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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고도 300m…뜨거운 양철 지붕 같은 ‘태양의 벽’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 입력 2021.10.29 10:18
  • 수정 2021.10.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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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등반] 이탈리아 아르코 비아 레 스칼레테 델린드리아

드미트리가 오르는 칸테 밑으로 드로마을과 드넓은 포도밭이 보인다.
드미트리가 오르는 칸테 밑으로 드로마을과 드넓은 포도밭이 보인다.

코스테 델 안그로네Coste dell’Anglone는 드로Dro마을 위에 있는 고도 300m의 벽으로, 병풍같이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등반 루트는 벽 중간에 숲이 형성되어 있어 숨어 있는 바위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북한산 인수봉의 ‘오아시스’는 한 부분에 나무 몇 그루 있는 것이 전부이지만 이곳은 벽의 중단 위로는 약 20~40m 높이의 나무가 자라고 있고, 많은 루트가 이 숲을 지나간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루트는 찾기가 힘들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거벽

이 벽은 ‘태양의 벽’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아침부터 저녁 일몰 전까지 집중적으로 태양을 받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주변 베로나, 트렌토나 볼자노 지역의 클라이머들은 주로 겨울철과 초봄, 늦가을에만 등반을 한다. 종종 이렇게 뜨거운 줄 모르고 유럽에서 휴가 온 클라이머들이 여름에 등반하다가 탈수현상을 겪어 구조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비아Via ‘레 스칼레테 델린드리아Le Scalette dell’Indria’ 루트는 2007년 12월 26일 헤인즈 그릴Heinz Grill과 모니카 스타우퍼Monika Staufer 부부가 개척했다. 비교적 확보물이 신형이라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다.

이번 등반은 정원사로 일하다 은퇴한 친구 줄리우스와 볼자노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드미트리와 함께했다. 오전 5시에 볼자노에서 출발해 약 1시간 후 트렌토 고속도로를 나와 드로마을에 도착했다.

부분적으로 물기가 있는 벽을 횡단하는 줄리우스.
부분적으로 물기가 있는 벽을 횡단하는 줄리우스.

이곳은 날이 빨리 더워지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등반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는 겨울부터 늦봄 사이에 이곳의 약 70개가 넘는 루트를 등반했지만 올 때마다 새롭고 소풍 나온 어린이들처럼 즐겁다. 허긴 언제나 집을 나서 산에 가면 신나는 게 남들이 보면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 아닌가!

등반 나서기 전 장비를 챙기고, 어느 루트를 어떻게 등반할 것인지 생각하고 준비할 때부터 등반은 시작되었다. 이미 10여 회 이 루트를 등반했던 줄리우스의 브리핑에 이어 누가 선등할 것인지 정했다.

나와 줄리우스가 교대로 선등을 하고 멀티피치등반 경험이 적은 드미트리가 후등을 서기로 했다. 로프를 두 동 사용하기 때문에 선등자를 바꿀 때는 로프를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선등의 즐거움을 나만 맛볼 수는 없지 않은가!

드미트리가 작은 오버행을 넘어가고 있다.
드미트리가 작은 오버행을 넘어가고 있다.

11피치의 긴 루트라 각 피치마다 누가 등반할 것인가를 가위바위보로 결정했고, 처음 6개 피치를 내가 선등하기로 했다. 서운해 하는 줄리우스를 약 올리며 달래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하드프리 등반은 매우 잘하는 드미트리가 멀티피치등반의 쉬운 구간에서 어떤 동작으로 올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을 보며 약 올리는 것도 이번 등반의 재미였다. ‘약을 올리다’라는 말은 우리가 아플 때 먹는 ‘약’과 같은 뜻이다. 상대에게 약 올리는 것은 애정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곳의 슬랩에는 황소 콧구멍 같은 구멍이 많이 나 있어 이를 활용해 코뚜레처럼 연결해 놓은 듯한 확보물이 많다. 하켄이나 볼트를 박아 인공 확보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이렇게 자연의 구멍을 활용해 확보물을 만드는 것이 자연 보호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등반의 정점은 3피치이다. 여러 루트가 이 지점에서 겹치면서 혼선이 생기는데,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파란색 페인트로 아주 작게 화살표 표시를 해놓아 난이도에 맞게 등반 루트를 결정할 수 있다.

루트 이름이 적힌 스타트 지점을 오르는 줄리우스.
루트 이름이 적힌 스타트 지점을 오르는 줄리우스.

‘보약’이 된 즐거운 등반

등반을 하다 보면 날카로운 쐐기풀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쐐기풀은 전 세계 온대와 열대 기후권에서 폭넓게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도 중부이남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이뇨 작용을 하는 효과가 있어 이탈리아에서는 식재료로 폭넓게 사용되며 주로 식사 전에 따뜻한 스프로 만들어 먹거나 파스타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쐐기풀은 생김새와는 달리 은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드미트리를 약 올리면서 즐겁게 한 이번 등반은 진짜 ‘약’이 된 날이었다. 등반 후 기분 좋다며 호탕하게 웃으며 맥주를 산 드미트리를 보며 다음 등반에서는 더 약을 올리자며 건배를 했다. 입이 무거운 줄리우스가 한 마디 던졌다.

“다음 루트는 쐐기풀이 많은 벽으로 가자.” 

줄리우스가 정상으로 가는 작은 침니를 오르고 있다.
줄리우스가 정상으로 가는 작은 침니를 오르고 있다.

비아 레 스칼레테 델린드리아 정보

지역 트렌티노 프리 알프스-사르카 밸리

출발 고도 130m

도착 고도 485m

등반 시간 어프로치 25분, 등반 약 4시간, 하강 1시간

접근로 로베르토 수드Rovereto Sud에서 브렌네로Brennero 고속국도를 빠져 나와 아르코 Arco표지판을 따라 가다가 사르카Sarca계곡에서 트렌토Trento와 드로Dro방면으로 간다. 사르카강 다리 근처에 있는 마을에 주차할 수 있다.

어프로치 드로 다리를 건너 왼쪽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약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온다(암벽 등반). 처음 두 개의 교차 지점(Via per Marco Simoni 및 Pilastro dell’Indria) 성벽 기슭까지 숲을 가파르게 오른다. 오른쪽(돌에 2개의 ‘Le scalette dell’Indria’라고 쓰여 있음)으로 올라가면 등반 출발점에 도착한다.

하산 정상에서 2번 등산로에 도달할 때까지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오솔길로 간다. 428번 등산로에서 425번 등산로(바위 틈 동굴)를 따라 계곡을 향해 내려가다 보면 약 100m의 비아 페레타 구간이 나온다. 가느다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급경사의 돌길과 숲을 지나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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