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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케이프 코드] 미국이 시작된 땅, 케네디家의 요람

정영훈 외대산악부OB·재미대한산악연맹 워싱턴D.C
  • 입력 2024.03.05 07:50
  • 수정 2024.03.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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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사추세츠

케이프 코드 레일 트레일을 걷던 중 만난 평화로운 풍경.
케이프 코드 레일 트레일을 걷던 중 만난 평화로운 풍경.

1607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3척의 배가 미국 버지니아주 남단 제임스강에 도착했다. 이것이 최초의 미국 이민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00여 년 만의 일이다. 처음 출발할 때는 144명이었지만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39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강어귀에 정착촌을 짓고 그곳을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 타운’ 이라 불렀다. 신대륙 정착은 쉽지 않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고 2년 후에는 38명만 생존할 수 있었다. 포카혼타스와 존 롤프의 러브스토리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1620년 9월엔 런던주식회사 소속의 메이플라워May flower라는 이름의 배가 항해를 시작했다. 배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청교도를 싣고 66일간 바다를 건넜다. 목적지는 제임스타운이었다. 그러나 강한 폭풍을 만난 배는 320km 북쪽으로 밀려 올라갔다. 원래 아메리카 동부 해안은 허리케인의 영향을 자주 받는 곳이다. 여름 동안 덥혀진 캐리비안해가 뿜은 에너지가 열대 저기압을 만들고 이것이 가을 폭풍이 되어 올라간다. 

102명이 타고 있던 작은 배는 그렇게 매사추세츠 해안에 도착했다. 닿은 곳은 케이프 코드Cape Cod의 프로빈스 타운Province town이다. 케이프 코드는 낚시 바늘 모양으로 대서양 쪽으로 뻗어나간 반도 지형이다. 이렇게 이곳에서 지금의 미국을 상징하는 ‘청교도 정신’이 잉태됐다.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는 귀족과 부자들에 의해 식민지 건설이 이뤄졌다. 반면 북부는 신앙심이 두터운 평민들이 개척한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을 필그림Pilgrims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미국 속의 영국 ‘뉴잉글랜드’가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지점에 세워진 기념 표지석.
청교도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지점에 세워진 기념 표지석.

영화 ‘죠스’ 촬영지

현재 케이프 코드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 중 하나다. 보스턴, 뉴욕 등 도시인들이 휴식을 위해 찾아오는 곳이다. 보스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다. 자연 그대로의 늪지와 해변이 보존되어 있다.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마을들은 옛 모습 그대로며 이를 유지하고자 여러 노력도 더해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 대부분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물레방아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아직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케이프 코드는 영국의 탐험가 바솔로뮤 고스놀드Batholomew Gosnold가 지은 지명이다. 그는 1602년 이곳에 처음 도착했다. 그는 해안에 널려 있는 수많은 생선뼈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곳은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대서양에 서식하는 대구(영어로는 Atlantic Cod)가 몰려드는 곳이다. 

원래 육지로부터 돌출되어 나온 반도였던 이곳은 1914년 남북으로 104km의 수로가 만들어지면서 대륙과 단절된 섬이 되었다. 그동안 케이프 코드를 돌아서 가야 했던 뉴욕과 보스턴을 오가는 물자들이 수로를 통해 가로질러 갈 수 있게 되면서 항로가 120km 단축되고 교역량도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수로 위로 다리가 놓여 있어 차로 들어갈 수 있다. 

케이프 코드에는 500개 이상의 하이킹과 자전거 트레일이 있다.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640km2에 이른다. 해안선은 960km 이상이며 100개 넘는 해변이 조성되어 있다. 수도 워싱턴을 비롯해 남부 지역은 무덥고 습한 반면 이곳의 날씨는 쾌적하다. 사계절 동안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져 다양한 레저를 찾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광 산업이 최고의 소득원이다.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를 보면 식인상어가 있지만 관광산업의 피해를 우려해 해변을 봉쇄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곳이 ‘죠스’의 촬영지다.

수백년된 물레방아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수백년된 물레방아가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에 러닝 인구가 늘어난 이유

미국에서 출판된 어린이 도서들 중에 유독 케이프 코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가족들과 케이프 코드에서 방학을 즐기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케이프 코드는 가족과 함께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명절 때마다 내려가던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과 같을 것이다.

케네디 가족에게도 그런 곳이다. 케네디 부친이 이곳에 처음 집을 산 것은 1920년대다. 이후 케네디 전 대통령, 동생 테드, 여동생 유니스가 아버지 집 주변으로 3채의 집을 사게 된다. 그렇게 흔히 ‘케네디 본가Kennedy Compound’라고 불리는 케네디 가문의 주거 지역이 만들어지게 된다. 케네디 본가는 6에이커 규모(약 축구장 5개)로 해변에 접해 있다. 

케네디 가문은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1년에 4번 정도 가족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생존하고 있는 케네디의 형제자매와 그의 자손들이 모이면 120여 명이 넘는다. 케네디에게는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케네디가의 사위였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도 종종 보인단다. 부시 가문에게 텍사스 목장이 있다면 케네디는 케이프 코드 별장이 있다.

방파제 위로 이어지는 케이프 코드 레일 트레일.
방파제 위로 이어지는 케이프 코드 레일 트레일.

케네디는 이곳에 대통령 선거 캠프를 차렸고,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이면 항상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동생 로버트 케네디(1961~1964년 상원의원 역임)와 함께 올 때면, 헬기 3대가 집 앞 공터에 내려앉는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케네디 가문에게 이곳은 좋은 추억만 있는 장소는 아니다. 케네디 주니어가 케이프 코드에서 몇 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1999년 뉴욕을 출발한 경비행기가 추락했다. 비행기에는 케네디 주니어와 아내 캐롤린Carolyn Bessette,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케네디 주니어와 캐롤린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하다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그들의 운명 같은 만남이 세상에 알려지자 센트럴 파크에는 조깅하는 선남선녀들이 갑자기 늘었다고 한다. 

한편 캐롤린 부모는 케네디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보상금을 받았다. 당시 경비행기를 케네디 주니어가 직접 조종했다고 한다.

프로빈스 타운 부두.
프로빈스 타운 부두.

예술인들의 작업장 된 난파선 생존자 대피소

다시 잠시 과거로 돌아가자. 필그림이 처음 도착했을 당시 케이프 코드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너시트Nauset 부족이다. 그들은 바다에 의존해 살았으며 미국 어느 원주민보다 생선을 잘 먹는 부족이었다. 필그림은 너시트와 프로빈스 타운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필그림이 도착한 11월, 너시트 부족민들은 겨울 식량 채집을 위해 마을을 비운 상태였다. 허기에 지친 필그림들은 너시트의 식량을 가져가면서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음식을 빌려가니 양해를 구한다. 나중에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영어로 써 있었기 때문에 너시트 부족이 읽을 수는 없었을 테다. 아무튼 필그림은 그 약속을 잘 지켰고 원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정착한 지 1년 후, 필그림은 한 해를 잘 넘긴 것에 대한 감사 예배를 드린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의 시작이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연방공휴일로 제정했다. 너시트 부족 중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모래 사막인 샌드 듄 트레일.
모래 사막인 샌드 듄 트레일.

케이프 코드의 절반 정도는 국립공원Cape Cod National Seashore Park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보행자를 위해 다듬어진 트레일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의 자연은 아마 400년 전 필그림들이 보았던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트레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산, 해변, 호수에 조성된 모든 트레일을 다 걸으려면 한 달로도 모자랄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40km의 자전거 도로를 즐길 수 있다. 자전거로 숲을 지나고, 호수를 건너고, 바다 옆을 지난다. 수영복을 준비했으면 바로 바다에 뛰어들 수도 있고, 도시락이 있으면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케이프 코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트레일 중 하나는 샌드 듄Sand Dune Trail(모래언덕)이다. 출발지에서 해변까지 닿으려면 약 3km의 모래 언덕을 넘어야 한다. 샌드 듄 트레일 초입에는 경고성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만일 트레일을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절대로 트레일을 벗어나지 말라고 한다. 

케이프 코드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도 좋다.
케이프 코드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도 좋다.

모래언덕은 초기 정착민들이 주변의 나무를 산업용 목재로 베어 내면서 사막화된 곳이다. 넓이는 약 34km2로 여의도 면적의 4배 정도다. 사람들은 이 언덕을 가지각색으로 즐긴다. 사륜구동 오프로드 자동차를 타고 모래 산을 넘기도 하고,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언덕을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샌드 듄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아더 코스타Arthur Costa는 프로빈스 타운에서 포드 자동차를 팔던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씩 일이 없을 때 관광객들을 모래 언덕까지 태워다주는 서비스를 해주곤 했다. 그런데 의외로 수요가 많자 아예 ‘Art’s Dune Tour’ 라는 회사를 차리고 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올해 77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모래언덕 공원에는 19개의 세크Shack(판잣집)가 있다.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세크가 있는 건 마치 산장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800년대만 해도 배가 난파되는 일이 잦았다. 케이프 코드 인근의 암초와 모래 언덕에는 늘 난파된 배들이 있었다. 난파선의 생존자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고자 세크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난파선은 옛 이야기가 됐다. 사용되지 않는 세크에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테네시 윌리엄스(극작가), 유진 오닐(작가), 잭슨 폴락(화가) 등이 영감을 얻고 갔다고 한다.

세크가 위치한 곳은 모래언덕 지대로 쉽게 접근할 수 없이 외진 곳이다. 한동안 문명과 단절하며 어떤 일에 몰두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기는 물론 상하수도 시설도 없다. 현대의 자발적 로빈슨 크루소를 꿈꾼다면 세크에서의 생활을 권한다. 작가는 작품 구상을 할 수 있고 시인이라면 시상을 얻을 것이다. 

세크는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시인, 댄서),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개방된다. 사전에 신청서를 받고 추첨하는 시스템이다. 올해는 1월 15일이 마감일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신청서에 본인 이력서, 자기소개서 그리고 작품을 올려야 한다. 화가는 5개의 작품을 보내야 하고, 작가는 5장 분량의 에세이를 써야 한다. 비용은 1주에 500달러며 최대 3주까지 머물 수 있다.

케이프 코드’란 이름의 감자칩 포장지에 너시트 등대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케이프 코드’란 이름의 감자칩 포장지에 너시트 등대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전통의 맛 ‘케이프 코드 감자칩’ 

케이프 코드는 바다를 향해 돌출된 곳이라 배들은 각별한 주의를 갖고 항해해야 했다. 세크가 만들어진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래톱과 해안에 배가 걸리는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케이프 코드에서 등대는 보물 같은 존재다. 

케이프 코드에는 총 14개의 등대가 있다. 몇몇 등대는 지금도 빛을 밝히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유적지로 남아 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하는 요즘 시대에도 등대 불빛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빛을 보면 배가 해안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이랜드 등대Highland Light House는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다. 약 20m 높이로 매 5초 간격으로 빛을 쏘아주고 있다. 본래 이 등대는 바다와 가까운 해안선 쪽에 있었다. 그런데 계속되는 풍화작용으로 해안선이 깎이면서 등대가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등대와 부속 건물을 지금의 자리인 내륙 쪽으로 이전하게 됐다.

너시트 등대Nauset Light house는 감자칩 로고로 이용되어 유명해진 곳이다. 지역명을 그대로 딴 ‘케이프 코드’라는 감자칩 봉투 전면에 새겨진 이미지가 너시트 등대다. 케이프 코드 감자 칩은 케틀Kettle(압력솥)에서 튀겨 내는 것이 특징이다. 케틀에서 만들어내면 바삭함이 더해지고 풍미도 더 좋아진다. 

이 감자칩 회사는 스티브 버나드Steve Bernard 형제가 1980년 창립했다. 원래 미국의 감자 칩은 1930년대까지 케틀에서 전통방식으로 튀겨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전되며 대량 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시간이 더 소요되는 케틀 방식은 도태되었다. 

버나드 형제는 이 전통 방식의 감자칩을 다시 부활시켰다. 초기에는 스티브의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한 구석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고, 재정적 어려움도 겪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업을 시작한 다음해 겨울, 한 대의 차량이 스티브의 가게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칫 딸과 아내를 잃을 뻔한 큰 사고였다. 

그때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이 사업을 일으키는 자금이 되었다. 이후 스티브는 회사를 버드와이저에 팔았다가 다시 사들이고, 지금은 유명 스낵회사 랜스Lance가 경영하고 있다.

미국 북동부를 여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케이프 코드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체험을 해보자. 풍미 가득한 감자칩 맛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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