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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피츠로이 등반] 5060 아재들 30년 만에 버킷리스트 이루다

이형윤(부산빅월클럽 회장)
  • 입력 2024.03.22 07:50
  • 수정 2024.03.27 10:33
  • 사진(제공) : 주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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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Wall]

부산빅월클럽 회원들이 지난 1월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프랑코-아르젠틴 루트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다. 본지 주민욱 사진기자가 원정대원으로 참여했다.

오르막 너덜지대를 올라가면 피츠로이와 토레스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들어온다. 부산빅월클럽 이형윤씨가 힘겹게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오르막 너덜지대를 올라가면 피츠로이와 토레스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들어온다. 부산빅월클럽 이형윤씨가 힘겹게 너덜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결국 여기에 왔구나!’ 

30여 년간 꿈꿔 온 곳이었다.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세로토레, 엘찰텐. 이름만 들어도 설렘이 폭발하는 곳. 10여 년 전부터 나는 부산빅월클럽bbc 회원들과 파타고니아에 가야겠다고 계획했다. 그동안 나는 미등봉, 신 루트 개척 등 이런 선구적인 등반보다 유명하고 아름다운 등반지에서 가능한 안전한 등반여행을 좋아했다. 멤버들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정상이 코앞이라도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돌아섰기에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꾸준히 등반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그동안 갔던 곳을 꼽아볼까? 알프스, 요세미티, 중앙아시아, 트랑고타워, 아마다블람 등이 떠오른다. 등정에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등반 여행은 늘, 언제나 즐거웠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 항상 후회 없는 등반을 했다. 

하지만 이번 파타고니아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에게는 식욕, 성욕, 수면욕 외에 등반욕도 있었다는 것을. 세로토레 7피치에서 추락하는 배낭을 보면서 그것이 더욱 절실하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지는 배낭을 바라보면서 당연히 화가 나고 걱정도 됐지만 허탈함에 웃음도 나왔다. ‘아, 나는 아직 나를 제대로 모르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등반욕이 없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피츠로이를 등반하려면 긴 설벽구간과 암릉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피츠로이를 등반하려면 긴 설벽구간과 암릉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날씨 좋아

2022년 유럽 알프스 그랑드조라스에 다녀온 뒤 그해 겨울, 2년 뒤(2024년)에 파타고니아로 원정을 가자고 다짐했다. 이 다짐을 함께했던 멤버가 살짝 바뀌었다. 영효씨는 직장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건이 형님, 규철 형, 종화 형 그리고 베이스 매니저로 상용 형님이랑 알프스 멤버 그대로 가기로 하고 준비했는데 출발 두 달 전, 종화 형이 어깨를 다쳐 빠지게 됐다. 대신 나와 20년 지기인 주민욱 기자가 촬영차 합류했다. 그와 오랜 시간 같이 다녀서 딱히 함께 훈련을 하지는 않았고, 나와 민욱이는 열심히 여행 경비만 준비했다.

그렇게 중년의 경상도 남자 5명이 35시간이 넘는 지루하고 힘든 비행시간을 견딘 끝에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틀 동안 머무르면서 시차적응 후 지난 1월 8일 엘찰텐 마을에 입성했다.

피츠로이 등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곳에서 첫 비박을 했다.
피츠로이 등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곳에서 첫 비박을 했다.

한국에서 카톡으로 인사했던 석주와 지은씨가 우리가 머무는 숙소로 찾아왔다. 먼 이국 땅에서 젊은 후배들을 보니 많이 반가웠다. 두 사람은 한 달 전에 와서 벌써 몇 군데를 등반한 후였다. 

그들에게서 이런 저런 정보들을 들었다. 이틀 뒤부터 4일 정도 날씨가 좋다면서 그들은 세로토레산군 쪽으로 등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역시 나는 해외등반 날씨요정이다!’라고 확신했다. 

50~60대인 우리들은 시차적응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좋아 계획했던 4~5일의 적응기간 없이 등반에 나서기로 했다. 멤버 중 3명이 등반에 나서고 1명은 촬영을 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

우리는 어프로치를 최대한 쪼개어 체력손실을 줄이려고 했다. 첫날은 전망대 토레스호수에서 1박하고 다음날 브레차에서 또 1박, 그리고 벽에서 혹은 브레차에서 다시 1박한 다음 하산할 계획을 세웠다. 

엘찰텐 마을에서 피츠로이로 이동하는 중. 피츠로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하지만 벽 바로 앞까지 거리가 꽤 멀다. 우리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중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엘찰텐 마을에서 피츠로이로 이동하는 중. 피츠로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하지만 벽 바로 앞까지 거리가 꽤 멀다. 우리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 중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월 11일, 전망대까지만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오전 11시쯤 출발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등산로 입구에 가니 공단 직원이 등반신고를 했는지 확인했다. 우리는 다행히 전날 석주씨가 알려준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마트폰으로 등반신청을 한 터였다. 직원에게 신청서를 보여 주자 그는 우리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이었을 것으로 추측)을 설명한 다음 통과시켰다(제복 트라우마가 있는지 항상 제복 입은 사람만 보면 긴장됨).

카프리호수와 포인세노트 야영장까지는 거의 산책로여서 무게 3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도 즐거웠다. 하지만 야영장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구간 1시간을 오르면서 땀을 좀 흘렸다. 오후 5시 30분 토레스호수에 도착했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정말 내가 파타고니아에 왔구나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다들 사진 찍느라 바빴다. 

호수 주변에 마땅한 사이트가 없어서 2인용 텐트 2동을 설치했다. (다음날 보니 토레스 호수 너머 뒤쪽 작은 호수 주변에 텐트 사이트가 많았고, 등반팀 텐트도 몇 동 있었다.) 날이 좋아서 피츠로이산군을 배경으로 한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등반 때까지 우리 원정팀에 행운이 함께하길 빌면서 기분 좋게 잠들었다. 

등산로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모양이 꽤 예뻐서 주변 풍경에서 시선을 자꾸 빼앗았다.
등산로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모양이 꽤 예뻐서 주변 풍경에서 시선을 자꾸 빼앗았다.

떨면서 지새운 밤

1월 12일, 멀리 보이는 햐얀 능선을 넘어 브레차까지 갈 계획이었다. 상용 형님은 여기까지만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남은 멤버는 이제 하산 때까지 비박하기로 하고 텐트를 주변에 데포시켰다. 우리는 호수 왼쪽으로 돌아 설벽으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등반가들만 진입이 가능한 경계선 같은 곳이다. 오전 8시 넘어 등반을 시작했다. 늦은 시각이었다. 각자 크램폰을 착용한 다음, 어느 정도 크러스트된 설사면 위를 묵언수행하듯 걸었다. 나지막한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능선에 올라서니 10시 30분쯤 됐다. 여기서 다시 암릉과 설벽을 계속 넘어서 가야 했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한 번 실수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질지 몰랐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간이었다. 오후 1시 30분쯤 파소 수페리어(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이미 5동의 텐트가 있었고, 설동도 구축되어 있었다. 등반가들이 많았다. 이곳은 포인세노트, 피츠로이 등 이 주변을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지형이 움푹 파인 빙수 그릇처럼 생겨 강풍을 피할 수 있다. 여기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등산로 외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판인데, 안내판 말고 인공 구조물은 없다.
등산로 외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판인데, 안내판 말고 인공 구조물은 없다.

로컬 클라이머가 다가오더니 우리에게 “오늘 어디까지 가?”라고 물어봤다. “브레차까지”라고 답하니 머리를 끄떡이는데,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이 눈빛은 다음날 가파른 설벽구간을 오르면서 머릿속에서 또 떠올랐다. 

우리는 오후 2시 넘어 다시 출발했다. 파소 뒤쪽 빙하지대로 내려가기 위해 20m 고정로프로 하강한 뒤, 2시간 동안 ‘하얀 설탕’ 위를 걸었다. 규철 형과 민욱이는 주변의 아름다움을 렌즈에 담기 바빴다. 내 눈도 달콤한 풍경을 연신 핥았는데, 어깨와 허리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쓴맛을 보는 중이었다.  

피츠로이로 가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규철, 이형윤씨.
피츠로이로 가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규철, 이형윤씨.

파소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뒤 우리는 드디어 피츠로이 하단 벽 앞에 도착했다. 모두가 지쳐 있었고,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예상보다 2시간 오버했다(이 지역은 해가 길어서 밤 10시가 넘어야 어두워지다 보니 등반가들에겐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좋다). 밤 8~9시 사이에는 브레차에 도착해서 비박할 계획이었는데, 이때 상태로는 설벽등반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여기서 운행을 멈추고 비박 후 다음날 새벽에 등반을 하기로 했다. 눈삽이 없어서 코펠로 50cm 정도 눈을 파내고 4명이 누울 만한 공간을 구축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박지였다. 다행히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았다. 알프스나 히말라야에서도 이렇게 눈부시고 깨끗한 설원은 보지 못했다.

건조식량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각자 자리를 잡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그나마 따뜻하게 자기 위해 챙겨온 건 침낭커버가 전부였다. 그래도 피곤해서 그런지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많은 트레커들이 이곳을 찾지만 그들을 위한 인위적인 구조물이 코스 안에 거의 없다. 습지를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마저도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많은 트레커들이 이곳을 찾지만 그들을 위한 인위적인 구조물이 코스 안에 거의 없다. 습지를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마저도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비박색에서 결로현상 때문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알람 소리처럼 울렸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고 짤막한 수면을 이어갔다. 알파인 등반에서의 비박은 이런 식으로 계속 잠을 끌고 가면서 해가 뜰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다가 진동벨처럼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옆에서 자는 민욱이가 떨고 있었다. 그는 추워서 한숨도 못 잤다면서 덜덜 떨면서 말했다. 나는 일어났다. 둘이서 비박색을 뒤집어쓰고 리액터 스토브를 켜고 몸을 녹였다. 그리고 다시 누워서 쪽잠을 이어갔다.  

(나는 국내에서 2월 말 날씨에서 금정산 부채바위 정상에서 침낭 없이 비박하며 복장의 레시피를 결정해서 원정 때 그대로 착용한다. 알프스, 트랑고타워, 그리고 이번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토레스호수를 지나 설벽 구간을 통과하는 김건씨. 이 구간부터 등반가들만 갈 수 있다.
토레스호수를 지나 설벽 구간을 통과하는 김건씨. 이 구간부터 등반가들만 갈 수 있다.

굴러떨어지는 배낭, 아쉬운 하산

1월 13일,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건이 형님도 밤새 잠을 설쳐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민욱이도 마찬가지였고. 건이 형님이 이런 컨디션으로는 이어질 등반과 벽에서의 비박에 짐이 될 거라며 등반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민욱이도 자기도 아쉽지만 건이 형님이랑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틀 안에 등반을 마무리하려면 4명 모두 움직이는 게 무리이긴 했다. 결국 규철 형이랑 나랑 둘이서 70m 로프 1동으로 등반하고 건이 형님과 민욱이는 마을로 하산하기로 했다. 

최대한 가볍게, 빨리 가기 위해서 버너와 코펠은 놔두고 보온병 1개와 간식, 비박색만 챙겼다. 오전 6시 30분부터 우리는 규철 형의 선등으로 왼쪽 설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약 300m 높이에 기울기 60도 정도의 설벽이라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60m 간격으로 총 8마디를 끊었다. 확보물은 피치 끊을 때만 바위와 설벽의 경계선에 캠을 꽂아 넣어 설치했다. 

첫 설벽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피츠로이 벽 앞에 도착한다. 등반가 뒤로 파소 수페리어(하이캠프)가 숨어 있다.
첫 설벽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피츠로이 벽 앞에 도착한다. 등반가 뒤로 파소 수페리어(하이캠프)가 숨어 있다.

오전 9시가 넘어 서면서 햇빛이 비쳤다. 눈이 푹푹 내려앉았다. 체력소모가 더 심해졌다. 위험성이 높아져서 연등으로 오르려던 계획은 포기했다. 둘 다 이틀간 운행에 체력소모가 심해서 그런지 속도가 나질 않았다. 갈증이 계속 났다. 스토브를 놔두고 온 터라 보온병의 물도 최대한 아껴야 했다. 입 속으로 눈을 들이밀었다. 오후 1시쯤 브레차 암릉구간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세로토레가 눈앞에 선명했다. 쿨와르 쪽으로 2명의 클라이머가 하강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상을 다녀왔나?’ 부러웠다.

토레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셌다. 어제 파소에서 만난 로컬 클라이머의 눈빛이 떠올랐다. 원래 계획대로 전날 여기까지 진행했다면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똥 바람’을 맞으며 비박해야 했을 텐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피츠로이 등반을 마치고 밤 10시경 엘찰텐 마을로 들어서고 있는 원정팀.
피츠로이 등반을 마치고 밤 10시경 엘찰텐 마을로 들어서고 있는 원정팀.

4, 5급의 쉬운 암릉구간을 오르고 나니 하얀 설릉이 보였다. 라 실라La Silla라는 구간이었다. 위로 상단벽 1피치가 보였다. 아! 아주 작은 실크랙이 보였다. 그 실크랙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겁을 주는 것 같았다. ‘벽 앞에 가면 실크랙은 착한 크랙일 거야. 저 이빨은 분명 그냥 미소일 뿐이야.’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1피치 벽 앞에 도착했다. 오후 3시였다. 12시쯤에는 등반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역시 또 늦었다. 여기까지 규철 형이 계속 리딩했다. 상단은 내가 하고 싶어서 형에게 배낭을 주니 감사하게도 양보를 해줬다. 언제나 배려심 많은 형이다. 암벽화를 신고, 손에 테이핑을 하니 설렜다. 암질이 거칠었는데, 덕분에 손맛이 좋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1피치(6b 45m)를 끝내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피츠로이산군에 햇빛이 들고 있다.
피츠로이산군에 햇빛이 들고 있다.

2피치(5, 50m)도 쉽게 끝내고, 3피치(6a 45m) 반침니 구간에 들어섰다. 크랙에 얼음이 꽉 차있었다. 얼음 속 재밍은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지만 무난히 잘 통과했다. 규철 형이 주마링으로 따라왔다. 4피치는 오른쪽 사선을 따라 길이 나 있었다. 5급의 쉬운 구간이라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가는데, 10m 정도 오르니 10시 방향, 2시 방향으로 종료 앵커가 보였다. 좀더 자연스러운 라인을 따라 2시 방향 쪽으로 가다 보니 길이 20m 정도 되는 슬랩이 나타났다. 확보물 설치공간도 없었다. ‘아! 잘못 온 것 같아!’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내려가서 돌아가려니 시간낭비가 될 것 같았다. 슬랩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붙었다. 5m 정도 오르다가 냄비에서 누룽지가 뜯어지듯 바위껍질이 뜯어졌다. 6~7m 정도 추락했다.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옷이 찢어졌다. 여기저기 욱신거렸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고민 없이 클라이밍다운해서 반대방향으로 다시 등반했다.

피츠로이 벽 앞, 여기서 비박했다. 다음날 새벽 4시쯤부터 등반 준비에 나섰다.
피츠로이 벽 앞, 여기서 비박했다. 다음날 새벽 4시쯤부터 등반 준비에 나섰다.

다행히 다시 길을 찾았다. 위로 6, 7피치까지 길이 보였다.

5피치도 5급의 쉬운 길이었다.  6피치(6c 50m)는 이 루트에서 최고난이도라고 알려졌는데, 그에 따라 집중하면서 등반했다. 역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조금씩 지쳐갔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벽 위로 엷게 흐르는 물이 나타나면 이것을 빨아먹기 위해 등반 중 수시로 바위와 키스를 나눴다.

7피치(6b+ 50m)도 6피치와 마찬가지로 디에드르 형태였다. 캠 3, 4, 5호가 많이 사용됐다. 크랙이 넓었고 크기가 일정해 같은 사이즈의 캠을 계속 사용해야 했다. 이전에 설치한 캠을 빼고 다시 설치하면서 올랐다. 저녁 8시 30분쯤 됐을 때 7피치에서 등반을 멈췄다. 비박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벤치 같은 바위 위에 눈과 잔돌을 정리하니 둘이서 발 뻗고 누울 공간이 나왔다. 3명이 왔다면 앉아서 밤을 새워야 했을 것이다. 7피치 지점은 움푹 들어가 있어 바람이 잘 들이치지 않았다. 비박장소로 좋았다. 비박하면서 푹 자기는 처음인 듯했다. 발가락도(4년 전, 히말라야 등반 때 동상을 입고 발가락 6개를 절단했다. 동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모 양말을 신고, 규철 형 엉덩이 밑에 넣고 자니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1월 14일, 7피치에서 불타는 듯한 일출을 보며 즐거운 아침을 맞았다. 약간의 바람과 구름이 있었지만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간단히 간식을 먹으면서 아침을 즐겼다. 그런데 폰을 보던 형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오후부터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나빠진다고 했다. 그는 지금 당장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형! 4시간 정도만 하면 정상까지 갔다 올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형은 폰을 나에게 보여 주면서 대답했다. “위험해!” 축구 경기로 치면 규철 형은 공격수 스타일이다. 나는 수비수 스타일인데, 이때는 입장이 바뀌었다. 형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내려가기로 동의했다. 서둘러 배낭을 정리하고 장비들을 정리하는데, 뭔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배낭이었다. 정상에 대한 미련도 같이 굴러갔다.

첫 번째 피츠로이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내려온 후 우리에겐 다음 등정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날씨가 계속 나빴다.
첫 번째 피츠로이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내려온 후 우리에겐 다음 등정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날씨가 계속 나빴다.

‘아! 큰일이다!’ 바일, 카메라, 크램폰 등 모두 사라졌다. 라 실라 빙사면 구간을 지나려면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서둘러서 아침 7시쯤 하강을 시작했다. 여러 번의 하강을 끝내고 1피치 종료지점에 도착했다. 30m 간격으로 하강 포인트는 잘되어 있어 무리 없었다. 1피치에 누군가 회수하지 못한 50m 로프가 걸려 있었다. 그 줄을 이용해서 우리는 45m를 한 번에 하강했다. 토레계곡에서는 어제보다 더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진짜 위험했다. 크램폰도 없이 이 똥 바람을 맞으며 빙사면 구간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한 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버려진 줄과 우리 줄을 연결해서 최대한 길게 확보한 상태로 라 실라 빙사면을 엉금엉금 기듯이 통과했다. 다시 브레차에서 쿨와르 쪽으로 여러 번 하강한 끝에 무사히 땅에 닿았다. 10시쯤 설원 캠프지에 도착했다. 내려오니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여유를 되찾았다. 식사와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짐 정리를 한 다음 굴러 떨어진 배낭을 찾으러 갔다. 바닥까지 추락한 배낭은 전부 터져 있었다. 배낭 안에 있던 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바일 2자루와 카메라, 배터리, 비박색 등은 끝내 찾지 못했다. 

잃어버린 짐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3시쯤 파소(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저녁부터 날씨가 좋지 않다는 소식에 모두 내려간 듯했다. 서둘러 무거운 배낭을 메고 토레스호수에 데포한 짐을 찾아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내내 생각했다. 

마을 주변 산봉우리에 올라 내려다 본 엘찰텐.
마을 주변 산봉우리에 올라 내려다 본 엘찰텐.

‘이틀만 날이 좋으면 등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아쉬워하지 말자. 아직 일정은 보름이나 남았다.’

이틀 안에 벽을 등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길이 멀었다. 마을 부근에 다다르니 일행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날씨 예보를 보고 모두 걱정했다고 했다.  “잘 내려왔어. 다행이야. 다음을 기다리자.”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데 다음은 없었다. 그 뒤 보름간 날씨는 똥 바람이 지배했다. 이렇게 허무하고 아쉬운 등반여행은 처음이었다. ‘받아들여야지.’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형님들과 친구와 먹고, 자고 숨 쉬며 즐거운 추억을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거면 됐지 뭐!’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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