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 탐험, 기부, 그리고 백두대간

  • 글·사진 김채울 @_whereismypizza
    입력 2021.07.27 13:57

    기부천사의 대간 종주기 <1> 지리산 구간
    어린이재활병원 기부하는 28세 여성 마라토너, 홀로 백두대간 670km 종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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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간을 걷다.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어서 배낭을 꾸렸다. 작년 3월, 4,300km의 PCT를 걷겠다고 미국으로 향했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며 결국 한 달 만에 귀국했다.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했던 길을 못 걷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과 허탈함에 울기도 했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이왕 한국에 다시 돌아온 거, 국내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자는 생각에서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바이크 전국일주를 하고, 이제는 백두대간을 걸어보고자 한다.
    19세, 친구들이 수능 공부를 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할 때 나는 인적성과 면접 스터디를 하며 취업준비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오기 전, 목표하던 어느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입사 2년 후, 회사에서 주최한 철인3종경기대회에 임직원 봉사단으로 우연히 참가했고, 이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대회에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은총이라는 아이와 함께 경기에 참가한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은총이를 실은 배를 끌며 수영을 했다. 휠체어를 끌고 사이클을 타고, 러닝을 했다. “도전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은총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던 아버지. 은총이 부친의 도전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 또한 도전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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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아이슬란드 200km 종단 트레킹을 다녀왔다. 8일간의 야영이었으며,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기부자를 모집해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했다.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은 국내에 단 한 곳 있는데 어린이 재활 치료는 낮은 보험수가와 높은 운영비 등의 사유로 매년 30억 원 이상 적자가 나고 있다.
    그때 열린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는 선수들의 참가비 전액을 어린이재활병원에 기부하는 대회였다. 대회 참가를 통해 도전은 물론,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회를 준비했고, 2015년 내 생애 첫 철인3종경기를 완주했다.
    비록 올림픽코스였지만 내가 철인3종경기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물론,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어린이재활병원에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사막마라톤 영상을 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아, 사막을 가자!
    그렇게 나는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출전했다. 사막마라톤은 5박7일간 250km의 사막을 달리는 대회로, 일주일간 필요한 모든 식량과 장비를 담은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40km를 달려야 한다. 단순히 도전만 하는 것이 아닌, 어린이재활병원을 위한 기부금 모금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참가 결심을 한 뒤 꾸준히 운동과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었고, 2017년 4월 당시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만 22세로 250km의 사막마라톤을 완주했다. 트레일러닝 경험도 부족했고, 전방십자인대수술을 한 지 갓 1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무릎을 부여잡고 진통제 10알을 먹으며 겨우겨우 완주해 냈지만, 해냈다는 것, 그리고 나와 세상의 은총이들을 응원해 주시는 기부자분들과 함께 해냈다는 것이 나에게 큰 영광이자 행복이고 감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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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출전 5박7일간 250㎞를 완주했다. 어린이재활병원 기부금 모금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사하라사막마라톤 기부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18년 아타카마사막마라톤, 2019년 아이슬란드 종단을 하며 매년 어린이재활병원 기부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이 된다는 것이 내 삶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2020년 5월, 암벽등반을 배우기 위해 코오롱등산학교를 찾았다. 등산학교를 뒤늦게 알고 참가자 모집이 마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참가하고 싶어 장문의 글을 쓰며 정규반 71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나름대로 어필하기 위해 신청서에 ‘세계 최고의 여성탐험가가 되고 싶습니다. 꼭 교육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써서 제출했는데, 이 문장 덕분에 지금도 선생님들께 놀림을 받고 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했지만, 암벽등반을 배울수록 더 많은 산을 가보고 싶었다. 사막마라톤 후 심장이 두근거리는 새로운 즐거움을 못 찾고 있었는데, 암벽등반을 배우며 정말 오랜만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해왔는데, 어쩌면 이 운동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까지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백두대간을 걷게 된 것도 암벽등반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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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트레킹할 때의 필자.
    D-1 처음 와본 지리산
    출발 일정을 며칠 미뤘다. 원래 계획은 일요일에 중산리로 가서 월요일부터 일시종주를 시작하려는 것이었는데, 도무지 밀린 일들이 마무리되질 않아 결국은 시작을 미루게 되었다. 처음엔 일정이 미뤄졌다는 것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혼자 가는 것이고 외부 요인에 묶여 있는 상황도 아닌데 굳이 급히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느긋하게 준비를 했다. 며칠간 밀린 일을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6월 9일 수요일, 중산리로 향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원지까지 간 뒤 버스를 갈아타야 중산리에 갈 수 있었다. 출근시간이랑 살짝 겹쳐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하철이 붐비지 않아 무사히 남부터미널까지 갈 수 있었다.
    다만 집에서 나선 지 10분 만에 배낭무게를 실감해 터미널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뭘 빼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무게를 줄인다고 줄여 물 포함 18㎏ 정도로 줄였지만 여전히 무겁다. 아이슬란드 종단 때는 배낭무게가 20㎏이 넘었는데, 그땐 어떻게 그렇게 안 힘들어하며 잘 걸었는지 새삼 과거의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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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원지로, 다시 중산리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서야 시작이 실감났다.
    중산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민 시계에 비상연락처를 설정해 두었다. 아무래도 혼자 다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하는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해둔 셈이다. 비상연락처를 입력해 두고 사고 발생 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내 위치가 연락처로 문자 발송된다고 하는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구나’ 새삼 놀라워 감탄이 났다. 물론 쓸 일은 절대 없길 바란다.
    중산리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한 민박집으로 향한다. 민박집은 후기가 별로 안 좋기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나쁘지 않다. 내일 시작점인 중산리탐방안내소와 아주 가까워 위치도 훌륭하다.
    사실 지리산은 처음 와본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다는 것도 설레지만 지리산을 처음 올라볼 수 있다는 것도 설렌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설악산도 가보지 않았다.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인 지리산과 설악산을 모두 이번 대간길에서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리산과 설악산도 안 가본 사람이 백두대간을 걷는구나’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론 이번 백두대간을 위해 여태 아껴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일이다. 중간에 일 때문에 하루 잠깐 서울을 올라오긴 하겠지만, 그 날을 제외하곤 웬만하면 제로데이(휴식일) 없이 계속 걸을 계획이다.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제발 부상 안 당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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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몰려왔고, 얼마 안 가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다.
    D-day 아름답지만 고통스럽다
    코로나로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이 불가해서, 지리산 구간은 한 번에 돌파하기로 했다.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해서 성삼재까지 34㎞,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지만 중간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건 접속거리가 너무 길어져 조금 무리해서라도 당일 주파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되었다.
    입산 가능시각인 새벽 3시에 맞춰 바로 출발할 생각에, 6월 10일 새벽 2시 10분에 맞춰둔 알람소리를 듣고 기상한 뒤 빠르게 정비를 하고 2시 40분, 민박집을 나섰다. 첫날이다 보니 일주일치 식량이 다 들어 있어 배낭이 유독 더 묵직하다. 하지만 나의 열정도 기분도 최상이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깜깜한 어둠 속, 랜턴 불빛에만 의지한 채 열심히 천왕봉을 향해 올랐다. 야간산행은 정말 오랜만이라 색다른 기분이었는데, 길이 어렵지 않고 안내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처음 와보는 지리산인데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못 보며 오른다는게  억울하기도 했다.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천왕봉까지는 5.6km인데, 생각보다 힘이 안 들어서 ‘와, 요즘 매일 산 다녔더니 체력이 엄청 좋아졌나?’싶은 생각에 뿌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천천히 올라서 힘이 안 들었던 것이었다.
    날이 밝은 뒤 마주한 지리산은, 역시 지리산이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멋진 암릉이 있어 감탄사를 내뱉으며 올랐다. 지리산 종주 중에는 샘이 많다고 하기에 물을 딱 1리터만 챙겼는데, 정말 샘터가 여럿 있어 식수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지리산 외에는 식수 보급이 어렵다고 하여 걱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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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리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 저녁 8시가 다 되어 노고단대피소에 닿았다. 코로나로 인해 숙박객을 받지 않아 당일에 주파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천왕샘에서 물을 보충한 뒤 나무계단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이내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1,915m,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지리산 산행,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를 하며 조금은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될 수 있길 꿈꿔 본다.
    천왕봉에서 10분 정도 쉬었다가 바로 이어서 가는데, 정말 바람이 엄청나다. 정상에서도 바람이 너무 강해 바로 바람막이재킷을 챙겨 입었는데, 정상 이후로도 1~2km 정도는 바람과의 싸움이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고, 한 발자국 옮기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강력했다. 지리산은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온 날만 이런 건지. 처음 와본 지리산이기에 알 턱이 없다.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걷는데 경치가 너무 예뻐 여러 번 멈춰 서서 카메라, 고프로, 휴대폰 3개를 번갈아가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사진 찍고 영상 찍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도 추억을 잔뜩 기록할 계획이다.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구간에는 유독 예쁜 곳이 많아 계속 사진을 찍고, 풍경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는 몰랐다.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오전 10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원래는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지만, 생각보다 배가 고파 조금 일찍 장터목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취사장에서 밥을 먹는 것도 처음이라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의자는 없어서 서서 먹어야 되고, 자리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대피소에서 자는 것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얼른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20분간 점심을 먹은 뒤 계속 산행을 이어간다. 중산리에서 천왕봉, 그리고 장터목대피소까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등산객을 마주쳤는데, 세석대피소 방면으로 들자 등산객이 확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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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치 식량을 담은 18kg의 배낭.
    지리산은 정말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길을 걸으며 작년에 만약 내가 PCT 종단을 강행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상상해 봤다. 아마 미국 종단을 무사히 끝냈어도 코로나 때문에 자전거여행을 못 해서 가을쯤 한국에 들어왔을 테고, 한국에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찌되었든 나는 작년 3월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코오롱등산학교를 통해 등반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제일 좋다. 그거 말고도 귀국 후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정말 많이 해서 다시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매번 선택을 통해 또 다른 재밌는 일들이 펼쳐지는 것 같다.
    10km, 15km가 넘어서면서부터 발목 통증이 더 많이 느껴진다. 2주 전 암벽등반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리며 다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더 안 좋다. 발목이 계속 꺾이는 탓에 오늘 하루만 족히 10번은 넘게 괴성을 지른 것 같다. 왼쪽 발목을 신경 쓰며  나중에는 되레 오른쪽 발목을 신경 못 써서 오른발목이 꺾이며 넘어졌다. 나는 과연 무사히 백두대간을 끝낼 수 있을까.
    장터목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를 지나 연하천대피소로 향한다. 사실 나는 벽소령대피소까지만 입산제한시간 오후 2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연하천대피소로 향하던 중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연하천대피소도 오후 2시까지다.
    맙소사!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진 나는 트레일러닝을 시작했고, 결국 30분 만에 2㎞를 달려 연하천대피소를 1시 55분에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연하천대피소를 지나고 나서부터 갑자기 체력이 완전 방전되었다. 18㎏이 넘는 야영배낭을 메고 달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첫날부터 34km는 무리였던 걸까. 좀비처럼 터벅터벅 힘겹게 걸었다. 10분에 한 번씩 쉬게 되고, 걷는 속도가 확연히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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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전 암벽등반을 하다가 접질린 발목의 통증이 극심했다.
    문득문득 사하라사막마라톤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첫날에 진짜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발은 안 움직이고, 발가락에 물집 잡힌 게 느껴지고, 어깨는 부서질 것 같고, 배낭을 너무 꽉 조여 매 옆구리는 욱신거리고, 졸리고. 물론 사막마라톤이 더 힘들었지만 그때와 비슷한 수준의 컨디션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오후 4~5시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후부터는 진짜 지옥 산행이었다. 굵직한 빗줄기와 안개가 자욱했고, 그 탓에 바위가 미끄러웠다. 탐방로 대부분이 돌로 되어 있다 보니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더 신경 쓰며 걸어서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누적거리가 20km를 넘어선 순간부터 배낭 무게의 압박도 심해졌다. 어깨도 아프고, 옆구리도 아프고. 어깨 부담을 줄이려고 허리벨트를 꽉 조였는데, 너무 아파서 티셔츠를 들춰 보니 옆구리 양쪽에 물집이 잡히고 멍이 들었다.
    점점 하늘도 어두워졌고 마음이 조급했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별수 없었다. 급하게 가다가 다치느니, 어두워도 천천히 조심해서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집중해서 길을 보며 걸었다. 정말 힘겹게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다. 공단 직원을 마주쳤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산행하시면 안 됩니다. 과태료 부과해요”라고 얘기한다.
    “선생님 제가 오늘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는데… 늦게 올라온 게 아니라… 저도 제가 이 시간까지 산에 있을 줄은… 저도 내려가고 싶은데요. 저도 제가 왜 이 시간까지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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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하던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일시종주를 하며 지리산을 처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오후 6시쯤이면 성삼재에 도착해 있을 줄 알았다. 퀭한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얼른 내려가라고 하신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 8시 10분, 산행 17시간 만에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 휴게소에는 카페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기념품점도 있다. 하지만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고 비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원래는 여기서 버스 타고 구례 읍내로 내려가 잘 생각이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버스는 진작 끊겼고, 정말 어둠밖에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빗발이 너무 강해 결국 주차장에서 텐트 치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상야영(?)에 돌입했다. 텐트 치는데도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5분 만에 피칭하는 텐트를 20분 넘게 걸려서 힘겹게 설치하고, 겨우 설치한 텐트는 펙을 못 박아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웬만한 날씨에선 캠핑을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여태 내가 경험해 본 날씨 중 가장 최악이었다. 비는 어찌나 많이 오고 바람은 어찌나 많이 불던지.
    내가 들어가 있으면 그래도 텐트가 날아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텐트에 누워 있는데 바람이 너무 위협적이라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저녁밥도 못 먹고 겨우 잠들었다.
    <다음에 계속>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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