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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식물 이야기 얼레지와 돌단풍] 봄이 오는 길 얼레지가 깨어났다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 입력 2024.03.21 07:30
  • 수정 2024.03.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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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꽃. 한낮이 되어 아름다운 꽃잎이 활짝 젖혀지면 곤충을 유인하는 ‘W’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진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얼레지 꽃. 한낮이 되어 아름다운 꽃잎이 활짝 젖혀지면 곤충을 유인하는 ‘W’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진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얼레지와 돌단풍에는 이름의 뉘앙스만으로 알 수 없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얼레지, 아름다운 꽃을 제쳐 두고 굳이 잎에 난 얼룩한 무늬를 보고 지은 이름일 테지만, 다행히 음률이 로맨틱하다. 한껏 치켜 올린 보랏빛 꽃잎은 ‘이보다 화려한 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가난했던 옛날에는 생존을 위해 기억해야 할 식물이었다. 먹을 것이 없는 이른 봄, 사람들은 낙엽더미에서 먹을 수 있는 얼룩한 잎을 기억해야 했다. 

돌단풍은 돌 틈에 자라는 단풍잎 모양의 잎을 가진 식물이다. 이보다 더 정확한 이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돌단풍이 가진 많은 미덕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가을의 주인공인 단풍나무와 돌단풍은 완전히 다르다. 돌단풍은 돌 틈에서 30cm 정도로 자라는 풀이다. 단풍나무 꽃이 좀더 화려했으면, 단풍나무 잎이 조금 덜 까칠했더라도 아쉬움이 덜하겠다. 돌단풍이란 이름으로는 별처럼 펼쳐지는 하얀 꽃무리와 여름까지 펼쳐지는 싱그러운 잎무리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야생 식물을 약용, 식용, 관상용 자원으로 이용해 온 인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야생식물을 채취해서 의약품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일은 확연히 줄었다. 반면, 아름다운 식물을 가까이 두고 즐기고자 하는 욕망은 오히려 더 커졌다. 식물종과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종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졌고, 이로 인해 야생식물의 자원화가 활발해졌다. 우리의 자생식물을 관상식물로 개발해 보급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 선두에 있던 식물 중 하나가 얼레지다. 

돌단풍 꽃. 돌단풍이란 이름으로는 별처럼 어여쁜 꽃무리를 상상하기 힘들다.
돌단풍 꽃. 돌단풍이란 이름으로는 별처럼 어여쁜 꽃무리를 상상하기 힘들다.

길들여지지 않는 아리따운 야생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야생의 얼레지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얼레지를 보기 위해 차가운 봄 산행을 계획해야 한다. 얼레지는 그리 쉬운 이름이 아니지만, 엽서나, 수첩, 달력에서 고산의 봄을 장식하는 주인공이었기에, 국민 야생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북미지역의 얼레지 품종이나 재배종을 정원에 심어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얼레지는 희귀하지는 않지만, 산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시간이 짧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산행 길에 열매를 달고 있는 얼레지를 만나면, 꽃을 놓친 안타까움에,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하산길의 충분한 자랑거리가 된다.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는 백합과의 외떡잎식물로, 땅 속 저장 줄기로부터 매년 새로운 싹이 나오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씨앗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떡잎이 나온 이후, 수년간 잎만 피운다. 저장된 양분으로 잎을 피울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비로소 그해 잎으로 생산한 양분으로 그해 꽃을 피운다. 

얼레지가 사는 울창한 숲은 가을이면 많은 양의 낙엽이 바닥을 덮는다. 나무의 잎이 피어나기 전, 얼레지는 낙엽을 뚫고 끝내 꽃을 피우고야 만다.
얼레지가 사는 울창한 숲은 가을이면 많은 양의 낙엽이 바닥을 덮는다. 나무의 잎이 피어나기 전, 얼레지는 낙엽을 뚫고 끝내 꽃을 피우고야 만다.

얼레지의 새 잎은 비대해진 지하 비늘줄기(인경鱗莖)에서 나온다. 비늘줄기는 매년 뿌리 끝에서 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해가 거듭될수록 얼레지의 뿌리는 땅속 깊이 내려간다. 비늘줄기는 희고 약간 긴 타원형으로, 저장된 녹말이 풍부하다. 

지하의 뿌리나 줄기가 깊게 자라기 위해서는 토심이 깊고 유기물이 풍부한 흙이 필요하다. 숲이 잘 발달해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흙이 마르는 것을 막고, 해마다 떨어지는 낙엽이 분해되어 양분이 풍부하고 헐거운 흙이 필요하다. 그러니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얕은 흙에서 얼레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 

얼레지 꽃은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향기가 없다. 대신 벌을 유인하는 무늬가 꽃잎 속에 그려져 있다. 햇빛이 최고에 달하면 얼레지의 꽃잎이 뒤로 활짝 젖혀지고, 꽃잎 안쪽의 ‘W’ 자 무늬가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얼레지는 곤충이 다른 얼레지로부터 가져온 꽃가루를 받아 수정한다. 자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암술은 수술의 반대 방향으로 피어난다. 

얼레지의 씨앗에는 개미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먹이가 붙어 있어, 개미들이 자신의 집으로 씨앗을 옮기면서 여기저기 퍼뜨리게 된다.
얼레지의 씨앗에는 개미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먹이가 붙어 있어, 개미들이 자신의 집으로 씨앗을 옮기면서 여기저기 퍼뜨리게 된다.

그러나 변덕스런 고산의 기후로 곤충의 활동이 제한되고, 끝내 다른 개체로부터 꽃가루를 전달받지 못하면, 밤 동안 꽃잎을 오므리고 암술머리를 수술 쪽으로 돌려 자신의 꽃가루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꽃가루로 수정하는 데는 단 몇 개의 꽃가루만 필요하다. 꽃이 핀 이상, 자신과 똑같은 씨앗이라도 우선 남기고 보는 것이다.

얼레지는 흔히 군락을 형성하는데, 이는 씨앗의 전파방식에 의한 것이다. 얼레지의 씨앗 한쪽에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등이 풍부한 젤라틴 구조의 엘라이오좀Elaiosome이 붙어 있다. 개미는 얼레지의 씨앗을 자신들의 집으로 가져와 유충 먹이로 이용한다. 얼레지의 씨앗이 개미집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지는 셈이다. 개미는 식물의 씨앗을 전파하는 거의 유일한 곤충이다.

오랫동안 잎만 피우고, 느리고 신중하게 꽃을 피우고, 삶을 안정적으로 꾸린 얼레지는 초본으로서는 매우 긴 수명을 가진다. 일본의 장기연구 결과에 의하면 얼레지의 수명은 약 40년이다. 얼레지를 키우고 꽃을 보기 위해서는 깊고 그늘진 토양과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해 비해, 돌단풍은 산 높은 곳의 얼레지가 아직 잎도 피워 올리기 전에, 이미 푸릇한 잎과 자잘한 꽃방석을 펼치며, 얼레지를 보기 위해 산을 찾은 사람들을 마중한다. 돌단풍은 사람이 알아보기 전엔 결코 말을 걸지 않는다. 이름에 전혀 꽃을 상상할 수 없는, 그래서 희고 소담스런 꽃송이가 충격적인 돌단풍.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 프로도를 묵묵히 도와주는 샘처럼, 은근한 감동을 준다. 

얼레지 꽃이 피기 위해서는 뿌리에 충분한 양분이 저장되어야 하는데, 씨앗에서 첫 잎이 나온 이후 여러 해 동안은 잎만 피어난다.
얼레지 꽃이 피기 위해서는 뿌리에 충분한 양분이 저장되어야 하는데, 씨앗에서 첫 잎이 나온 이후 여러 해 동안은 잎만 피어난다.

만주 고대 도시 이름에서 유래

돌단풍Mukdenia rossii은 범의귀과 돌단풍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중부이북지역과 만주지역, 시베리아 지역에서만 자생한다. 전 세계적으로 돌단풍 종류는 돌단풍과 가시잎돌단풍M. acanthifolia(돌부채손), 단 두 종뿐이다. 북한지역에서 자생하는 가시잎돌단풍은 돌단풍에 비해 잎이 윤기가 나며, 가장자리에 자잘한 거치가 있으나, 학자에 따라 돌단풍의 변이로 취급하기도 한다. 

원래 돌단풍의 속명은 아세리필럼aceriphyllum이었다. 이는 라틴어로 ‘단풍나무’인 ‘아서acer’와 ’잎’을 뜻하는 필루스phyllus의 합성어다. 그러나 아세리필럼은 이미 다른 분류군에 사용되고 있었다. 식물 분류학자들은 돌단풍 자생지 중 하나인 만주 지역을 속명으로 채택했는데, 만주족의 수도였던 고대 도시 묵던Mukden(지금의 중국 선양) 이름을 따서 묵데니아Mukdenia로 대체했다. 우리나라의 지명이 들어갔으면 좋았으련만!

이른 봄, 바위에 모인 열기가 제 틈의 흙을 녹이면, 뽀얗고 무뚝한 돌단풍의 싹이 축축하고 검은 흙 틈에서 튀어나온다. 그 뭉툭한 줄기로부터 마술처럼 싱그러운 초록 잎이 펼쳐지고, 곧이어 꽃봉오리를 단 꽃대가 몸을 일으킨다. 굽은 등처럼 움츠린 꽃대와 꽃봉오리는 종종 불그레한 색을 띠지만, 곧 초록 꽃대에 흰 꽃무리로 터진다. 튼튼한 꽃대에 별처럼 피어나는 꽃들은 거의 한달 내내 피어 있어, 혹여 꽃이 질까 조바심도 없고, 봄바람에 꺾일까 걱정도 없다.  

돌단풍은 돌 틈에 자라며 잎이 단풍잎 모양이다. 꽃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이처럼 정확한 이름도 없다.
돌단풍은 돌 틈에 자라며 잎이 단풍잎 모양이다. 꽃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이처럼 정확한 이름도 없다.

단풍잎을 닮은 잎은 바위 어디서 그만한 양분을 가져왔을까 싶을 정도로 무성하고 짙게 자란다. 바위틈에 박힌 굵은 뿌리는 해가 거듭될수록 두터워지면서 갈색 털로 덮인다. 뿌리가 굵어지면 얕은 바위틈에 겨우내 드러나 있기도 한다. 

돌단풍은 보통의 봄꽃이 일찍 생활사를 마무리하고 사라지는 것과 달리, 초본식물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가을까지 잎이 남아 있다. 여름 내내 무성한 잎은 아래로는 시원한 그늘을, 위로는 개구리가 쉬어가는 물웅덩이를 만든다. 가을이 되면 돌단풍의 잎은 그냥 시들지 않고 정식으로 단풍이 든다. 단풍잎 모양을 닮은 것이 아니라 단풍이 드는 것이다. 

우리 산야에 피는 야생식물 중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사람의 정원에 정착한 식물도 드물다. 돌단풍은 우리 정원에서나, 설악산 천불동계곡에서나, 동강할미꽃 곁을 지키고 있는 동강의 바위에서나 모두 똑같다.

돌과 식물의 멋진 조합을 만들어내는 돌단풍. 약간의 습도만 조절해 주면 마당 정원에서도 자연과 똑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돌과 식물의 멋진 조합을 만들어내는 돌단풍. 약간의 습도만 조절해 주면 마당 정원에서도 자연과 똑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과 돌과 식물의 완벽한 조합을 이루는 돌단풍은 생활 주변의 바위 정원이나, 실내 정원, 심지어 분재에도 즐겨 이용된다. 돌단풍은 마른 돌이 아니라 젖은 돌, 물 가까운 돌에서 자라기에 반그늘 정도의 습도 조절만 해주면 해마다 근사한 풍경을 재현해 낸다. 정말 믿음직한 돌쇠 같다. 

얼레지가 우리 정원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은, 얼레지가 지체 높은 양반댁 아씨처럼 도도하거나 괜한 고집을 부려서가 아니다. 깊은 흙속으로 뿌리를 감추고, 오랜 시간 양분을 모으고, 꽃을 피우는 얼레지 특유의 생존 방식 탓이다. 얼레지의 삶을 알면 사람 곁에 살기 어려운 걸 이해하게 된다. 

고산의 혹독한 겨울을 끝내 이겨낸 얼레지와 바위틈에서도 넉넉한 돌단풍. 어떤 곳에서든 멈추지 않고 피어나는 생명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우리 또한 고맙다. 봄, 마음이 열린다. 

돌단풍의 싱그럽고 무성한 잎은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워 작은 동물들이 숨어들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 준다.
돌단풍의 싱그럽고 무성한 잎은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워 작은 동물들이 숨어들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 준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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