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야기] 산골 처녀와 압구정 아가씨

입력 2021.04.01 10:39

노루귀, 얼레지, 처녀치마, 현호색… 봄산의 건강 미인

등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도시에도 꽃은 많지만 화장한 듯한 원예종이 대부분이다. 산에는 자연 미인들, 그것도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란 건강한 미인들이 많다. 산행에 야생화를 보는 즐거움, 아는 재미를 더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산행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 이야기, 알면 산행이 더 재미있는 꽃이야기를 담는 코너를 신설했다._편집자
4월 산에 많은 꽃들이 피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만날 수 있으면서도 인상적인 야생화는 무엇이 있을까. 노루귀, 얼레지, 처녀치마, 현호색 4가지를 골랐다. 전국 대부분의 산에 있는 꽃이고, 야생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들꽃이기도 하다.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초봄에 피는 꽃 하면 매화와 개나리·진달래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초봄에 산에 가보니 그보다 먼저 피는 꽃들이 있었다. 그것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꽃들이 많았다. 
노루귀처럼 생긴 잎 모양
노루귀는 잎이 나기 전에 꽃줄기가 올라와 한 송이씩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다. 꽃색은 흰색·분홍색·보라색 등이다. 노루귀는 때로는 홀로, 때로는 서너 송이가 묶음으로 또는 줄지어 피어 있다.
귀여운 이름은 나중에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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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야산 얼레지
얼레지 꽃말은 ‘바람난 여인’
얼레지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꽃이다. 
4월 산에 가면 굳이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려 있는 꽃이다. 이름이 특이한 데다 이른 봄에 꽃대가 올라오면서 자주색 꽃잎을 확 젖히는 것이 파격적이다. 어느 정도 젖히느냐면 꽃잎이 뒤쪽에서 맞닿을 정도다.
이 모습을 보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야생화> 저자 이유미는 ‘산골의 수줍은 처녀 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이라고 했고, <제비꽃 편지> 저자 권오분은 화려한 것이 ‘압구정동 지나는 세련된 아가씨 같은 꽃’이라 했다. 산골 수줍은 처녀와 압구정동 세련된 아가씨는 정반대 이미지일 수 있는데, 얼레지를 보면 둘의 이미지를 다 갖고 있다. 얼레지라는 이름은 녹색 이파리 여기저기에 자줏빛 얼룩이 있어서 붙은 것이다.
한성대 언어교육원 임소영 책임연구원은 한 기고에서 “온몸을 뒤로 젖히고 한쪽 다리로 얼음을 지치는 피겨 선수를 닮았다”고 표현했다. 김훈은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에서 “꽃잎을 뒤로 활짝 젖히고 암술이 늘어진 성기의 안쪽을 당돌하게도 열어 보였다”고 했다. 꽃말도 질투, 바람난 여인 등으로 다양한데, 어떻든 느낌이 다양한 꽃인 것이 분명하다.
얼레지가 이처럼 꽃잎을 뒤로 젖히는 이유는 벌레들에게 꿀의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서다. 꽃잎을 뒤로 젖히면 삐죽삐죽한 꿀 안내선honey guide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양인들에게는 이 꽃이 개 이빨처럼 보인 모양이다. 영어명은 ‘dog’s tooth violet’이니 ‘개이빨 제비꽃’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양꽃 중에서 ‘시클라멘’이 꽃잎을 뒤로 확 젖힌 것이 얼레지와 많이 닮았다.
종달새가 군무하는 것 같은 꽃
현호색은 활짝 피면 종달새들이 군무하는 것 같은 꽃이다. 현호색 속명 Corydalis이 종달새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산자락 개울가나 양지바른 언덕 등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현호색은 작은 연보라빛 꽃 모양이 독특하다. 꽃 길이는 2.5cm 정도인데, 옆으로 길게 뻗어 한쪽 끝은 입술처럼 벌어져 있고, 반대쪽 끝은 오므라져 있다. 현호색玄胡索이라는 이름은 약재 이름에서 온 것이다.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현호색 같은 꽃을 알지 못한 채 자랐다. 아무 산에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을 때 피는 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올 봄 야생의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중 하나라도 보는 것을 목표로 해보면 어떨까. 이 꽃 중 하나라도 본다면 야생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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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산 처녀치마
미니스커트 닮은 ‘처녀치마’
처녀치마도 초봄에 피지만 노루귀와 얼레지보다는 좀 나중에, 4월 중순쯤 피는 꽃이다. 이 꽃도 이름이 특이해서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 관심이 갔다. 수목원에서만 보다 북한산에 처녀치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갈 때마다 찾아보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북한산 대남문 근처에서 처녀치마 꽃대가 올라온 것을 포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처녀치마는 전국 산지의 개울가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꽃은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줄기 끝에서 3~10개 정도 꽃술이 비스듬히 아래로 뻗으면서 하나의 꽃 뭉치를 이룬다. 꽃잎 밖으로는 긴 암술대가 나와 있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처럼 꽃 모양과 색깔이 세련된 아가씨가 입는 치마같이 생겼다. 요즘 젊은 아가씨들이 입는 미니스커트 같기도 하고, 짧은 캉캉치마 같기도 하다. 로제트 형으로 퍼진 잎도 치마 모양과 닮았다.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처녀치마를 사온 적이 있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길러서인지 끝내 꽃은 피지 않았다. 그렇지만 푸른 잎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겨울에도 푸르죽죽한 잎을 볼 수 있는 반半상록성이다. 꽃이 필 때는 꽃대가 10cm 정도로 작지만 수정한 다음에는 꽃대 길이가 50cm 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이한 꽃이다. 꽃대를 높이는 것은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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