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강 없었다면…LA·라스베이거스도 없다

  • 글 신영철 산악문학가 사진 유재일 미국 오지여행가
    입력 2021.10.28 09:55

    [신영철의 산 이야기] 콜로라도강 탐사 上
    미국 서부의 생명줄, 콜로라도강 따라 거슬러 오르는 사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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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라도 강을 시원하게 보트로 가른다. 도로와 마찬가지로 강에서도 우측통행인데 여러 형태의 보트를 볼 수 있다.
    ‘죽기 전에 미국 오지를 다 둘러보자’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표방한 재미산악인이 있다. 네이버 밴드에서 ‘미국 오지여행’으로 인기를 끌더니 이번엔 초보 유튜버로도 진출했다. 탐사 취재와 TV방송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한 오랜 산친구岳友인 그가 연락해 왔다.
    “날도 더운데, 며칠 피서 겸 후버댐이나 가자.”
    “안 가.”
    이 더위에 후버댐이 있는 모하비 사막을 간다는 건 말대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 될 터.
    “관광이 아니라 후버댐 바로 아래까지 콜로라도강 탐사를 가자고. 모터보트로.”
    모터보트라… 이러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연 오지여행가다운 발상. 언제나 궁금했던 그 강 속살 보러 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의 캠핑카에 모터보트를 달고 모하비 사막을 달렸고, 콜로라도강을 만났다. 강줄기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때로는 유타주州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 애리조나였는데 눈에 훅 들어 온 건 휘발유 가격. 강 건너 캘리포니아보다 갤런당 1달러 이상이 싸다. 차와 보트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벅스킨 마운틴 주립공원 캠핑장에 도착했다.
    밖의 온도는 40℃를 넘는다. 에어컨 빵빵한 차에서 내리면 사우나에 들어선 느낌. 5월부터 10월까지의 모하비 사막은 과연 용광로가 맞다. 기후가 좋을 때는 초만원이라는 RV캠핑장도 더위 덕분에 빈자리가 많다.
    낮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더워서 서둘러 강에 배를 띄웠다. 한강 폭 반의반도 안 되는 콜로라도강. 대신 물살이 거세고 깊고 바닥이 보일 만큼 맑다. 미국 서부는 금세기 최대의 가뭄이라는데 이 거센 물살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거 같다. 바로 마셔도 될 만큼 청정한 물살을 가르며 보트는 홀로 신이 났다.
    맞바람과 물보라에 끔찍한 더위가 도망갔다. 벅스킨 마운틴의 그림 같은 산과 절벽이 양안에 도열해 있다. 강은 수 만년 저런 붉은 산을 파내고, 깎고 침식시키며 흘렀을 것이다. 강 양쪽에 리조트도 보이고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강은 참 먼 길을 달려왔다.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에서 발원한다. 2,330㎞를 서진西晉하며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미 서부의 건조한 사막에 생명수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주州의 대도시 식수와 농업은 이 강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강이 미국 서남부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미국 서부의 생명수 콜로라도강은 큰 축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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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서부의 젖줄 역할을 하는 콜로라도강. 댐마다 흙을 침전시켜 수질이 무척 맑은 편이다.
    어쩜 물이 이렇게 맑을까. 유타주 콜로라도 강 상류를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세차고 거칠고  붉은 흙탕물이었다. 그런 물이 마술처럼 1급수가 된 것. 비밀은 16개의 댐이다. 댐을 거치면서 흙탕물 앙금을 걸러 내기에 맑을 수밖에. 그건 마술이 아니라 과학이다.
    노자老子가 말했던가?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고.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 거센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보트를 옹위하듯 거친 협곡이 펼쳐진다.
    과연 물길 아니면 절대 만날 수 없는 풍경. 이 협곡을 만든 물은 위대하다. 이 강이 상류에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었다는 게 그 증거. 노자 선생의 말이 맞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유연함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탁견. 물의 부드러움이 만든 거친 절경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사행을 이룬 협곡 속에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만든 리조트를 제외하곤 전인미답의 자연. 언제 보트에 야영을 준비하고 강가에 배를 대고 한 밤 보내야겠다. 강물을 따라 산과 절벽도 돌고 우리 보트도 돌았다. 해거름이 시작되었다. 잔잔한 강에 거울처럼 가라 앉은 주변 반영反影이 퍽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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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카 뒤에 달고 온 모터보트를 콜로라도강에 띄우고 있다.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해넘이가 끝났어도 아직 덥다. 도저히 야외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식사했다. 캠핑카는 잘 먹고 잘 싸는 구조로 만들었지만, 어디 자연만 할까.
    밤이 그윽해지자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일행을 꼬드겨 차 밖으로 나왔다. 수도에 물린 호스로 연실 땅과, 차와, 몸에 물을 뿌려대었다. 물도 뜨겁다. 물 뿌려 식힌 붙박이 콘크리트 식탁에 술상이 차려졌다. 하늘엔 보름달이 휘황하고 달빛에 강물은 반짝이며 숨죽여 흐르는데, 어찌 그냥 잠들 수 있을까. 대자연에 흠뻑 젖었기 때문일까. 이젠 시원해진다.
    미국은 보름달도 엄청 크다. 콧노래가 나온다. 가수 은희가 부른 미국민요 콜로라도의 달밤.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우리처럼 달빛이 투영된 콜로라도강을 보며 만든 건지는 모른다. 그 노래가 불현듯 떠 오른 건 강물에 투사된 노란 달빛 때문이다. 노란 달기둥이 강물에 솟았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처럼, 노자에서 은희까지 생각도 유장했던 밤이 점점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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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고 거센 강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모터보트.
    강물을 맑게 만드는 16개의 댐
    이튿날은 캣테일 코브Cattail Cove 주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유명한 하바수호숫가에 위치한 공원 RV캠핑장에 여장을 풀었다. 어제 보트로 코 밑까지 갔었던 거대한 파커 댐Parker Dam이 물을 가둔 덕분에 생긴 하바수호수. 바다가 없는 애리조나 사람들은 이 하바수호수를 서해안Western Coast이라 부른다. 과연 보트가 계곡을 돌아 서니 민물바다처럼 넓어졌다. 레이크 하바수 시市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수상 레포츠의 천국으로 연 2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수상 관광도시다.
    보트가 경쾌한 엔진 소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세 시간쯤 달렸다. ‘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낙원과, 사막을 사랑하는 사람의 꿈Water Lover's Paradise & Desert Lover's Dream’이라는 강가의 간판이 보인다. 하바수 시의 홍보문구. 강 건너편은 캘리포니아. 그쪽에 하얀 대형 송수관이 여럿 보인다. 휘셋 정수장이다. 시에라산맥 눈 녹은 물만으로는 부족한 LA가 콜로라도 강물을 길어 올리는 정수장.
    이 강이 없다면 라스베이거스는 생존자체가, LA는 심각한 물 기근에 시달릴 것이다. 파커 댐의 물은 산을 뚫고, 사막을 건너 400㎞ 이상을 달려 LA에 이른다. 댐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의 절반은 강물을 펌핑하기 위해 사용된다. 꿩 먹고 알 먹는 인간의 지혜가 무섭다. LA까지 송수관 건설은 남가주 최대의 토목공사였었다.
    “점심은 하바수 시티 런던 브리지에서 우아하게 먹자. 우리가 백년을 더 산다 해도, 미국 대륙 오지를 다 못 보고 죽을 거야. 대륙답게 비경이 넘치고 넘치니 갈 곳이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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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띄는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를 사진에 담았다. 지도를 보니 벅스킨 산이었다.
    시원한 맥주를 홀짝이는 내 귀에 들린 유재일씨의 말. 하지만 거기까지만 하고 그쳤어야 했다.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사족처럼 뒷말은 군더더기였다.
    “맨날 올랐던 산을 또 힘들게 오르고. 왜 그래? 내려 올 걸. 이렇게 갈 곳이 많은데.”
    가만있으면 그 말에 동의하는 셈이 될 것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친구야. 보트도 태워 주고 가이드 역할도 했으니 너에게 공짜로 호號를 하나 선물하겠다. ‘하산下山’. 멋지지? 등산에서 하산해 물로 내려왔으니까 너에겐 딱 맞춤 아호다.”
    멀리 근사한 석조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치 구조의 다리는 전형적인 유럽풍.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문과 다리 주변으로 멋진 식당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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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의 템스강에서 가져와 콜로라도 강에 복원한 런던 브리지. 런던에서 경매에 나온 다리를 구입비의 두 배가 넘는 운송비를 들여 이곳으로 가져왔다.
    런던의 다리를 통째로 가져오다
    하바수 시가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바로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 때문. 이 다리의 고향은 런던. 1818년 런던 템스강에 준공되었던 역사적인 다리였다. 새로운 다리를 만들며 애물단지가 된 고풍스런 런던 브리지가 경매에 나왔다. 사막 속 민물바다가 될 앞날의 관광을 상상한 대단한 미국인이 그걸 샀다. 구입한 가격의 두 배가 넘는 운반비를 들여 화강암 다리를 몽땅 실어왔다. 그리고 이 콜로라도강에 13만 톤에 달하는 런던 브리지를  복원했다.
    돈 냄새를 맡은 자본이 움직였다. 런던 분위기에 맞춰 영국식 주점, 빨간 우체통, 그리고 2층 버스가 유명한 잉글리시 빌리지English Village가 만들어졌다. 지금 고급 호텔과 상점이 즐비한 이유다. 선착장에 배를 대고 영국식 주점인 펍Pub으로 올라갔다. 시원한 에어컨에 맥주와 피자를 보니, ‘하산’이 좋다는 친구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내일과 모레는 유명한 타폭 협곡과 후버댐 바로 아래까지 강을 거슬러 오를 거야.”
    캠핑장으로 귀환하는 물길에서 유재일씨가 말했다. 그건 이번 콜로라도강 속살 기행에서 하이라이트가 될 터. 발품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콜로라도강은, 세계에서 가장 잘 관리되는 강으로 꼽힌다.
    미국 서부를 흐르다 멕시코 국경 넘어 태평양과 만나는 강. 미국이 얼마나 알뜰하게 강물을 다스렸는지, 바다와 만나는 멕시코 만엔 한 방울도 유입되지 않는다. 멕시코는 힘센 이웃을 잘못 만난 셈. 포말을 일으키며 달리는 강물이 몽땅 재활용된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 갑자기 미국이 두려워졌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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