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빛이 공존하는 새로운 벽 루트

  •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입력 2021.09.09 09:26

    [해외 등반] 이탈리아 남 티롤 알프스 ‘4개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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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인 가이드 출신 볼피가 멀리 돌로미티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젊은 날의 산행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원래 오스트리아 땅이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 의해 이탈리아에 할양된 남 티롤 알프스는 한적한 고산 목초지와 돌과 나무로 지은 소박한 산장들, 그리고 원시적 자연 경관과 우아하고 부드러운 산행 코스가 산재한 보석 같은 지역이다. 
    가진 것에 비해 돌로미티만큼 화려하거나 유명하지 않아 여름철 휴가 기간임에도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다. 그러나 팍친스Partschins마을 뒤에 있는 ‘텍셀국립자연공원Texel Group Nature Park’에는 물이 풍부한 ‘제탈Zieltal계곡’이 있어 유독 사람이 몰린다. 
    물은 자연공원의 필수 요소이다. 물은 인류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며, 모든 동물과 식물의 생명수가 된다. 제탈계곡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협곡의 급류가 있어 등산을 하다 보면 대자연의 장엄함에 압도되고 만다. 바위틈이나 나무 밑에서 콸콸 소리를 내며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물의 원천을 바라 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게 된다. 이 계곡 주변으로 우뚝 선 3,000m대의 산 정상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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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지 상단 슬랩을 오르는 볼피.
    제탈계곡의 산장지기 마르쿠스가 개척
    이 제탈계곡 안에서 작은 산장을 운영하는 친구 마르쿠스 후버가 ‘4개의 뿔4Zacknfűhre’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벽 루트를 만들었다. 여름에는 산장을 운영하고 다른 계절에는 과수원을 하는지라 비교적 시간이 많은 그는 그 시간을 새로운 벽 루트 개척에 할애했다. 난이도 8a의 하드 프리 루트를 등반하는 그는 약 40개의 하드 프리 루트를 개척했고, 브렌타 돌로미티Dolomiti di Brenta에는 10여 개의 멀티 등반 루트를 냈다. 
    그는 나에게 같이 등반하며 새로운 루트가 어떤지 평가해 달라고 했다. 마침 산에 갈 핑계를 찾고 있던 다른 친구들 몇몇을 섭외해 마르쿠스가 새로 낸 루트로 향했다. 살레와 인공암장Salewa Cube을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큐비스티Cubisti’란 이름의 등반팀이다. 
    팀원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에른스트 뮐러는 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고, 예전에 이름난 알파인 가이드였던 볼피는 현재 연금으로 사는 일반인이다. 러시아인인 드미트리는 볼자노대학의 경제학 교수이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었던 플로리안, 농업을 가르치던 노르베르트 등 44세의 드미트리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70대의 노장 클라이머들이다. 주 3~4회 정도 실내암장과 자연암장에서 보는 사이지만 산에 갈 때마다 소풍 나온 어린 아이들처럼 들뜨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산 사나이이기 때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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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 부분이 빗물로 젖어 있어 루트 개척자 마르쿠스가 선등하며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볼자노Bolzano에서 20분 북쪽으로 오르면 티롤 왕국의 원조인 메라노Merano가 나온다. 20분 정도 메라노 뒤에 있는 산 계곡으로 매우 급하고 좁은 산길을 올라가면 제탈계곡 초입이다. 
    주차장에서 약 15분을 올라가니 소, 돼지, 닭, 양 등 여러 동물들을 방목해 놓은 산장을 지나 약 20분을 오른 후 등산로가 없는 급경사의 초원과 돌길을 1시간가량 올라서야 등반 시작점에 도착했다.
    모두 새벽잠이 없는 나이인지라 새벽 5시에 만나 멀리 지평선에 펼쳐지는 돌로미티의 일출을 바라보며 등반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아침 운동 치곤 힘들게 온몸이 땀으로 젖을 즈음, 루트 출발점에 다다랐다. 우선 등반할 조를 추첨했다. 루트를 만든 마르쿠스가 에른스트 뮐러와 선등을 서기로 했다. 
    출발 전 마르쿠스가 루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어서 첫 등반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간밤에 내린 비와 새벽이슬 때문에 첫 마디 슬랩의 이끼가 매우 미끄러웠다. 어쩔 수 없이 마르쿠스가 고정로프를 깔았고, 덕분에 후등자들은 35m를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마르쿠스, 우리 로프를 모두 걷어서 고정로프로 설치해.” 
    “나는 고정로프 설치하는 데는 선수야, 다음 루트 만들 때 내가 어떻게 고정로프 설치하는지 보여 줄게!” 
    고정로프를 잡고 올라갔지만 헛발질하듯 발이 몇 번이고 미끄러져 모두들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다. 이후 등반은 순조로웠고 높이가 더해질수록 멀리 돌로미티와 티롤 알프스의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면서 서로의 미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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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 개척한 마르쿠스가 등반하며 루트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4개의 뿔을 닮은 침봉
    새로운 루트는 수직 벽 등반이라기보다는 리지 등반에 가까웠다. 3피치부터는 모든 루트가 칸테 등반kante climbing(두 바위 면이 만나 말 등처럼 솟아오른 암벽의 긴 모서리를 오르는 것)으로 벽의 양면을 오가며 즐길 수 있었다. 
    루트를 오르는데 크고 깊은 침봉이 나왔다. 마르쿠스는 이 모습을 보고 루트의 이름을 ‘4개의 뿔’로 지었나보다. 손으로 잡으면 부서지고 무너질 듯 날카로운 생선 비늘 같은 벽도 나왔다. ‘4개의 뿔’은 마르쿠스가 개척한 루트 중 가장 쉬운 난이도로 4+, 5급 루트였다. 다른 벽 등반과 다른 점이 있다면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폭포를 내려다보며 오르는 신선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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