술다운 술 맛’이라고 표현하면 어울릴까.

    다음은 15도짜리를 마셔본다. 9도짜리에 비해 훨씬 맛의 깊이가 더하다. 단맛, 신맛, 떫고 쓴맛이 극대화되는 느낌이다. 거의 ‘소주급’ 도수임에도 알코올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 끝맛에선 신선한 견과류를 씹었을 때의 고소함도 느껴진다. 어른이 마시는 술 맛을 넘어 ‘주당’들이 좋아할 만한 맛과 풍미다.

    그렇다고 양은그릇에 꽉꽉 눌러 담아 ‘원 샷’하는 ‘노동주’는 아니다. 와인 잔에 채워 조금씩 홀짝이며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술도 아니다. 희양산막걸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잔 부딪히며 마시는 술이다. ‘친구들과 좋은 술 마시며 놀고 싶은 마음으로 빚은’ 주인장의 바람이 아주 잘 표현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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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 우렁쌀로 빚어 뽀얀 빛깔이 예쁜 희양산막걸리.

    신세대 취향에 맞게 라벨 디자인

    희양산막걸리는 맛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술병 라벨도 인기가 좋다. 이 라벨은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이자 희양산공동체 식구인 동화작가 전미화씨의 작품이다. 전미화 작가는 ‘미영이’, ‘대단한 참외씨’,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고소했대’ 등으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동화작가다.

    “전 작가와 친분도 있지만 예술가로서 그녀는 ‘천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희양산막걸리의 라벨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죠. 막걸리 판매금액 일부를 로열티로 지불하기로 하고요. 공동체 식구로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죠.”

    동화작가답게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린 라벨은 투박할 수 있는 막걸리의 이미지를 좀더 ‘요즘 것’으로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최근 라벨로 쓰고 있는 ‘으랏차차’는 2017년 3월호 희양산 마을 소식지에 실린 작품을 가져온 것이다.

    원래 의도는 새로운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 농민들에게 힘을 주는 ‘으랏차차’였으나 현재는 코로나 사태에 우리 모두 힘을 내자는 의도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산타 모자를 쓴 ‘으랏차차’도 별도로 제작해 한정판으로 냈다. 이밖에도 상상 속의 새, 도깨비, 낙타, 산 능선 등을 그린 라벨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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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 한켠에는 주인장이 고르는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희양산막걸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오롯이 김 대표 부부의 손으로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문경 시내의 식당이나 마트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자개장터의 식당 한 곳에서만 판다. 대부분 판매는 온라인 쇼핑몰과 서울의 막걸리 전문점에서 이루어진다. 다행인 것은 요즘 막걸리 시장에도 ‘프리미엄’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가지고 수제로 만든 막걸리를 찾아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다. 막걸리에도 ‘미식’ 바람이 부는 것이다.

    “희양산막걸리의 드라이한 맛에 호불호가 있는 편이에요. 평소 달달한 막걸리를 선호한다면 단맛 적은 희양산막걸리는 그저 쓴 막걸리일 거예요. 하지만 희양산막걸리를 두세 번 마시다 보면 그 드라이한 맛에 매료된다고 해요. 분명 쓴맛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달고 시고 떫고 구수한 맛들이 숨겨져 있거든요. 희양산막걸리 때문에 ‘새로운 막걸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말도 자주 들어요.”

    곧 두술도가에서 나온 새로운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를 넣은 막걸리다. 이름은 ‘오!미자씨’다. ‘개그 본능’ 가득한 주인장이 지은 이름답다. ‘오!미자씨’는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으나 오미자 수급관계로 잠시 생산 중단했었다가 사정이 나아져 다시 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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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술도가가 위치한 문경 가은의 아자개장터.

    술 빚기는 일상이자 행복

    김 대표는 앞으로 증류주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니, 이미 시제품으로는 만들고 있다. 다만 정식으로 출시하기 위해선 양조장 규모라든지 보관실 등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다. 소규모로 막걸리를 만드는 지금 실정으로선 아직 먼 길이다.

    “좋은 재료와 술 맛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요즘 세대의 취향에 맞춘 라벨 디자인도 이목을 끌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좀더 ‘두술도가’와 ‘희양산막걸리’라는 이름이 알려져 소비자가 더 좋은 막걸리를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저는 두술도가 주인장으로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할 겁니다. 그게 우리 부부의 일상이자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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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글보글 익어가는 술을 부지런히 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두술도가

    문경시 가은읍 아자개장터 내에 있다. 막걸리 생산시설과 판매장을 겸하고 있으며, ‘찾아가는 양조장’은 아니지만 미리 예약하면 양조장 시설과 술 빚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식 견학 프로그램이 아니라 별도 요금은 없지만 공간이 협소해 단체 견학은 어렵다. ‘희양산막걸리’는 온라인 쇼핑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두술도가’나 ‘희양산막걸리’로 검색). 9도 750㎖ 8,000원. 15도 500㎖ 9,500원. 양조장을 방문해 직접 구입하면 할인가로 살 수 있다.

    문의 010-4276-2329.

    '본 기사는 월간산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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