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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경상도의 산] 한국 최후의 표범이 생포된 산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11.11 10:02
  • 수정 2021.1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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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오도산 1,120m

오도산 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산 사이의 합천호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거창·합천의 산이 첩첩이요, 겹겹이다.
오도산 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산 사이의 합천호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거창·합천의 산이 첩첩이요, 겹겹이다.

백두대간 초점산(삼도봉)에서 분기한 수도지맥修道枝脈이 경남·경북의 도계를 이루고, 이어 경남으로 접어들어 거창과 합천을 가르며 뻗어 내린다. 비계산을 지난 산줄기는 산세를 낮추는가 싶더니 광주-대구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를 건너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1,000m가 넘는 산 두 개를 일으켜 세운다. 거창과 합천의 경계에 솟은 오도산과 두무산(1,036.2m)이다. 이 두 산을 정점으로 지맥은 합천으로 접어들며 한껏 수그러든다.

오도산吾道山은 웅장하지도, 수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1962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야생 한국 표범이 생포된 깊은 산이다. 아쉽게도 산정을 차지한 통신시설과 산비탈을 깎아 낸 도로로 인해 산꾼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합천에서는 가야산 다음으로 높지만 1,000m가 넘는 산이 많은 거창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근 어느 산에 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더불어 이 산에 오르면 전망이 좋아 서부 경남의 웬만한 산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색색으로 물든 산과 운해 깔린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작가들로 붐비기도 한다.

수포교를 건너 소나무가 숲을 이룬 임도를 따르면 지실골로 접어드는 이정표를 만난다.
수포교를 건너 소나무가 숲을 이룬 임도를 따르면 지실골로 접어드는 이정표를 만난다.

산행은 오도산과 두무산을 연계한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그래서 들·날머리를 합천 방면이 아닌 거창 쪽으로 택했다. 거창군 가조면 도리 화곡마을 버스정류장이 산행의 기·종점으로 약 15km 거리다. 문제는 오도산을 올랐다가 두산지음재까지 약 400m를 떨어진 다음 다시 두무산으로 약 300m를 가파르게 치올라야 한다. 또 두무산에서 내려서는 가파른 너덜길도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화곡마을에서 양지마을로 꺾어드는 길가에 모현정, 수포대 등을 알리는 간판이 있다. 이 길로 양지마을을 지나 계곡으로 오르면 누각 형식의 정자인 ‘모현정慕賢亭’을 만난다. 선현을 사모하는 정자라는 뜻. 1898년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선생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던 평촌 최숙량 3인을 추모하기 위해 평촌공의 후손과 이곳 유림들이 건립했다.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조금 더 오르면 수포대에 닿는다.

수포대水瀑臺는 가조 6경에 들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안내판에는 ‘산수풍경이 천하일미라. 기러기 포구에 자라처럼 우뚝 솟았다 하여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오대산鰲戴山이라 부르던 것을 점필제 김종직 선생의 수제자인 두 거유가 강론한 이후 오도산吾道山이라고 고쳤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수포대 주변은 많이 훼손되었다. 수포대 암석 위로 길을 내느라 콘크리트가 뒤덮었고 주변 바위는 검은 이끼로 볼품이 없다. 복원이나 보호대책이 절실하다.

오도산 전망데크에 서면 가조 들판을 감싸고 있는 거창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멀리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도 희미하다.
오도산 전망데크에 서면 가조 들판을 감싸고 있는 거창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멀리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도 희미하다.

산꼭대기 까마귀 머리 닮아

그대로 계곡을 끼고 오르면 야영장인지 아니면 주차장인지 모를 공터에 정자도 보인다. 참고로 나중 하산 때 만나는 곳이다.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이 주변에 주차해 산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등산로 안내도를 보고 수포교를 건너면 오도재 이정표가 서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가 숲을 이룬 콘크리트 임도를 걷는다.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곧 지실골로 접어드는 이정표(문재산 3.1km, 오도산 2.5km)를 만난다.

길은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야 한다. 좁은 계곡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인적이 뜸하고 햇빛마저 잘 들지 않는 원시의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만 들릴 뿐 고요 속에 잠겼다. 수량은 많지 않으나 반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작은 폭포를 만든다. 아직 나뭇잎이 푸르지만 가을이 짙어지면 계곡은 찬란한 빛깔의 단풍 터널로 변할 것이다. 계곡을 건너 데크 계단을 지나고도 한참을 거슬러 오르고서야 오도재에 이른다.

이 고개는 사거리 갈림길로 그대로 넘어가면 오도산자연휴양림으로 연결되고, 오른쪽 능선 길은 문재산(미녀봉)을 거쳐 숙성산으로 이어가게 된다. 오도산은 왼쪽으로 꺾어 산릉을 타고 오른다. 경사가 가팔라 이를 악물고 올라야 하는 된비알이다. 그렇지만 여유를 갖고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오도산 정상의 구조물이 보이는 도로에 닿는다. 길가 여기저기에 탐스럽게 핀 구절초 꽃이 가을을 재촉하는 듯하다. 이제부터 수도지맥의 마루금을 밟으며 걷는다.

가조 6경에 들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수포대.
가조 6경에 들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수포대.

정상을 바라보며 도로를 150m쯤 따르다가 지름길인 샛길로 든다. 숲길은 곧 하늘이 열리며 주변 전망이 좋다. 산과 산 사이의 손수건만 한 합천호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황매산, 월여산, 봉두산, 악견산, 금성산, 강덕산, 소룡산 등 거창·합천의 산이 첩첩이요, 겹겹이다.

발걸음을 옮겨 전망데크에 올라선다. 발아래로 분지형의 가조 들판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미녀봉, 비계산, 장군봉, 의상봉, 보해산, 금귀봉, 박유산 등 거창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멀리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도 희미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전망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통신중계소 정문으로 들어선다. 흉물스런 통신탑 아래 오도산 정상탑과 산신제단, 건립문을 새긴 빗돌이 있어 그 내력을 알려 준다. 오도산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지만, 본래는 ‘하늘의 촛불’이라는 의미의 천촉산天燭山으로 불렀고, 또는 까마귀 머리처럼 산꼭대기가 검다고 해서 오두산烏頭山이라 했다는 것. 통신중계소 마당 귀퉁이의 망원경 옆에 서면 가야 할 두무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무산에서 하산길의 너덜지대는 바위가 구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두무산에서 하산길의 너덜지대는 바위가 구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입에서 단내 나게 만드는 두무산

정문을 나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도로 턱을 넘는다. 말목에 로프가 설치된 사면을 따라 두무산으로 향한다. 철조망 옆으로 리본들이 달려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바위지대에 급사면이지만 산길은 힘들이지 않고 살짝 돌게 된다. 오히려 급사면을 통과한 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상당히 까탈스럽다. 급경사에 미끄러워 조심스레 내려서면 작은 안부에 다다른다. 갈림길 주의지점으로 직진하지 말고 왼쪽 내리막길로 틀어야 한다. 매우 가파른 길을 미끄러지듯 내달으면 두산지음재다.

‘119구조 합천5-5’ 표지목이 설치된 사거리 갈림길인 이 고개의 북서쪽은 거창 가조의 수포대, 남동쪽은 합천군 묘산면 산제마을이다. 옛날 합천 묘산면 사람들이 두산지음골을 거슬러 넘어 거창 가조장을 보러 가던 주요 통행로였다. 옛길은 묵어 희미해졌으나 간혹 산꾼들이 찾는 길이다. 잠시 완만하던 산길은 다시 경사각을 세운다. 오도산에서 약 400m를 가파르게 내려선 다음 두무산 정상까지 다시 약 300m의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두무산 정상 북쪽의 바위에 오르면 건너편 비계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그 뒤로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남산제일봉 등이 펼쳐진다.
두무산 정상 북쪽의 바위에 오르면 건너편 비계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그 뒤로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남산제일봉 등이 펼쳐진다.

왼쪽이 깎아지른 듯한 벼랑의 날등 길이다. 이후 오르막의 연속이다. 동행한 후배 김석무, 김정연씨가 입에서 단내가 난다며 아우성이다. 체력 고갈이 염려되는 두 후배는 갈증이 나는지 배낭에서 수통을 자주 꺼낸다. 두무산 0.8km라는 이정표를 지나면 경사가 차츰 누그러진다. 산제 갈림길과 묵은 헬기장을 지난 정상부 능선에 ‘두무산 신선 통시’라는 바위가 있다. 정상 직전 만나는 이정표는 나중에 하산할 곳임을 인식하고 두무산 정상에 섰다.

산봉우리에 항상 안개가 끼여 있어 두무산斗霧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데, <여지도서>에는 두모산豆毛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정에는 정상 표석과 삼각점(합천 303, 1981 재설)이 있으며, 나무가 무성해 주변 전망은 좋지 않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바위에 오르면 전망이 훤하다. 발아래로 아델스코트CC가 펼쳐지고 건너편 비계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그 뒤로 수도산, 단지봉, 오른쪽에 가야산, 그 앞으로 남산제일봉 등이 펼쳐진다.

하산은 정상으로 되돌아 나와 이정표에서 산비탈로 내려선다. 자갈길에 낙엽까지 뒤덮인 산길은 무척 미끄럽다.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 구간도 있다. 뒤이어 만나는 거대한 너덜지대는 성가시고 위험하지만 바위가 구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덜 길을 벗어난 완만한 숲길은 이내 골프장의 경계를 따른다. 작은 안부를 지나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오르면 갈림길이다. 이제 지맥을 벗어나 왼쪽 소나무 숲이 울창한 지능선으로 향한다. 흥해 최씨 묘지군을 만나고, 정자가 있는 공터에 닿는다. 양지마을을 지나 화곡 버스정류장에 이르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산행길잡이

화곡마을 버스정류장~양지마을~모현정~수포교~지실골~오도재~오도산~ 두산지음재~두무산~아델스코트 골프장~흥해 최씨묘~모현정~화곡마을 버스정류장 <6시간 30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5)

거창에서 가조행 버스는 시외버스와 농어촌버스가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가조면소재지에서 가야행 또는 도리행 농어촌버스(서흥여객·944-3720)를 타고 화곡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면 가조 개인택시(010-3854-5125)나 신택시(942-1231)를 이용해 수포대까지 가면 산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요금은 1만 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거창군 가조면 수포대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하면 된다.

숙박(지역번호 055)

오도산 산행을 위한 숙식은 가조면소재지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숙소는 가조모텔(943-8009), 썬모텔(941-0883), 본모텔(941-1280)이 있다. 먹거리집도 많아, 모든식당(942-0014)은 흑돼지숯불석쇠구이가 전문이며, 참맛집(945-0306)은 순두부찌개와 코다리찜이 주메뉴. 쌍쌍식육식당(943-2428)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고깃집으로 유명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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