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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화제 | 지리산둘레길 여성이음단] ‘지리산과 바람났던’ 16박17일의 행복했던 시간

월간산
  • 입력 2017.07.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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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이음단 6기 여성이음단, 300여 km 완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나를 찾은 소중한 시간

지리산둘레길 이음단 6기인 여성이음단 단원들이 지난 5월, 16박17일의 일정으로 300여 km의 둘레길을 완주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사진 강병규.
지리산둘레길 이음단 6기인 여성이음단 단원들이 지난 5월, 16박17일의 일정으로 300여 km의 둘레길을 완주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사진 강병규.

우리나라 대표적인 장거리 도보여행인 ‘지리산둘레길 이음단(이하 이음단)’이 올해는 여성이음단으로 꾸려졌다. 2012년 지리산둘레길 전 구간을 완공한 기념으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와 사단법인 숲길이 주관해 시작된 진행된 이음단은 해마다 사회적 이슈 계층을 대상으로 꾸려졌다.

2012년 1기 이음단은 전국에서 남녀노소 고루 선정되었다. 다음해 2기는 청년실업문제로 고민하는 20~30대 청년들이 모인 청년이음단으로 꾸려졌다. 3기는 가족이음단, 4기는 50~60대 퇴직자 및 은퇴 세대가 참가한 시니어이음단으로 꾸려졌다. 지난해 5기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이음단이 지리산둘레길을 걸었다.

제6기인 여성이음단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남녀불평등이라는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들이 ‘어머니의 산’인 지리산을 걸으며 그 산이 주는 평안함에 안기고자 하는 취지였다. 본래 20명을 모집하려 했지만 15명이 최종 단원으로 결정되었다.

그중에는 ‘자아성찰을 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는 참가 이유에서부터 ‘퇴직 후 일생에 꼭 한 번 걷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어서’, ‘숲과 우리의 연결고리를 공부하고 싶어서’, ‘마음의 휴식과 더불어 몸도 건강해지고 싶어서’ 등의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다. 최연소 단원은 최수연(42세)씨이고, 최고령 단원은 서미향(65세)씨였다. 사는 지역도 각양각색이어서 서울서부터 경남 창원·양산, 전남 여수, 전북 남원에서 온 단원들이었다.   

15명의 여성이음단은 지리산둘레길 전 구간(295km)을 5월 13일부터 29일까지 걸었다. 16박17일, 시간으로 치면 308시간의 걸음이었다. 15개 코스를 통해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120개의 마을을 걸었다. 하루에 가장 적게 걸으면 14.4km, 가장 길게 걸으면 20.2km를 걸었다.

5월 13일 산청 성심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후 다음날부터 걷기가 시작되었다. 평소 등산이나 걷기를 즐겨하는 단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단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5명의 단원들이 앞에서 끌어서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함께 걸었기에 다리의 고통마저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서당마을 문암정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15인의 단원들. 사진 강병규
서당마을 문암정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15인의 단원들. 사진 강병규
3일차 되던 날부터 단원들의 발에 물집이 잡히고 설사를 하는 단원, 어깨가 결리는 단원들이 속출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단원들은 둘레길에 적응하고, 순응하고 그 아픔마저 행복한 ‘구도의 과정’으로 삼고 있었다.

김미숙 단원은 “힘들게 걸어도 쉴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고 작은 농담에도 마음껏 깔깔거리며 웃었고,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지역마다 좋은 잠자리와 맛있는 밥이 기다리고 있고, 걷는 도중 시원한 간식까지 공수해 주니 평생 이런 호강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길동무 선생님들이 길에 대한 해설도 해주셔서 지루할 틈이 없었죠.”

실제로 걷는 도중 삼시세끼 밥이 너무 푸짐하고 도중에 간식도 잘 나와 모두들 입을 모아 “그렇게 걸었는데 오히려 살이 쪘다”고 말하기도 했다. 몇몇 단원은 처음에 입고 온 등산바지가 나중에는 꽉 끼일 정도였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어머니다”

유경순 단원은 “지리산둘레길에는 여성이음단 동무들과 고향의 풍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둘레길에는 어릴 적 산딸기 따먹던 숲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어려서 살던, 안마당에 장미꽃이 피고 작약도 품위 있게 피는 작은 집도 있었지요. 밭에서 일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께 손을 흔들면 일손을 멈추고 환하게 웃어주셨어요. 마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저희를 보고 ‘처녀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죠. 도시에선 이제 할머니 반열에 오르고 있는데 이곳에선 처녀로 둔갑할 수 있으니 어떻게 둘레길을 걷지 않을 수 있겠어요.

숲과 마을이 있고 고추밭을 다독이는 할머니, 기계가 모내기한 논에 홀로 땜빵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지리산둘레길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묵언수행한 단원도 있었다. 김지영씨는 4일차부터 묵언을 선언했다. 15명의 단원이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니 나 자신을 보기보다는 남을 보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고 한다.

축 지리 문암송 앞에서 길동무의 해설을 듣는 단원들. 사진 조미옥
축 지리 문암송 앞에서 길동무의 해설을 듣는 단원들. 사진 조미옥
단원들을 안내하는 길동무를 한 둘레길센터 직원들도 이번 여성이음단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산청에서 하동까지 이음단 ‘길동무’로 일행을 이끌었던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 한성섭씨는 “과연 중년여성분들이 16박17일의 대장정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지만 첫날 ‘마의 구간’이라 불리는 둘레길 7코스 성심원~운리 구간을 걸으면서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길동무를 하면서 지켜본 여성이음단은 이를 앙 다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마음속엔 늘 ‘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어머니다. 꼭 완주하리라’는 다짐이 변치 않았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하는가 봐요. 존경스러웠어요.”

조유종 산청센터장은 “평지의 시간은 주로 나눔의 시간이고 자연에 대한 감응과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길이 채워진다”고 말했다.

“오르막길에서는 안내자도 대원들도 말보다는 거칠어지는 호흡에 자신을 부축해 갑니다. 자연스럽게 침묵이 이어지지요. 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고비를 넘어선 자들의 여유가 묻어납니다. 산청에서 하동으로 단원들을 보낸 후 며칠 지나 다시 산청에서 대원들을 맞았을 때엔 이음단 단원들이 오히려 우리를 맞아 주는 느낌이었어요.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애정, 주변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같은 걸 깨닫고 온 느낌이었어요.”

17일 동안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둘레길을 완주했고, 이제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둘레길 앞에 처음 섰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한 마음이 새겨졌다. 유경순 단원은 “이번 둘레길 완주를 계기로 각박한 도시에서 몇 년은 더 살아갈 힘이 내 몸에 저장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또 동료들의 도움으로 지리산둘레길 300여 km를 걷고 돌아온 여성이음단은 걷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지났지만 내년 봄 진달래 필 무렵 또 한 번 전 구간을 걷자고 작당하고 있는 중이다. 모의하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나는 지리산과 바람났다. 조만간 결혼하고 싶다.”-유경순 단원의 둘레길 완주 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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