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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단석산에서 만난 ‘영웅’과 ‘효자’

글 사진 장재화 경남 양산시
  • 입력 2021.08.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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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산의 운해를 바라보는 필자.
단석산의 운해를 바라보는 필자.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15세에 화랑이 된 김유신은 17세가 되자 서라벌 서쪽에 있는 산의 암굴에서,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내려달라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했다. 기도한 지 나흘 만에 기이한 풍모의 노인이 나타나서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神劍을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단다.

그후, 화랑의 무리를 이끌고 단석산릉을 누비며 무술과 전술을 연마하며 힘을 기른 김유신은 고구려, 백제군과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해 마침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다. 이렇듯 경주의 단석산은 김유신을 위한 김유신의 산이다. 그러나 과연 단석산(827m)에 김유신의 영광만 남아 있을까?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을까?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정류소에서 산내행 버스를 타고 우중골의 송선 2리 단석산 입구에서 내린다. 버스 진행방향으로 30m 정도 가면 차도 오른쪽에 옥련암이 보인다. 옥련암 맞은편 임도같이 넓은 길로 들어선 뒤, ‘신선사’ 팻말을 따라간다.

대나무 숲 사이 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면 마을길.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입산통제초소와 단석산장을 지나면 오덕선원. 길은 오덕선원 앞에서 크게 휘어 돌아간다. 임도는 신선사주차장까지 줄곧 이어간다.

신선사주차장에서 신선사까지는 좁은 산길이다. 절집 오른쪽의 상인암에는 국보 제 199호로 지정된 삼존불상과 공양주, 스님과 공양보살 등을 새긴 마애불이 지친 산객을 그윽한 미소로 맞이하고 있다. 김유신이 노인으로부터 비법과 신검을 받았다는 전설의 현장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상인암 앞으로 열려 있다.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가면 시원한 조망을 자랑하는 바위전망대, 올라온 우중골이 내려다보인다. 산행시작 1시간 45분 만에 정상에 선다. 정상석 옆 둥근 바위는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김유신이 신검으로 내려쳐 자른 흔적이란다. 그래서 단석산斷石山이다. 구미산과 선도산, 벽도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방내, 모량, 금척마을을 품에 안은 건천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마을이 모량리일까? 산객의 시선은 모량리를 찾고, 마음은 또 하나의 전설을 따라간다.

손순이 석종을 파낸 곳은 어딜까?

<삼국유사>에는 모량리에 사는 효자 손순孫順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친이 별세한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손순은 아내와 같이 남의 집 품을 팔아 근근이 노모를 봉양한다. 초라한 식탁, 그러나 손순의 외아들은 늘 할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다. 이를 민망하게 여긴 손순이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면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두 번 다시 모실 수 없소. 아이 때문에 어머님이 굶주리고 계시니 차라리 아이를 매장하여 어머니가 배고프지 않게 해야겠소.”

아이를 묻기 위해 취산의 북쪽 들판으로 간 손순이 땅을 팠더니 아름다운 석종石鐘이 나왔다. 두들겨보니 그 소리가 맑고 곱다. 이는 필시 신불神佛의 계시라고 여긴 부부는 아이 묻기를 포기한다. 집으로 돌아온 손순이 대들보에 종을 매달아 놓고 두들기니 종소리가 멀리 대궐까지 울려 퍼졌다.

종소리를 들은 흥덕왕이 “소리를 들어보니 보통 종이 아닌 것 같구나. 속히 알아보도록 하라”고 신하들에게 이른다. 연유를 알아보고 돌아온 신하의 보고를 받고 크게 감동한 왕은, 손순에게 집 한 채를 내렸고 해마다 벼 오십 섬을 내리게 하여 노모를 모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손순은 자신의 집을 절집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홍효사라 이름 지은 그 절에 종을 걸어두었다. 그러나 진성여왕 때 후백제군의 침략으로 종은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이처럼 효에 대한 설화가 아름답게 전해 오는 것은, 효도야 말로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최고선이었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효도라는 것,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것, 잠자기 전에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날이 새면 편히 주무셨는지 여쭙는 것, 그것이 효도’라고 했다.

<삼국유사>는 손순이 석종을 파낸 곳을 완호평 또는 지량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곳은 어딜까? 지형이나 역사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취산의 북쪽 단석산자락인 방내리나 금척 고분군이 있는 들녘 그 어디쯤일 것 같다.

하산한다. 원래는 입석산을 넘어 손순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의 고향이자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생가가 있는 모량리로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모량리로 가는 산길이 묵을 대로 묵어서 길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날머리를 당고개로 바꾼다.

올라온 길을 기준으로 오른쪽, 훤하게 열린 길을 따른다. 정상에서 15분 정도 내려오면 갈림길, 왼쪽 길을 따라간다. 5분 뒤 다시 갈림길, 직진하여 능선을 타고 오른다. ‘당고개 가는 길’이란 작은 팻말이 중간 중간 붙어 있다. 길은 능선을 타고 줄곧 이어간다. 정상 출발 1시간 30분, 당고개휴게소 앞에서 3시간 30분의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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