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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반갑다 네팔!] 야속한 구름은 마칼루를 허락하지 않고…

조진수 네팔·히말라야 전문 사진가
  • 입력 2024.02.26 07:30
  • 수정 2024.03.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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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곤·마칼루BC-셀파니콜·메라피크 등정 (2)

틴 포카리를 향해 가는 스태프들.
틴 포카리를 향해 가는 스태프들.

11월 6일

구글 맵도 이곳에선 믿을 수 없어

분지형 캠프지라 조용해서 잠을 푹 잤다. 새벽 2시에 눈을 떴다. 나가보니 호기심을 보이던 소들은 모두 내려가고 없다. 몸은 찌뿌둥하고 뻐근하다. 손과 발에 부기도 느껴진다. 소변을 보고 나자 좀 나아졌다.

이제부터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길 위에 소똥이 많아 발을 옮기기가 어렵다. 묵었던 캠프지에도 배설물이 많아 치우느라 곤욕을 치렀다. 땔감이 부족한 돌포나 무스탕 지역에서는 야크나 소의 배설물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일일이 수거해서 잘 말린 다음에 취사나 난방 연료로 요긴하게 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비가 자주 와서 배설물이 흩어져 버린다. 게다가 주변에서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3,000m 이상에서 자생하는 랄리그라스 숲이 이어졌다. 꽃피는 계절에는 장관이라고 한다. 3,500m에 이르자 숲은 끝나고, 오르막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너덜지대는 크고 작은 돌이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지형이다.

몰룬 포카리 캠프지 왼쪽에 호수가 살짝 보인다.
몰룬 포카리 캠프지 왼쪽에 호수가 살짝 보인다.

눈으로 덮여 있어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자칫 미끄러지면 발목을 삐거나 다칠 수 있다. 길이 명확하지 않아 선두에 선 클라이밍 셰르파는 신경이 곤두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싸라기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눈을 맞아가면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짙은 구름이 시야를 가리고, 눈까지 덮여있어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점심 전에 미리 올라가서 루트를 파악하고 내려온 스태프들 덕분에 무리 없이 올라갔다.

고개 마루턱 아래쪽은 아이스 지대다. 벰바 셰르파가 선두에서 피켈로 얼음을 파헤쳐 발 디딜 곳을 일일이 확보했다. 마루턱에서 룽다와 가타를 발견하자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룽다는 확실한 이정표다.

혼곤에서 이곳까지는 길의 흔적은 있으나 이정표가 전혀 없다. 소들의 발자국만 어지러이 찍혀 있을 뿐이다. 길을 아는 스태프도 없다. 클라이밍 셰르파는 여러 해 전에 근처까지 왔다가 눈 폭풍을 만나 돌아갔다고 한다.

수량이 많고 긴 폭포를 발견했다. 촬영 후에 스태프들을 찾았더니 눈 쌓인 돌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몰룬 포카리(호수-3,800m) 위쪽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니 폭포는 몰룬 포카리에서 흘러넘친 물이었다.

클라이밍 셰르파와 몇 명의 스태프들은 루트를 찾아 눈을 헤치고 건너편 고개로 올라갔다. 휴대폰으로 구글 맵을 검색할 수는 있으나 사실 완벽하지는 않다. 그들은 워키토키로 한동안 교신하더니 루트를 찾았다고 전해왔다.

클라이밍 셰르파는 길을 몰랐으나 가치를 증명했다. 그를 고용한 이유는 명백하다. 히말라야는 준비를 철저히 할수록 조난과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다.

몰룬 포카리 서쪽 방향에서 촬영한 일출
몰룬 포카리 서쪽 방향에서 촬영한 일출

11월 7일

라마들은 순바티를 태우며 산신제

아침이 되자 잔뜩 끼었던 구름은 맑게 개었다. 어제 산신제를 올린 것이 효과가 있었다. 날씨가 나쁘면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라마들이 순바티를 태우며 산신제를 올린다. 순바티는 향기가 나는 관목으로 향을 대신한다.

몰룬 포카리는 가까워서 한 앵글에 담기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촬영하면서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몰룬 포카리로 흘러드는 폭넓은 개울이 나타났다. 징검다리는 있으나 돌 위에 살얼음이 얼어 있어 조심스럽게 건너야 했다.

이어지는 오르막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미끄럽다. 스태프들은 짐을 지고도 잘 올라간다. 등산화에 살짝 물이 스며들어 빙벽화로 바꿔 신었다. 착용감은 투박하나 방수와 보온성, 접지력은 등산화보다 훨씬 좋다.

마루턱에 올랐다. 몰룬 포카리의 전경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뷰포인트를 찾아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길은 없다. 눈이 쌓인 경사지라 매우 미끄럽지만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때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진은 중심이 되는 대상과 배경이 시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런 장소를 찾은 후에 빛의 상태를 살피고, 생생한 현장감을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해 직감적으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

던기 카르카 못미처 4,000m대의 고개를 지나는 스태프들.
던기 카르카 못미처 4,000m대의 고개를 지나는 스태프들.

뷰포인트를 찾고 보니 하필 눈이 쌓인 급경사 지점이다. 운 좋게도 뿌리가 깊은 순바티 나무가 밀생했다. 순바티에 의지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어제의 산신제부터 오늘의 촬영까지 순바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앞서가는 스태프들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벌써 선두는 고갯마루를 넘어간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4,000m대라 숨이 차고 발걸음은 무겁다.

고갯마루에 도착하자 마칼루봉이 잘 관찰된다. 그러나 야속한 구름은 카메라를 꺼내기도 전에 순식간에 마칼루봉을 가려버렸다. 이 지역은 오전 9시쯤이면 구름이 끼고, 정오를 넘어서면 비와 눈이 내리는 날씨가 반복된다.

주위가 온통 눈이어서 길은 안 보인다. 벰바 셰르파는 지도를 펴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길을 찾아냈다. 이름 모를 포카리 우측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 작은 카르카에서 점심을 지어 먹었다.

점심 후에도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계속 내려간다. 습지와 카르카가 반복된다. 기온이 높아서 온몸은 땀 범벅이다. 두 시간을 내려가자 방금 잘라낸 산죽나무 더미가 길을 막는다. 우회하라는 벰바 셰르파의 신호다.

길도 없는 계곡을 어렵게 내려가 20분 만에 일행을 만났다. 스태프들은 모닥불에 옷을 말리며 웃음꽃을 피운다. 피로회복에 웃음만큼 좋은 약은 없다.

정글캠프를 지나 던기콜라를 맨발로 건너는 스태프들.
정글캠프를 지나 던기콜라를 맨발로 건너는 스태프들.

11월 8일

1,000m 내려갔다, 다시 1,300m를 오르다

어제는 1,000m쯤 고도를 내렸고, 오늘은 1,300m 이상 고도를 높인다. 체력 소모가 많은데다 일교차는 크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격이고, 침낭이 눅눅해서 잠의 질은 좋지 않다.

스태프들은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늘려 체력을 유지한다.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다. 밥을 많이 먹으니 숨이 더 가빠진다. 밥을 줄이고, 간식을 자주 먹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캠프지에서 조금 내려가자 계곡이 나타난다. 다리는 없고,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지만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계곡을 건넜다. 등산화가 젖으면 체온 조절이 어렵고, 동상에 걸릴 위험도 있다.

또 다른 계곡에서 통나무 다리를 만났다. 바닥에 넓적한 나무를 드문드문 못으로 고정해 놓았다. 가느다란 로프는 왼쪽에만 매여 있다. 오른쪽에도 굵은 로프를 새로 설치해서 양손으로 잡고 건넜다.

던기포카리 옆에서 휴식 중인 스태프들.
던기포카리 옆에서 휴식 중인 스태프들.

계곡을 끼고 한 시간을 돌아가다 다시 위쪽으로 올라간다. 길은 어제보다 양호하다. 고맙게도 누군가 돌을 쌓아 방향을 표시해 놓았다. 길을 잘 모르는 트레커에게 이런 이정표는 큰 도움이 된다.

산죽나무 군락을 지난다. 잎의 물기에 옷이 젖어 신경이 쓰인다. 계곡을 끼고 올라가노라니 호흡은 점점 가빠진다. 힘들 땐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가능하면 단전까지 호흡을 내리는 게 좋다.

10시경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구름이 몰려온다.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스태프들은 각자 준비해 온 큰 비닐봉투를 꺼내 짐과 몸을 감싼다. 비닐은 방수와 보온에 효과가 뛰어나다. 겨울 산행에는 거의 필수품이다.

3,200m는 랄리그라스 군락, 3,500m부터는 순바티 군락이다. 순바티는 높이가 70cm쯤 되고, 잎사귀는 약간 넓고 뾰족해서 주목과 흡사하다. 태우면 향기가 난다. 네팔의 가정과 절에서는 순바티를 향으로 사용한다.

시야를 방해하는 구름 때문에 고성을 질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올라갔다. 3,800m에 이르자 다행히 시야가 좋아지고 눈발이 잦아든다. 4,200m의 고갯마루에는 누군가 돌탑에 가타를 걸어놓았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서 무너진 돌집 옆에 텐트를 쳤다. 평지라서 야영지로는 안성맞춤이다. 날씨가 쌀쌀하고, 진눈깨비가 내린다. 바람이 심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아직은 조용하다.

이곳에는 물이 없어 한참을 내려가서 구해왔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핫팩을 껴안고 있으니 살 것 같다. 춥기는 하나 몸살 조짐은 없어 위안이 된다.

양리카르카 못미처 바룬나디콜라의 폭포.
양리카르카 못미처 바룬나디콜라의 폭포.

11월 9일

이틀 강행군에 스태프들도 피곤한 기색

새벽에 머리맡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랜턴을 비춰 보니 누런 나방이다. 정글을 지나면 벌레들이 등짐과 옷에 붙는 경우가 있다. 우기에는 육지 거머리가 가장 고약하다. 소리 없이 옷깃을 파고들어 피를 빤다.

새벽부터 구름이 몰려온다. 앞에 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갔으나 마땅한 뷰를 찾을 수가 없다. 마칼루봉은 큰 산이 앞을 가리고, 구름까지 시야를 가린다. 구름이 걷혀도 좋은 사진을 기대하기 어려워 출발했다.

큰 산을 빙 돌아서 올라간다. 4,500m를 넘자 깔로 포카리가 나타난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분위기가 신비롭다. 프랑스 사람 한 명이 가이드와 야영 후에 늦은 아침을 먹고 있다. GPS를 이용해 길을 찾는다고 한다.

깔로 포카리를 떠나 산의 등고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올라간다. 또 다른 4,500m의 고갯마루턱에 도착했다. 여기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갔다. 네팔 정부가 돌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으나 눈이 쌓여 매우 미끄러웠다.

이어서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위쪽에 있는 돌산의 바위가 조금씩 부서지고 굴러떨어지면서 형성된 지역이다. 낙석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범위가 매우 넓다. 돌은 검정색이고, 석질은 화강암처럼 강하지 않다.

카르카를 지나자 다시 오르막길이다. 물이 있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는데 물을 발견할 수 없다. 스태프들은 힘에 부쳐 말수가 부쩍 줄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고개를 겨우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난다.

이곳의 북사면은 눈이 있어 아이젠을 차고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결국 작은 포카리를 발견하고 늦은 점심을 지어 먹었다. 오늘은 종일 구름을 헤치고 걷는다.

점심 후에도 고개는 계속된다. 4,000m 고개여서 숨이 가쁘다. 너덜지대도 만만치 않다. 경사가 급하고, 눈이 덮여 있어 매우 미끄럽다. 자칫하면 다칠 수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야크 카르카에 지어진 조립식 건물과 티하우스를 발견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면 사람이 살고 있다. 스태프들이 들어가 수유차를 주문했다. 모처럼 많은 손님이 찾아오자 여주인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었다.

 벰바 셰르파는 두 시간을 더 가서 캠프를 치자고 주장한다. 진도를 빨리 빼놓으면 나중에 여유롭긴 하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이틀간 강행군을 한 터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스태프들의 사기를 고려해 일찍 운행을 끝냈다.

오늘은 좋은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히말은 노고를 알고, 상응하는 보답을 반드시 내어준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양리카르카의 전경.
양리카르카의 전경.

11월 10일

카트만두보다 몇 배 비싸도 감지덕지

4,000m 이상에서 며칠 야영했더니 소변이 시원치 않게 나온다. 몸이 전체적으로 무겁다. 고소가 살짝 온 것 같다. 수십 년간 고산 오지를 방문하면서 사실 고소에는 단련이 됐다.

고소를 심하게 겪은 분에 의하면 방광이 가득 차서 고통스러운데 아무리 힘을 줘도 소변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고도를 낮추면 증세는 호전된다.

양리 카르카를 향해서 출발했다. 조금 오르다가 내려가는 길이다. 깔마 나무와 순바티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더 내려가자 덩그리 나무와 랄리그라스 숲도 보인다. 다른 지역과 달리 화재의 흔적이 없어 원시림 그대로다.

마칼루B.C 방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바룬 나디(강)를 거슬러 올라간다. 길은 좋으나 산사태 지역이 몇 군데 있어 통과에 애를 먹었다. 계곡의 반대편은 타쉬가온에서 투투라를 넘어 도바테를 지나 내려오는 길이다.

계곡 양편의 길은 양리 카르카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나무다리로 연결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양리 카르카(3,557m)에 도착했다. 입구의 높은 지대에 새로운 로지와 곰파(절)가 들어서 있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쑥대밭이었다. 전년도에 위쪽의 포카리가 터져 심한 수해를 입은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당시 수해를 면한 저지대의 곰파 앞에 스태프들과 쌓았던 돌둑은 여전했다.

재차 물이 덮치더라도 곰파만큼은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스태프들과 호박돌을 힘들게 옮겨와 만든 돌둑이었다. 현지인들은 개울가에 커다란 돌초르덴(탑)을 조성해 놓았다. 재난을 불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티하우스의 여주인은 막내 여동생으로 바뀌었다. 나무로 지은 허름한 집에서 장작불로 물을 끓이고 밥을 한다. 전기는 당시나 지금이나 태양광 패널에 의존한다. 불 옆에 앉아 등산화를 말리면서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이 티하우스에서 식량과 석유를 보충할 수 있었다. 값은 카투만두에 비해서 몇 배는 비싸다. 그러나 구할 수만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시즌 막바지여서 조만간 겨울이 닥치면 이 티하우스도 폐쇄된다.

두 시간을 올라가자 야크 카르카가 나타났다. 눈이 조금씩 내리자 스태프들의 마음이 급해진다. 얼른 텐트를 치고, 삭정이를 주워다가 모닥불을 지펴 젖은 옷을 말렸다. 불을 쬐자 추위에 굳은 몸이 서서히 풀려간다.

스태프들은 현지인이라 고소에는 강하다. 대신 무릎 관절과 허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포터의 직업병이다. 약을 지급했으나 임시변통이라 걱정스럽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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