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흥천사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태조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입력 2022.06.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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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함께 시작한 흥천사는 조선왕조의 시작과 끝을 지켜본 왕실의 원찰이다. 현재는 강북 포교 중심 거점도량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찰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피난처이면서 안식처다. 불자가 아니라도 조용한 사찰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찰 여행은 일상을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대도시 서울에도 크고 작은 절들이 많다. 산중 암자부터 도심을 살짝 벗어난 산사,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포교 사찰까지 방향은 달라도 모두 사찰이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서울 삼각산 기슭에 자리한 흥천사는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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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통행 중심이던 북악하늘길은 2007년 보행길을 정비했다. 트레킹과 라이딩을 즐기는 시민들.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정릉 방향으로 1km쯤 걷다보면 도심에 있으리라고 여겨지지 않는 큰 사찰이 숨어 있다. 규모만 큰 게 아니다. 여느 오래된 사찰과 달리 전통 양식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된 절집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는 삼각산 기슭 ‘도심 속 산사’다. 앞에는 고층 아파트, 뒤에는 북악스카이웨이가 있지만 2만 여 평의 경내에 들어서면 순간이동한 듯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와 영락없는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끼게 한다. 경내를 걸으면 색다른 풍경과 마주친다. 전통 가람 형태의 전각과 현대식 건물인 ‘전법회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한옥으로 지은 어린이집이 있다. 2015년 국토교통부 선정 올해의 한옥상에 뽑힌 건물이다. 산책하는 주민을 위해 사찰은 문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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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경내 산책길을 나서면 바로 북악하늘길.
조선시대 도성 안 첫 사찰
흥천사는 조선시대 도성 안에 세워진 첫 사찰이었다. 사랑하던 부인인 신덕왕후를 먼저 떠나보낸 태조 이성계는 그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정동 부근에 흥천사를 짓고 왕후의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로 삼았다. 인도 무굴제국 왕 사자한이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해 타지마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성계는 흥천사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하니 대단한 애처가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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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복원의 키워드는 ‘주민 속으로’. 사찰보다는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시설에 역점을 두었다. 사진은 경내에 위치한 한옥스타일 느티나무어린이집.
흥천사는 한글 창제와도 관련이 깊다. 조선 초기 고승 신미대사(1403~1480)가 세종 임금의 명을 받아 한글창제를 도왔던 도량이었다. 1424년(세종 6년)에는 선종도회소禪宗都會所가 되었는데 이는 현재 조계종 최초의 총본산이었다. 1429년에는 왕명으로 절을 크게 중창했다. 이처럼 흥천사는 창건 이후 억불의 시대 아래에서도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꾸준히 법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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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후문을 나서면 곧바로 북악하늘길이다.
조선 후기 1865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대방이 완공됐다. 대방은 염불과 수행을 위한 공간과 승방이 모두 결합된 복합수행공간으로 19세기 후반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줘 2013년 등록문화재(583호)로 지정됐다. 대원군은 대방 불사를 지원하며 ‘흥천사興天寺’ 등의 편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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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대방은 1865년 흥선대원군의 발원으로 중건된 후 100여 년 동안 방치돼 오다 원형을 살려 복원됐다. 대방은 승려들이 한데 모여 좌선, 설법, 공양 등을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건물로 왕실의 능침사찰이었던 흥천사는 법당 정면에 누각 대신 대방을 둔 가람배치가 특징. 등록문화재 제583호.
쇠락한 600년 사찰, 금곡스님이 복원
왕조의 몰락과 함께 흥천사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1년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의 지원으로 금곡 스님(현 회주)이 주지로 부임해 복원불사에 나서기 전까지 사찰 기능은 마비 상태였다. 극락보전은 기울고, 대방을 비롯한 건물들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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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거닐고 있는 스님.
금곡 스님은 부임하자마자 흥천사 재건에 팔을 걷어붙였다. 금곡 스님은 지난 2005년 강원도 양양 지역의 대화재로 소실 위기에 처했던 낙산사를 말끔하게 복원하기도 했다. 모두 불가능하리라고 본 낙산사를 되살려놓은 스님의 원력은 흥천사에서도 발휘됐다. 절을 다시 일으키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2022년 현재도 진행 중인 흥천사 복원 작업의 키워드는 ‘주민 속으로’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내 담장을 허물고 사찰을 주민들에게 개방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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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의 주법당 극락보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
절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데크와 흙길로 이어진 산책로가 사찰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 수 있게 배치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새로 들어선 전법회관을 지나면 어린이집과 삼각선원을 통과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흥천사는 이 길을 ‘손 잡고 오르는 길’이라 이름 붙였다. 직선거리로 300m 정도에 불과하지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사찰 내 전각을 둘러보며 가볍게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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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쓴 흥천사 현판.
복원 과정을 거친 사찰 내 전각들도 볼거리. 산책로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대방과 극락보전·명부전이, 오른쪽에는 새로 들어선 전법회관과 한옥 어린이집,  삼각선원이  배치돼 신구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수 작업을 거친 대방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현판이 걸려 있고, 극락보전 내부 현판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5세 때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비로자나 삼선괘불도를 포함해 총 25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 후문을 빠져나가면 아리랑고개 중간 지점으로 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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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891호
명품 산책로 북악하늘길과 맞닿아
북악스카이웨이(북악하늘길)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동의 창의문에서부터 성북구 정릉동 입구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 이후 수도권 경비 강화와 산책로로 개통됐다. 구불구불한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북악하늘길 옆에는 옛 성곽, 자하문 ·팔각정 등이 있고, 흥천사 ·북한산 등과 어울려 자전거 동호인들이 좋아하는 라이딩 코스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서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북악팔각정이다. 하늘전망대는 정릉동에서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팔각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또다른 조망 명소. 하늘전망대에서는 동대문구 방면이 잘 보이고, 팔각정에서는 중구 방면이 잘 보인다. 차량 중심 도로였던 북악하늘길은 2007년부터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나무데크 길과 분리대가 설치됐다. 창의문에서 정릉까지 8km 거리를 여유 있게 걸으면 3시간 남짓. 북악산 기슭을 걸으면서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서울 도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품 산책길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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