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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30kg 야영짐 싣고 히말라야 386km 페달을 밟다

이남석 오지 자전거 여행가
  • 입력 2024.02.27 07:50
  • 수정 2024.03.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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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자전거 여행기

네팔 마낭으로 가는 길. 해발 2,000m 산악지대를 지난다. 아직까지는 반팔을 입어도 좋은 날씨다.
네팔 마낭으로 가는 길. 해발 2,000m 산악지대를 지난다. 아직까지는 반팔을 입어도 좋은 날씨다.

지금부터 털어놓을 이야기는 자전거에 30kg 넘는 짐을 싣고 안나푸르나 서킷Annapurna Circuit 386km를 여행한 기록이다. 네팔 포카라Pokhara에서 출발해 토롱라Thorong La를 넘어 다시 포카라로 돌아오는 루트이다. 

출발 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져온 불면증이었다. 나는 무척 괴로웠으나 잘 참았다. 고통의 대가가 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했다.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해 시내 관광 중심가인 타멜의 한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여관 주인은 인도 사람이었는데, 여행자들을 많이 다뤄본 솜씨였다. 주인은 여행자의 지갑을 확인하지 않아도 얼마가 들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행자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능숙하게 여관비를 흥정했는데 주인은 이미 여행자의 수를 다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포장했던 박스를 맡기며 “여행이 끝나면 가지러 올 테니 보관해 달라”고 하자 쉽게 승낙하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감추는 데는 실패했다.

텐트와 침낭, 버너와 물, 자전거 수리도구까지 숙소가 없는 오지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모든 짐을 실었다.
텐트와 침낭, 버너와 물, 자전거 수리도구까지 숙소가 없는 오지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모든 짐을 실었다.

밤늦게까지 조립한 자전거에 짐을 매달고 공가부Gongabu 시외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자전거 여행은 그동안 경험으로 봤을 때 출발 후 사흘이 가장 힘들다. 사흘이 지나면 비로소 현지 적응이 된다. 포카라로 가는 버스를 세우고 자전거 본체는 버스 루프탑에, 짐은 분리해서 버스 아래 탱크에 싣자 예상대로 차장의 딜이 이어졌다. 

“자전거는 큰 짐이니 별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전거 내려서 다른 차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냥 갑시다.”

원래 터미널 안에 있는 티켓 부스에서 투어리스트 버스표를 사려 했었다. 이 버스는 중간에 승객을 태우지 않고 좌석도 편안하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 막 정거장을 출발하면서 호객하는 차량에 올라탔다. “포카라!”라고 외치는 차장의 미끼를 덥석 문 것이다. 덕분에 오전 7시에 카트만두를 출발해서 목적지인 포카라에는 저녁 8시에 도착했다. 13시간의 완행 버스 여행이었다.   

마을 입구의 관문. 힌두를 상징하는 신상이 새겨져 있다.
마을 입구의 관문. 힌두를 상징하는 신상이 새겨져 있다.

다음날 아침 왼쪽으로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그리고 ‘마차푸차레’ 설산을 바라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우리나라 늦가을 날씨를 예상하고 왔지만, 옷은 여름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웠다. 열대림을 닮은 진초록 숲 사이로 길은 구불거리고 출렁댔다. 라다크나 라하울스피티 같은 인도 히말라야처럼 초입은 푸른 숲과 마을과 경작지였다.

가파른 산을 계단식으로 일군 논에는 이미 파종한 벼가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기온은 높아도 계절은 가을이었다. 한 노인은 수확한 벼를 마당에 널어 말리는 중에도 지나가던 여행자의 요청에 포즈를 취해 줬다. 2층에서 바라보던 아들이 비교적 유창한 영어로 가족을 소개했다. 생활이 다소 빈궁해도 행복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달리는 동안 산사태가 난 곳을 여러 번 통과했다. 몬순을 피해서 가을에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큰 마을 가게에서 밀가루와 꿀과 감자를 구하고, 음료수와 물까지 자전거에 얹으니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굶거나 추위에 떠는 고초를 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또띠’라고 부르는 네팔 빵과 꿀은 중요한 비상식량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가방 안에 있었다.

수확한 벼를 말리는 시골 노인.
수확한 벼를 말리는 시골 노인.

가팔라지는 산세와 더불어 내가 흐르고 산세가 완만해지는 구릉에는 어김없이 마을과 경작지가 나타났다. 산꼭대기라 할지라도 주변이 평평한 곳에는 높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을과 밭이 늘어서 있었다. 이것은 수십 년 전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우리나라의 자연부락과 다르지 않았다. 몬순이 끝나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아침에 청명했다가 저녁이면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구름이 모여들었다.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가게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모든 장면이 천천히 돌아가는 영화처럼 눈앞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앞에 보이는 풍경을 관찰하다가 잠깐 서서 뒤돌아보면 또 다른 프레임이 나타난다. 대부분 가옥은 흙이나 돌을 질서 있게 쌓아 만들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길옆에 있는 가게는 보급 이외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다. 

설거지를 하는 아이. 히말라야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다.
설거지를 하는 아이. 히말라야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다.

물건 가격은 조금씩 다른데 큰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몇 푼이라도 비싸진다. 원래 물건 값에 물류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가게에 앉아 쉬다 보면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바나나 3개에 콜라 한 병, 이 정도면 30분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히말라야 저지대 사람들의 집과 환경은 질박하고 간소하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눈비를 피하고 몸을 뉠 집과 음식을 만드는 부엌, 그리고 짐승을 가두는 우리와 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연장,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그것이다. 

거기에 배설물을 처리하는 변소와 마시고 닦는 데 필요한 물만 있다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더 편리하고 넓고 사치스럽게 꾸미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박하게 준비할 뿐이다. 사실 지구상에는 그 기본적인 것마저 없는 사람도 많다.

베시샤르 도시를 빠져나가는 중이다.
베시샤르 도시를 빠져나가는 중이다.

위로 오를수록 나무들 키가 조금씩 낮아지고, 요란하게 울던 곤충들 노래 소리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음식은 삼시 세 끼 모두 네팔의 주식인 ‘달밧’으로 해결했다. 둥근 접시 가운데에 쌀로 지은 밥을 놓고 주변에 반찬을 채운다. 밥이나 반찬이 떨어지면 주인이 잽싸게 리필을 해주는 유일한 음식이며,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으나 또한 가장 빨리 꺼진다. 

고산 자전거 여행 특성상 중간에 반드시 참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기운이 빠져 움직이기 힘들다. 요리 도구로 MSR 포트와 코베아 가스버너를 준비했다. 부탄가스는 전문 등산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구입했는데 한 통에 우리 돈으로 1만 원 정도 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포트에 물을 붓고 미리 준비한 닭고기 한 주먹과 소금을 넣는다. 네팔에서 닭고기는 부위별로 살 수 있으며 저렴하다. 닭을 삶는 동안 밀가루를 물에 개어 놓는다. 닭이 익으면 꺼내서 먹은 후 이 물에 갠 밀가루를 숟가락으로 조금씩 떼어내 넣는다. 말하자면 수제비를 만드는 셈이다. 사실 이렇게 먹어도 여행 내내 배가 고팠으니 자전거 여행이 얼마나 에너지가 드는지는 알 수 있다.

여물어가는 벼로 가득한 논. 멀리 안나푸르나산군이 펼쳐진다.
여물어가는 벼로 가득한 논. 멀리 안나푸르나산군이 펼쳐진다.

네팔은 인도와 분위기가 비슷한데 훨씬 정적이고 차분하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도가 낮은 곳에 사는 네팔리들이 세운 사원이나 종교적 상징물을 보면 힌두와 불교가 뒤섞인 분위기다. 마을 입구에는 힌두를 상징하는 시바나 비슈누, 또는 크리슈나 상이 보이다가도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난데없이 룽다나 타르초가 걸린 영탑이나 곰파Gompa(사원)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생이나 질병, 노화처럼 사람이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신에 의지하려는 것은 사람의 속성일 것이다.

안나푸르나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자연보호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허가서가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트레킹(걷기)하기 위해서는 포터(짐꾼)와 가이드(안내자)가 있어야 한다. 포카라를 출발하면서 어디서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고민했다. 

허가서 없이 가다가 검문소를 만나면 돈을 내고 발급받으면 되는데 2,000루피 정도 더 비싸다고 들었다. 베시샤르Besishar는 안나푸르나 방향으로 가는 모든 트레커들이 거치는 도시로 식당마다 외국인들로 그득했다. 그곳에서 어렵게 허가서를 발급해 주는 기관을 찾았다.

“한국에서 오셨다고? 발급 비용은 3,000루피요. 여권, 사진 두 장 주시고 서류에 방문할 곳을 표시하시오.”

스위스에서 온 가족. 마낭까지 자전거 여행 중이었다.
스위스에서 온 가족. 마낭까지 자전거 여행 중이었다.

몽골인을 닮은 발급 담당자는 매우 친절하게 안내했다. 여권 속에 2장의 사진을 넣어간 게 행운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 써도 될 별도의 비용을 들여 사진 찍고 인쇄하고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뻔했다. 

해발 800m의 쿠디Khudi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아직 내가 기다리는 풍경이 나오려면 해발 4,000m까지 고도를 끌어올려야 하니 갈 길이 멀었다. 야영하려고 텐트를 꺼냈다가도 싼 맛에 여관을 잡았다. 가을인데도 숙소 안에는 모기들이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새벽이 다가오면서 얼마나 모기가 공격하는지 잠을 설쳐 아침에는 영 컨디션이 올라오질 않았다.

“우리는 토롱라를 넘지 않고 마낭까지만 갈 예정입니다.”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일 겁니다.”

“고마워요.”

콩 타작을 하는 네팔리 가족.
콩 타작을 하는 네팔리 가족.

어느 여행지를 가든 유럽인들이 가장 많다. 경제적인 여유는 둘째 치더라도 그들은 동양인보다 모험심이 많고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대하는 마인드가 다르다. 낯선 곳에 가서도 잘 적응한다. 

페달에 힘을 주고 올라가다가 공터에서 휴식 중인 스위스인 가족을 만났다. 부부는 그렇다 치고 아이들까지 체형에 맞는 자전거를 타고 거친 길을 가는 것이 대견스럽고 놀라웠다. 나는 자전거 여행 중인 스위스인 가족의 자유로운 생각과 분위기가 더없이 좋았다.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고 가파르다. 가파른 지형 탓에 많은 폭포를 만났다. 베시샤르부터 마낭까지는 마르시앙디Marsyangdi강과 동행했다. 멀리 안나푸르나산군에서 흘러든 물이 여기까지 물을 보탰다. 덕분에 물의 낙차를 이용해 작은 수력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길가의 구멍가게들. 자주 만날 수 있으며 여행자들의 물과 식량을 보급할 수 있어 유용하다.
길가의 구멍가게들. 자주 만날 수 있으며 여행자들의 물과 식량을 보급할 수 있어 유용하다.

길은 강 양쪽을 번갈아서 이어졌다. 오전에는 안나푸르나 BC나 토롱라를 넘으려는 트레커들을 싣고 달리는 지프들이 많아 위험했다. 내리막이나 코너에서는 안전을 위해 자전거를 세웠다. 그럴 때마다 일어나는 흙먼지로 고통스러웠지만, 이것 또한 자전거 여행자가 감내해야하는 몫이다. 절벽을 따르던 길이 갑자기 강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는데, 내려간다는 즐거움보다는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심했다. 

“이따금 자전거 여행자를 보지만 당신처럼 야영 짐을 매달고 가는 사람은 처음이군요.”

가게 주인은 망고주스를 건네며 유쾌하게 웃었다. 워낙 관광객들, 특히 트레커들이 많은 곳이라 요소요소에 가게와 로지(여행자 숙소 겸 식당)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내에서 장거리 자전거 랠리에 필수인 영양제 뉴트리션을 가져왔는데 이번 여행에 요긴하게 사용했다. 주스나 콜라에 뉴트리션을 섞어 힘이 달릴 때마다 조금씩 마시니 그나마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았다.

네팔의 아이들.
네팔의 아이들.
발급 받은 허가서Annapurna Entry Permit. 안나푸르나는 네팔 정부가 관리하는 자연보호 구역이라 반드시 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발급 받은 허가서Annapurna Entry Permit. 안나푸르나는 네팔 정부가 관리하는 자연보호 구역이라 반드시 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고도를 높이며 숲도 교목에서 관목으로 바뀌었다. 까마득한 곳에 손톱만 했던 설산들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골을 따라 내닫는 물은 거칠고 소리가 요란했다. 어딜 가나 아이들이 많았으며 여행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그럴 때마다 초콜릿 하나라도 주고 싶었으나 절대 아이들에게 단 것을 주지 말라는 네팔 현지인들의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 꺼내려다가도 즉시 멈췄다.

히말라야 냄새와 배고픔의 고통

해발 2,000m를 넘자 조금씩 히말라야 냄새가 났다. 멀리 안나푸르나 주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육체가 힘들어도 고단함을 잊은 채 앞으로 갈 수 있는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이 언덕을 넘으면, 저 굽잇길을 지나면, 앞에 보이는 고개를 넘으면, 과연 뭐가 있을까? 마을이 나타날까? 아니면 눈 덮인 설산이 나타날까? 이런 호기심으로 여행자는 쉬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다.

어쩌다 평탄한 길을 만나면 자전거에 올랐다. 하늘빛은 더 깊어지고 기온은 조금씩 내려갔다.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모두 바위로만 되어 있는 곳을 만나기도 하고,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후로는 차량 통행이 뜸해 경치를 구경하며 사색하며 페달을 돌릴 수 있었다. 고도가 높은 탓에 에너지 소모가 컸다. 계속해서 뭘 먹지 않으면 갈증과 배고픔이 고통이 되어 찾아왔다. <다음 호에 계속> 

산사태가 난 길을 오르고 있다. 덥고 습해 은근히 힘들었다.
산사태가 난 길을 오르고 있다. 덥고 습해 은근히 힘들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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