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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비법정탐방로 르포 월악산 악어봉] "야생동물 보호" 출입 막은 악어봉, 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 하나도 없었다

글 서현우 기자 사진 김종연 기자
  • 입력 2022.01.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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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악어봉 르포
2013년부터 개방 논의…2022년 말 개방 앞둬
지자체 의지, 공단 협조, 자연 요건 3박자 결실

악어봉 정상에서 바라본 충주호. 충주호를 향해 뻗어 있는 지능선들이 마치 악어를 닮았다.
악어봉 정상에서 바라본 충주호. 충주호를 향해 뻗어 있는 지능선들이 마치 악어를 닮았다.

국립공원 54년의 역사 동안 비법정탐방로가 정규탐방로로 개방된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인기 높은 탐방로여도 개방을 검토하기보다는 자연보전의 필요성과 탐방 위험성을 근거로 매년 집중 단속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방을 앞둔 비법정탐방로가 있다. 월악산국립공원의 악어봉이다. 정상에 오르면 충주호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악어를 닮은 지능선들이 보인다는 곳이다. 지난 2013년부터 추진된 개방 논의가 드디어 결실을 맺어 현재 탐방로 조성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아직 비법정탐방로며, 2022년 말 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악어봉은 개방될 수 있었을까? 악어봉의 개방 역사를 살펴보면 비법정탐방로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개방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악어봉 개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충주시청 산림정책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충주시청 산림정책과 직원이 악어봉 개방사를 들려주고 있다.
충주시청 산림정책과 직원이 악어봉 개방사를 들려주고 있다.

6년간의 반려를 뒤집은 건? 

충주시가 처음 악어봉 개방을 추진한 건 2013년이다. 악어봉은 산악사진가들 사이에서 충주시의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 초반 모 사진 공모전에 악어봉 사진이 입상하고, 이것이 언론과 SNS에 오르내리면서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비법정탐방로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버젓이 명소라고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줄지었다(비법정탐방로 관련 정보를 공유한 인터넷 게시물은 단속할 근거 법률이 없다). 이 게시물을 보고 오르다가 공단에 단속 당해 항의하는 민원이 줄이었다. 이에 충주시 관광과는 환경부에 악어봉 개방 건의 신청을 냈다.

결과는 반려. 사유는 자연생태계에 대한 예측, 주요 야생 동식물의 보호대책 및 환경오염 방지대책에 대한 내용 부재다. 이듬해인 2014년에 일부 내용을 보완해서 재신청했지만 이번에는 들머리가 문제였다. 악어봉 탐방로는 국도 36호선에서 출발하는데 도로가 곡선인 탓에 탐방객이나 운전자가 시야를 미리 확보하기 어려워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또한 악어봉 정상에서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비법정탐방로 출입이 활성화될 우려도 지적됐다.

2013년 거부된 악어봉 개방 추진은 2017년에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관광과가 아닌 산림정책과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산림정책과 이재식 과장은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인 살미면에 마땅한 관광명소가 없었는데 악어봉이 입소문이 나 있다는 것에 착안해 탐방로 사업에 착수했다”며 “한 번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던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거라 환경부를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 출입금지 플래카드가 두 개나 붙어 있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 출입금지 플래카드가 두 개나 붙어 있다.

“2017년 초부터 개방 건의를 했는데 2018년까지 계속 반려 당했어요. 사업 내용이 문제였다기보다는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에 대한 역풍으로 환경부에 압박이 들어오니깐 산림 개발 관련된 사업은 근본적으로 모두 차단당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또 다시 답보될 뻔한 상황은 두 가지 변수에 의해서 달라진다. 2018년 말 환경부 수장이 경질된 것과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전임 충주시장인 이종배 의원과 조길형 충주시장, 임이자 의원 등이 악어봉을 직접 방문해 둘러보는 등 강한 사업 추진 의지를 보여 준 것.

정치권에서 힘을 실어 주자 개방 논의는 급물살을 탄다. 2019년 10월 입지적정성평가 심사가 시작됐고, 이 평가는 같은 해 12월 심의를 통과한다. 이 평가는 ‘자연공원 내 숙박시설 및 탐방로 입지 적정성 평가기준 및 방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8개 항목으로 자연보전성 30점, 탐방로 이용·편의성 30점, 탐방 안전성 20점, 관리 용이성 20점 총 100점이며, 이 중 70점 이상 획득해야 적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세를 얻어 2020년에는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 및 대체지정 용역을 수행했고, 이 결과에 따라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 건의 및 대체지역 지정 보완서류를 제출했다. 이는 일사천리로 승인이 났고, 현재 탐방로 조성을 위한 공사에 착수한 상태에 이른다.

등산객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경고 메시지가 방송되는 장치.
등산객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경고 메시지가 방송되는 장치.

엉뚱한 야생생물보호구역

충주시청 산림정책과에 방문해 개방 역사를 살펴보던 중 눈길을 끈 자료가 하나 있었다. ‘악어봉 탐방로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 및 대체지정 용역 최종보고서’다. 2020년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용역조사보고서다. 보고서의 결론은 놀랍게도 야생생물보호구역이던 악어봉 일대에 법정보호종도, 멸종위기 야생생물도, 천연기념물도 서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식생보전등급은 Ⅲ, Ⅳ, Ⅴ등급으로 확인되었음. 포유류는 두더지, 고라니, 멧돼지, 멧토끼, 청설모, 다람쥐, 오소리 등 7종이 확인되었으며, 법정보호종은 확인되지 않았음.

조류는 18과 30종 357개체가 확인되었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및 천연기념물은 확인되지 않았음.’

보호해야 할 야생생물이 없는 야생생물보호구역이었다. 야생생물보호구역은 멸종위기야생생물 등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보호구역에 준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는 지역에 지정·고시되는 구역이다.

월악산 악어봉 중턱에서 바라본 충주호. 정상을 제외하고 등산로 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망이 괜찮은 장소다.
월악산 악어봉 중턱에서 바라본 충주호. 정상을 제외하고 등산로 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망이 괜찮은 장소다.

충주시 환경수자원과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1996년 12월에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당시 지정사유는 노루, 멧돼지, 꿩, 너구리 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관련 법령에 따라 자동 연장됐다.

오히려 그동안 야생생물보호구역이 아니었던 대체지역에 멸종위기 생물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대체지역은 악어봉 탐방로를 개방하는 대신 일종의 총량제 개념으로 자연보전을 위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는 비슷한 면적의 지역이다. 보고서에 적힌 대체지역의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식생보전등급은 Ⅱ, Ⅲ, Ⅳ 등급으로 확인되었음. 포유류는 두더지, 삵, 고양이, 담비, 오소리, 멧돼지, 고라니, 청설모, 다람쥐 등 6과 9종이 확인되었으며, 법정보호종은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종인 삵과 담비 2종이 확인되었음.

조류는 21과 36종 396개체가 확인되었으며, 법정보호종은 천연기념물 제324-6호인 소쩍새 1종이 확인되었음.’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지역 및 대체지역 위치도
야생생물보호구역 해제지역 및 대체지역 위치도

보호구역 지정은 지자체 관할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악어봉같은 케이스가 만연한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어딘가에선 정작 보호해야 할 산림은 방치하고, 엉뚱한 산림을 수십년동안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서둘러 악어봉을 찾았다. 들머리인 카페 ‘게으른악어’에는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최승환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용역 보고서의 내용을 전하며 무슨 일인지 따지듯 물었다. 최 과장이 답변했다.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은 국립공원공단 소관이 아닙니다. 지자체에서 지정, 고시하는 겁니다. 악어봉 같은 경우에는 그 지역이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던 거고요. 답변을 드리자면, 처음 지정했을 당시에 근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야생생물 보호구역이라는 게 꼭 그곳에 야생생물이 살고 있지 않더라도, 야생생물과 인간 활동권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게다가 야생생물 보호구역인데 탐방로가 조성된 곳도 많아요.

이번 악어봉 같은 경우에는 지속된 수요로 인해 탐방로 조성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있었고, 안전부분에 대한 우려 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자체인 충주시와 원만하게 협조해서 진행하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는 선형으로 된 국도 36호선 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 상의 상단으로 육교가 설치될 예정이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는 선형으로 된 국도 36호선 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 상의 상단으로 육교가 설치될 예정이다.

결국 국립공원공단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궁극적으로는 지자체와 환경부의 문제였고, 이 지역이 현재 국립공원이라 공단이 관리할 뿐이었던 것이다. 최 과장의 말에 덧붙여 “탐방 압력에 의해 야생생물이 모습을 감춘 것일 수도 있다”는 한 주무관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었다.

답변을 받아 적는 중 문득 ‘지속된 수요로 인해 탐방로 조성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형성됐다’는 부분에 의문이 생겼다. 이 문장은 다시 말하면 불법산행이 계속 자행되어야 비법정탐방로가 개방된다는 뜻이 아닌가? 

최 과장은 “탐방 수요라는 게 꼭 실제 탐방으로만 측정되는 건 아니다”라며 “가령 국립공원 안에 야영장을 만들었는데 주변에 별도 탐방로가 없으면 수요를 고려해 야영객들이 걸을 만한 숲길을 조성하곤 한다”고 보충 설명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에 있는 카페 ‘게으른 악어’. 카페 주인과 주차장 사용에 대해 협의가 된 상태라고 한다.
월악산 악어봉 들머리에 있는 카페 ‘게으른 악어’. 카페 주인과 주차장 사용에 대해 협의가 된 상태라고 한다.

반질반질한 탐방로, 정상 전망은 압권 

이제 악어봉을 답사한다. 들머리에서 악어봉 정상까지 거리는 단 900m에 불과하다. 그러나 들머리(180m)와 악어봉(448m) 정상의 표고차가 약 270m에 달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계속 치고 올라야 하니 약 40분 걸린다. 이재식 과장이 출입금지 플래카드로 가득한 들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꺼낸다.

“현재 악어봉 탐방로 공사의 역점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육교예요. 국도 36호선을 걸어서 건너는 건 너무 위험해서 위로 지나갈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탐방로 중 위험 구간의 통제난간 설치고, 세 번째는 정상에서 큰악어봉,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샛길에 차단 펜스를 설치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악어봉 탐방로가 개방되면 이를 이용해 종주하려는 산꾼들이 많아질 텐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죠.”

탐방로는 이미 수많은 등산객이 지나다닌 탓에 반질반질했다. 첫 오르막이 끝나고 갈림길에서 왼쪽, 악어봉 방면 지능선으로 난 오솔길을 따른다. 길 도처에서 묘지를 만난다. 이재식 과장은 “악어봉 탐방로의 중간 지역은 개인사유지”라며 “소유주에게 토지승락을 받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 뵙기도 하고, 전화통화도 수차례 해서 설득했다”고 전했다.

월악로-악어봉전망대 탐방로 계획안
월악로-악어봉전망대 탐방로 계획안
탐방로 곳곳에 아직 출입금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2022년 말이 되어야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탐방로 곳곳에 아직 출입금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2022년 말이 되어야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잠깐씩 숨을 돌리며 부지런히 발을 놀린다. 능선 양옆은 가파른 비탈길. 주위를 살펴보니 악어봉은 거의 반도와 같았다. 산양을 복원한 동쪽 월악산 영봉 일대 사이에는 동달천과 공이리마을이 들어서 있고, 북쪽과 서쪽은 충주호와 국도36호선이 감싸고 있다. 유일하게 남쪽만 야생생물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인 셈. 환경부가 종주 산행을 막고자 남쪽 차단 펜스를 설치하라고 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이제 정상에 오른다. 사진으로만 봤던 충주호로 기어가는 악어들이 막힘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부시고 장쾌한 전망이다. 유독 젊은 층이 악어봉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 단번에 이해되는 아기자기함이 눈앞에 가득했다. 이 과장은 “아직 비법정탐방로지만 그래도 이제 개방이 코앞이라 상당히 기쁘다”며 “살미면에 마땅한 관광지가 없어 그저 월악산 가는 길목에 불과했는데 악어봉 개방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상을 둘러본 후 다시 내려선다. 무척이나 짧은 길이다. 그런데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끈질긴 추진력, 지역구 정치인들의 힘, 환경부 내부 이슈, 국립공원공단의 원만한 협조,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 요건, 대체 보전지역 지정에 이르기까지. 단 900m의 길을 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이토록 많았다. 

개인사유지를 알리기 위해 나무에 빨간색 표시선이 그어져 있다.
개인사유지를 알리기 위해 나무에 빨간색 표시선이 그어져 있다.
악어봉 개방을 위해 함께 힘을 쏟은 충주시청 산림정책과 직원과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악어봉 정상에 섰다. 가운데 왼쪽이 충주시청 이재식 산림정책과 과장. 오른쪽이 월악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최승환 과장.
악어봉 개방을 위해 함께 힘을 쏟은 충주시청 산림정책과 직원과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악어봉 정상에 섰다. 가운데 왼쪽이 충주시청 이재식 산림정책과 과장. 오른쪽이 월악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최승환 과장.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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