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프리솔로 추락] 사고 목격하고도 방관했다면…등반가 자격 없다

입력 2022.05.03 09:54 | 수정 2022.05.03 10:06

[초점] 프리솔로 사고로 본 등반 윤리
불법산행 사고 때 도주 사례 빈번…목숨 걸고 조난자 도운 사례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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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공단이 불법산행 중 조난당한 등산객 한 명을 구조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구조도 신고도 안 한 채 자리 뜬 소위 등반가들, 산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이 추락했는데 얽히기 싫어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자리를 떴다고? 끔찍한 개인주의 사회다.’ 
‘잘 못 봤겠지… 등반하면서 무수한 사고를 보고 들었지만 주위 등반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으면 한국 등반가들은 어느 나라보다 도와주려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 네이버 ‘어느 프리솔로의 추락사’ 기사 댓글 中

최근 추락사한 프리솔로 등반가 최지호씨의 구조 과정을 둘러싸고 인근 등반가들이 방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해 “너무 이기적이다”는 반응과 “섣불리 단정하면 안 된다”는 상반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수리산 매바위의 ‘작은악마’ 루트를 프리솔로로 등반하던 최씨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런데 인근에서 사고 발생 정황을 접하고 달려간 강윤성(도서출판 다산 대표)씨는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신고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나보다 훨씬 더 사고자와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추후 경찰에서 목격자를 탐문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아 우리 일행 3명이 가서 진술했다”고 밝혔다.

군포경찰서와 군포소방서에 이 내용을 확인한 결과, “사고자의 개인정보에 해당되어 밝힐 수 없다”는 말과 “수사 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목격자 진술은 3명에게 받았으며, 접수된 사고 신고는 11시 11분 한 건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윤성씨의 말이 경찰에서 밝힌 것과 일치하는 것. 추가 목격자 진술과 강씨가 도착하기 전 별도의 구조 요청이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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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솔로 등반가 최지호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운영하던 채널에 등반가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급조된 인터넷 산악회 도망 사례
사고자와 가까이 있었으나 신고하지 않은 이들이 정말 타인의 죽음에 얽히기 싫어 방관한 것인지, 사고로 인해 당황해서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반인이 심한 외상을 입은 사고자를 목격하고 즉각 알맞은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타인의 죽음에 얽히기 싫어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산악사고를 목격한 상태에서 구호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아예 도망친 경우다. 특히 2010년대 인터넷 산악회 활동이 활발할 때 왕왕 발생했던 일이다.
2014년 10월 설악산 중턱에서 한 등산객이 야간산행을 하다 절벽 5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사고자와 함께 산행하던 일행은 불법 야간산행 사실이 적발될까 우려해 ‘사람이 다쳤다’는 신고만 하고 도망쳤다. 뿐만 아니라 북한산 만경대 리지에서도 한 일행이 실족사하자 안내를 책임졌던 인터넷 산악회 산행대장이 사고수습에 필요한 조치를 일절 하지 않고 도망쳐버린 일도 있었다.
한 경찰 산악구조대장도 “2010년대 중반 조난자 수습을 위해 인수봉에 출동했는데 함께 등반한 동료들이 사망자의 이름조차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투덜대며 도망치듯 현장을 떠나버렸다”고 충격적인 일화를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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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혜씨와 곽씨의 딸 봄, 은인인 중동고 박재우씨와 이명호씨. 사진 이경호 차장.
고산에서 목숨 걸고 도운 이들
이와는 반대로 희생적으로 사고 산악인을 구조한 사례도 많다. 특히 극한의 환경인 고산 등반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구조한 등반가들도 있었다. 올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세계산악문화상을 수상한 폴란드 산악인 크지슈토프 비엘리츠키는 4번째 도전이었던 2018년 동계 K2 원정에서 낭가파르바트에서 조난당한 산악인들을 구조하도록 대원을 파견해 미국 데이비드 소울스상과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8년 K2에서는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11명의 등반가들이 죽었고, 한국 등반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박경효 대원은 죽음의 지대인 8,000m에서 탈진한 다른 대원을 부축해 내려오느라 하산이 늦어졌고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박경효 대원은 30분 정도면 내려서는 구간을 4시간 동안 부축해 내려오느라 시간이 늦어졌다.
이때 아일랜드 산악인 제라드 맥코넬은 다른 나라, 다른 팀임에도 탈진한 한국 대원을 돕다가 목숨을 잃었다. 제라드는 북미 최고봉 데날리에서도 조난산악인을 구조해 데날리상을 수상한 의협심 있는 산악인이었다. 그는 고산에서 죽음의 비박을 감행하고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하산하던 중 탈진한 한국 대원을 돕다가 하산 시간이 지체되었고, 눈사태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제라드와 함께 비박하고 하산하던 대원 마르코가 정상적인 속도로 내려가 목숨을 부지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 대원을 돕다가 숨을 거둔 셈이다.
중동고 동문 산악회의 이명호, 최인수, 박재우씨는 2006년 에베레스트 8,050m 지점의 캠프4를 떠나 정상 공격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다른 원정대 소속인 곽정혜씨의 조난 소식을 듣고 이명호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이 등정을 포기, 곽씨를 구조했다. 홀로 정상 등정에 나선 이 대원은 잇따라 같은 경남 양산 팀의 이상배 대장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또다시 등정을 미루고 이 대장을 부축해 하산했다.
이렇듯 죽음의 지대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을 도운 사례는 상당히 많다. 네이버 기사에서 여럿 보이는 ‘등반가들은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이라 남을 돕지 않는다’는 식의 댓글은 사실과 다른 과도한 비판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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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0월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로 헬기 한 대가 출동하고 있다. 사진 독자 제보.
그래도 도와야 한다
시민으로서, 지금을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위험에 빠진 이가 있다면 응당 도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여러 이유로 나서기 꺼려질 수 있다. 응급처치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괜히 나섰다가 구조자의 상태를 악화시킬까 우려될 수 있다. 선의로 도왔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악화된 상황에 이른다면 법적 책임이 부담될 수 있다.
또 곤혹스런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우려다. 경찰서에 가서 목격자 진술을 해야 하고, 같은 진술을 오랜 시간 동안 할 수 있고, 몇 번씩 진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날 세웠던 계획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나 모든 면에서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특정 국가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어 응급 상황에 구조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에는 그런 법규가 없다.
나서는 순간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손해 볼 수 있는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도와야 한다. 특히 등산, 등반이 취미라 한다면 더욱 사고자로부터 눈을 돌려선 안 된다. 그 사고자가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늘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다. 그 위험을 극복하려면 뛰어난 등반력이 아니라 사람 생명에 대한 존중과 연대, 확보가 필요하다.
설령 어떻게 구조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119 상황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법, 필요한 조치들을 세세하게 알려 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건 오직 사람을 향한 용기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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