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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팔순인 내가 20kg 배낭 메고 JMT 걷는 이유”

신영철
  • 입력 2022.08.08 09:51
  • 수정 2022.08.09 10:03
  • 사진(제공) : 재미한인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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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T에서 만난 사람, 재미한인산악회 김철웅씨

“저기 배너피크Banner Peak(3,943m) 보이지요? 20년 전, 산악회에서 저 산을 오르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재미한인산악회 김철웅 회원은 팔순의 나이에도 20kg 배낭을 메고 90km를 걷는 현역 산악인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김명준 회원 알지요? 그를 따라 배너피크 정상을 오르다 그만 추락했어요. 크레바스에 빠진 거죠. 한 2~3m 되었나? 깊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내가 목적한 산 중 유일하게 오르지 못한 산이 바로 배너피크입니다.”

필자는 김철웅씨와 함께 존 뮤어 트레일을 걸으며, 그가 걸어온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김철웅씨의 친구 김명준씨는 유명한 산악인이다. 7대륙 최고봉 최고령 등정자로 2007년 기네스북에 오른 김명준씨는 지금의 김철웅씨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이가 산을 오르는 데 장애가 되지 않으며, 사람에게는 한계가 없음을 그를 통해 깨달았다. 

“그동안 네팔, 알프스, 남미를 걸었어요. 숱하게 많은 해외 고산을 다녔지만 여기 존 뮤어 트레일이 가장 아름다워요. 여길 간다고 해서 단숨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왔어요. 이런 보물 같은 산이 곁에 있다는 건 산악인에게 축복이자 로또인 겁니다.”

등산마니아가 된 예비역 장성

김철웅씨는 예비역 장성이다. 육군 항공사령부 사령관을 지내고 소장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 무수히 국내 산행을 했다. 그러다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주해 고산을 만났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한국에서 살고 있다.

“원래 나는 고소에 약해요. 미국에 와서 높은 산을 산행하며 고소증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쉬지 않고 높은 산을 찾아다니니 고소증도 점차 적응이 되더군요. 2009년경 티베트 쪽 에베레스트, 초오유, 시샤팡마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했어요. 그때도 고소 때문에 고생했지만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09년 대장을 맡아 재미한인산악회 회원 18명을 인솔해 중국을 통해 티베트 네팔 횡단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360km에 이르는 존 뮤어 트레일 전 구간을 두 번이나 종주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후배들 부름에 주저 없이 태평양을 건너 온 것은 존 뮤어 트레일의 흡인력 때문이다.   

“존 뮤어 트레일은 결코 쉬운 산행이 아닙니다. 해발 3,000~4,000m를 넘나드는 것도 어렵지만 네팔처럼 포터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먹을 거, 잠 잘 것 모두 스스로 등짐을 지고 가야 하니 힘들 수밖에요. 이번엔 도나휴 패스를 넘고 투올러미에서 끝내지만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곰들에게 식량을 털리지 않으려면 강제 규정인 곰통도 메고 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곳을 오기 열망하는 한국 산악인들은 많다.  

이번 산행은 재미한인산악회 후배들이 그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생신축하 산행’이다. 

“출발하기 전 캠프장에서 후배들이 만든 초코파이 케이크 기억나지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케이크였어요. 정성을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게 40년을 이어 온 산악회 저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후배들 신세 많이 졌습니다. 덕분에 언제나 눈에 밟혔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거지요.”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아무 곳이나 찍으면 작품이 될 성 싶은 풍광이 널렸다. 존 뮤어 트레일에는 3,000m가 넘는 고개pass가 9개 있다. 그중 마지막 고개가 도나휴 패스Donohue Pass(3,372m). 그곳이 이번 북쪽 종주 중 가장 높고 힘든 고개였다. 고소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높이이기도 했다. 

고소에 약하다는 김철웅씨는 여름에도 잔설이 있는 패스 정상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회원들이 점심을 먹는 와중에도 고소증과 싸우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걱정이 되었으나 큰 탈 없이 막영지에 도착했다. 

김철웅씨는 이번 일정 중 산속에서 보내는 마지막 잠이다. 후배들이 김철웅씨 텐트를 단독으로 쳐 놓은 것은 예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병장 제대가 투 스타 출신과 함께 자는 게 상상이 안 되어서였을까? 하산길, 투올러미의 초원이 비행기 창문에서 보이듯 눈 아래 질펀했다.

“저거 좀 보세요. 푸른 초원과 침엽수 숲.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투올러미강이 사행을 이루고 있는 풍경. 어디서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을 볼 수 있나요. 모든 것에 공짜가 없습니다. 이런 아름다움 역시 고통 뒤에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 한 컷으로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후배들이 고맙습니다.”

존 뮤어 트레일 구간 종주를 한다는 말에 단숨에 태평양을 건너온 김철웅씨. 이제 도로를 만나는 내일이면 애초 계획대로 2조는 하산한다. 본대는 요세미티로 이어갈 것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눈 아래 질펀한 초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아련했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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