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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칸첸중가를 가다] 황금빛 햇살에 ‘잠자는 부처님’이 깨어나다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2.08.24 09:14
  • 수정 2022.08.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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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첸중가를 찾아서

황금빛 아침햇살이 칸첸중가에 비추이면 잠자는 부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황금빛 아침햇살이 칸첸중가에 비추이면 잠자는 부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 여행 루트는 언제나 예측 불가하고 가끔은 무모하다. 이번 여행지는 인도 북동부 서뱅골주의 휴양도시 다르질링Darjeeling. 목적은 히말라야 자락을 걷고 싶은 것이지만 히말라야가 아니어도 청정, 고산, 휴양지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갈 이유가 있는 곳이다. 맑은 날에는 에베레스트Everest를 조망할 수 있다. 한여름 칸첸중가Kanchenjunga  평균기온은 16℃로 서늘한 날씨. 세계 3대 차 생산지이다. 

멀고 험한 다르질링 가는 길

직전 여행지인 나갈랜드의 주도 코히마에서 다르질링으로 직접 가는 교통편은 없다. 코히마→디마푸르→뉴잘패구리→다르즐링으로 루트를 잡았다. 총 이동거리는 800km가 넘는다. 코히마에서 디마푸르까지는 구글지도로는 고작 75km인데 3시간 10분이 예상 소요시간이다. 그 길이 얼마나 구불구불하고 열악할지 상상이 간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이고 움푹 팬 도로의 리듬에 맞추어 차에 탄 승객들도 요동을 친다. 디마푸르부터 뉴잘패구리까지 14시간 동안 기차를 탄 후 다르질링으로 향하는 지프에 몸을 싣는다. 이동하는 데 꼬박 이틀 걸리지만 히말라야로 향한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도심 구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도로는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앞좌석이 아니면 멀미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속 40km를 넘기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도로는 험악하다. 새벽임에도 다르즐링으로 향하는 지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칸첸중가가 인사한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있는 세계 제3봉인 칸첸중가(8,586m)가 민낯을 내밀고 있다. 이 모습을 보려고 다르질링에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시작부터 느낌이 참 좋다. 

다르질링에 가까이 갈수록 정체구간은 더 길어지고 서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마음 같아선 걷고 싶다. 

숙소에 체크인한 후 다르질링을 산책하니 이제야 좀 정신이 든다. 다르질링 어느 곳에서든 칸첸중가가 한눈에 보이니 걸으면서도 기분이 좋다. 어떤 이는 칸첸중가를 보려고 며칠씩 머물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도착 전에 칸첸중가를 이미 만났으니 마음이 좀 여유롭다. 그러나 칸첸중가는 너무 멀리 있다. 

2,500m를 넘나드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갱톡 시내 모습. 인도의 다른 도시에 비해 깨끗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2,500m를 넘나드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갱톡 시내 모습. 인도의 다른 도시에 비해 깨끗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타이거 힐에서 잠자는 부처를 보다

다르질링 히말라야 기차역에서 11km 떨어진 타이거 힐Tiger Hill은 다르질링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자 칸첸중가 일출 포인트이다. 쾌청한 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과 함께 로체, 마칼루 등 히말라야의 다른 고봉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칸첸중가는 에베레스트(8,848m), K2(8,611m)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러나 칸첸중가는 에베레스트보다 3배는 더 험하다. 눈보라와 눈사태가 끊임없이 등반가를 위협하고 공기 중의 산소는 해수면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칸첸중가는 네팔과 인도 시킴주 중간에 걸쳐 있지만, 최정상은 인도 시킴주 쪽에 쏠려 있다. 칸Kan은 머리, 첸Chen은 배, 중가Junga는 무릎을 의미한다. 인도인들은 부처가 칸첸중가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칸첸중가를 ‘잠자는 부처Sleeping Budda’라고 부른다. 인도인들에게는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부처님을 보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새벽 4시30분에 픽업 온 차량을 타고 어둠 속을 뚫고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 주차장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차량과 사람이 한데 뒤엉켜서 걷기조차 쉽지 않다. 다르즐링 시내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전부 이곳에 모인 것 같다. 게다가 무척 춥다. 태양이 떠오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부처님을 보려고 했던 마음이 부서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서 있을 장소는 있을까? 

전망대에 도착하니 건물을 신축하는지 뼈대만 있는 건물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괜히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좀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옮겼지만 별 차이가 없다. 움직이기도 불편할 만큼 바짝 붙어서 여명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태양이 빼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자 모두들 부산해지고 일제히 사진과 비디오를 찍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칸첸중가를 사진에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여명이 올라오면서 부처님이 세상으로 나오셨다. 칸첸중가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잠자는 부처님을 그린다. 침묵이 흐르며 모두 숨을 죽이고 촬영에 집중한다. 아쉽게도 구름이 많아서 황금색으로 물든 완벽한 칸첸중가는 보지 못했지만 잠자는 부처님의 모습은 보았으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일출을 보고 내려와 차를 탔는데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앞차가 나가기만 기다리니 시간은 한없이 흐른다. 클랙슨을 울리며 바쁜 마음을 표현하지만 쉽게 길이 열리지 않는다. 어제 다르질링 시내로 들어올 때 끝없이 길이 밀린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타이거 힐에서 일출을 본 뒤 도착한 바타시아 루프Batasia Loop 동산 위의 전쟁기념관War Memorial에서도 칸첸중가 일출을 보는 이들이 가득하다. 인도인들의 칸첸중가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인도의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인 지프. 인원이 차면 출발하고 지프 위에는 짐을 싣는다.
인도의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인 지프. 인원이 차면 출발하고 지프 위에는 짐을 싣는다.

 히말라야를 걷고 싶다, 싱갈리라국립공원

다르질링까지 왔으니 히말라야 자락을 걷고 싶었다. 산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한결같은 대답은 싱갈리라국립공원Singalila National Park이었다. 그러나 퍼밋이 있어야 하고 지프를 왕복으로 빌리고 가이드까지 찾아야 하니 비용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일단 싱갈리라국립공원의 베이스캠프인 마니 반장Mane Bhanjang까지 가서 퍼밋 없이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걷고 오기로 결정했다. 

다르질링 버스 스테이션에서 마니 반장으로 가는 차는 찾았지만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프 정원이 다 차면 출발하는 시스템이다. 수키아Sukhia에 가면 마니 반장 가는 차가 수시로 있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품고 일단 수키아로 향한다. 수키아에 도착하니 다행히 바로 마니 반장 가는 차가 있다. 이번에 탄 차는 다마스와 비슷한 차량인데 차 바닥에 구멍이 나서 지나가는 길바닥이 보인다. 무섭다는 표현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안전하게 마니 반장에 도착했다. 이곳엔 네팔로 가는 국경사무소가 있다. 

싱갈리라국립공원에 가려면 반드시 이곳에 있는 Society for Highlander Guides & Poeters Welfare Association에서 퍼밋 허가를 받고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 사무실에 들러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다르질링으로 돌아가야 해서 3~4시 전까지는 돌아온다고 했더니 그냥 들어가도 좋다고 하면서 길을 안내해 준다. 

국립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숲이 무성하고, 고도가 높으니 호흡을 유지하며 천천히 걷는다. 적당한 곳에서 잠시 쉬면서 발아래 펼쳐진 마니 반장 마을을 바라본다.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도 장난감마을처럼 작게 보인다. 히말라야 자락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꽃 한 송이 찾아보고 풀 한 포기 마주하며 새로운 모습과 인사 나누며 걷는 길이 그냥 좋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싱갈리라국립공원. 이곳의 최고봉인 산다크푸Sandakpu에서는 잠자는 부처님의 모습을 한 칸첸중가의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싱갈리라국립공원. 이곳의 최고봉인 산다크푸Sandakpu에서는 잠자는 부처님의 모습을 한 칸첸중가의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을 왔다 갔다 한다. 한발자국 내디디면 네팔, 다시 한발자국 뒤로 돌아오면 인도. 국경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처럼 재미있어서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한다.  

치트레Chitre 도착. 지리적으론 네팔이지만 이곳의 스님은 모든 생활을 인도에서 하신다. 무척 오래된 옛날 절이다. 우리나라 탱화랑 비슷한 불교그림들도 많고 오래된 청동불상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귀중한 물건들을 단지 비닐에만 넣어서 보관한다. 

절을 나와서 싱갈리라국립공원을 향해서 한참 오르니 다르질링야생동물보호구역 마니 반장 방문자센터. 여기부터는 셰르파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단다. 하는 수 없이 방문자센터만 관람하고 내려간다. 가까운 곳에서 한 여인이 돌을 깨고 있다. 인도에서 가장 하층에 속하는 그녀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망치로 큰 돌을 부셔서 작은 돌로 만드는 일이다. 한국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직업이다. 아련하고 가슴이 아프다.

마니 반장에는 인도와 네팔, 두 나라의 시장이 공존한다. 한 시장 안에서 이곳은 인도이고 저곳은 네팔이다. 시간이 되면 시장은 문을 닫고 국경만 남게 되는 곳이다. 그 시간 이후 다른 나라의 영토에 머물면 위법이라고 한다.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칸첸중가를 포함한 설산들이 바로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있는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 펠링.
칸첸중가를 포함한 설산들이 바로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있는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 펠링.

위대한 칸첸중가

칸첸중가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이번에는 시킴주의 주도 갱톡Gangtok으로 간다. 인도의 아침은 짜이(인도식 밀크티)가 연다. 길에는 짜이 장사들과 짜이를 마시는 이들이 가득하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짜이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그늘진 도로 곳곳이 살얼음으로 덮여 있다. 앞서 가던 차들이 빙그르 도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느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 다행히 내가 탄 지프는 무탈하게 지나간다. 다르질링에서 갱톡까지 100km. 한국이라면 2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침식사 시간이 있었다지만 거의 4시간이 걸렸다. 시킴은 인도 안의 또 다른 국가. 외국인은 퍼밋이 필요하다. 

갱톡 시내는 현대식 건물에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갱톡의 밤은 더욱 화려해 인도 현지인 관광객들도 많다.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밤거리는 흥청거린다. 도시 곳곳에서 셀카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은 인도라기보다는 서울이나 유럽 거리 같은 느낌이다.

갱톡 어디에서도 칸첸중가는 잘 보인다. 뷰 포인터인 타쉬전망대Tashi View Point로 가며 더욱 멋진 칸첸중가를 상상한다. 구름이 없어서 칸첸중가는 잘 보였지만 이곳에서는 다르질링과 다르게 산봉우리만 보여서 조금 아쉽다. 이젠 펠링Pelling으로 가야지. 나는 칸첸중가를 핑계로 여행루트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갱톡과 같은 시킴주에 속하는 펠링은 아주 고요한 시골마을이다. 한눈에 히말라야 산중마을임이 느껴진다. 몇몇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산 중턱에는 곰파Gompa가 있다. 자연과 마을 모습이 네팔에 더 가깝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서 호텔에 문의하니 호텔 2층 테라스가 뷰 포인터란다. 이른 새벽, 호텔 2층 테라스. 고산시대 특유의 쌀쌀함까지 더해지니 펠링의 새벽은 무척 춥다. 칸첸중가를 바라보니 여명이 온 세상에 살포시 깔리면서 내 눈앞에 진풍경이 시작된다. 그 순간 내 몸은 이미 옥상으로 달려간다. 단지 조금 더 올라왔을 뿐인데 조금 전의 칸첸중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순백의 설산이 점점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말을 이을 수 없다. 

세 번째 만난 칸첸중가. 각각 모습이 다르고 느낌이 달랐지만 숙소에서 여유롭게 바라보는 칸첸중가는 너무나 아름답다. 다르질링 타이거 힐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바라보던 칸첸중가와는 비교불가이다. 칸첸중가의 장엄함에 박수를 보낸다. 해가 하늘 위로 높이 솟았다. 칸첸중가 봉우리에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출렁인다. 잠시 후 칸첸중가의 머리 위로 구름이 모여들더니 구름 속으로 수줍게 모습을 감춘다. 칸첸중가를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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