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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환경-자연 영화 새들과 춤을] 새가 머리 나쁘다? 모르는 말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4.03.19 07:10
  • 수정 2024.03.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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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새들과 춤을

우둔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중에 ‘새대가리’가 있다. 영어에도 ‘birdbrain’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새가 지능이 낮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조류는 대부분 머리가 작으며, 그에 따라 뇌의 크기도 작다. 이런 이유로 새가 머리가 나쁘다는 속설이 생겼을 것이다. 특히 닭이나 타조처럼 몸통에 비해 머리 크기가 더 작은 조류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류에 상당히 머리가 좋은 종이 많으며, 일부 측면에서는 포유류를 능가하기도 한다. 물론 지능이 낮은 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의 인지 능력에 관한 연구가 쌓임에 따라 까치, 까마귀, 앵무새 등 다양한 새들이 도구 사용, 놀이, 추상적 사고 등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새들은 대부분 비행을 해야 하므로 머리가 작고 가벼워야 유리하기에 신경세포를 고밀도로 작게 눌러 담았다는 것이다.

‘신피질 없어도 생각할 수 있다’ 입증

조류의 지능이 저평가된 또 다른 이유는 포유류의 뇌에서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인 신피질이 새들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는데, 신피질 없이도 사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조류 지능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위트 넘치는 영국 다큐멘터리 <새들과 춤을Dancing with the Birds>(감독 휴 커디, 2019)을 보고 나면 아마도 ‘새대가리’ 같은 말은 더 이상 입에 담지 않게 될 것이다.

배경은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뉴기니섬이다. 넓이 78만 5,700㎢로 그린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동부는 파푸아뉴기니의 영토이고, 서부는 인도네시아의 영토인 뉴기니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정글 섬이다. 이곳에서 각종 새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기이한 구애 행위를 진화시켜 왔다.

두 가닥 길게 땋은 머리를 한 듯한 ‘기드림극락조’는 ‘흔들기’의 명수이다. 이곳 조류 가운데 가장 긴 머리 깃을 자랑한다. 기드림극락조는 우선 울음소리를 내어 암컷을 부른다.

암컷이 주변 나뭇가지로 날아들면 마치 그네를 타듯 나뭇가지를 흔든다. 기다란 머리 깃도 앞뒤로 현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면 암컷은 나뭇가지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머리 깃은 얼마나 긴지, 또 머리 깃을 얼마나 멋지게 흔드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수컷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컷은 그냥 날아가 버렸다.

다양한 유혹의 기술

사실 어떤 극락조 수컷에게도 짝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지표면에서 3m 높이에 낡고 흔들거리는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검은낫부리극락조’에겐 더없이 중요한 곳이다. 이 새는 암컷을 유혹하길 원하면서 매일 아침 이곳으로 온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소리부터 낸다. 울창한 덤불 속에서도 이 구애 소리는 멀리까지 전해진다. 좋은 첫인상을 주려고 비장의 무기도 준비했다. 검은낫부리극락조의 특이한 어깨 깃털은 오랫동안 용도가 밝혀지지 않았다. 새는 어깨 깃털을 머리 위로 감싸 올려서 마치 검은색 비행선처럼 유선 형태를 만들었다.

제작진은 ‘우~왕’ 하는 효과음을 사용해 화면 몰입도를 높인다. 다큐 <새들과 춤을>은 시종일관 여러 새들의 움직임에 맞춘 배경음악을 아주 센스 있게 활용하고 있다.

영국의 인기 배우 스티븐 프라이가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유머러스한 내용을 필요에 따라 익살스러운 억양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숲속에는 먹이가 풍부해서 극락조 수컷들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지요. 바로 암컷을 유혹하는 일입니다.”

검은낫부리극락조는 어깨 깃털로 온몸을 유선형으로 감싼 뒤 특유의 소리를 내어 암컷을 부른다. 나무 기둥 위에서 새는 시선을 끌기를 바라며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드디어 암컷이 찾아왔다. 암컷은 수컷의 꽁지깃을 부리로 살짝 잡아당긴다. 암컷이 수컷을 집적대는 건 좋은 신호다. 암컷은 수컷 바로 앞까지 와서 수컷의 유선형 날개를 꼼꼼히 관찰한다. 수컷의 반짝거리는 깃털은 최상의 몸 상태를 나타낸다. 수컷은 시험을 통과했고,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 짝짓기에 성공한다.

검은낫부리극락조처럼 구애의 말뚝으로 부러진 나무를 이용하는 것도 독특하지만, 춤꾼 새 중엔 암컷의 요구가 더 깐깐한 새들도 있다. “암컷들은 짝짓기 상대가 창의적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맥그레거바우어새’는 잔가지를 엮어 원기둥처럼 약 1m 높이의 ‘바우어bower’라 부르는 집을 짓고 그 주위에 정원도 꾸민다. 구애용 구조물을 이렇게 높이 짓는 새는 없는데, 이 새는 바우어를 손보느라 한 해를 거의 다 보낸다. 다큐에 등장하는 구조물은 무려 7년 동안 지은 것이다. 

“이 바우어는 동물 한 마리가 지은 구조물 중에 가장 야심 넘치는 작품일 겁니다.” 

맥그레거바우어새가 아무렇게나 잔가지를 쌓고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가지마다 위치가 정확히 정해져 있다. 나뭇가지를 물고 이리저리 종종거리며 꼼꼼하게 바우어를 정리하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내레이터도 한마디 보탠다. 

“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맥그레거바우어새가 등장한다. 아무도 없자 말썽을 일으키러 온 것이다. 이 새는 다른 새가 지어놓은 바우어에서 나뭇가지를 빼기 시작한다. 

“바우어새의 질투심은 못 말릴 때가 있지요.” 

이렇게 망치는 건 이유가 있다. 경쟁자의 바우어를 망가뜨리면 암컷의 눈엔 자기가 만든 바우어가 더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나타난 원래 주인 맥그레거바우어새는 바우어 보수를 시작한다. 암컷은 수컷의 바우어 크기가 커야 성에 찬다. 커다란 탑을 유지할 수 있는 수컷이라면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징조이므로.

맥그레거 구역에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새끼 멧돼지가 나타나 바우어를 파헤치기 시작한 거다. 그러자 인근 나뭇가지로 피해 있던 맥그레거바우어새가 놀라운 ‘필살기’를 선보인다. 바로 돼지 소리 흉내 내기이다. 꿀꿀 소리를 냈다가 소용없자, 꽥꽥대는 돼지 소리를 내고, 급기야 개 짖는 소리까지 흉내 내어 돼지를 쫓는다.

맥그레거바우어새는 짝짓기 상대에게 구애할 때 인근 마을에서 듣고 모사한 다양한 소리들을 낸다. 나무 베는 소리, 마치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 심지어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낸다. 맥그레거바우어새 암컷도 신기해하지만, 화면을 보고 있는 관객도 놀랄 수밖에.

암컷 유인하려 ‘바람잡이’ 고용

바우어새는 혼자 구애를 펼치지만, 중앙아메리카 파나마 정글의 어떤 새들은 짝짓기 상대를 찾는 방법으로 팀워크를 동원한다. 

머리의 새빨간 깃털이 매력적인 ‘창꼬리무희새’는 2마리가 함께 춤을 춘다. 한 마리는 바람잡이다. ‘공연용 횃대’인 나뭇가지에서 무희새 2마리가 마치 널뛰기하듯 번갈아 점프한다. 21년간 무희새를 연구한 팀의 관찰에 따르면 <새들과 춤을>에 나오는 이 듀오는 5년간 함께 공연해 왔다고 한다. 발목에 연구팀이 채워놓은 인식표를 달고 있다.

암컷이 나타나면 수컷 2마리가 정신없이 오르내리며 구애를 펼치고, 암컷이 반응하면 바람잡이는 물러나고 더 센 수컷이 짝짓기를 하게 된다.

환심 사러 정원까지 꾸며

이외에도, 다수의 암컷 앞에서 다수의 수컷이 각자 정해진 자리를 잡고 계속 제자리에서 몸의 방향을 바꿔가며 콩콩 뛰는, 주황색 ‘기아나루피콜새’도 인상적이다.

나뭇가지로 마치 아치를 뒤집어 놓은 듯한 U자 모양의 바우어를 만들고, 그 바우어에 자리 잡는 암컷 앞에서 파란 열매를 입에 문 채 엉덩이와 몸통을 시계방향을 천천히 돌리며 춤을 추는 ‘불꽃바우어새’도 멋지다. 노란색 몸통과 붉은색 머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밝은 색을 지닌 새”로 불리는 이 새는 암컷의 호감을 사려고 동공을 키웠다 줄이는 ‘개인기’도 선보인다.

공연 무대를 꼼꼼히 정리하고, 마치 발레리나 동작 같은 9개의 복잡한 안무를 정확한 순서대로 펼치는 ‘캐롤라여왕극락조’의 춤은 압권이다.

중단 없이 움직이는 새들을 지근거리에서 촬영하고 편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지 탄성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이다. 새의 깃털의 세세한 결까지 드러내는 선명한 카메라 화질도 좋다.

뉴기니와 중남미의 밀림 풍경이 데스크톱 화면과 스마트폰에 지친 눈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넋 놓고 보고 나면 기분까지 좋아지는 유쾌한 다큐멘터리이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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