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난사고 ] 마나슬루 한국도로공사팀, 윤치원·박행수 대원 하산길에 실종

입력 2010.06.10 10:01
화이트아웃과 고소증세는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첫날 비박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원들. 맨앞에 김미곤 대원이 앉아 있고, 그 뒤에 윤치원 대원이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오는 김홍빈 대장을 지켜보고 있다. 김홍빈 대장은 홀로 팀을 구성, 한국도로공사 팀의 스케줄에 맞춰 등반했다.
 “장갑을 벗으면 안 돼요. 그러다 동상이 걸리면 손가락을 잘라야 한단 말이에요.”

4월 25일 새벽, 세계 제8위 고봉 마나슬루(8,163m) 해발 7,000m. 강연룡은 고정로프에 매달려 밤을 새우고 있었다. 이틀째 비박이었다. 연룡은 사흘 전인 22일 밤 10시 C3(6,900m)를 출발한 이후 먹은 거라곤 물 한 통이 전부였다. 그것도 17시간 동안 등반하다 정상 직전 포기하고 철수 중 화이트아웃 속에서 헤매다 비박을 하고 그 다음날에도 어렵사리 하산하다 또다시 화이트아웃과 어둠에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해 이틀째 비박에 들어가 있던 중이었다. 때문에 체력과 정신력 모두 바닥나 있는 상황이었다.

고정로프에 매달려 설사면에 모로 기댄 채 졸고 있던 연룡은 요정이 경고할 때마다 깜짝 놀라 깨곤 했다. 그때마다 꿈을 꾸나 싶었다. 두 요정의 말대로 눈을 뜨면 장갑이 반쯤 벗겨져 있었다. 그때마다 연룡은 흘러내린 장갑을 올려 꼈다. 긴긴 밤이 지나가고 기다리던 햇살이 히말라야 설산을 비춰주었다. 연룡은 몸을 일으켜 고정로프에서 확보기를 빼낸 뒤 C3로 향했다.

두 요정은 날이 밝았는데도 연룡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쫓아다니며 장갑을 껴야 한다고 괴롭혔다. 설사면을 가로지른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C3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룡은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옮겨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연룡의 주변을 맴돌던 요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C을 향해 설원을 가로지르는 한국 원정대원들. 왼쪽으로 마나슬루 정상부가 보인다.
‘해발 6,000m 위의 날씨 좋다’는 일기예보에 등반 강행

한국도로공사 원정대가 마나슬루 BC(4,200m)에 도착한 것은 4월 2일. 한국도로공사 직원인 김주형(43) 대장과 강연룡(38)·김미곤(38) 외에 외부 대원인 윤치원(40)·박행수(28) 등 5명의 대원과 2명의 셰르파로 구성된 원정대였다. 여기에 셰르파 2명과 함께 마나슬루 등반에 나선 양손가락장애인 김홍빈(46) 대장은 한국도로공사 팀과 같은 스케줄로 움직였다.

한국 원정대가 BC에 도착한 지 5일째와 6일째 되는 날 네팔의 대형 여행사인 탐세르쿠트렉과 아룬트렉의 상업등반대들이 BC에 들어왔지만 이들은 한국팀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다 한국 팀이 C1(5,400m)을 구축하고 나자 C2(6,200m) 아래 해발 6,000m 지점까지 고정로프 1,000m를 깔아주면 이후 상업등반대의 셰르파들이 마지막 캠프까지 길을 내고 고정로프를 깔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6,000m 지점까지 로프를 깔아놓고  BC로 내려와 휴식을 취한 뒤 윤치원·강연룡이 셰르파 2명과 함께 C2 구축을 위해 다시 등반에 나섰을 때 고정로프가 끝나지도 않은 설사면에 900m 길이의 로프가 놓여 있었다. 상업등반대 셰
르파들은 로프를 운반하는 것조차 힘겨워할 만큼 체력과 등반력이 약한 이들이었다.

윤치원과 강연룡 두 대원은 로프 600m를 깔고 임시 캠프를 설치한 뒤 하룻밤 지내고 이튿날 C2 예정지까지 고정로프를 마저 깐 다음 BC로 내려섰다. 이튿날 김미곤은 막내인 박행수와 함께 C2까지 올려친 다음 캠프를 구축하고 하룻밤 묵으며 고소적응을 한 뒤 다시 BC로 내려섰다. 이로써 정상 공격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난 셈이었다.

4월 17일 저녁 BC에 모인 도로공사팀 대원들과 김홍빈 대장은 정상공격에 대한 스케줄을 짰다. 한국도로공사팀의 김미곤은 2000년 봄 한왕용 원정대 대원으로서 마나슬루를 등반한 바 있었다. 당시 김미곤은 막내 대원을 정상공격에 동참시키는 게 불안했던 대장의 뜻에 따라 마지막 캠프까지 등반한 후 BC로 내려서야 했다. 역시 대원이었던 김홍빈은 정상 직전 체력 저하로 포기해야 했다.

이렇게 마나슬루를 경험한 바 있는 김미곤은 C2에서 표고차가 1,000m나 나는 해발 7,400m 높이의 설사면까지 텐트와 장비·식량을 짊어지고 등반하는 것보다 500m 아래 설사면에 C3(6,900m)를 설치하고 서둘러 정상 공격에 나서는 게 체력소모가 적으리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다른 대원들 역시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루트를 개척하고 캠프를 구축할 때마다 오후만 되면 눈이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22일부터 27일까지 해발 6,000m를 기준으로 아래쪽은 흐리고 눈발이 날리더라도 그 위쪽은 날씨가 좋다는 기상예보를 전달받은 원정대는 22일에 맞춰 정상 공격에 나서기로 마음먹고 20일 BC를 출발, 22일 오후 3시경 C3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7시30분 C2를 출발한 김주형 대장을 비롯한 5명의 도로공사팀과 김홍빈 대장 외 셰르파 4명은 뜻밖의 많은 눈에 고생해야 했다. 여느 날처럼 흩날리다 그치려니 했으나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발은 폭설이었다. 때문에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길을 뚫느라 예상보다 서너 시간 늦게 C3에 도착했다. C1과 C2에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천둥번개가 치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상황이었지만 대원들은 일기예보를 굳게 믿었다. 다행히 대원들뿐 아니라 셰르파들 역시 컨디션이 좋은 상태였다.

(좌)BC에서 환한 웃음을 지은 채 기념촬영한 원정대원들. 앞줄 왼쪽부터 강연룡 대원, 김홍빈 대장, 김주형 대장, 김미곤 대원. 뒷줄 왼쪽이 박행수, 오른쪽이 윤치원 대원이다. (우)대원들이 등반에 앞서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내고 있다.
대원들은 텐트를 치던 중 강풍에 한 동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10명이 두 동의 텐트에서 비좁게 지내야 했다. 아이젠까지 찬 등반복장 그대로 휴식을 취한 대원들이 정상 공격에 나선 것은 이날 밤 10시. 원정대는 7,400m 캠프지에 이튿날 새벽 2시면 올라서리라 예상했으나 예전과 달리 청빙으로 덮인 설사면에 고정로프를 깔며 등반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체력소모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오전 7시 7,400m 캠프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일단 C3로 하산했다 다음날 다시 등반에 나서느냐 아니면 그대로 밀어붙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다 후자 쪽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다는 게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주력이 가장 좋았던 강연룡이 앞장서 나아가고, 그 뒤를 이어 윤치원, 김미곤, 김주형, 김홍빈, 박행수 순으로 정상으로 향했다. 강연룡이 위험 구간이 끝나는 해발 7,800m대의 마나슬루라에 올라선 것은 오전 11시 반경. 마나슬루라 아래쪽 청빙지대에 100m 로프를 고정시켜놓고 나자 안개가 밀려오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BC 도착 이후 오후면 늘 안개가 끼었다 걷히곤 했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뒤따라 올라온 윤치원과 함께 정상으로 향했다. 마나슬루라에서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설릉 구간은 강풍에 눈이 날아가 버려 청빙으로 얼어 있었지만 경사가 완만하기에 자일 확보 없이도 등반이 가능했고, 도중에 나타난 10여m 높이의 설벽 두 개도 그냥 넘어설 수 있었다.

정상 직전 20여m 높이의 수직 설벽을 앞에 두고 강연룡은 대원들을 기다렸다 함께 오를 생각으로 등반을 멈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치원이 도착하자 두 사람은 정상에 올랐다 내려와 대원들을 기다릴까 잠시 갈등을 느끼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생각을 바꿨다. 히말라야 등반에 관한 한 베테랑급에 속하는 두 사람은 고향(윤치원 진해·강연룡 진주)도 비슷하고 평소 등반뿐 아니라 1999년가셔브룸4봉(7,925m)과 2009년 마칼루(8,463m) 등반 때는 함께 정상에 올라섰다. 또 2000년 K2(8,611m) 등반에서는 각자 대원들을 이끌고 등정에 성공하는 등 여러 차례의 등반을 통해 호흡을 맞춰온 사이였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기다리던 중 밑에서 올라오는 김미곤이 한 차례 모습을 드러내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불현듯 동료 대원들이 걱정스러워진 두 사람은 등반을 포기하고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마나슬루라로 향했다. 30분쯤 내려서자 김미곤은 날씨가 너무 나빠지자 등반을 포기하고 김홍빈·셰르파 3명과 함께 하산 중이었다. 한국도로공사팀의 김주형 대장은 마나슬루에서 이미 하산한 상황이었고, 마나슬루라를 넘어섰으나 300~400m 아래에서 처져 올라오던 박행수 역시 속도가 너무 느려 정상에 가는 게 어렵겠다고 판단한 김미곤의 권고에 따라 하산길에 들어서 있었다.  

C2로 향하는 대원들과 셰르파들.
윤치원, 고소증에 정신 혼미해진 박행수 곁에 남아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컨디션도 좋고 체력도 정상까지 올려붙일 수 있다 자신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C3 출발 이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대원들이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밑에서는 안개가 올라오고 바람은 점차 강해져갔다. 마나슬루에 두 번째 도전하는 김홍빈은 이번에 내려서면 다시 정상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오늘 밤 여기서 비박하고 내일 새벽 정상을 올려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도로공사팀 대원들이 너무 위험하다 싶어 반대 의견을 내놓자 김홍빈은 자기 주장만 내세울 수 없어 전원 하산을 결정했다.

가장 빨리 하산한 강연룡은 먼저 내려간 박행수 대원을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잡고, 그 뒤를 이어 윤치원·김미곤 대원, 김홍빈 대장과 셰르파 3명은 각각 200~300m 거리를 두고 하산 길에 들어섰다. 이렇게 하산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간간이 보이던 파란 하늘은 모습을 감추고 주변은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뿌예졌다. 화이트아웃이었다.

강연룡 대원은 급경사 청빙구간이 마나슬루라 아래쪽에 설치해놓은 고정로프를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훑었으나 화이트아웃은 고정로프를 꼭꼭 감춰놓고 드러내지를 않았다. 급기야 강연룡 뒤를 따르던 박행수는 “형! 오후 다섯 신데 비박 장소를 찾아야 하지 않겠냐”며 크레바스 속의 눈턱에 들어앉았다.

4월 23일 오전 8시 정상 공격 중 해발 7,500m 지점에서 쉬고 있는 셰르파. 능선 맨 왼쪽 봉이 마나슬루 정상이다.
강연룡은 이후 한 시간쯤 더 좋은 비박 장소를 찾아 주변을 살피다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자 박행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무전교신을 하던 박 대원의 “고정로프만 찾으면 C3로 하산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강연룡은 밤 10시를 넘어설 때까지 주변을 살폈으나 고정로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로프를 찾는 것은 체력 낭비다 싶어진 강연룡은 박 대원 아래쪽에서 하룻밤을 버틸 만한 크레바스 지대를 발견하고 들어앉아 배낭으로 입구를 막고 주저앉았다. 우모복은 추위뿐 아니라 습기도 막아주어 견딜 만했으나 배낭과 크레바스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눈보라가 밤새 쌓이면서 이중화 위에는 2cm 두께의 얼음이 얼어붙었다.

사라질 것 같지 않던 어둠이 걷히자 따스한 햇살이 크레바스 속으로 스며들었다. 강연룡은 눈을 뜨자마자 10여m 위쪽의 크레바스에서 비박하고 있는 박행수에게 다가갔다.

“행수야, 이제 가자!”

크레바스 안 눈턱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박행수는 선배의 말에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장갑을 끼지 않은 박행수의 손가락은 반쯤 하얗게 색깔이 변해 있었다. 동상이었다. 불현듯 밤새 크레바스 바깥에서 났던 소리가 박행수가 주변을 헤매던 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강연룡은 급히 박행수의 손에 장갑을 끼워주었다. 그러나 박행수는 장갑을 끼워주면 벗어 던지기를 반복하고, 어느 순간 설사면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박 대원은 심한 고소증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손가락이 문제가 아니라 큰 사고가 나겠다 싶어진 강연룡은 박행수의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꼭 껴안아 꼼짝 못하게 했다.

1.C2를 향해 설사면을 올려치는 원정대원들. 2.C2를 향하다 쉬고 있는 김미곤 대원.3.정상 공격 중인 김홍빈 대장.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위쪽에서 비박하던 셰르파들이 다가왔다. 셰르파들도 그들이 지니고 있던 예비장갑을 박행수 대원에게 끼워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그때마다 벗어 던지는 통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박행수는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한편 강연룡의 비박지 위쪽 설사면에서 하룻밤을 지샌 윤치원과 김미곤은 노출된 상황이었음에도 바람이 잔잔하고 기온이 그다지 낮지 않아 무사히 하룻밤을 넘길 수 있었으나, 김홍빈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갔다. 두 사람은 선배인 김홍빈을 셰르파들과 함께 먼저 내려보낸 다음 잠시 고민을 했다. 현 위치에서 다시 등정길에 나서면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대원들이 하산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만 정상공격에 나선다는 것은 원정대를 위해서 올바른 결정이 아니고 위험 또한 크다는 생각에 김홍빈이 하산한 지 30분쯤 지난 오전 6시부터 하산길에 들어섰다.

윤치원과 김미곤이 밑에서 비박한 강연룡과 박행수를 만났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윤치원은 흥분해 있는 박행수를 옆에 앉히곤 현 상황에 대해 알아듣도록 말을 건네자 박행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하지만 박행수에게 장갑을 끼워주려고 잠시 자신의 장갑을 벗었던 강연룡의 손가락은 하얗게 변한 상태에서 손가락끼리 부딪칠 때면 막대기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윤치원은 “박행수를 내가 맡겠다” 자청하고 강연룡을 먼저 내려보냈다.

이미 손가락에 동상이 한참 진행된 강연룡은 고정로프를 제대로 잡을 수 없어 하산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오전 9시, 해발 7,500m 높이의 설사면에서 김미곤과 합류한 강연룡은 과연 윤치원이 정신이 혼미한 박행수를 데리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싶은 걱정에 하산을 멈추었다. 잠시 후 김홍빈은 셰르파 두 명과 함께 내려왔다. 체력이 거의 바닥난 김홍빈 역시 정신이 혼미해 가는 상황이었다.


환청에 시달리며 하산한 김미곤, 실신한 김홍빈 구조 나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김미곤은 청빙이 형성된 설벽에 설치해놓은 고정로프를 찾느라 한 시간이 넘도록 헤매야 했다. 그러다 약 10m 아래 청빙지대에서 로프가 눈에 들어오자 안심하고 설사면에 서서 깜빡 조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피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김미곤이 1,000m 아래 빙하까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청빙지대를 어렵게 클라이밍 다운해 피켈을 줍는 순간 갑자기 앞이 뿌예졌다. 고정로프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마다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곤 했다. 설맹증세였다. 설사면에 모로 기대 하룻밤 견뎌낸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 잠시 고글을 벗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멀쩡하던 미곤은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짙은 화이트아웃이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우선 해발 7,000m 지점까지 내려가는 게 문제였다. 청빙지대에만 고정로프가 깔려 있기 때문에 로프가 끝날 때마다 다음 로프를 찾아야 했다.

컨디션 좋은 셰르파를 먼저 내려보내 로프를 찾게 하면서 뒤를 이어 한 명씩 내려서자니 뜻밖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설맹에다 화이트아웃, 게다가 시간이 늦어지면서 어둠까지 깔린 청빙의 설벽을 내려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정로프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 후 급경사 설사면에 내려선 김미곤은 마치 맹인이 지팡이로 앞을 확인하듯 피켈로 아래쪽을 확인해가며 한 발 한 발 클라이밍 다운하는 사이 외국 팀의 캠프가 눈에 들어왔다. 외국 대원들은 “여기가 C3”라며 미곤을 불렀다. 그 소리에 방향을 잡고 발을 떼는 순간 미곤은 허공을 디디며 설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피켈로 겨우 제동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이건 환청이다’ 싶었다. 환청이 들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어렵사리 한 발씩 발을 떼어가며 클라이밍 다운한 미곤이 C3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C3에 대기하며 물을 만들고 있던 셰르파 2명도 정상이 아니었다. 셰르파들의 무전기를 손에 든 김미곤은 대원들에게 무전교신을 했다. 박행수와 함께 있는 윤치원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400m 고정로프를 타고 내려서다 비박 준비에 들어간다는 강연룡은 손가락 상태가 나쁘다고 말했다. 강연룡은 C2와 C1 사이 해발 5,800~5,900m대의 플라토에서 하룻밤 비박한 뒤 BC로 내려가 있는 김주형 대장에게 상황을 전해준 다음 비상용으로 지니고 있던 위성전화의 스위치를 올렸다.

“여기는 마나슬루다. 현재 원정대 상황이 매우 나쁘다. 해발 7,000m 위에서 구조활동을 펼칠 수 있는 헬기 한 대와 사마가온(BC 아래 마을)에서 환자를 카트만두로 곧장 후송할 수 있는 헬기를 보내라. 급하다. 매우 급한 상황이다.”

이튿날 오전 6시 C3를 출발, 8시경 C2로 내려선 미곤은 등산화를 벗고 왼발가락이 붉게
변해 있는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하루 더 비박한 대원들의 상태가 좋을 리 없겠다는 생각에 더욱 다급해졌다. 하지만 악천후는 헬기마저도 이날 구조에 나설 수 없게 했다.

한편 강연룡과 김홍빈은 고정로프가 끝나는 지점까지 내려서기는 했지만 C3를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를 더 비박해야 했다. 강연룡은 외국 등반대가 전년도에 깔아놓은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비박을 하고, 김홍빈은 그 아래쪽 설사면에서 셰르파 2명과 함께 비박했다. 이튿날 날이 밝아오자 강연룡은 방향을 잡고 셰르파들이 대기 중인 C3로 무사히 다가설 수 있었으나, 아래쪽에서 비박한 김홍빈은 더욱 나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갔다. 셰르파 2명은 빤히 보이는 C3로 이동했으나 김홍빈은 곧장 C2로 하산하는 방향으로 한 발씩 내려섰다.  

(좌)C1을 향하다 쉬고 있는 대원들.(우)넓은 설원 위에 구축된 C2 전경.

해발 6,200m C2에서 헬기에 구조


오전 8시부터 C2에 머물며 C3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미곤의 눈에 김홍빈이 비틀거리며 내려서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잡히다 사라졌다. 미곤은 셰르파들과 함께 갑자기 모습을 감춘 김홍빈을 향해 올라갔다. 600~700m쯤 올라섰을까. 홍빈은 의식을 잃은 채 설원에 그대로 드러누워 있었다. 미곤과 셰르파들은 김홍빈을 끌고 내려오려 했으나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사람을 끌고 내려온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곤은 몸을 흔들다 안 되자 따귀를 몇 대 때렸다. 그러자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 홍빈을 부축하고 겨우 C2로 내려올 수 있었다.

강연룡은 그래도 400m 고정로프에서 내려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혼미한 상황에서 장갑이 흘러내리면 요정 두 명이 다가와 장갑을 끼어야 한다고 말해 어느 정도 보온 상태를 유지하면서 C3로 내려설 수 있었다. 하지만 C3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매우 나빴다. 대기 중인 김홍빈의 셰르파들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명은 중지가 새카맣게 변해 있었고, 또 한 명은 왼손가락 4개에 물집이 커다랗게 잡혀 있었다.
C2에서 대기 중이던 김미곤은 헬기가 C3까지 올라 강연룡을 태우고 내려올 수 있으려니 했지만 설사면이 워낙 가팔라 접근이 불가능했다. 헬기가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곳은 경사가 완만한 C2였다. 때문에 강연룡은 이튿날 오전 6시 C3를 출발, 고정로프를 잡아가며 어렵사리 C2로 내려서야 했다.

5월 26일 오전 김홍빈과 김미곤, 강연룡과 손가락 상태가 나쁜 니마 셰르파는 두 명씩 나누어 헬기를 타고 사마가온(4,200m)까지 내려선 뒤 대형 헬기로 곧장 카트만두로 후송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공 헬기는 대원들을 사마가온에 내려놓은 뒤 윤치원과 박행수을 찾아 해발 7,500m 일원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후배 위해 자신의 목숨 내던진 휴머니스트 산악인 고 윤치원

고소증에 혼미해진 후배를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한 고 윤치원씨.
지난해 여름 윤치원(尹治遠·40·진해산악회)씨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8,000m 14개 거봉 등정 레이스를 펼치던 고 고미영씨가 낭가파르밧(8,125m)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 길에 추락하는 순간 바로 옆에 있었다. 누가 옆에 누가 있든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만 그는 자신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적어도 1,000여m 아래 빙하지대로 떨어지는 끔찍
한 사고는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오래도록 가슴 아파했다.

윤치원씨는 1994년 알프스 3대 북벽 완등, 1995년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등반, 1999년 가셔브룸4봉(7,925m) 북서릉 등정, 2000년 K2(8,611m) 남남동릉 등정, 2004년 로체 남벽(8,516m) 등반·가셔브롬2봉(8,035m) 남동릉 한국 초등, 2005년 십튼스파이어(5,852m) 등반, 2007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 2008년 로체(8,516m) 등정, 2009년 마칼루(8,463m)·낭가파르밧(8,125m) 등정으로 이어지는 등반을 해낸 고산 등반가였다.

윤치원씨는 이렇게 수많은 등반을 해오는 사이 무슨 사고가 나면 늘 자기 탓이라 생각해오곤 했다. 경남 산악계에서 ‘이퀄라이징(화보기술용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별명이다)’이라 불릴 만큼 확보에 철저했던 그는 선배로서의 책임감이 남달랐다. 2000년 K2 남남동릉 등반 때 윤치원씨는 후배들을 이끌고 2차 공격에 나서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길에 화이트아웃을 만나 전원 추락 위험에 빠졌다. 그때 윤치원씨는 기지를 발휘했다. 대원 네 명이 횡대로 선 상태로 한 발 한 발 이동케 해 마지막 캠프인 C3를 찾아내고, 이어 대원들을 표고 1,000m 아래의 C2까지 무사히 하산토록 한 다음 시간이 늦어지자 하산을 포기하고 홀로 침낭도 없이 C3에서 버틴 뒤 이튿날 아침 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C2로 하산, 그날 오후 전원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하산할 수 있도록 진두지휘했다.

K2 등반을 마치자마자 파키스탄에서 알프스 몽블랑으로 곧장 달려갔다. 동갑내기 산꾼인 김중광씨가 몽블랑 등반 중 실종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 해 시신 수색에 실패하자 이듬해 여름 또다시 몽블랑을 찾았다. 2001년 여름 몽블랑에서 돌아온 윤치원씨는 “정상 아래 무인대피소에 머물며 시신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느라 몽블랑 정상에 오른 게 스무 번도 넘었을 것”이라 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그가 동료의 시신 수색에 열중한
까닭은 가족에게 시신이라도 찾아주는 게 산친구의 도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원정에서도 윤치원씨는 후배들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묵묵한 성격에 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했던 그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출국 전 구입한 요리책을 들춰보며 맛난 음식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는가 하면 입맛 떨어진 후배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등반 없는 날이면 4,000m 고지대에서 산나물을 찾아 나서곤 했다.

이렇게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혹한과 고통의 마나슬루에서 혼미한 상태에 빠진 막내 대원 박행수씨의 곁을 떠날 수 없게 했으리라는 게 동료 대원들의 귀띔이다. 사고수습 때문에 카트만두 도착 후 1일주일간 더 머물다 5월 3일 밤 귀국, 강연룡씨와 함께 경희의료원에서 발가락 동상 치료 중인 김미곤씨는 “C3에서 마지막 무전교신을 나눴을 때에도 치원이 형은 자기 자신보다는 후배 박행수의 건강을 더 걱정했다. 아마 지금도 행수를 품에 꼭 안은 채 있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미혼인 윤치원씨의 영결식은 박행수씨의 영결식이 열린 이튿날인 5월 11일 고향 진해에서 가족들과 산악계 선후배의 애도 속에서 열렸다.


/ 글 한필석 부장
  사진 한국도로공사 마나슬루 원정대·김홍빈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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