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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기상 이변에 산호가 하얗게 질렸다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3.09.21 06:35
  • 수정 2023.10.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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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38) 산호초를 따라서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정반대이다. 우리나라에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7월이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사람들이 두툼한 외투를 입고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르고 다닌다. 이곳 7월은 북반구의 2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현지 시각)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긴팔 차림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선 이들이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온은 도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은 30.1℃를 기록했다. 종전 기록인 1942년 24.6℃를 훌쩍 뛰어넘는 이상 고온 현상이 도시를 덮친 것이다. 오후엔 시내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일광욕이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까지 적잖이 보였다. 여지없이 여름의 모습이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 다수 지역에서 예년보다 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전반적인 지구 온난화에 더해 4년 만의 엘니뇨현상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7월 공식적으로 ‘엘니뇨 시작’을 발표했다.

‘엘니뇨’는 페루·에콰도르 일대 동태평양 해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올해의 경우 페루 앞바다 동태평양에서 지난 3월부터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평년보다 2~3℃가량 올랐다. 이처럼 더워진 수온이 남미 지역의 대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겨울 남미에 이례적 폭염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지역은 페루와 에콰도르 연안이다. 7~8월 평년 최고기온이 19℃인 페루의 수도 리마는 올해 20~25℃를 기록하고 있다. 

엘니뇨의 여파는 페루를 기점으로 남미 남쪽과 내륙으로 뻗으며 퍼져나가고 있다. 페루 남쪽에 있는 칠레의 중부 내륙 도시 비쿠냐는 칠레 역사상 가장 높은 8월 기온인 38.7℃를 기록했다. 칠레 다수 지역 기온이 30℃를 넘기면서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겨울에 한파가 아닌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해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연안 국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내륙 지역인 파라과이·볼리비아·브라질 서부에서도 ‘뜨거운 겨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CNN은 현지 기후학자의 말을 인용해 “아르헨티나 북부,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에서 40℃까지 올라갈 수 있다. 남미가 사나운 겨울 폭염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스페인어로 ‘남자아이’,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의 여파는 우리의 막연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문가들은 만약 올 하반기와 내년까지 엘니뇨가 이어진다면, 지역별로 다양한 ‘이상 기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페루·에콰도르 등 태평양 연안에는 폭우, 콜롬비아·칠레 일부 지역에는 가뭄을 초래할 것이라는 중론이다. 안데스 같은 고산 지역에선 눈사태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구온도, 2019년보다 0.33℃ 높아

남미만 더웠던 것은 아니다.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유럽에서도 치명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WMO는 지난 8월 초 올해 7월의 지구 표면 평균 기온이 16.95℃로, 1940년 관측과 기록이 시작된 이후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WMO는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의 보고서를 원용,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평균 기온과 비교하면 0.72℃ 높고, 이전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2019년 7월의 기온보다 0.33℃ 높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지구 온도 기록이 0.1℃ 이하의 수치로 경신되는 사실에 비추면 매우 이례적인 차이를 보이며 기록이 깨진 것이다. WMO는 올해 7월이 국제 사회가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으로 꼽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과 유사한 수준이라 덧붙였다. 1850년부터 1900년까지의 평균 기온과 비교해 약 1.5℃ 올랐다는 얘기다.

이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구 표면뿐만 아니라 해수면 온도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C3S는 7월 말 현재 지구 해수면의 평균온도를 20.96℃로 집계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였던 2016년 3월의 20.95℃보다 0.01℃ 높은 수치이다.

사실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해수면의 평균온도는 지난 4월부터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북대서양 해수면의 표면 온도는 24.9℃로, 이 지역 해수면 온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지중해의 하루 평균 해수면 온도 또한 28.71℃를 기록, 2003년 이후 20년 만에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감독 제프 올롭스키, 2017)는 아주 새로운 시각으로 지구 온난화의 폐해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바로 산호초의 ‘백화白化현상’을 통해 우리의 무뎌진 환경보호 감성을 충격적으로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 대부분은 산호초는 바다 식물이고, 산호초의 ‘초’가 풀草을 의미할 것이라 막연히 예상하지만, 산호초는 생물학적 분류상 식물 아닌 동물이며, 산호초의 ‘초礁’는 물속의 바위를 의미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산호초 전공 생물학자 루스 게이츠 박사에 따르면 산호는 입과 촉수를 가진, 수천 개의 미세한 폴립으로 구성된 ‘동물’이다. 하지만 일반 동물들과는 다른 특이한 면이 있는데, 바로 낮에는 식물의 대표적 특성인 광합성을 한다는 점이다. 밤에는 일반 동물처럼 먹이를 사냥해 소화를 시키니 산호야말로 식물과 동물이 합쳐진 생명체라 일컬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 흡수하는 산호의 죽음

놀라운 점은 지구 표면 5대양에 서식하고 있는 산호들이 낮 동안 진행하는 광합성이 같은 면적의 열대우림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산호에서 분비되는 탄산칼슘이 단단한 돌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산호초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호주 북동부 퀸즐랜드 주 해안에서 파푸아뉴기니 남부지역까지 2,600㎞ 길이에 펼쳐져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호초이다. 우리말로는 ‘대大산호초지대’ 또는 ‘대보초’라 한다.

면적 34만8,700km²로 살아 있는 생물들이 쌓아 올린 구조물로는 세계 최대이며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에서 이보다 더 큰 건 없다. 참고로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총면적이 22만km²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이곳에는 산호 400여 종과 어류 1,500여 종, 그리고 연체동물 4,000여 종이 살아가고 있다. 

제작진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와 하와이의 해저 수십 곳에 특수 카메라를 설치한 뒤 수개월 동안 산호초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리고 ‘국제 산호초 심포지엄’에서 그들이 찍은 영상자료를 발표한다. 놀랍게도 알록달록 생기 넘치던 산호초들이 불과 두 달 만에 하얗게 변해 버렸다.

다큐에서는 백화현상bleaching을 ‘산호의 죽음’과 동일시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백화는 산호가 ‘공생 조류藻類’를 배출하는 현상이다. 공생 조류를 배출하면서 산호의 색소 단백질이 탈색되기에 산호가 흰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백화는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인해 공생 조류의 광합성 기관이 파괴되면서 발생한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죽어가는 산호초가 형광빛을 내는 경우도 있다. 다큐에 따르면 이는 스스로 햇빛에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것과 같다고 한다. 더워지는 바다 온도에 적응하고 죽음에 대항하고 있는 셈인데, 자주·파랑·녹색 등 화려한 색깔을 띤 산호를 보여  주면서 영화는 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극도로 아름다운 방식으로 죽음에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나를 봐, 제발 (내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산호초를 따라서>는 에미상 최우수 ‘자연 다큐’ 부문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이 높은 데다 제33회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받을 만큼 대중성도 확보했다. 무엇보다 무너져 내리는 빙하 더미와 사라져가는 열대우림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환경보호 감수성의 수준을 확 올려줄 수작이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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