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it Now] 토종 씨앗이 환경을 지킨다

입력 2021.11.19 09:31

창간 52주년 환경 캠페인 르포
양평 물소리길 클린 하이킹…청년 농사 공동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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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물소리길 3코스를 달리는 클린하이커스
‘Do It Now’는 ‘아름다운 자연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실천’을 제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길과 산과 자연에서 흔적 남기지 않기, 단 10개라도 쓰레기 줍기, 일회용품과 쓰레기 줄이기, 육식보다는 채식 지향하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밖에 우리 삶 속에서 더 입체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녹색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던 중 클린하이커스 멤버 중 한 명이 주말마다 양평에 가서 ‘우프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프란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유기 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활동이다. 1980~1990년대 대학생 대외활동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과 비슷하다. 자연 속에 잠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하는 것. 그야말로 친환경 라이프의 시작이 아닐까!
심지어 농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농산물은 생산, 유통, 폐기 과정에서 다양한 탄소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농식품 수입에 따른 탄소배출량이 2019년 기준 1,146여 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직접 키워 먹으면 이 공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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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길 가에 버려진 비닐 장갑.
그래서 클린하이커스가 새로운 도전을 했다. 1일 우퍼(농부)가 되어서 농사를 짓고, 그 지역을 청소하며 ‘친환경 여행’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호기심이 가득한 네 사람의 클린하이커스가 모였다.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가 이정은씨는 지난 10월호 두 잇 나우 클린 카누잉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번 캠페인에 아이디어를 더해 준 도보미씨는 지난 8월부터 양평에서 우퍼로 활동 중이며, 일주일 중 하루만 채식을 지향을 하는 ‘채식하루’ 운영진이자 클린하이커스다.
새로운 얼굴도 함께했다. 공군 부사관 출신으로 현재 뷰티사업가로 활동 중인 전영아씨도 재미있어 보인다며 일을 미루고 달려왔다. DMZ 평화의 길 걷기 행사에서 만난 그는 걷기 마니아이자 산 사랑꾼이다.
이른 토요일 아침 양평역에 집결했다. 물의 고장인 양평의 물길 따라 걷는 ‘양평물소리길’이 이번 목적지다. 오전에는 전철 경의중앙선의 역과 마을, 물길과 숲길을 이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청소하고, 오후에는 우프 농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자전거가 없는 멤버는 자전거 대여소에서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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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알 수 없는 천 끈을 수거하고 있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구름이 적당했다. 그야말로 자전거 타기 좋은 날. 역에서부터 이어진 자전거 길을 따라 달렸다. 물안개공원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니 시공간을 뛰어넘은 듯한 물소리길 풍경이 펼쳐졌다. 우거진 나무가 흐드러지고, 새벽에 내린 비로 낙엽 진 나뭇잎들과 함께 바닥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윽한 가을 향기가 잔잔한 남한강 따라 흘러 들어왔다.
“여기, 유럽 아니야?!”
근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쓰레기를 주우러 온 목적도 까맣게 잊고 신나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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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물 근처 숲 길에는 투기되어 오랜시간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여기는 관리가 잘 되어 있나 봐요!”
쓰레기 줍기를 시작할 때 나오는 단골 멘트다. 그러나 ‘두 잇 나우’ 애독자라면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역시 말 끝나기 무섭게 쓰레기가 시야를 점령했다. 클린하이커스들은 자전거를 길 한 편에 세우고 수거를 시작했다. 무언가 가득 찬 검은 비닐봉투 사이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퍼져 나왔다. 누군가 먹고 버리고 간 도시락이었다. 비닐장갑과 페트병, 담배꽁초는 덤이었다.
“우와!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영아씨가 경악하며 외쳤다. 준비한 쓰레기 수거 봉투에 넣기 어려워 보이는 두껍고 무거운 천으로 된 끈이 나왔다. 4년간 쓰레기를 주워 오고 있지만, 늘 예상을 뛰어 넘는 쓰레기에 매번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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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강 풍경 속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자전거를 타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집중 청소 장소를 3지점 정도로 정해 더 청소하기로 했다. 벤치가 있는 쉼터에는 어김없이 담배꽁초와 플라스틱 커피 컵이 있었고, 숲길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일회용품들과 술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많이 깨끗해지지 않았나요?”
쓰레기를 줍다 보면 주변인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다. 맞다. 공원 탐방로나 등산로는 예전에 비해 깨끗해졌다.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이번 양평 물소리 길을 청소하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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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가 있는 쉼터에 버려진 물티슈, 담배꽁초를 줍고 있는 클린하이커 전영아씨.
하나를 줍기 시작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클린하이커가 되어 자연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선의 문제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의 그늘 아래를 유심히 보는 습관을 들이면 그 그늘에 한가득 쌓인 비양심이 보인다. 우리 모두의 손길은 여전히 필요하다.
“산보다 산책로에 쓰레기가 더 많네요.”
“쉽고 편한 마음으로 올수록 더 쉽게 쓰레기를 버리나 봐요.”
쓰레기가 가득 찬 봉투를 자전거에 싣고 달렸다. 가을바람이 수고로운 땀을 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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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우프 토종농사공동체의 우퍼들이 밭에서 잡초를 정리하고 고랑을 내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 친환경의 시작
2018년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개봉된 이후 귀농·귀촌이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가 오자 시골 농가에서 보내는 여행이 젊은이들 사이에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호텔보다는 제주 돌담 집과 같은 시골집을 찾고, 촌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촌캉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여행을 키워드로 사진을 검색하다 보면 초록 초록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가 출력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현대사회에서 여유를 찾고, 친환경을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일까. ‘로컬’이 시대의 키워드가 된 듯하다. 바쁘게 관광지만 둘러보는 여행보다는 ‘한 달 살기’ 혹은 ‘1주일 살기’처럼 한 지역에 머무르는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도 늘었다.
클린하이커 도보미씨가 양평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청년 우프 토종농사 공동체’ 활동도 이에 걸맞아 보인다. ‘청년 우프 토종농사 공동체’는 우프와 첫거름재단의 청년농부 양성 프로그램으로, 청년들이 일주일에 한 번 농장에 와서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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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로 이루어진 건강한 식탁 한상.
농장에 도착하니 농사일이 한창이다. 곧 점심시간이 되자 밥상이 차려졌다. 직접 재배한 루꼴라와 고수, 고구마와 땅콩 등 담백하면서도 정겨운 자연주의 밥상이다. 각자 준비해 온 반찬 한 가지씩을 더하자 식탁이 더욱 풍성히 채워졌다. 포근한 인상의 관장님과 농부들이 모인 작은 식탁에는 웃음소리가 흘러 넘쳤다.
“일반적인 우프는 1~2주일 정도 농장에 머물며 숙식하면서 농부들의 생활을 체험하는데요. 일하는 사람들, 일주일씩 집을 비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당일치기 우프를 만들었어요.”
양평 우프 토종농사 공동체는 2020년에 대여섯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가꿨던 주말농장에서 출발했다. 함께하니 즐겁고 배우는 것도 많아 사람들을 모아볼까 하여 우프와 청년 농부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첫거름 재단. 토종 씨앗을 늘리고 보급하는 일을 하는 씨앗도서관의 박영재 관장이 함께 사람들을 모아 운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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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농사꾼이 된 클린하이커스가 수확물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강은, 도보미, 전영아, 이정은씨)
특히 양평이라는 장소의 지리적 이점이 크다. 서울에서 기차 타고 30분만 가면 된다. 그러니 일반 우프와 달리 1년 동안 활동할 수 있어 프로그램이 지속가능하다는 점, 재배하는 작물의 모든 주기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서른 명 정도가 양평 우프 토종농사 공동체에서 농부로 활동하고 있다.
“주말만 가도 된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좋아요. 키우는 거 좋아하고, 귀농 귀촌에 관심 있고, 목공과 빵, 술도 좋아하고요! 가장 매력적인 점은 직접 먹고 싶은 것을 심고 수확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TV프로그램 ‘삼시세끼’를 직접 해보고 싶으면 정말 여기에 오면 돼요. 제철 채소부터 달걀까지 다 있으니까요.”
우퍼로 활동 중인 아란씨, 가희씨는 입을 모아 우프에 좋은 점들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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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하이커 도보미씨가 씨앗파종기계로 토종씨앗을 심고 있는 모습.
#녹색취미, 녹색여행, 녹색일자리
박영재 관장은 20년 이상 농사일을 해온 농사꾼으로 ‘토종 씨앗이 없어지기 전에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해오다가 현재는 씨앗도서관을 만들었다. 사실 이 토종 씨앗들은 재배했을 때 수확량이 적어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쟁력이 낮은 것들이다. 그러나 원래 우리 토양의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는 “농사를 직접 지어보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농사는 1차원적인 생산을 넘어, 가공, 요리, 서비스 등 폭발적인 다양성을 갖고 있어요. 자기의 개성과 취미에 맞춰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 많아요. 무엇보다 직장 생활이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 흙과 친숙해지는 것은 그만큼 육체적·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맞아요! 원예치료도 하잖아요. 잡초 뽑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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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물소리길에서 수확(?)한 쓰레기를 분리배출 중이다
관장님의 의견에 클린하이커 보미씨가 너스레를 떨며 거들었다.
클린하이커스는 긴 장화와 넓은 챙을 가진 모자를 쓰고 일일 농사꾼이 되어 고랑을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잠깐이지만 따사로운 햇볕에 땀을 흘리고, 흙냄새를 맡고, 고구마를 캐고, 살랑거리는 바람과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느끼며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꼈다.
 
그때 물소리길에서 주워 온 쓰레기로 꾸며볼 정크아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우리들 사이에 공유됐다. 청년 농부를 만들어보자! 커다란 천 끈으로 농부의 밀짚모자를 만들고, 일회용품들로 둥그런 얼굴을 이었다. 스티로폼 조각으로는 동그란 눈동자를 만들고 재배한 파프리카를 놓아 초록색 코를, 라면 봉투로 입을 구성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이기도 하지만, 먹거리를 비롯해 우리 자신의 삶과 환경을 가꾸는 농부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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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우프 공동체 멤버들과 일일 농사꾼 클린하이커스의 단체샷.
#유기농도 환경을 망친다?
미국 시애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며 처음으로 농사를 접하고 유기농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청년 우프 토종 농사 공동체’의 지영씨는 “유기농업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환경 친화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농업은 형식적으로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지만, 비닐을 사용한다거나 유기농퇴비를 과도하게 사용해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관점을 버리고 환경과 생태계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먹거리와 건강,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빽빽한 도시에서 벗어나, 직접 흙을 만지며 텃밭을 가꾸는 일이 누군가에겐 삶의 방식이지만, 새로운 취미이자 여행의 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친환경 라이프를 꿈꾼다면, 일주일에 하루! 새로운 녹색 여행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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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를 형상화한 정크아트. 쓰레기도, 우리 토종 농산물도, 우리의 친환경 삶도 잘 가꾸고 수확하는 농부가 되자는 뜻을 담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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