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봄] 두륜산… 부처님, 어찌 두륜산 능선에 누워 계시나이까?

입력 2021.03.26 09:21

노승봉~가련봉~두륜봉…3개의 봉우리 도는 원점회귀 산행 9km

이미지 크게보기
두륜산 최고봉인 가련봉. 과거엔 쇠줄을 잡고 기어 오르내리는 구간이었지만 현재는 데크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4월 ‘땅끝’ 해남은 봄빛이 잦아들고 있었다. 며칠이나 고르고 고른 ‘날씨 좋은 날’에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하지만 미세먼지의 위력은 대단했다. 바람을 따라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먼지는 남해바다를 뿌옇게 뒤덮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렇겠지, 작은 희망을 가지고 두륜산 주차장으로 향한다. 
고즈넉한 북미륵암엔 국보가 있다 
이번 두륜산頭輪山(703m) 산행은 매표소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대흥사까지 가는 동안 ‘땅끝천년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그 자체로 훌륭한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이다. 좌측은 차가 다니는 도로, 우측은 금당천을 따르는 숲길이다. 산행 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기에 딱 좋다. 
대흥사大興寺는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과거엔 대흥사와 대둔사 두 이름으로 불리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사천왕을 모시는 천왕문 대신 보현보살과 문수동자가 지키는 해탈문을 지난다.
이미지 크게보기
가련봉 정상에서 바라본 노승봉. 그 뒤의 봉은 두륜산 케이블카가 닿는 고계봉이다.
“이곳에서 보는 두륜산 능선이 누워 있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요.”
함께 산행에 나선 해남군청 산림복지과 김옥희 주무관이 절 뒤의 두륜산을 가리켰다. 비로자나불의 수인手印은 주먹 쥔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쥔 모습이다. 이를 두륜산에 대입해 보면 가장 오른쪽의 두륜봉頭輪峰(629.3m)이 부처의 머리이고, 가련봉迦蓮峰(703m)은 오른손, 노승봉(688m)은 검지를 든 왼손이다. 그리고 더 왼쪽의 고계봉高髻峰(638m)은 발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불자에게는 꼭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불심의 형상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노승봉 정상 직전 잠깐 쇠줄을 잡고 오른다.
대흥사 경내엔 벌써 봄이 완연하다. 하얀 매화가 등산객을 순식간에 상춘객의 감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따뜻한 남쪽’에 와 있는 걸 깨닫는다. 대웅전 뒤편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북미륵암으로 향한다. 대웅전 기준으로 북미륵암까지는 1.6km 거리다. 대흥사에 딸린 암자 중 북미륵암으로 가는 길만 포장길이 나지 않았단다. 
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적하다는 것을 뜻한다. 으레 절집에 주차장이 있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모습과는 다른 북미륵암의 풍경이다. 고즈넉한 풍광이지만 북미륵암에는 국보가 있다. 마애여래좌상이다. 고려시대에 암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은 높이가 4.2m에 달한다. 좌상을 모신 건물은 용화전龍華殿이다. 말하자면, 자연 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전각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노승봉에서 바라본 가련봉은 작은 바위 병풍을 두른 듯하다.
마애여래좌상은 용화전에 가려져 전모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2004년 용화전을 해체해 보수하는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모습이 드러났다. 실체가 드러나니 더욱 가치가 빛났다. 불상에 천인상天人像을 조각한 것은 고려시대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예이다. 덕분에 마애여래좌상은 2005년, 보물 제48호에서 국보 제308호로 승격했다. 국보가 버티고 있으니 용화전 옆의 삼층석탑이 수수해 보인다. 이 석탑도 보물 제301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오는 동안 볼 수 있는 비둘기 바위.
천동과 천녀가 굴리던 흔들바위
북미륵암에서 오심재까지는 걷기 좋은 숲길이라 단숨에 오른다. 두륜산은 그리 크지 않은 산이지만 볼거리는 여느 산보다 꽉 들어차 있어 산행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오심재 왼쪽으로는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조금만 오르면 닿는 고계봉이 우뚝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부처의 손에 해당하는 노승봉이 맞서고 있다. 
부드럽게 봉긋 솟은 고계봉의 모습이 마치 한라산을 연상시킨다. 고계봉전망대가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예전엔 오심재에서 고계봉으로 곧장 오르는 산길이 있었으나 현재는 비법정탐방로로 폐쇄되었다.
올라야 할 노승봉의 모습이 강렬하다. 오심재에서 노승봉으로 오르는 길은 진달래 군락지다. 아직은 봄이 이른지 꽃망울만 조금씩 맺혔다.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흐드러진 진달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쉽다.
이미지 크게보기
대흥사에서 바라 본 두륜산 능선. 비로자나불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조금 올라 흔들바위와 만난다. 2017년 해남군 관광지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수풀에 가려져 있던 것을 찾아낸 것이다. 이 바위는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역사와 사적을 기록한 <대둔사지大芚寺誌>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흔들바위에는 전설 하나가 전해 온다. 옛날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동과 천녀는 천상의 계율을 어겼고, 옥황상제는 “너희들은 죄를 지었으나 해남 두륜산에 내려가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하면 용서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륜산에 내려온 천동과 천녀는 손을 풀기 위해 흔들바위를 굴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일단 지는 해를 만일암 터挽日庵址의 천년수에 묶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이후 천녀는 북미륵암의 바위를, 천동은 남미륵암의 바위를 골라 조각을 시작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북미륵암에 있는 국보 제308호 마애여래좌상.
꼼꼼한 성격의 천녀는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할 수 있었지만, 성격 급한 천동은 너무 거창하게 조각을 구상한 나머지 천년수에 묶어둔 해가 저물 때까지도 조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천동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두륜산 산신이 되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분이 아니라 그런지 아무리 바위를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대흥사를 내려다보며 유유자적 간식을 먹었다.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각해야 했지만 우리는 그리 급할 게 없으니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즐긴다.
이미지 크게보기
대흥사 부근엔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데크계단으로 산행 수월해져
이제 헬기장을 지나 노승봉 바로 아래에 닿는다. 부드럽던 육산이 드디어 거친 암봉을 드러낸다. 곳곳에 낙석주의 안내판이 보인다. 
“그래도 나무데크 계단을 만들어 둔 덕에 위험한 구간이 없어요. 옛날에는 쇠줄을 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구멍바위를 지나가야 했어요. 일명 두륜산 통천문通天門이라 불렀죠.”
해남산악연맹 김윤종 산행대장은 “두륜산에 나무데크 계단이 많아지면서 초보자들은 좀더 쉽게 바위산을 오를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면서도 “산꾼들은 암릉 타는 재미가 덜해졌다고 푸념하기도 한다”고 했다. 어떤 일에 장단점이 없을 수 있으랴. 더 많은 사람이 해남의 명산을 찾게 되었다는 좋은 의미만 생각하면 나쁠 게 없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거친 모습과는 달리 노승봉 정상은 넓은 마당바위다. 서로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닷바람이 세차다. 절대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내 몸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이 생긴다. 
앞으로 가야 할 가련봉이 지척이다. 작은 병풍처럼 우뚝 선 바위가 제법 위압적이다. 한 번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이곳 역시 거친 암릉의 연속이지만 데크 계단이 잘 깔린 덕에 손쉽게 내려선다.
이미지 크게보기
매표소에서 대흥사까지 가는 땅끝천년숲길에서 동백 하트를 만들어 보았다.
두 개의 암봉을 우회해 두륜산의 최고봉 가련봉에 올라선다. 부처 이름 가迦에 연꽃 련蓮자를 합쳤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부처와 연꽃을 나타내는 봉우리’란 뜻이다. 불가에서는 연꽃을 부처의 손바닥에 비유한다. 즉 우리는 ‘부처의 손 안’에 든 것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절집의 향냄새가 났던 게 부처의 품에 들어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기분 탓이겠지만. 
가련봉에서 내려서는 길에도 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계단에 닿기 전 불과 2~3m 쇠사슬을 잡고 내려서는 구간에서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세찬 바람에 집중력이 떨어지며 다리와 스틱이 엉켰고, 순간 중심을 잃어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것. 그대로 넘어지면 남해바다까지 굴러갈 상황이라 부끄럽지만 좀 ‘지렸다’. 
만일재로 내려서는 계단 역시 경사가 세 오금이 저리다. 한 발 한 발 떼는 게 긴장의 연속이지만 어찌 생각하면 ‘너무 편하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도 든다. 계단 옆으로는 과거 바위를 ‘기어 다녔던’ 쇠사슬과 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계단 옆이 수석 전시장이다. 비둘기처럼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바위도 있고, 바람이 지나는 동굴바위도 있다. 공룡알을 닮은 바위도 있다. 북한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품평회를 열어볼 만하다. 
만일재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는다. 김밥에 특이하게도 ‘뼈 없는 닭발’과 전복장조림이 반찬으로 곁들여졌다. ‘음식은 남도’라더니 산에서도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산해진미임에는 틀림없다.  
이미지 크게보기
두륜산 등산지도 / ©동아지도 제공
“만일재는 억새가 유명해요. 전라도 지역에서 무등산, 천관산, 월출산과 함께 손에 꼽히는 두륜산 억새 명소니까요.”
만일재란 이름은 천동과 천녀가 해를 매달아 두었던 천년수가 있는 만일암 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일재 근처 200m 지점에 아직도 천년수가 있다. 만일재는 북일면 사람들이 대흥사로 가기 위해 두륜산을 넘던 길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봉. 비로자나불의 머리에 해당하는 봉우리다.
두 개의 바위 이은 구름다리
만일재에서 두륜봉은 금방이다. 마지막 암봉인 걸 아는지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머리 위를 보세요.”
계단을 오르던 김옥희 주무관의 말을 듣고 머리 위를 보니 커다란 돌문이 있다.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란다. 거대한 바위 위로 어찌 이런 긴 바위가 다리처럼 얹혀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김 주무관과 김 대장이 “멋지게 한 컷 찍어보라”며 구름다리 위에 올라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두륜산 명물 구름다리.
구름다리를 지나 작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니 두륜봉 정상이다. 드디어 부처의 머리에 닿은 셈이다. 이제까지 지나온 두 개의 암봉은 다시 봐도 절경이다. 바다가 조금만 더 잘 보였더라면 좋을 뻔했다. 하지만 자연을 어찌할 수 있으랴. 그만큼 기다려도 이루지 못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처의 머리에 서니 마음이 관대해진다. 내려갈 때까지만이라도 이 마음으로 살면 됐다. 그것이면 족하다.
두륜산 703m(가련봉)
전남 해남군 삼산면 
산행 거리 약 9km 산행 시간 약 5시간
산행 난이도 중(위험 구간에 나무계단 설치) 
산행길잡이 
두륜산 코스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대흥사~북미륵암~오심재로 간 후 노승봉과 가련봉, 두륜봉을 오른 후 진불암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이 경우 약 6km에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대흥사 매표소 주차장부터 시작하면 왕복 거리 3km, 1시간 정도 더 추가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지도에 고계봉~노승봉 구간이나 혈망봉~연화봉~대둔산~두륜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두륜산도립공원에서는 비법정탐방로로 지정해 원칙적으로 산행을 금지하고 있다. 
두륜산 봉우리는 거친 바위지만 위험 구간엔 거의 대부분 나무데크 계단을 설치했다. 다만 가련봉에서 줄을 잡고 나무 계단으로 내려서는 아주 짧은 구간 등 정상 부근에서는 아찔한 고도감이 있다. 
여기에 바람이 세차게 불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조금 힘들어할 수 있다. 계단도 경사가 매우 심한 편이므로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한다. 
5월이면 두륜산은 야생화 천국으로 변한다. 참꽃마리, 벌깨덩굴 등의 야생화가 산등성이와 계곡에 핀다. 두륜산의 야생화는 대흥사 계곡부터 7부 능선 사이에 가장 많다. 대흥사 일대 계곡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벚나무숲이 있어 5월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해남종합버스터미널까지 고속버스가 1일 4회(07:30~17:55) 운행한다. 소요 시간은 4시간 30분. 우등 2만7,100원. 목포까지 KTX를 타고 간 후 버스를 이용해 해남으로 가거나 광주역에서 버스를 이용해 해남터미널로 가도 된다. 해남버스터미널에서 대흥사 입구까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한다. 소요시간 약 15~20분.   
숙식(지역번호 064)
두륜산의 한옥여관인 유선관(534-3692)은 대흥사 사찰 객사로 이용되던 역사 있는 숙소다. 이곳에서 묵으면 남도의 ‘집밥’을 맛볼 수 있다. 대흥사매표소가 있는 해남웰빙음식촌에 식당이 많다. 
전주식당(532-7696)은 표고전골을 잘한다. 해남읍내에서는 국향정(532-8922)의 백반, 용궁해물탕(535-5161)은 해물탕 등이 유명하다. 땅끝마을의 종가집한정식(534-6423)은 해물로 구성된 음식들을 내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