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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오서산 반죽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의 ‘오서산 국수’

글·그림 윤성중
  • 입력 2021.11.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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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5> 오서산 국수를 찾아서

 오서산 국수를 찾아서!  제면소로 가는 길에 본 오서산 전경. 광천천 근처에 이르면 오서산의 듬직한 풍채를 목격할 수 있다.
오서산 국수를 찾아서! 제면소로 가는 길에 본 오서산 전경. 광천천 근처에 이르면 오서산의 듬직한 풍채를 목격할 수 있다.

나는 국수에 환장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면으로 만든 모든 음식에 열광한다.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요리 한 가지만 먹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면 요리를 선택할 것이고, 다른 면 말고 라면만, 김치 없이 오로지 라면만 먹으라고 해도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면을 지독히 사랑한 죗값으로 나는 얼마 전 주말, 차로 왕복 8시간 걸려 오서산에 다녀왔다. 고속도로에서 긴 시간 차에 갇힌 끔찍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한 건 바로 ‘오서산 국수’다. 오서산 국수는 일반 국수집(식당)이 아니라 면을 뽑는 제면소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오서산 국수. 
올해 초 생산을 중단했다. 
권영호 사장은 부인 한경희씨와 광천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오서산 국수. 올해 초 생산을 중단했다. 권영호 사장은 부인 한경희씨와 광천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하고 있다.

올해 초, 장모님이 시장에서 ‘오서산 국수’라고 크게 적힌 국수 몇 묶음을 사 오셨는데, 이걸 얻어다가 몇 달간 집에서 비빔국수, 들기름 국수를 해먹었다. 두꺼운 면발과 짭조름한 맛이 꽤 괜찮았다. 면이 다 떨어져서 또 국수를 얻으러 장모님께 연락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그 집 이제 국수 안 만든대”였다. 이럴 수가! 아쉬움을 넘어 속이 상했다. 오서산 국수는 그동안 나에게 그냥 국수, 아무 면이 아니었다. 이름이 ‘오서산’이지 않은가! 등산 마니아, 국수 마니아인 나를 겨냥한, 나만의 국수였다. 나 같은 사람 또 있겠지? 그들에게 이 국수집을 알려 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폐업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제면소 전경. 제면소라고 할 만한 소재가 겉에서는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제면소 전경. 제면소라고 할 만한 소재가 겉에서는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서산 구경할 겸 가보지 뭐

오서산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보령시 청소면과 청라면, 청양군 화성면에 걸쳐 있다. 규모가 꽤 크다. 높이는 790m. 주능선의 억새가 유명하며 정상에서 서해안 조망이 끝내준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금북정맥 최고봉, 충남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지만 오서산이 아닌 오서산 국수에 꽂힌 내게 ‘산이 어쩌구, 풍경이 어쩌구’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국수집이 어디 있을까? 하면서 며칠 동안 인터넷 지도만 살폈다.

국수 포장지에 쓰인 주소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고 지도를 이리저리 확대, 축소하거나 ‘거리뷰’ 기능을 활용해 국수 공장의 동태를 살폈다. 특이한 건 없었다. 허름한 간판이 달린 작은 집, 그야말로 오래된 ‘노포’를 상상했는데, 제면소의 간판은 어디에도 없고 주위로 여러 집기가 어지럽게 나동그러진 평범한(?) 시골집 모양이었다. 이러니 더 궁금해질 수밖에.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국수요? 네, 제가 만든 건데요. 올해 초까지 생산하고 말았어요. 엥? 온다고요? 왜 와요? 국수 안 만든다니까요. 나, 참. 아니, 이제 국수 없다니까 와서 뭐 하게요?”

사장님의 전략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국수를 ‘희귀템’으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한사코 오지 말라면서도 말끝을 묘하게 흐리는 수법이 끝까지 가고 싶게 만드는 설득력의 귀재였다.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서 왜 문을 닫은 건지 알아보기라도 하자! 혹시 모르지, 남은 국수를 얻을 수 있을지도!’   

“읍에 사람이 점점 줄어”

오서산 국수 권영호 사장은 국수 만들기를 그만두고 아내 한경희씨와 광천읍 젓갈시장에 가게를 차렸다. 토굴 새우젓을 비롯해 오징어젓, 어리굴젓 등 젓갈을 좌판에 가득 쌓아 놓고 어느 집이 더 지독한 짠내를 풍기나 시합이 열린 시장은 내가 생각했던 오서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제면사와 젓갈집 사장이라. 연결지점이 없는데? 그는 왜 변신했을까?  권영호 사장은 왜 산에서 시장으로 내려왔을까?

“국수 만들기를 30년 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식품점을 했는데, 판매만 하는 것보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당시 시, 읍에는 제면소가 하나씩 꼭 있었는데, 광천읍에만 없었어요. 그래서 면을 만들어보자고 했고요. 여기서 독점적으로 운영했죠. 처음에는 잘됐어요. 마을 사람들, 읍내 사람들이 많이 사갔어요. 봄, 가을에는 특히 바빴어요. 결혼식 같은 잔칫날에 대개 집에서 국수를 만들어 손님들 대접했잖아요. 이제는 그런 것도 사라지고, 인구가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드니까 수입도 줄었죠. 택배가 있긴 했지만, 그것 덕분에 전국으로 생산이 확대됐지만 크게 도움은 안 됐어요. 

집 옆에 ‘서해 제면’ 
간판이 있다. 많이 낡았다.
집 옆에 ‘서해 제면’ 간판이 있다. 많이 낡았다.

거기다가 정부에서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하라고 하니까, 그거 설비 갖추려면 투자를 꽤 해야 했는데, 그럴 것까진 없다고 판단했어요. 신식장비 들여놓고 자동으로 하면 뭐해요. 가까운 읍내에 사줄 사람이 없는데. 우리 국수 당연히 좋았죠. 완전 재래식으로 했으니까요. 오서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천일염 섞어서 만들었어요. 자동으로 면을 뽑지 않고 롤러로 밀어가면서 만들었어요. 쫄깃했죠. 이것도 3D 업종이에요. 옛날에는 서로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제면소 하겠다는 사람 없어요. 저도 다시 할 마음 없어요. 체력적으로 한계예요. 제면소를 보고 싶다고요? 가서 보세요. 볼 게 없을 텐데.” 


오서산 반죽이었어!

“앞으로 절대 국수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장님 앞에서 뭐라고 더 묻기가 좀 그랬다. 인터뷰를 짧게 마치고 ‘에라 모르겠다! 제면소로 가자, 가서 오서산도 둘러본 다음 서울로 가자’라면서 시장을 나왔다. 제면소는 시장에서 차로 약 8분 거리, 아주 가까웠지만 시장을 벗어나니 풍경이 180도 바뀌었다. 

마을 입구에서 오서산이 보였는데, 커다란 덩치의 씨름 선수가 그대로 자리에 눌러 앉은 모양새였다. 산세가 사납거나 하지 않고 반대로 귀여웠다. 퉁퉁한 뱃살처럼 생긴 산자락을 꼬집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달까?

권영호 사장과 그의 아내 한경희씨. 둘은 30년 동안 오서산 자락에서
 국수를 만들었다.
권영호 사장과 그의 아내 한경희씨. 둘은 30년 동안 오서산 자락에서 국수를 만들었다.

제면소는 상담마을 어귀에 있었다. 마을 골목에서는 등산객들이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집은 ‘거리뷰’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제면소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는데, 여기가 국수공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건물 옆에 숨어 있던 ‘서해제면’ 간판뿐이었다. 권영호 사장이 힘들게 국수를 만들다가 밖으로 뛰쳐나와 오서산을 바라보며 쉬는 상상을 했다. 그 모습을 그리며 나도 마당에서 오서산을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기막힌 사실을 깨달았다. 오서산이 사장님의 비법 반죽이었구나! 오서산을 통째로 제면기에 넣고 돌린 다음 면을 뽑은 것이로구먼! 최고로 좋은 반죽을 쓴 건 분명할 텐데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 같다. 부인과 단 둘이 국수 만들기만 해도 바빴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까운데, 내가 물려받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시장에서 부인 한경희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제면소 앞 마당에서 바라본 오서산. 겹겹이 쌓인 능선이 꼭 거대한 씨름선수의 출렁이는 뱃살 같다.
제면소 앞 마당에서 바라본 오서산. 겹겹이 쌓인 능선이 꼭 거대한 씨름선수의 출렁이는 뱃살 같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는 걸 무슨 수로 막겠어요.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죠, 뭐.”

억지 없는 삶! 권영호 사장과 아내는 물 흐르듯 오서산에서 내려와 시장으로 간 것이고, 나는 잠자코 서울로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 끝내 오서산 국수는 얻지 못했다. 그리고 오서산도 오르지 않았다(이 코너는 등산시렁이니까).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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