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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7월의 섬 가덕도] 부산에서 가장 큰 섬에 원시림이 숨어있다

월간산
  • 입력 2021.07.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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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섬&산100-7월의 섬 가덕도]
도시의 섬이지만 100년 된 아름드리 나무 숲… 갈맷길 5-2코스 20㎞를 걸었다

동선방조제에서 본 빛이 고운 가덕도 일몰. 동선방조제는 가덕도와 눌차도를 잇는 방파제이자 도로다.
동선방조제에서 본 빛이 고운 가덕도 일몰. 동선방조제는 가덕도와 눌차도를 잇는 방파제이자 도로다.

‘먼저 사람이 되자’

울컥 향수가 끓어올랐다. 1980년대에 온 것 같은, 향수 깃든 교훈이 중학교 정문에 적혀 있었다. 혀를 차게 하는 놀라운 사건·사고가 줄을 잇는 요즘 아니던가. 조심해야 할 사람 많은 지금을 감안하면, 옳은 말이지만 그렇게 살았다간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속임수에 넘어가 사기 당할 것만 같은 속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당장이라도 교문을 열고 낡았으나 깨끗한 와이셔츠 입은 선생이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호통 칠 것 같았다. 강직한 인생을 살아온 주름 깊은 선생의 힘에 매료되어 “네 선생님! 그렇게 살겠습니다”하고 지금껏 살아온 삶과 무관하게, 대책 없는 맹세를 하고 싶었다. 문득 어떤 그리움이 울컥 끓어올랐으나, 가덕도는 그런 순수함과 가장 동떨어진 섬이다.

동선마을에서 천성치로 이어진 비포장 임도를 걷는 손창건·이유리씨. 입사동기답게 친근한 웃음이 묻어난다.
동선마을에서 천성치로 이어진 비포장 임도를 걷는 손창건·이유리씨. 입사동기답게 친근한 웃음이 묻어난다.

대저도가 육지화된 걸 감안하면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21㎢)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박한 섬이었으나 부산신항만 부두가 들어서고,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놓이며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동남권 신공항 예정지로 떠오르며 각종 개발 이권과 정치 논리의 중심에 있는, 논란의 섬이다.

덕문중학교의 교훈 비석은 가덕도 갈맷길의 기념사진 명소가 되었다.
덕문중학교의 교훈 비석은 가덕도 갈맷길의 기념사진 명소가 되었다.

부산 갈매기를 볼 수 있는 길, 갈맷길이다. 갈맷길 5-2코스는 가덕도를 구경하는 20㎞ 걷기길로, 섬을 둘러보기 제격이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소박한 다리, 천가교에서 섬여행이 시작된다. 블랙야크 디자인팀 이유리씨와 익스트림팀 손창건씨가 쨍한 햇살만큼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온다.  

육지와 섬을 잇는 고가다리, 컨테이너와 타워 크레인 가득한 부두, 조선시대 것인 양 오래된 바다의 굴 양식장, 굵은 능선으로 힘자랑을 하는 연대산 줄기, 자연과 현대가 묘하게 섞인 가덕도의 단면은 시작부터 가감 없다. 거칠지만 정 많고 솔직한 부산 사나이처럼 속내를 툭 터놓으며 인사를 건넨다.

 대항고개에서 대항마을로 내려서는 길, 금계국이 노란 천국을 이루었다.
대항고개에서 대항마을로 내려서는 길, 금계국이 노란 천국을 이루었다.

동선마을 골목을 지나는 길, 덕문중학교 정문의 비석 글귀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시대와 맞지 않는 글귀인 듯했으나, 문득 가덕도에서 사람 냄새가 확 풍기는 것 같아 경계심이 무너졌다. 낯선 골목이 뭔가 애틋하게 보였다. 

산기슭에 자리한 소망보육원(고아원) 아이들은 등교를 위해 산을 내려가고, 우리는 산을 올랐다. 아이들의 작은 걸음에 연대산의 박력과 기분 좋은 라일락 향기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를 슬며시 빌었다.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이던 비포장임도가 비로소 고개에 걸린다. 갈맷길은 임도를 따라 매봉 정상을 우회하지만, 좁은 산길로 든다. 봉우리를 피해 손쉽게 걷기길을 따르는 것이 왠지 산을 남겨두고 가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산에 다니면 생기는 병일 테다.

연대봉 정상은 가덕도에서 가장 경치가 시원한 조망 명소다. 낙동강 하류인 부산 강서구와 사하구 일대가 펼쳐진다.
연대봉 정상은 가덕도에서 가장 경치가 시원한 조망 명소다. 낙동강 하류인 부산 강서구와 사하구 일대가 펼쳐진다.

딴 세상에 접속한 듯 짙은 초록이 묘한 신비감을 풍긴다. 강원도 깊은 산에서나 들을 법한 여러 새소리가 합창하듯 울려 퍼진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숲은 초록으로 풍년이다. 

이런 정상이라면 무자비한 오르막도 두렵지 않다. 매봉 정상에서 처음으로 시야가 트이며, 낙동강 하구가 드러난다. 빽빽한 건물과 바다, 긴 여정을 마친 낙동강, 맥을 다한 산줄기의 마지막 흘러내림까지, 가덕도에서 볼 수 있는 특혜 같은 풍경이다.

가덕도 BAC 인증지점인 연대봉 정상석.
가덕도 BAC 인증지점인 연대봉 정상석.

100년 넘은 아름드리 지천, 궁극의 숲

봄의 끝까지 가보지도 못했는데, 여름이다. 끝까지 갔더라면 아쉽지 않았을까, 지나고 후회한들 무엇 하리. 여름 깊숙한 곳으로 걸음은 향하고,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땀으로 흥건하다. 정상다운 너른 터가 거친 호흡을 너른 경치로 가라앉힌다. 큼직한 봉수대와 깔끔한 전망데크가 연대봉의 스케일을 과시하듯 보여 준다. 연대봉煙臺峰은 실제로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부산 산악인들은 연대산 연대봉이 정확한 이름이라고 한다.

연대산 정상의 옹골찬 암봉. 이 봉우리를 연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대산 정상의 옹골찬 암봉. 이 봉우리를 연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최초로 발견한 곳이 이곳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왜선이 대략 보이는 것만도 90여 척이 추이도를(부산 사하구)를 향하는 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를 상세히 헤아려 볼 수 없었으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첫 장에 가덕도 연대산이 있었다.  

정상 표지석에서 BAC 인증을 마치자 불끈 솟은 바위가 눈에 띈다. 느낌표를 세워 놓은 것마냥 힘 있게 솟은 암봉, 연대산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비탈을 올라오느라 노곤해진 등산객들에게 기합을 불어넣는다. 부산 산꾼들은 이 암봉이 연대봉이라고 알려 준다. 왜구를 처음 발견한 전망대답게 거침없는 경치가 펼쳐진다. 속이 후련해지는 바다 경치, 다만 뙤약볕이라 서둘러 하산 숲길로 든다.

갈맷길이 지나는 눌차도 정거벽화마을. 눌차도는 가덕도의 부속섬으로 다리가 이어져 있다.
갈맷길이 지나는 눌차도 정거벽화마을. 눌차도는 가덕도의 부속섬으로 다리가 이어져 있다.

대항고개로 내려서자 노란 금계국 꽃길이 절정이다. 땀에 찌든 몸이 짙은 꽃향기에 순간 아득해진다. 산행으로 긴장되었던 다리 근육이 풀리는 것만 같은 착각, 마음이 이완되는 것일 테다. 대항마을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새바지항에서 해안숲길로 든다. 본격적인 갈맷길 타기다. 

의외다. 바다 풍경 한 점 없는 초록 왕국이다. 빛깔도 향기도 초록이 지배한다. 식생이 단조로운 대개의 섬과 달리 요정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 순도 높은 밀림이다. 굴참나무, 소나무, 아카시나무, 일본목련,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후박나무, 고로쇠나무, 동백나무가 빽빽해 햇볕 한 점 들지 않는다. 식생 보전이 무척 잘 되어 있다. 실제로 100년 넘은 아름드리 노거수가 많은, 부산 해안가의 유일한 100년 가까이 된 ‘궁극의 숲’으로 불린다. 숲의 식물이 변화를 거듭하다가 장기간 안정을 지속하는 진화의 성숙 단계에 들어선 숲을 말한다.

부산에서 유일한 100년 된 숲을 지난다. 가덕도의 자연미가 압축된 순도 높은 초록색 밀림이다.
부산에서 유일한 100년 된 숲을 지난다. 가덕도의 자연미가 압축된 순도 높은 초록색 밀림이다.

아쉬움은 워낙 숲이 짙어 경치가 없고, 숲길이 지나치게 길다. 중간 탈출로가 없어 한 번 들어서면 최소 2시간 이상 걸어야 인가를 만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 왕국의 미로에 갇힌 걸까? 해안 숲길은 너덜과 오르내림이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을 만큼, 의외의 난코스다.   

도로가 있는 고갯마루 누르령에 닿자 문명세계로 돌아온 기분이다. 바다 경치는 없지만 궁극의 숲에서 초조해하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나를 동시에 만났고, 누르령에서 포기하지 않은 나를 만나며 해피엔딩으로 ‘궁극의 숲’을 빠져나왔다.

대항 새바지항 선착장을 둘러보았다. 새바지는 샛바람(동풍)을 받는 곳이라 하여 유래한다. 갈맷길은 여기서 ‘궁극의 숲’으로 이어진다.
대항 새바지항 선착장을 둘러보았다. 새바지는 샛바람(동풍)을 받는 곳이라 하여 유래한다. 갈맷길은 여기서 ‘궁극의 숲’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지나 동선방조제를 따라 바다를 가른다. 해수면을 도화지 삼아 감미로운 색채를 그려내는 해넘이의 마법, 걸음이 멈추었다. 뜨거운 햇살 탓일까, 길었던 갈맷길 덕분일까. 

생각보다 가덕도는 거대했고, 하루 동안 몸과 마음을 다 쏟아낸 것만 같다. 묵은 잡념과 몸 속 찌꺼기를 오랜 걸음으로 게워 낸 듯 홀가분하다. 기분 좋은 노곤함, 좀더 ‘참 사람에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다. 

섬 가이드

가덕도는 산이다. 산악지형이 많은 부산의 섬답게 섬 자체가 산이다. 봉우리도 강금봉, 응봉산, 매봉, 갈미봉, 구곡산, 삼박봉, 웅주봉, 연대봉, 성토봉, 국수봉, 남산 등 수두룩하다. 가장 산행의 맛이 좋은 곳은 강금봉~응봉산~매봉~연대봉을 잇는 종주산행이다. 봉우리마다 경치가 시원하고 응봉산은 바위산이라 경치가 화려하다. 

전체적으로 가덕도를 둘러보려면 갈맷길을 따르는 것이 낫다. 천가교를 출발해 소양보육원과 연대산을 넘어 새바지항에서 해안숲길을 따라 누르령과 눌차도를 거쳐 천가교로 돌아오는 20km 원점회귀 코스다. 보통의 걷기길보다는 난이도가 센 편이라 일부 구간만 걷거나 이틀에 나눠 걷는 것도 방법이다. 

BAC 인증지점  연대봉 정상석 35.027504, 128.833951

교통 부산지하철 1호선 하단역에서 520번 버스를 타면 가덕도에 닿는다. 동선마을 버스정류장을 기점 삼아 산행 혹은 갈맷길 걷기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대항고개와 대항마을에도 정차한다. 

문의 강서구 9인승 점보택시 0507-1432-7718.

소희네집 해물한상.
소희네집 해물한상.

맛집(지역번호 051)
대항마을 소희네집(971-8886) 해물한상(4인분 3만2,000원)이 별미다. 무조건 4인 한상이 기본이라 3~4인 점심식사로 이상적이다. 회무침, 꽁치구이, 양념게장, 전복, 가리비, 새우장, 게살초밥, 생선까스, 소세지 등 한상 푸짐하게 나온다. 광어회(2만5,000원), 해물 한 접시(1만5,000원) 등 가성비 맛집이라 손님이 줄을 선다. 동선마을에는 밀양산내돼지국밥(341-3111), 옛날한우곰탕(972-3883), 엄마손어탕(941-4533) 등이 있다.

등산 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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