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최악의 음식 달밧, 최고의 음식이 되다

  • 글·사진 거칠부(필명)
    입력 2021.03.29 11:47 | 수정 2021.03.30 10:42

    뗀뚝·어짜르·짬빠… 히말라야를 걷게 해준 고마운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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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솔루 쿰부지역의 현지인 집에서 차려준 달밧.
    나는 눈부신 히말라야보다 척박하고 황량한 히말라야를 먼저 만났다. 세상 밖 풍경처럼 보였던 사진 한 장에 반해서, 2014년 10월 처음으로 네팔을 찾았다. 무스탕Mustang은 신비로웠고 황량한 아름다움은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음식은 풍경에 반비례했다. 만만한 샌드위치나 스파게티는 누구의 맛도 아니라서, 종종 삶은 감자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게 아니면 맨밥만 시켜서 한국에서 가져간 반찬과 같이 먹었다.
    그나마 입맛에 맞았던 음식은 티베트식 수제비인 뗀뚝Thentuk과 칼국수인 뚝바Thukpa였다.티베트 음식은 대체로 입맛에 잘 맞았다. 채소, 달걀, 고기가 추가될 때마다 금액이 올라가는 구조라서, 주머니 사정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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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 지역 로지Lodge(식당 겸 숙소)의 달밧. 달밧은 네팔 현지인들의 가정식이다.
    작은 그릇의 뗀뚝과 뚝바는 양이 부족했지만, 추운 날 한 끼 해결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음식도 없었다.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Momo도 입에 잘 맞았다. 튀기는 것과 찌는 것 중 선택할 수 있으며 기본으로 10개가 나왔다. 모모 역시 어떤 재료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채소만 넣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네팔의 주식은 달밧Dal Bhat이다. 달밧의 ‘달’은 콩을 뜻하고 ‘밧’은 밥을 뜻한다. 한 그릇 음식으로 접시에 밥, 반찬, 콩 수프가 나오며 식당에서 유일하게 리필이 된다. 내가 달밧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한 건 2016년 랑탕 샤브르베시Syaburbesi 가는 길이었다. 로컬 버스가 어느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리곤 죄다 커다란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고 국물을 붓더니 손으로 비벼서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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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요리를 준비하는 네팔 스태프의 손길.
    그 식당 화장실의 지린내가 식당 앞까지 진동했고, 나는 차마달밧을 먹을 수 없었다. 바나나와 사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 기억 때문에 가네시 히말Ganesh Himal과 마나슬루Manaslu 지역을 걸을 때 달밧을 먹지 않았다. 반면 같이 갔던 일행은 자주 달밧을 주문했고, 심지어 리필까지 해서 먹었다. 나는 지저분하고 맛없는 달밧을 잘 먹는 일행이 놀라울 뿐이었다.
    일행과 헤어지고 안나푸르나에서 혼자 걸을 때 문득 달밧이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주문한 달밧은 풀풀 날리는 밥알과 약간의 감자, 채소볶음이 전부인 떨까리Tarkari(네팔식 반찬)뿐이었다. 이상한 색깔의 국물은 얼마나 맛이 없는지, 달밧에 대한 나의 생각만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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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짬빠(볶은 보릿가루). 수유차에 섞어 먹는다.
    10명 넘는 스태프가 3명이 되자 생긴 변화
    2017년 히말라야 횡단을 하겠다고 혼자 네팔을 찾았다. 5개월간 머물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는 다 겪었던 것 같다. 최악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큰 경험은 여러 번의 짧은 경험보다 좋은 약이 되었다. 끝까지 견딘 덕분에 나는 ‘성장’을 얻었고, 그뒤 나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날개를 달았다. 네팔에 국한되어 있던 히말라야가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확장되었다.
    오랫동안 걷노라면 음식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걸 실감하곤 했다. 히말라야 횡단을 하면서 먹은 음식은, 처음엔 현지 요리사가 만들어 준 어설픈 한식이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음식을 내오기도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짜 한식요리사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먹었다. 이때만 해도 캠핑 트레킹에는 반드시 요리사가 필요한 줄 알았다. 히말라야 횡단을 하기에 나의 경험은 너무나 빈곤했고, 모르는 것과 부족한 것들 투성이라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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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중 뜯은 네팔 나물 ‘망가니’. 데쳐서 무치거나 국에 넣고 끓여 먹는다. 생으로 먹으면 미나리와 비슷하다. 가져간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는데 맛있었다.
    칸첸중가Kanchenjunga와 마칼루Makalu 지역에서 혼자 10명이 넘는 현지 스태프와 다녔지만, 신은 우리가 고개(East Col, 6,180m)를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솔루 쿰부Solu Khumbu 지역으로 우회하기로 결정했고, 더 이상 많은 스태프도 필요 없게 됐다. 요리사도 마찬가지였다. 음식과 잠자리를 현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팀을 단출하게 꾸렸다. 현지 마을을 지나는 길은 고도만 낮을 뿐 부침이 심했다. 기본적으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산 하나가 있어 쉬운 트레킹은 없었다. 트레킹이 50일이 넘어가자 배고픔도 수시로 따라왔다.
    현지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대개 달밧뿐이었다. 다시는 달밧을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한참 걷고 난 후에 먹는 달밧은 말이 필요 없었다. 현지인들의 가정식 달밧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그때부터였다. 내가 달밧을 먹기 시작한 게.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현지인의 집에서 해결하다 보니, 그들의 음식이 잘 맞았다. 때때로 식사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달밧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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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포터들과 함께 먹는 점심 식사. 우리의 가장 무난한 식사가 삶은 감자였다.
    이후 음식 여건이 좋을 때에도 하루 한두 끼는 달밧을 먹었다. 익숙해지니 달밧만큼 건강하고 속이 편한 음식이 없었다. 맛있다고 생각하자 리필해서 더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됐다. 좋아하는 어짜르(장아찌류)와 떨까리가 있을 정도로 취향도 생겼다. 특히 물라 어짜르(무 장아찌)를 좋아해서 달밧을 주문하면 꼭 어짜르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이제 나는 달밧 예찬론자가 되어, 네팔에서 가장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달밧을 꼽는다. 게다가 양껏 먹을 수 있으니 걷는 자에게 이보다 좋은 음식도 없다. 참고로 우리네 백반이 그런 것처럼 네팔의 달밧 역시 집마다, 지역마다 맛이 다르다. 어느 지역의 어느 로지Lodge(여행자 숙소 겸 식당)에서 먹느냐에 따라 반찬 가짓수와 콩수프도 다르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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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가니와 밀가루 반죽을 넣어 끓인 국. 일명 ‘셰르파 스튜’라고 부른다.
    나를 강하게 해준 현지 음식
    히말라야 횡단을 하면서 늘 달밧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돈이 부족했던 네팔 서부 지역은 처음부터 요리사를 고용하지 않았다. 돌포에선 현지에서 고용한 포터가 하루 만에 그만두는 바람에 애써 구입한 식량을 헐값에 팔아버려야 했다.
    가이드에 포터 2명뿐인 우리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다. 반찬과 다른 재료 없이 카레가루만 끓여서 맨밥에 부어 먹었다. 연료를 아낀다고 나무로 불을 피워 밥을 하고, 특식으로 준비한 한국 라면을 비롯해 모든 음식을 스태프와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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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마을에서 구입한 삶은 감자와 생라면. 거기에 럭시(전통 증류주) 한 잔을 같이 했다. 생라면은 간식이나 안주로 즐겨 먹었다.
    돌포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쌀마저 떨어졌다. 네팔 서부는 다른 지역보다 척박하고 교통도 열악했기에 먹는 것도 달랐다. 이들은 주로 간편하고 실속 있는 짬빠Champa를 먹었다. 짬빠는 볶은 보릿가루에 수유차(찻잎을 끓인 물에 버터와 소금을 넣고 만든 차)를 섞어서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보관이 용이하고, 조리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포만감까지 있었다. 우리는 이 보릿가루를 가지고 다니면서 끼니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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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차를 섞은 음식인 짬빠. 수유란 양이나 소의 젖을 끓인 후 식었을 때 생긴 지방 덩어리인 티베트식 버터를 말한다. 찻잎을 끓인 물에 수유와 소금을 섞은 것이 수유차이다.
    차를 끓일 수 없을 때는 미리 수유차를 넣어 반죽한 후 떡처럼 뭉쳐서 가지고 다녔다. 반찬도 없이 거친 보릿가루만 먹다 보니 나중에는 입맛이 떨어졌다. 설사로 고생할 때도 보릿가루뿐이라서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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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서부식 달밧. 네팔에서도 더 깡촌 오지인 만큼 음식도 단출하다. 관광객이 많은 안나푸르나 쪽은 서양스타일 음식이 주를 이루지만, 로지가 거의 없는 서부에선 주로 현지 음식을 먹었다. 히말라야 지역 대부분은 티베트에서 넘어온 이들이 많아, 생활방식과 음식이 티베트식인 경우가 많다.
    현지인의 천막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디도Dhido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메밀이나 기장 가루를 반죽해서 만드는데 떡과 죽의 중간 느낌이었다. 현지인들은 이 반죽을 스푼처럼 만든 후 국물을 떠서 함께 먹었다. 나도 그들처럼 먹어보려고 했지만 따라 하기 어려웠다. 반죽이 되다 보니 아무리 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포만감은 짬빠 못잖았지만 디도는 한번 먹는 것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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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극서부 지역 포터들이 내온 중국 술과 어짜르. 어짜르는 네팔식 장아찌이다.
    무구Mugu 지역을 지날 땐 포터들이 루바브Rhubarb라는 자줏빛 식물의 줄기로 어짜르를 만들어 주었다. 그들이 내온 중국산 술과 어짜르 안주는 독특한 신맛이 났고,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포터들은 이 식물을 끓여서 식초를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줄기를 그냥 먹어도 아삭하고 시원한 신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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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릿가루와 수유차를 뭉쳐서 만든 덩어리. 도시락처럼 준비했다가 트레킹 도중에 먹는다.
    참고로 루바브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자라는 약초 중 하나로 고도에 따라 꽃과 모양이 다르다고 한다. 걷다가 운이 좋으면 삶은 감자나 네팔 라면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모여서 압력솥째 놓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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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 대체로 티베트 음식이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훔라Humla에서 방목지역을 지날 때는, 요구르트를 얻어서 보릿가루를 섞어 먹었다. 설탕을 넣으면 달콤해서 더 맛있었다. 훔라 지역은 폐쇄적이었다. 전통을 중시하고, 마을을 찾는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장Jang마을은 아무도 밥을 해주려고 하지 않아서, 마을 청년의 도움으로 간신히 삶은 감자를 먹을 수 있었다. 그들은 외지인에게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파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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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헬람부 지역 현지인 집에서 만든 가정식 달밧.
    네팔 서부 지역에서는 달밧이 특별식이 될 만큼 귀했다. 그만큼 여러 날을 보릿가루를 먹으며 걸었다. 정보 없이 떠난 터라 길을 잃기도 하고, 먹는 게 부실해서 고생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횡단 구간 중 네팔 서부가 가장 즐겁게 기억되었다. 일반적인 트레킹이 아니라서 좋았고, 네팔 가이드조차 알지 못하는 길이라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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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포 세이곰파(사원)의 현지인 천막에서 식사를 했다.
    특히 열악한 현지 음식은 나를 강하게 해주었다. 소중하고 멋진 경험이자,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제 나는 네팔에서 아무리 긴 트레킹에 들어가도 요리사에 의지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누룽지, 점심에는 알아서 라면이나 국수를 끓여 먹고, 저녁에는 포터들과 같은 밥을 먹는다. 현지에서 나물을 꺾어 반찬을 만들고, 그들이 먹는 음식 그대로 같이 먹는다. 덕분에 네팔 어디라도 겁나지 않는다. 오지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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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음식 디도. 메밀이나 기장가루를 반죽해서 만드는데 떡과 죽의 중간 느낌이다. 물기가 적은 반죽인 탓에 뻑뻑하여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간 네팔 히말라야의 곳곳을 다녔지만,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특히 네팔 가장 서쪽에 있는 무구와 훔라 지역은 꼭 다시 가고 싶다. 머지않아 그곳의 현지인들만 다니는 길을 따라서, 계획 없이 60일쯤 걸을 생각이다. 길은 몰라도 된다. 성실한 포터 2명과 현지 음식을 먹으며, 현지어를 배우며,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으며 가도 충분하다. 여행자들이 가지 않는 아주 깊은 오지로, 그렇게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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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목지에서 얻은 요구르트에 보릿가루를 섞으면 나름 영양식으로 먹을 만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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