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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임도 라이딩 부귀리 임도] 오르막의 진수! 배후령을 넘어, 내 한계를 넘어!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 입력 2022.06.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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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공지천~소양2교~율문리~경운산~청평사~소양호~공지천 75km

배후령 임도 초입의 커브길을 오른다. 배후령은 춘천과 인제를 잇는 옛길 정상의 고개다.
배후령 임도 초입의 커브길을 오른다. 배후령은 춘천과 인제를 잇는 옛길 정상의 고개다.

춘천은 지대가 낮다. 주변 도시나 마을로 나갈 때 북한강이나 소양강 물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번에도 춘천 자전거 카페 ‘북한강’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부귀리 임도는 소양강변의 신북 율문리에서 출발하면 정확하게 원점회귀할 수 있다. 부귀리 임도의 매력은 첫째 춘천과 양구를 잇는 배후령 옛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다. 

둘째, 임도 마지막에 이르러 오봉산 청평사에 들른 후 배를 타고 잠깐이나마 호수를 건너는 낭만도 맛볼 수 있다. 이번에는 신북의 율문리가 아닌 춘천의 공지천에서 출발해 소양강을 따라 다소 긴 거리를 달렸다.

배후령 터널이 있어 대부분의 차량은 배후령 옛길을 오르지 않는다. 배후령 임도가 자전거 명소인 이유다.
배후령 터널이 있어 대부분의 차량은 배후령 옛길을 오르지 않는다. 배후령 임도가 자전거 명소인 이유다.

배후령(587m) 옛길은 춘천의 신북과 인제의 간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지금은 새로운 도로와 터널이 뚫렸다. 워낙 높고 험해 태백과 봉화 간 넛재(896m)와 더불어 차로 움직이기에는 위험한 고개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옛길은 허물지 않고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후령 힐클라임 자전거 대회가 열리는 등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가평 화악산과 도마치, 수피령과 함께 오르막을 즐기며 체력도 올리는 명소이다.

공지천 뜨락에서 각자 소개와 간단한 몸풀기를 한 후 소양강을 거슬러 달렸다. 춘천 시내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완벽한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고 소박했다. 논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강원도는 6월 초까지 모내기를 한다) 춘경과 로터리질을 끝내 물이 찰랑거리고, 모종을 옮겨 심으려 준비한 밭은 비닐 덮기가 끝나 비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율문리에서 배후령 옛길로 들어서자 모두 힘껏 페달을 밟았다.

비포장 임도가 시작되는 초입의 광활한 풍경.
비포장 임도가 시작되는 초입의 광활한 풍경.

길 오른쪽으로는 배후령 옛길과 함께 가면서 완만한 듯 숨 가쁘게 치닫는 오르막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경운산(794m)에서 끝을 맺는다. 옛적 짐을 잔뜩 지고 이 고개를 넘던 보부상들의 숨소리를 오늘은 각자의 폐에서 나오는 숨소리로 가늠하며 정상에 오르자 오늘 에너지의 절반은 쓴 셈이었다. 

고개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멀리 아담하고 오목한 곳에 자리한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먹고살기 힘들고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느지막이 고개에 도착한 등짐장수들은 멀리 보이는 마을 불빛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을까. 배후령 정상에는 청평사로 가는 등산로가 지나가기 때문에 등산객들도 더러 눈에 뜨였다. 

동북편 전방으로 병풍산(796m)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움푹 들어간 삼태기처럼 내려오다가 급격히 치달아 죽엽산(859m)에서 하늘과 닿았는데 임도는 바로 그 가장자리 평균 500m 고도를 유지하면서 굽이굽이 이어졌다. 

조림과 자연림이 우왕좌왕 이어지고 꽃이 떨어진 생강나무와 왕성하게 잎을 펼친 층층나무, 그리고 이따금 눈에 띄는 헛개나무가 자전거를 멈추게 했다. 양지에 돋아난 나물취와 미역취가 억세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했다.

춘천의 자전거 카페 동호인들이 함께했다. 뒤로 소양호가 펼쳐진다.
춘천의 자전거 카페 동호인들이 함께했다. 뒤로 소양호가 펼쳐진다.

몸과 정신 긍정적으로 흔드는 산악자전거

산에서 임도를 주로 타는 동호인들이 사용하는 자전거를 보면 초창기에는 앞에만 서스펜션이 있는 하드테일이 많다. 하지만 자전거 설계 기술이 발달하고 부품이 다양화하면서 지금은 앞은 물론이고 뒤에도 서스펜션이 있는 이른바 풀 서스펜션 자전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돌이나 나무뿌리 같은 장애물이 많고 노면이 고르지 않은 곳에서는 앞뒤 서스펜션을 갖춘 자전거가 훨씬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며 승차감도 좋다. 그러나 어느 자전거를 선택하든 몸에 잘 맞고 주행하는 데 편안한 자전거를 선택하면 된다.

한동안 계속된 봄 가뭄으로 잠깐 왕성하게 튀어나오던 나뭇잎들이 뿌리에서 올라오는 수분이 부족한지 그 두께가 얇고 윤기가 다소 부족했다. 노란 소나무 꽃가루인 송화와 솜털같이 날리는 뚝버들 꽃가루가 사방에 분분하니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기막힌 연녹색 조화가 마치 옅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았다.

모두 산악에는 경험이 많아 오르막에서는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내리막에서는 속도가 굉장했다. 돌이 많은 길을 달리면서 문득 어느 시인이 들려준 얘기가 떠올랐다. 그가 산을 오르던 중 문득 시적 영감이 떠올랐는데 적을 종이가 없어 머릿속에 담았다. 이후 집에 와서 종이에 옮기려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경험을 들은 적이 있다. 

자전거 위에서 숲을 통과하다 보면 문득 직장이나 연구실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의 해법이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만큼 산악자전거는 몸과 정신을 흔들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뱀이 물을 건널 때 긴 몸이 자연스럽게 휘어지듯 임도는 나타났다가 숨으며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오르막 정점에서 약 13km 구간은 높이 500~550m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골과 능선을 헤엄쳤다. 오른쪽으로 부용산(880m)과 멀리 오봉산(777m)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왼쪽의 봉화산(733m)과 함께 그 봉우리와 봉우리가 능선으로 이어지는 모양이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날렵하고 아름다웠다.

자전거 동호회 멤버인 청평골 ‘마초’님 댁에서 식사를 했다.
자전거 동호회 멤버인 청평골 ‘마초’님 댁에서 식사를 했다.

“엇! 싯클램프 나사가 부러졌네!”

산에서 자전거를 즐기다가 만나는 가장 곤란한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예상치 못한 자전거 고장이다. 평지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깊은 산중이라면 난감하다. 회원 중 한 분이 안장 높이를 조절하다가 싯클램프를 고정하는 나사가 부러졌다. 만약 혼자 임도 주행 중이었다면 불완전한 자세나 댄싱으로 남은 구간을 타거나 최악의 경우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야 한다.

다행히 한 분이 물통 거치대 고정 나사를 빼주어서 그것으로 싯클램프를 고정했다. 자전거에 사용하는 나사가 대부분 5mm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산악 주행을 할 때는 기본적인 정비 도구 외에 부수적인 5mm 나사나 체인 도막, 체인 연결핀,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와 여분 튜브는 필수적이다.

청평골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임도는 부용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지나가는 지점에서 막을 내리고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소양댐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부귀로와 만났다. 소양호는 비록 특별한 목적에 인공적으로 만든 댐이지만 오랫동안 지형에 동화되고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이제 큰 협곡 사이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수처럼 느껴졌다. 

마침 우리는 같이 임도를 타신 분 중 소양호가 가까이 보이는 경치 좋고 햇빛이 잘 드는 청평골에 터 잡고 사는 인터넷 동호회 닉네임 ‘마초’님 댁을 방문했다. 깊고 수려한 청평골에 단출하고 소박한 농막과 잘 가꾼 텃밭, 그리고 단정하게 쌓은 담의 돌 하나, 마당가와 축대 밑에 심은 나무 한 그루까지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화덕에 솥 걸고 푹 삶은 닭에 김치를 곁들인 두부와 막걸리까지, 회원들 모두 특별히 맛집에 들를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청평사에서 배에 자전거를 싣고 건너며 소양호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청평사에서 배에 자전거를 싣고 건너며 소양호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청평계곡과 맞닿은 소양호 도선장에서 배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 뱃전으로 부딪치는 물결이 마치 파도와 같았다. 만경창파에 버금가는 이랑 같은 너울과 깊은 물빛을 바라보니 자전거 위에 있을 때와 느낌이 또 달랐다. 배에서 내린 후 모두 춘천 공지천까지 안전하게 돌아와 헤어졌다. 

춘천이 품은 또 한 곳의 명소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자연과 벗하여 살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신 ‘마초’님과 안전하게 길을 안내해 주신 춘천 자전거 동호회 ‘북한강’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6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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