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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악 영화 “ 감동적 vs 터무니없다” | ⑫ <히말라야>] 휴먼원정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상업영화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18.09.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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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정서 비교적 잘 담아내… 비현실적인 부분도 많아

히말라야(2015)

감독 이석훈

출연 황정민(엄홍길), 정우(박무택), 김인권(박정복)

1972년 네팔, 대원들과 등반을 준비 중이던 엄홍길(황정민)은 시신을 끌고 하산하다가 탈진한 대명대 산악부 소속 박무택(정우)과 박정복(김인권)을 구조한다. 하지만 자신의 지시를 무시한 그들에게 “다시는 산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호통 친다.

1999년, 엄홍길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캉첸중가 원정대를 꾸리고, 후배 대원의 적극적 주선으로 합류한 박무택, 박정복을 다시 만난다. 이들의 히말라야에 대한 열정을 인정한 엄 대장은 강훈련으로 이들을 단련시킨다. 엄 대장과 박무택은 캉첸중가 정복에 성공하고 둘은 이어 수년 동안 여러 고봉을 함께 오른다.

자신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꾸린 박무택은 박정복과 더불어 조난당해 사망하고 엄 대장은 이들의 시신을 국내로 송환할 ‘휴먼 원정대’를 꾸려 현지로 출발한다.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박정헌 대장과 함께 한국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2015)를 다루고자 합니다. 연재 시작 후 우리 영화는 처음입니다. 

박정헌(이하 박) 관객을 800만 명 넘게 동원한 화제작이었지요. 톱스타 황정민씨가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 게 큰 요인이 됐을 겁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등장인물과 세부사항은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자막이 나옵니다.

산악인 고故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러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세세한 내용들은 실제 팩트와 다른 점들이 있으므로 그런 사실을 밝힌 것이지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엄홍길, 박무택 등 실명이라 사실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박 산악부가 유명한 대구 계명대를 ‘대명대’로 바꿔 놓았지만 단체 이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게끔 해놓았습니다.

오프닝부터 히말라야 등반 장면입니다. 오른손에 피켈을 들고 왼손으론 대원끼리 서로 연결된 자일을 손잡이 장치로 쥐고 있던데요.

등반자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로프를 연결해 묶고 오르는 ‘안자일렌Anseilen’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로프를 동그랗게 매듭을 지어 묶어서 연결했지만 요즘에는 주로 안전벨트에 연결하지요. 안자일렌 등반은 여러 명이 한 줄에 묶여 행동하기 때문에 대원 모두 로프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며, 팀원의 돌발적인 추락에 대비해 팀 제동 기술을 익혀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한 명이 미끄러지면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 방법은 로프를 서로 묶음으로 해서 추락하지 않아도 될 사람마저 추락시키는 경우가 있으므로 서로 간에 안전을 확보한다는 강한 의식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협력해야 합니다.

오프닝에서 눈사태를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1인칭 시점에서 촬영해서 아주 실감나게 찍었습니다.

아이맥스로 보면 더욱 실감납니다. 히말라야의 전경도 훨씬 박력 있고요.

1972년 네팔에서 엄홍길(황정민)과 대명대 산악부 박무택(정우), 박정복(김인권)이 처음 만나게 된 인연을 보여 준 뒤 영화는 1999년 서울로 배경을 옮깁니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캉첸중가(8,586m) 등정을 앞두고 엄홍길 대장이 스폰서인 동서스포츠 관계자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스폰서 측은 “등산복에 회사 로고를 잔뜩 붙여놓았는데, 만약 조난 사망 사고라도 나면 시신에 우리 회사 로고가 붙어 있게 되지 않느냐.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돈을 대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발언이지요. 낭가파르바트에서 하산하던 중 실족했던 고故 고미영 사망 때가 떠오르네요.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에 나서 4년간 11좌를 등정했다가 불귀의 객이 된 고미영씨의 경우, 오히려 등반가의 사망으로 기업명이 미디어에 크게 노출된 측면이 있거든요.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꾸려진 캉첸중가 원정대에 박무택, 박정복이 합류하자 엄 대장은 체력 단련을 이유로 이들에게 스노클링 수경을 쓴 채 거대한 봇짐을 지고 북한산 백운산장까지 오르내리게 합니다.

실제로 그런 훈련들을 시켰었습니다. 주로 방독면을 씌웠지요. 해발 8,000m에서는 산소량이 지상의 3분의 1에 불과하니까요. 해변에서 화물차 타이어를 반복해서 세웠다가 눕히는 훈련도 숱하게 했습니다.

튀어나온 암벽 아래쪽에 텐트를 매달아 잠까지 자는 장면은 볼 때마다 아찔한데요.

히말라야에 갈 때 그런 훈련은 하지 않습니다. ‘포타레지portaledge’라 부르는 장비인데요, 마땅한 비박지나 테라스가 없는 대암벽에서 잠을 잘 수 있는 허공 침대이지요. 히말라야에는 그걸 설치할 공간도 없지만, 무게가 20kg이나 나가기 때문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요세미티 같은 빅 월, 즉 큰 암벽을 오를 때 사용하지요.

훈련을 마친 뒤 단체로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자주 그러는지요?

물론입니다. 당시만 해도 히말라야 원정이 결정되면 대원들이 1~2년 동안 훈련을 함께합니다. 주말엔 거의 같이 산다고 보면 됩니다. 단체로 움직이고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목욕도 같이하며 공동체성을 기르는 거지요.

박무택의 애인(정유미)이 대원들 앞에서 “박무택 애인, 대명대 산악부 35기 최수영입니다”라며 마치 군인이 관등성명을 대듯 인사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실제 산악부 커플이 많습니까?

요즘은 대학 산악부 자체가 예전 같지 않지만 전에는 커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산악부 여대생들은 고교 시절부터 산에 오르던 이들인가요?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산을 탄 이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성신여대 산악부처럼 전통 있는 여대 산악부가 많았습니다.

캉첸중가 5,4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첫 크레바스가 나오자 원정대 막내인 박무택에게 먼저 건너게 하더군요. 마치 초등학생들이 구름사다리 걸어가듯 건너다가 추락하던데요.

선배들이 후배 담력 테스트하느라 일부러 시킨 거지요. 크레바스용 사다리는 경험 많은 선배들이 설치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처음 건너는 사람은 기어서 최대한 안전하게 건너지요. 그러고는 로프를 연결해서 나머지 대원들은 설치된 로프를 양쪽에 잡고서 건너게 됩니다.

크레바스에 매달려 있는 박무택을 두고 선배들이 “눈사태다” 소리 지르며 장난을 칩니다. 놀란 박무택이 혼자서 기어오르자 엄 대장이 “혼자서 기어 올라온 놈은 네가 처음이다. 인정하마”라고 말합니다.

5~7㎜짜리 로프로 ‘푸르지크prusik 매듭’을 만들어 조금씩 올라오는 겁니다. 이 매듭은 위로 옮겨지면서도 밑으로는 절대 안 내려오는 매듭이거든요.

텐트에서 잠을 청하며 유일한 여성 대원(라미란)이 박정복 얼굴을 만지며 장난을 치자 “손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타박을 합니다. 발 냄새처럼 장갑 꼈던 손에서도 악취가 나는 가요?

히말라야는 아주 건조하기 때문에 사실 냄새가 나도 잘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나지요. 설악산 등반 같은 걸 마치면 정작 본인만 모르지 옆사람은 기절할 정도예요.(웃음)

악천후 날씨 때문에 원정대 본부에서 철수를 결정했는데도 엄 대장은 셰르파 2명을 데리고 정상에 도전합니다. 무전기를 아예 꺼버린 거지요.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있습니다. “잘 안 들린다. 배터리가 다됐다”는 핑계를 대면서요.(웃음) 원정대 본부 쪽에서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런 것까지 다 듣고 있을 여유는 없으니까요.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라는 엄 대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박무택도 뒤따라서 오릅니다. 실제 이렇게 지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더러 있지요. 등반대장 캐릭터에 따라 그런 고집을 뚝심으로 여겨 받아주는 경우도 있고요.

얼음벽에 4명이 로프로 몸을 이어 수평으로 매달려 오르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아래위 외에 수평으로 한꺼번에 오르기도 합니까?

아까 말한 안자일렌 방식인데 수평으로 오르기도 합니다. 영화에도 나왔듯 한 명이 위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를 맞고 미끄러지자 모두 추락하게 되지요.

부상당한 셰르파를 다른 셰르파더러 후송하라고 하고 결국 엄 대장과 박무택, 두 사람이 정상 정복에 나서지만 해가 떨어져 암벽에서 비박을 하게 됩니다. 계속 “잠들면 죽는다”고 다그치던데요.

손과 발을 계속 꼼지락거려야 동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잠이 들면 저체온증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고요.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주문이지요.

엄 대장은 “너무 졸리면 먹고 싶은 거 생각하라”고 박무택에게 말합니다. 히말라야 암벽에 매달려 비박한 경험이 많을 텐데, 박 대장님은 주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별별 생각을 다하지요.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에서부터 가족, 친구들 생각까지 두서없지요. 극지에서는 성욕보다 식욕이 먼저라는 말이 있는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밥 등 음식 생각도 많이 납니다.

결국 정상에 오른 뒤 엄 대장이 “어쩌냐, 이 산이 아닌 거 같다”며 박무택에게 농을 겁니다. 그 와중에도 이런 장난을 치기도 합니까?

실제로 많이 합니다.(웃음) 지금은 8,000m 이상 고봉에 대한 정보들이 많이 공유되어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주봉을 착각해서 전위봉에 오른 경우도 많고요. 엄홍길 대장도 히말라야에서 착오로 전위봉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한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오은선씨의 캉첸중가 정복 진위 논란도 동행한 셰르파가 주봉으로 착각한 탓에 빚어진 일이었지요.

영화 <히말라야>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입니다만, 이상하게도 화면에서 추위가 느껴지지 않더군요. 우리가 다룬 여타 산악 영화들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스크린에 강추위가 어려 있었는데 반해서 말이지요.

히말라야 고산에서는 고글이 필수인데 영화 속 인물들은 고글을 거의 쓰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아마도 배우들의 얼굴 연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사실성을 훼손시켰지요.

해발 8,300m 이상 높이에서 시신을 수거하는 건 엄청난 노동입니다. 산소를 분당 5리터 정도 섭취해야지요. 그런데 영화 속 산악인들은 산소마스크도 전혀 착용을 하지 않고 있지요. 게다가 8,000m 넘는 높이에서 작업을 하는데 배우들이 너무 말이 많아요.(웃음) 히말라야는 말 그대로 묵언수행을 하는 곳입니다. 간신히 숨만 쉬는 곳이라 누가 말을 붙이기만 해도 성가신 곳이거든요.

하하, 그런 곳에서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하모니카까지 불지요.

그럴 기력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영화에서는 원정대원들이 출발 전에 결의를 다지는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나마스테”를 외치더군요.

‘신을 향해서 경배한다’는 뜻으로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오가다 만날 때마다 쓰지요. 건배사로는 안 씁니다. 네팔 현지에서 사선을 넘은 동료들과 나누는 건배사는 따로 있습니다. “짜파티 사띠”라고 외치지요. 짜파티는 밀가루로 만든 현지 음식으로 우리의 개떡 쯤 됩니다. 사띠는 친구라는 뜻이고요. 개떡을 같이 먹던 친구, 라는 의미로 절친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캉첸중가 등정 이후 엄 대장과 박무택은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여러 고산을 함께 오릅니다. 그 사이 박무택은 결혼도 하고요. 엄 대장은 고질적 발목 통증을 이유로 학계로 옮기고, 박무택은 자신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꾸려 도전했다가 조난을 당하지요.

박무택이 대장을 맡은 원정대는 대구 MBC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원엔 등반 과정을 충실하게 촬영해 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요. 박무택은 비디오 뷰파인더를 계속 들여다보기 위해 고글을 수시로 벗어야 했고, 결국 설맹이 와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된 겁니다.

엄 대장은 실종된 박무택과 박정복 시신을 찾아 국내로 송환하겠다며 이전 동료, 후배들을 모아 ‘휴먼 원정대’라는 이름의 등반대를 조직합니다.

그리고 고산에서 50일 이상을 머물며 수색을 한 끝에 박무택의 시신을 찾아내지만 얼어붙은 엄청난 무게의 시신을 운반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그를 히말라야에 묻게 됩니다.

휴먼 원정대 발족 당시 산악인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합니다. ‘시체 찾으러 가다가 시체를 만들 생각이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하던데요.

결국 시신을 국내로 송환하지 못하고 현지에 묻고 왔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지요. 저는 시신을 가져오겠다는 발상 자체가 살아 있는 자의 욕심이라고 봅니다. 저 같으면 제 몸이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보다 히말라야에 미라로 영원히 묻히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외국 원정대원들은 히말라야 등반 도중 시체를 발견하면 크레바스 안쪽으로 밀어 떨어뜨려 줍니다. 망자의 입장에서는 히말라야 깊은 곳에 묻히는 셈이지요.

영화 <히말라야>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정말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산악인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만든 산악 영화는 감독이나 제작자, 작가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들이었거든요. 히말라야로 떠나려면 아내와 가족을 설득하고, 회사 등 소속된 조직을 포기해야 하고,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회의하는 자신을 넘어설 용기까지 필요합니다. 이런 요소들을 극적으로 잘 표현한 영화라고 봅니다.

박정헌 대장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1994),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1995), 낭가파르바트 문 라이트 등정(1997),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2000), 시샤팡마 남서벽 신 루트 등정(2002) 등의 기록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등반가.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원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생환했으나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었다.

이후 패러글라이딩에 입문,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에서 캉첸중가까지 3,200km를 하늘을 날아 종단했고, 2015년에는 자전거와 스키, 카약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5,800km를 횡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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