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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생각을 비워야 더 멀리 걷는다”

글·사진 대학산악연맹 서경란(중앙대 산악부 20)
  • 입력 2021.07.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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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tch by Pitch<6> 한북정맥 동계종주

텐트치는 법을 까먹어서 고군분투 중이다
텐트치는 법을 까먹어서 고군분투 중이다

‘Pitch by Pitch’는 한 피치 한 피치 앳된 오름짓을 이어가는 대학산악부원들의 진솔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를 담은 연재다. 이번 호에서는 중앙대산악부 서경란 대원의 동계 한북정맥 종주를 다뤘다. –편집자 주

한북정맥을 걸으며 깨달은 세 가지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활동하는 산악부 인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4명이 갔던 하계종주와는 달리 이번 동계종주는 지원자가 없어 대장언니와 나, 단둘이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언니가 마땅한 대상지를 물색해 본 결과 이번 동계종주는 한북정맥을 따라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언니는 예비 대장으로서 경험을 쌓으라는 차원에서 나에게 직접 한 번 종주 계획을 짜보라고 권했다. 지금까지 나는 어택이나 동계산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얼마나 힘들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막연히 평소보다 조금 힘든 산행이 될 것이라 생각한 나는 무려 3박 4일 동안 60km를 운행하자는 계획을 언니에게 내밀고야 말았다. 언니는 계획서를 보자마자 먼저 “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뒤 “우리 정말 빡세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때 이 ‘빡세게’란 말이 ‘죽음에 가까운’이란 뜻이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도성고개를 향해 희미한 길을 걷고 있다.
도성고개를 향해 희미한 길을 걷고 있다.

Day 1

동계종주 시작!

기다리고 기다린 동계종주 첫째 날, 나는 온갖 신상 장비로 무장하고 길을 나섰다. 등산스틱, 등산화 모두 새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장비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두려움보다 기대감에 가득 차 웃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때의 웃음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달가슴곰 동상과 사진을 찍고, 화장실을 다녀온 우리는 마침내 한북정맥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순간도 잠시, 겨우 30분 지났을까? 박배낭의 무지막지함이 점점 몸으로 느껴졌다. 등과 어깨가 미친 듯이 아파 왔다. 산행을 하며 허벅지가 아픈 적은 많았어도 상체가 아픈 건 처음이라 너무나 낯설었다. 헬스장에서 높은 중량으로 운동할 때 나는 반은 신음이자 반은 기합인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나고 있었다. 장비빨은 무슨! 가장 중요하게 챙기고 가꿨어야 할 장비는 하드웨어, 즉 몸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언니는 내 신음소리를 듣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시원하게 웃지 않는 건 일전에 암벽 등반 중에 무서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나를 보며 “미안한데 웃어도 돼?”라며 박장대소한 언니를 두고 내가 반년 넘게 서운하다고 투정을 부렸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웃는다면 하루 이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인지 언니는 볼 때마다 웃음을 꾹 참는 표정이었다.

출발지 광덕고개의 상징인 반달가슴곰과 한컷.
출발지 광덕고개의 상징인 반달가슴곰과 한컷.

그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첫 번째 봉우리, 도마치봉에 올랐다. 처음에는 1.8km 더 가야 나오는 도마봉에 온 줄 알고 제법 속도를 냈다고 뿌듯했었다가 이름이 비슷한 도마치봉인 걸 이내 깨닫고는 마치 산에 배신당한 것 같은 씁쓸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봉우리에 오른 김에 종주 첫 휴식을 취한다. 배낭이 눈에 젖은 흙에 적셔지든 말든 대자로 뻗었다. 그저 고통 받은 내 등과 어깨를 쉬게 해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지금껏 등산은 하체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사람들이 전신운동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등산은 극한의 고통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상체와 하체 모두를 갈고 닦아내는 운동이다.

물론 나는 정신력도, 체력도 없었다. 가해자인 과거의 나는 둘 다 마련해 두지 못했고, 피해자인 현재의 내가 그 응분을 받고 있었다. 길 위에서 얼마나 과거의 나를 욕했는지 모른다.

도성고개로 향하는 길목 갈대밭에 파묻혀 걷고 있다.
도성고개로 향하는 길목 갈대밭에 파묻혀 걷고 있다.

도마치봉을 지나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도마봉에 도착했다. 기존에 세웠던 도마봉 도착 계획보다 2시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도마봉을 지나친다면 다음 박지까지 적어도 5km는 더 가야 했다. 도저히 1~2시간 내에 5km를 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더 가자는 언니를 신발 잃은 고양이 눈빛으로 설득했다.

설득 끝에 도마봉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시간은 겨우 4시 반이었다. 종주 시작 며칠 전 텐트 치는 법을 배웠었는데 그새 까먹은 나는 계속 실수를 반복했다. 내 기억력을 과신했다. 결국 언니가 다시 알려 주었다. 정말 언니 없이 종주를 왔다면 내 꼴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텐트 치고 들어가 밥을 차려 먹으니 지금까지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극한의 노동 후 먹는 밥이 그렇게 꿀맛이라더니,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 후 쉬려고 누웠는데 뭔가 몸에 위화감이 들었다. 바로 몸이 그다지 아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내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산을 오르면 항상 근육통이 수반되었는데, 근육통이 없다는 것은 이 산행이 그만큼 쉬운 산행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너무 힘들었는데, 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약한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3일의 산행, 매일매일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첫날의 산이 내게 준 교훈은 ‘뭐든지 가볍게 보지 말자’, ‘몸이 약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약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내 모자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첫날의 산이었다.

종주를 마치고 산악부기를 꺼내든 우리.
종주를 마치고 산악부기를 꺼내든 우리.

Day 2

생각은 발목을 잡는다

첫째 날과 달리 짐도 많이 줄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 힘도 가득 찼다. 길은 아름답고 쉬워 첫째 날에 비하면 정말 편한 산행을 이어나갔다. 땅만 보고 걸었던 첫째 날과는 달리, 둘째 날은 경치를 구경할 여유도 있었다. 처음으로 여유를 갖고 산행을 계속했다.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는 허벅지까지 오는 눈에 기어서 탈출하기도 하고, 얼음길이 계속돼 아이젠을 끼고 이동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일까,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고 울적함이 물들기 시작했다. 몸이 크게 힘들지 않다고 느끼는데 생각보다 걷지 못하는 스스로가 이해가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너무나 커졌다. 엄살 피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정신게이지가 팍팍 깎였고, 결국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생각하며 걸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1차 목적지인 민둥산에 도착했다. 정신이 말짱하고 활력 있을 때보다 힘들어 아무 생각하지 않을 때가 더 잘 걸어진다는 것이 참 이상했다. 그때 종주는 결국 생각을 비우는 산행임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몸이 생각을 따르지는 않았다. 많은 생각은 그저 정신을 깎을 뿐이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생각을 비워야만 했다.

국망봉. 왼쪽은 대장 김재은, 오른쪽은 부원 서경란.
국망봉. 왼쪽은 대장 김재은, 오른쪽은 부원 서경란.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날의 최종 목적지, 도성고개에 도착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봉우리에 텐트를 쳤을 때보다 훨씬 바람도 불지 않았고 날도 따뜻했다. 기분 좋게 휴식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장비를 점검하면서 물이 계획보다 모자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인은 나였다. 종주 산행 중에는 들고 갈 수 있는 물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말 목마를 때만 한 모금씩 마셔야 하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평소 당일 산행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결국 물이 너무 일찍 동나버렸고, 결국 3박4일 계획을 2박3일로 변경해 내일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날의 산이 준 교훈은 더욱 명확했다. ‘생각을 비워라’, 그리고 ‘아껴 써라’. 애초에 물이 적다고 느꼈다면 그렇게 쉽게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많다고 느꼈기에 더욱 쉽게 마셨고, 그 결과 물 부족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지금 당장 많아 보여도 아껴 써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산길의 오뚜기령. 집에 간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하산길의 오뚜기령. 집에 간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Day 3

물 부족 국가? 물 부족 국민!

첫째 날은 몸 때문에, 둘째 날은 정신 때문에 경치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셋째 날은 짐이 더욱 줄어 몸도 편했고 마지막 날, 집에 간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도 여유를 갖고 운행에 임할 수 있었다. 종주 3일 만에 처음, 온 마음으로 산을 바라보았던 날이었다. 길 양옆으로 나 있는 갈대는 마치 태양빛과 같이 아름다웠고 산에서 보이는 세상은 아름다웠으며 산에 나 있는 무수한 나무들에서는 그 생명력이 느껴졌다.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느꼈던 적 없던 감정들과 생각을, 산길에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왜 이 산을 왔는지 되돌아보게 되었고, 산을 오르며 가져야 할 자세는 호승심도, 자신감도 아닌 여유로움과 침착함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풍요로운 마음가짐과 달리, 우리의 주머니는 빈곤하기 그지없었다. 1인당 가지고 있는 물이 채 300ml가 되지 않았는데 가야 할 길은 6~7km가량 남아 있었다. 갈증을 참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정수된 물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다.

민둥산 정상.
민둥산 정상.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일까. 길을 가다 보니 사람들이 떨어뜨린 듯 물이 들어 있는 페트병을 주웠다. 그 물을 언니와 나눠 마시며 정말 일상의 사소한 부분조차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선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산에서는 당연하지 않고, 때로는 위험으로 다가온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몸보다는 마음이 힘들었던 종주였다. 나의 모자람을 직면하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고 한심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해준 경험인 것 같아 뜻깊다.

도마봉에 도착했다는게 믿기지 않아 표지석 주변을 한참 서성거렸다.
도마봉에 도착했다는게 믿기지 않아 표지석 주변을 한참 서성거렸다.

그래도 언니가 내 편의를 많이 봐준 덕분에 마음도, 몸도 한결 편하게 종주에 임할 수 있었다. 언니에게 큰 빚을 졌다. 산악부가 사람을 사로잡는 게 이런 것 같다. 다음번에는 더욱 힘차게 걷고 더 많은 짐과 부담을 함께 나누어 들고 싶다.

한북정맥, 안녕!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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