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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이 한 장의 산 사진] 오대산 소금강, 설악산 천불동 르포

월간산
  • 입력 2021.11.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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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리 용 산다는 구룡폭포 소금강 백미…천 분의 부처 모신 천불동
오대산 소금강~진고개·설악산 천불동 르포

‘한국명승 제1호’ 소금강계곡에 단풍이 들면 곳곳이 뷰포인트이자 사진포인트가 된다.
‘한국명승 제1호’ 소금강계곡에 단풍이 들면 곳곳이 뷰포인트이자 사진포인트가 된다.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건만 시기가 조금 일렀다. 오대산 소금강小金剛 계곡 입구에 다다르니 아직은 초록이 만연하다. 상황을 잘 아는 식당 주인에게 물었더니 1주일 정도 더 있어야 계곡까지 단풍이 내려올 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단풍이 “몰래카메라입니다!”라고 외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소금강의 으뜸가는 뷰포인트인 구룡폭포.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8폭과 9폭이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소금강의 으뜸가는 뷰포인트인 구룡폭포.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8폭과 9폭이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듯한 소금강

아침 일찍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소금강 계곡부터 노인봉을 올랐다가 진고개로 하산하려면 적어도 8시간 정도 걸릴 터였다. 게다가 혹시라도 있을 단풍에 눈이라도 홀리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몰랐다. 

“그런데 소금강이 강이에요?”

산행에 동참한 한민혜씨가 물었다. 나 역시 예전에는 소금강이 어디 즈음에 있는 강이라고 생각했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소금강을 ‘금강산’과 연결시키는 것은 어쩌면 다소 생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은 금강산이라 소금강이라 부르지.”

“그럼 대금강도 있어요?”

민혜씨의 제자인 박상현군이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물어본다. 

“글쎄……, 금강산을 기준으로 하니까 굳이 따지자면 금강산이 대금강 아닐까?”

계곡을 옆에 두고 자박자박 걷는다. 물소리만이 가득한 고요함이다.
계곡을 옆에 두고 자박자박 걷는다. 물소리만이 가득한 고요함이다.

남한에 ‘소금강’ 이름을 붙인 곳은 여럿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오대산 소금강이고, 양평 소리산에도 소금강이 있다. 이외에도 원주, 정선, 포항, 괴산 등에서도 ‘소금강’이란 이름을 가져다 쓴다. 

오대산이 소금강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쓰고 대표적으로 쓰는 데에는 율곡 이이(1536~1584년)의 영향이 가장 크다. 강릉 출신인 율곡 선생은 1569년 음력 4월 14일, 강릉을 떠나 연곡천을 거슬러 올라 청학동계곡에 들었다. 계곡이 깊어질수록 기암괴석과 반석磐石, 폭포와 물길이 만들어내는 산수화 같은 풍경에 홀딱 반했다. 

율곡 선생은 훗날 이날의 감동을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라는 기행문에 담았고,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이 조선 선비들에게 알려졌고, 1970년에는 ‘한국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소금강으로 불리고 있다. 

소금강 입구로 가는 길이 많이 달라졌다. 계곡을 따라 줄지어 있던 식당이며 매점이 모두 사라졌다. 계곡 시작을 알리는 비석이 있던 곳엔 ‘길목쉼터’란 작은 식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2018년에 소금강 집단 시설 정비 사업을 통해 계곡 안에 있던 상가를 옛 주차장 부지에 모아놓았다고 한다. 어쩐지 깨끗한 건물의 식당들이 부쩍 많이 새로 생겼다 싶었다. 

민혜씨와 상현씨가 낙엽을 하나씩 주웠다. 감성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즈다.
민혜씨와 상현씨가 낙엽을 하나씩 주웠다. 감성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즈다.

계곡으로 들어선다. 때 이른 단풍놀이에 나선 관광객이 여럿 있다. 모두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을 기대했겠지만 실망하는 이는 없다. 율곡이 반한 소금강엔 단풍 말고도 눈에 담을 것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바위와 물이 있는 곳은 어디든 1급 뷰포인트다. 더구나 전날까지 비가 많이 내렸던 터라 계곡에 물이 가득해 귀까지 호사를 누린다. 

가장 먼저 일행을 반기는 건 십자소十字沼다. 조망데크에서 내려다보는 소沼의 모양이 영락없는 열 십十자다. 물이 많은 덕분에 그 모양이 더 뚜렷하다. 시커먼 물색을 보아하니 수심이 꽤 깊어 보인다. 

이어 연화담蓮花潭이 고개를 내민다.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과 고인 물의 모습이 마치 한 송이 연꽃 같다는 뜻이 있다. 옛날에 일곱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오른쪽에 있는 명경대에서 화장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선녀들은 좋은 데서만 목욕을 했나 봐요. 설악산 십이선녀탕도 엄청 멋있던데요.”

그렇게 생각하니 선녀는 하늘나라에서 나름 호사를 누리는 멋쟁이 누님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속세俗世와 선계仙界 사이에서 망상이 뒤죽박죽이다. 자연에 들면 온전히 그것에 집중해야 하는데 요즘은 속세의 잡념이 잘 버려지지 않는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또한 단풍 뷰인트다. 오대산 소금강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협곡이 좁아 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또한 단풍 뷰인트다. 오대산 소금강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협곡이 좁아 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군사들이 밥을 지어먹은 식당암

금강사 앞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지만 산에서 마시는 약수는 언제나 달콤하다. 약수터를 조금 벗어나 계곡을 바라보니 큰 바위에 글씨가 가득하다. 오른쪽 ‘小金剛’ 글씨는 율곡 선생이 쓴 것이라 전해지지만 근거는 없다. 

그 옆에 쓰인 ‘二能契이능계’란 ‘술과 글에 능한 모임’이란 뜻으로 명주(지금의 강릉)에서 이 두 가지를 잘하는 선비들의 계모임이라 전해진다. 그 아래로는 계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 어딜 가나 바위에 이름 새기는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소금강 중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장소가 ‘식당암食堂岩’이다. 50여 평 넓이에 10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며 밥을 지어 먹었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이곳에서 간식을 먹는 관광객이 많다. 슬슬 배가 고파져 건빵 한 봉지를 꺼낸다. 아무 맛없는 퍽퍽한 건빵이지만 이렇게 멋진 자연 식당에서 먹으니 유난히 달고 맛있다. 

크고 작은 폭포를 지나 구룡폭포九龍瀑布에 당도한다. 지나온 청심대폭포, 세심폭포 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존재감이 적은 데 비해 구룡폭포는 가히 소금강에서 으뜸가는 폭포다. 한창 수량이 많을 때라 물줄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 나이아가라 폭포 못지않다. 

“‘구룡’이면 아홉 마리 용이란 뜻 같은데 폭포는 2개밖에 안 보이는데요?”

서울대학생의 명석한 머리로 구룡폭포란 이름을 풀어낸 상현군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맞다. 구룡폭포는 바위 상단부터 크고 작은 아홉 개의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구룡호에서 나온 아홉 마리의 용이 폭포 하나씩을 차지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아래에 자리한 8폭과 9폭이다. 앞선 폭포를 보진 못했으나 커다란 소로 떨어지는 마지막 9폭이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구룡폭포를 지나며 협곡은 좁아지고 등산로의 숲도 깊어진다. 데크와 철다리를 건너며 만물상에 당도한다. 푸른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위첨봉들이 만 개의 조각상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등산로에서 바로 보이는 귀면암鬼面岩이다. 영락없는 사람의 옆모습이지만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것은 보는 방향에 따라 표정이 바뀌기 때문이리라. 금강산과 설악산에도 귀면암이 있어 이 셋은 항상 비교되곤 한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길에 단풍이 곱게 들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길에 단풍이 곱게 들었다.

정상 ‘곰탕’, 아쉬움에 천불동으로

넓은 화강암 반석에 고인돌 같은 바위가 있는 백운대를 끝으로 사실상 소금강 구경은 끝난다. 이 위로 삼폭포, 광폭포, 낙영폭포가 이어지지만 구룡폭포의 웅장함에 비하면 감흥이 떨어진다. 

계곡 하류에 비해 이곳엔 조금 더 단풍이 들었지만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매우 좋지 않다. 낙영폭포부터 노인봉까지는 된비알 오르막길이라 묵묵히 오르기만 한다. 궂은 날씨가 야속하기만 하다. 무인대피소를 지나 노인봉 정상에 섰지만 오른 보람도 없이 희뿌연 ‘곰탕’이다. 소금강에서 보여 줄 것은 다 보여 주었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진고개로 내려선다. 아쉬움이 많이 남아 내일은 설악산 천불동계곡으로 가기로 했다.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소금강계곡의 귀면암.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소금강계곡의 귀면암.

속초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설악동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소공원 주차장이 가득 찼다. 10월 13일, 설악산 단풍도 미처 아래까진 내려오지 않았다. 겨우 차를 대고 서둘러 신흥사로 향한다. 비교적 한적했던 소금강과 달리 비선대로 가는 길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이 구간은 등산이라 할 것도 없이 무장애탐방로가 있어 누구나 산책삼아 올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사제지간인 민혜씨와 상현군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걷는다. 등산로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산책로에서의 여유다. 스물한 살 대학생인 상현군의 관심사는 군대와 여자 친구 사귀기다. 고교시절까지 공부하느라 여유가 없었던지라 대학생이 된 후로는 가끔 ‘딴 짓’도 해보고 싶단다. 민혜씨가 여자 친구 사귀는 비법을 열심히 전수한다. 설악산에서 벌어지는 사제지간의 연애 강의를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듣는다. 마음 같아선 훈수를 두고 싶지만 마흔한 살 먹은 아재 말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열심히 하면 생긴다”는 말만 덧붙이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소금강 금강사 앞에 있는 바위에는 율곡이 적었다고 전해지는 ‘小金剛’ 글씨를 볼 수 있다.
소금강 금강사 앞에 있는 바위에는 율곡이 적었다고 전해지는 ‘小金剛’ 글씨를 볼 수 있다.

천불동계곡 초입에 있는 와선대臥仙臺와 비선대飛仙臺는 널찍한 암반 타고 흘러내리는 옥수가 야트막한 폭포와 소를 형성하면서 절경을 자아낸다. 와선대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비선대에 와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비선대 구름다리를 건너면 작은 삼거리다. 왼쪽으로 가면 천불동이 시작되고, 직진하면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진다. 코로나로 설악산 내 대피소와 봉정암, 오세암 등에서 잠을 잘 수 없어 대청봉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소금강 명물 구룡폭포의 제8폭.
소금강 명물 구룡폭포의 제8폭.

다음 만산홍엽을 기약

천불동계곡은 소금강과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느낌이다. 협곡이 좁은 덕분에 양쪽으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 더욱 더 많아 보인다. 이 바위봉우리를 ‘천 분의 부처’라고 해서 천불동이 라 부른 것 아닌가. 

“다음에 꼭 다시 와 볼 거예요. 단풍이 너무 예쁠 것 같아요.”

상현군이 벌써부터 만추의 천불동 단풍놀이를 예약했다. 비록 이번엔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경을 만끽하지 못했지만 부디 그때는 단풍처럼 고운 여자 친구와 함께 오길 바란다. 마주치는 눈길에 얼굴이 발갛게 물들면 그게 단풍이고, 가을의 즐거움이니까. 

소금강 명물 구룡폭포의 제8폭.
소금강 명물 구룡폭포의 제8폭.

설악산 비선대·천불동계곡

대한민국의 명승 제101호. 지리산의 칠선, 한라산의 탐라와 함께 한국의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시작해 비선대까지는 편도 3km로 왕복하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무장애탐방로 등 남녀노소 걷기에 부담 없다.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둘러보고 오거나 천불동계곡으로 들어가 문수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 등을 보고 와도 좋다. 천불동계곡으로 가는 경우 소공원에서 양폭대피소까지 왕복 13km에 7시간 정도를 잡아야 한다. 

단, 산불방지기간(11.15~12.15)과 해빙기 등에는 비선대~천불동계곡을 통제한다. 문의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033-801-0900.

오대산 소금강~노인봉(1,338m)~진고개

강릉시 연곡면·평창군 대관령면

산행 거리 약 14km 
산행 시간 약 7시간
산행 난이도 중(노인봉 직전만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전체 거리 길어)

산행 길잡이

오대산 소금강은 우리나라 명승 제1호다. 단풍철이 지나더라도 기암괴석과 병풍바위, 폭포와 숲이 어우러진 계곡은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소금강 등산로 입구에서 낙영폭포까지 6.7km 구간은 숲길과 데크, 철다리 등이 놓여 초보자도 걷기 좋다. 

낙영폭포부터 노인봉 정상까지 2.5km 구간은 경사가 급하고 이끼 낀 미끄러운 바위가 많아 힘들다. 정상 340m 전에 무인대피소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취사는 할 수 없다. 노인봉에서 진고개까지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대부분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릎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소금강부터 출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진고개에서 출발해도 된다. 이 경우 2시간 정도면 노인봉 정상에 도착할 수 있지만 낙영폭포까지 된비알을 내려가야 한다. 어느 쪽으로 산행하든 원점회귀하기가 쉽지 않다. 자차로 들머리, 날머리에 각각 차를 세워두지 않으면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은 4만~4만5,000원 정도다. 명주택시 033-661-8686 등. 소금강 입구 식당에서 진고개까지 3만 원에 데려다 주기도 한다. 

단, 국립공원 산불조심기간(11.15~12.15, 3.1~5.15)에는 소금강 입구부터 구룡폭포까지만 갈 수 있다. 문의 소금강분소 033-661-4161.


교통

강릉역과 강릉터미널에서 소금강까지 921-1, 922번 버스가 운행한다. 날머리인 진고개에는 운행하는 버스가 없으므로 택시를 타야 한다. 대중교통만 이용할 경우 진고개에서 택시를 타고 진부터미널로 나오는 게 낫다. 택시 요금은 2만5,000원 정도다. 문의 진부택시 033-335-0088.


숙식(지역번호 033)

소금강 입구에는 소금강자동차야영장이 있지만 11~4월은 폐장한다. 강릉 시내에서 숙박하는 편이 낫다. 식당은 소금강 입구에 많다. 산채비빔밥과 파전, 백숙 등을 낸다. 소금강맛집(661-5189), 루사(661-4190), 노루목(661-4228), 금성식당(661-4276) 등.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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