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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6월의 클라이밍 | 김태섭·김윤아] 쫄깃쫄깃 심장 떨리는 암벽 넘어, 아픈 기억 넘어

월간산
  • 입력 2016.06.10 13:12
  • 수정 2016.06.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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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볼더링 청년과 클라이밍 여강사의 강화도 아만바히 등반

‘엄마의 눈물(5.10c)’ 크럭스에 진입하는 김윤아. 크랙 사이로 등반을 시도하는 김윤아의 표정이 진지하다.
‘엄마의 눈물(5.10c)’ 크럭스에 진입하는 김윤아. 크랙 사이로 등반을 시도하는 김윤아의 표정이 진지하다.

채석장은 산의 상처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지나간 자리, 흉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강화도 길상산 아만바히 암장은 아름다운 흉터다. 버려진 채석장이 클라이머들에게 사랑받는 자연암장으로 거듭났다. 산 중턱에 20m 높이 회색 벽이 있고, 그 앞에 무대 같은 터가 있다. 강화도 앞바다와 갯벌, 영종도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이 벽에선 추락해도 좋다. 미세한 홀드에 몰입하다 추락해 잠깐 팔을 풀 때, 뒤돌아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는데 추락쯤 대수냐’ 하는 보상 같은 위로를 준다. 그래서 아만바히에선 추락이 두렵지 않다. 추락해 본 사람이 추락이 두렵지 않음을 아는 법. 여기 숱하게 추락해 본 젊은 클라이머가 있다.

대학산악부 출신의 볼더링 마니아 김태섭

백옥 같은 흰 피부와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벽을 오르는 이가 있다. 계단처럼 오버행 턱을 넘어서면 페이스가 버티는 ‘엄마의 눈물(5.10c)’을 오른다. 아만바히는 매겨진 난이도에 비해 등반이 까다롭다. 홀드가 미세한 곳이 많고, 크랙이나 오버행도 인공암벽에서 해본 적 없는 생소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자연 바위 경험이 적다면 아무리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많이 했어도 허무하게 떨어지고 만다. 한편으론 전반적으로 난이도가 낮게 매겨져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난이도 5.10쯤이야 하고 붙었다간 벽 중간까지 가기도 전에 툭 떨어지고 만다.

그가 오른다. 예민하게 벽의 흐름을 읽는다. 발놀림이 유연해 벌떡 선 페이스도 당황하지 않고 리듬을 찾아 낸다. 온사이트답게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오를수록 몸이 풀리는지 무브가 갈수록 자연스럽다.

최상단 오버행 천장 아래에서 숨을 고른다. 지붕마냥 벽이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 아찔한 고도감이 입을 벌리고 있다. 선명한 사선 크랙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관건인데, 동작을 풀어내기가 까다로워 상급자들도 처음엔 떨어지는 이들이 많다.

그가 크랙에 손을 넣고 허공 위로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분다. 그의 말총머리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자유로운 머리카락과 달리 몸은 악전고투다. 무게 중심을 왼쪽, 오른쪽으로 옮겨보지만 자세를 잡아 크랙을 뜯어 오르기가 만만찮다.

홀드를 당기며 바위에 몰입하는 김태섭. 한국폴리텍대학 산악부 출신이며,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을 수료했다.
홀드를 당기며 바위에 몰입하는 김태섭. 한국폴리텍대학 산악부 출신이며,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을 수료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만큼 멋지게 동작을 잡아 오르려던 그가 결국 궤도를 수정한다. 왼발을 올리고 오른발로 크랙 발재밍을 해서 무조건 오르는 것이다. 오르고 말겠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몸에서 튀어나와 바위를 잡아당긴다. 기어코 쌍볼트에 로프를 걸고선 멋쩍게 웃으며 내려오는 이는 김태섭(28)이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와 독특한 색깔의 안경이 눈에 띈다. 웃통을 벗고 등반하면 흰 피부와 긴 머리카락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누구든 그를 기억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독특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걸 즐긴다.

김태섭은 한국폴리텍대학 1학년이던 2007년 대학산악부에 들어가며 산과 연을 맺었다. TV 화면에서만 보던 암벽등반을 실제로 해보고 싶었다. 내성적이고 어두운 성격이었던 그는 등반을 시작하며 성격이 밝아졌다. 대학시절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을 숱하게 등반하며 그가 느낀 건, ‘지금 내가 벽에서 뭘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산에 들어와 있었다. 

만 19세이던 2007년 산악부 지도교수의 권유로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을 수료했다. 강사들이 “십몇 년 만에 가장 어린 학생이 들어왔다”며 무척 반가워했다고 한다. 무섭게 등반을 파고 든 그는 주말은 산으로 가고 평일 저녁은 실내암장에서 살았다. 암장은 취미가 아닌 매일 찾는 제2의 집이었다. 산악인 김점숙씨가 운영하는 의정부 샤모니암장에서 기초를 닦았고, 현재 집 근처인 부평클라이밍센터를 7년 동안 다니고 있다.

요즘은 넓고 깨끗한 암장이 많지만 부평클라이밍센터는 지하의 땀내 나는 옛날 암장이다. 그럼에도 암장을 옮기지 않는 건, “홀드를 마음대로 세팅할 수 있어서”이다. 워낙 오랜 단골이라 루트를 마음대로 세팅하게 해주며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어서다. 등반만큼 루트세팅에도 관심이 많은 김태섭이다.

지금 행복한 왕년의 클라이밍 선수 김윤아

검은색 탱크톱과 어두운 피부색, 시원한 웃음과 재치 있는 말주변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클라이머 김윤아(26)의 등장이다. 올해 첫 바위를 하러 나온 그녀가 ‘수많은 저 별들도(5.10b)’를 상대한다. 떨어진 바위 감각은 상단 오버행 크랙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내 발을 못 믿겠어”하는 말과 달리 과감하게 발을 올린다. 레이백 자세로 안정적으로 바위를 뜯으며 야금야금 맛있게 바위를 해치우고 올라선다. 

김윤아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였다. 지금도 대회에 나가지만 예전과 눈빛이 다르다. 벽 하나에 모든 걸 다 걸던 시절은 지났다. 훨씬 여유로워졌고 소리 내어 많이 웃는다. 대회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저 별들도(5.10b)’를 부드러운 레이백 동작으로 오르는 김윤아
‘수많은 저 별들도(5.10b)’를 부드러운 레이백 동작으로 오르는 김윤아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의 하단 크럭스 돌파를 시도하는 김윤아. 단신의 약점을 훈련으로 극복한 노력파다.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의 하단 크럭스 돌파를 시도하는 김윤아. 단신의 약점을 훈련으로 극복한 노력파다.
등반을 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기에 그녀 또한 17세가 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등반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워킹산행도 꾸준히 했기에 산에 가는 것 자체가 편안하고 즐거웠다. 때문에 자연바위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김윤아는 승부욕이 강하고 균형 감각이 좋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고등부 여자 난이도 경기에서 1, 2등에도 자주 이름을 올렸다. 선수시절 선운산 하드프리 등반을 할 때는 난이도 5.13c까지 올랐을 정도로 암벽등반에 대한 열정도 강했다. 동생인 김솔아와 함께 일주일을 선운산에서 텐트 치고 등반했던 적도 있었다.

고교 3학년 때는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체대 입시에 매달려 한국체육대학 사회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악바리였던 그녀는 체대입시 선생이 독하다고 할 정도로 늘 홀로 남아 연습했다. 그녀의 등반에 대한 열정은 교내 산악부를 창립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허나 23세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대회는 우리만의 축제였어요. 봐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선수들은 경쟁이 심하고 폐쇄성이 너무 강했어요. 일주일에 5일을 운동했지만 컨디션이 올라오면 부상당했어요. 또 스폰서가 없을 때는 성적이 잘 나오는데 스폰서가 생기면 압박감 때문에 성적이 나빴어요. 오로지 등반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대학 가서 보니 클라이밍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등반에 모든 걸 쏟아온 내 인생이 너무 슬펐어요.”

그녀가 선수 생활 이후 등반을 떠난 건 아니다. 지금도 즐기듯 대회에 꾸준히 나가는 것처럼 여러 암장에서 강사로 일했고, 자신의 실내암장을 차리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다. 이후 수원 삼성모바일연구소 내 실내암장 강사로 2년간 근무했으며,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 내 실내암장 강사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클라이밍 개인레슨을 하며 클라이밍패션 브랜드 ‘터쳐(Toucher)’를 운영하고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직접 디자인까지 하며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강사로 일하는 그녀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는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은 자질이 다른 것 같다”며 “나는 선수보다 코치가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1 벽의 돌기에 온 감각을 모아 등반에 집중하는 김태섭.
2 오버행 진입 전, 초크가루를 불어서 터는 김윤아.
1 벽의 돌기에 온 감각을 모아 등반에 집중하는 김태섭. 2 오버행 진입 전, 초크가루를 불어서 터는 김윤아.
“힐링하는 편안한 암장 만들고파”

오후의 태양이 아만바히 암장 위로 뜨겁게 작열한다. 김태섭이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를 바라본다. 한눈에 봐도 상단 오버행 천장 크랙이 크럭스이지만, 초반 페이스 지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단단한 차돌 모양에 돌기가 없어 미끄러운 편인 암질을 감안하면 까다로운 바윗길이다.

벽을 오르는 김태섭의 표정이 진지하다. 심각한 그와 달리 빌레이를 보는 김윤아는 연신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풀어 주려 노력한다. 김태섭이 조금만 버벅거린다 싶으면 “하강! 하강!” 하며 약 올린다. 김태섭은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등반에 집중한다.

오버행을 힘으로 잡아당기지 않는다. 예상 못 한 동작으로 훅을 걸고 발기술을 쓰며 균형을 잡아 오른다. 떨어질 것 같은데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오른다. 끈질긴 등반을 한다. 마지막 크럭스, 동작을 몇 번 바꿔보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다. 오른발을 하이스텝으로 과감히 올리고 어깨로 벽을 누른다. 완등과 추락의 사이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는 순간, “가자! 가자! 집중!” 하고 김윤아가 응원한다. 그만의 동작으로 크럭스를 극복하여 꼭대기에 선다.

그는 병역특례로 산업체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에도 같은 회사를 계속 다니며 금형 일을 하고 있다. 그도 나중에는 자신의 암장을 차리고픈 마음이 있다.

“암장을 편안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걸 꼭 올라가야 한다’, ‘이 루트를 몇 번 이상 해야 한다’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편안한 힐링이 되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거죠. 클라이밍은 나를 표현하는 운동이에요. 완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의 방식으로 가는지가 중요해요. 쉬러 오는 암장을 만들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가 가장 즐기는 건 자연바위 볼더링이다. 혼자 등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관악산, 불암산, 북한산에 크러시패드를 4개씩 들고 다녔다. 스파터가 없기 때문에 4개씩이나 필요했던 것인데, 긴 머리의 청년이 커다란 패드 4개에 파묻혀 지하철을 타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어딜 가나 시선을 끌었다.

1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2 김태섭은 평일 저녁엔 실내암장에서 운동하고, 주말에는 자연바위 볼더링을 즐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싫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1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2 김태섭은 평일 저녁엔 실내암장에서 운동하고, 주말에는 자연바위 볼더링을 즐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싫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의 하단 페이스를 오르는 김태섭. 직상하여 천장 크랙을 넘는 루트로 동작을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미안해요. 고마워요(5.11a)’의 하단 페이스를 오르는 김태섭. 직상하여 천장 크랙을 넘는 루트로 동작을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김윤아의 차례, 선수 때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등반을 한다. 홀드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력이 끈끈하게 묻어난다. 단신의 약점을 노력과 근성으로 이겨 낸다. 바위에 몰입한 그녀의 무브에는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모두 배어 있다. 떨어져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의 그녀는 결국 완벽한 레이백 자세로 멋지게 바람을 타며 크럭스를 돌파한다.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그 시원함이 전해 온다.

“무서워서 심장이 쫄깃쫄깃한데, 너무 재미있다”며 실감나게 바위맛을 전하는 김윤아다.

선수 시절 그녀는 감동을 주는 등반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함께 즐기는 등반을 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후 필리핀과 미국,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등반을 하고자 간 건 아니었는데 막상 가면 늘 자연암벽이나 실내암장 투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친한 오빠 동생이지만 연인은 아니다. 김윤아는 남자친구가 따로 있다. 두 사람은 뜻이 잘 맞았다. 지금의 스포츠클라이밍 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부상 경력이 있었기에 재활에 대한 관심사도 같았다. 그래서 4개월 전부터 ‘스포츠클라이밍 스터디’라는 일종의 포럼을 만들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클라이머 6명이 함께 운동도 하고 토론을 한다. 참가 자격은 등반실력과 무관하며 ‘대화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설명한다. 자기의견과 맞지 않으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픔을 극복하고 벽 앞에 서다

채석장이 이토록 멋진 암장으로 거듭난 것처럼, 두 사람도 거듭났다. 김윤아는 “가정 경제가 갑자기 무너져 힘들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혼란스러운 성장기에 힘이 되어준 건 클라이밍이었다. 벽을 오르는 순간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김태섭은 중학교 1학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 충격과 고통은 유년시절을 관통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자신을 “어둡고 말 없는 은둔형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 어둠 속에서 끌어내 준 것은 산이었고, 등반이었다.

채석장이 있던 아픔이 지나간 자리는 멋진 자연암장으로 아물었다.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바다를 보며 섰다. 신록의 바람이 부는 길에 두 사람이 있다. 상승기류에 김태섭·김윤아의 머리카락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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