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제주 남송이오름] 겉과 속이 다른 여인의 속내로 가는 길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 입력 2024.03.19 07:50
  • 수정 2024.03.25 10: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안덕면 서광리의 경치 좋은 2시간 코스…분화구 바닥까지 갈 수 있어

하늘에서 본 남송이오름과 서광다원, 건너편  신화월드. 가운데 도로가 신화역사로고, 뒤로 한라산이 듬직하다.
하늘에서 본 남송이오름과 서광다원, 건너편 신화월드. 가운데 도로가 신화역사로고, 뒤로 한라산이 듬직하다.

남송이오름은 녹차밭으로 사랑받는 오설록의 뒷산이다. 오름 앞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녹차 생산지인, 주식회사 태평양의 서광다원이 초록빛으로 눈부시고, 뒤로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이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며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진다. 

남송이오름은 남쪽에서 보면 여인 눈썹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동서로 길게 누운, 전형적인 산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뒷모습은 전혀 딴 얼굴이다. 정상의 서북쪽으로 제법 커다란 말굽형 굼부리가 붙었고, 능선이 돌아간 북쪽 끄트머리엔 부록처럼 딸린 원형의 굼부리가 선명하다.

서쪽에 있는 오름 들머리. 승용차 몇 대를 댈 수 있다.
서쪽에 있는 오름 들머리. 승용차 몇 대를 댈 수 있다.

그 주변으로도 화구 모양의 밋밋한 구덩이가 2개 더 보인다. 앞모습과는 딴 판으로, 여러 굼부리를 가진 복합형 화산체인 것이다. 이렇듯 앞뒤의 모습을 다 보고 나니 남송이오름이 합죽선으로 얼굴을 가린 수수께끼 속 여인같이 느껴진다. 

오름에 소나무가 많아서 ‘남송南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자로는 ‘南松岳남송악’이라 적는다. 이름처럼 여느 오름에서 흔히 만나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보다 높게 자란 해송이 탐방로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오름을 ‘남소로기’라고 불러왔다. ‘소로기’는 솔개를 가리키는 제주어로, 오름 형태가 날개를 펼친 솔개 같아서다. 오름의 북쪽 끝에 붙은 작은 알오름 이름이 ‘소로기촐리’인 것을 보면 이쪽이 더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촐리’는 꼬리를 일컫는 제주어다. 

능선 북쪽의 ‘소로기촐리’ 둘레길. 계단이 가파르다.
능선 북쪽의 ‘소로기촐리’ 둘레길. 계단이 가파르다.

명품 조망이란 이런 것!

오름의 서쪽 능선이 끝나는 곳이 들머리다. 서광다원을 동서로 가로지른 신화역사로에서 오름 서쪽 자락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500m쯤 들어서면 만난다. 앞에 승용차 너덧 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 마소의 출입통제용 꺾임 문을 지나 들어서니 곧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두릅나무가 많은 오른쪽은 오름 남쪽에서 북쪽까지 이어지는 자락길이다. 왼쪽 길로 가야 정상을 만난다.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바닥에 야자 껍질로 짠 친환경매트가 깔렸지만, 비라도 내리면 걸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오르막 구간이 그리 길지 않고, 주변으로 해송이 지천이어서 걷는 기분이 좋다. 

능선에 올라서면 찔레와 으름덩굴, 쥐똥나무, 탱자나무 등이 녹색의 벽을 이룬 사이로 평탄한 길이 구불거리며 정겹다. 정상에는 기존의 산불감시초소 위에 2층 구조의 목재 전망대가 조성되었다. 해발고도가 339m인 남송이는 오름 자체의 높이가 139m로 꽤 우뚝하다. 그래서 조망에 더할 나위 없는 명당이다. 

전망대 남쪽 풍광. 군산부터 산방산, 모슬봉까지 시원스럽다.
전망대 남쪽 풍광. 군산부터 산방산, 모슬봉까지 시원스럽다.

널찍한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 신화월드와 오설록 녹차밭이 손바닥처럼 훤하고, 모슬봉부터 산방산, 군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바다 풍광은 청량음료를 들이킨 듯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동북쪽 신화역사로 주변에는 북오름과 원물오름, 병악, 도너리, 당오름 등이 봉긋봉긋하고, 이 모든 풍광의 정점에 한라산 백록담이 우뚝 섰다. 제주 오름을 자꾸 찾아 오르는 게 눈맛 시원한 이런 풍광 때문이다.

정상을 지난 탐방로는 북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내려서다가 180m쯤 간 곳에서 갈래를 친다. 북쪽의 원형 굼부리(분화구)를 만난 것이다. 말굽형 굼부리와 원형 굼부리 사이를 지나는 왼쪽 길은 주능선의 흐름을 이어 완만하게 북동쪽으로 굽어 돌고, 오른쪽 통나무 계단길은 짙은 숲속으로 급히 내려선다. 두 길은 반대편에서 만나는데, 오른쪽 길은 중간에 또 오른쪽으로 갈래를 친다. 초입의 자락길과 연결되는 듯하다. 

뒤편에 굼부리 두 개를 감춘 남송이오름. 북쪽 굼부리는 내려설 수도 있다.
뒤편에 굼부리 두 개를 감춘 남송이오름. 북쪽 굼부리는 내려설 수도 있다.

잡음 차단된 비밀공간 ‘소로기촐리’

북쪽의 이 원형 굼부리 안은 통에 꽂아둔 이쑤시개처럼 편백나무로 빼곡하다. 특이한 점은 계단을 통해 바닥까지 길이 이어진다는 것. 굼부리 바닥으로 내려설 수 있는 오름은 왕이메나 높은오름, 저지오름, 까끄레기오름 등 제주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 내려서면 그곳은 그야말로 별천지. 세상의 시끄러운 잡음이 차단된 채 새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비밀공간이 된다. 

‘소로기촐리’ 굼부리 안. 굼부리 바닥으로 내려설 수 있어서 특별한 곳이다.
‘소로기촐리’ 굼부리 안. 굼부리 바닥으로 내려설 수 있어서 특별한 곳이다.

통나무 계단 몇 개가 주저앉았고,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기도 하지만 내려서는 데 어려움이 없다. 햇살이 비쳐 드는 바닥엔 원형의 널찍한 돌담이 보이고 편백나무 숲 사이로 평상 2개가 놓여 있다. 삼림욕에 더할 나위 없는 명당 같다. 그런데 찾는 이는 드문 듯하다. 평상엔 옅은 이끼가 꼈다. 

목장에서 만난 말들. 수풀 속에 몇 마리가 더 있다
목장에서 만난 말들. 수풀 속에 몇 마리가 더 있다

굼부리 앞은 평탄한 초지대를 이뤘고, 키 큰 탱자나무가 여러 그루 보인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난 오솔길이 ‘소로기촐리’를 지나 서광리공동목장의 넓은 길로 이어진다. 목장길을 만난 후 오른쪽으로 꺾어 900m쯤 가면 신화역사로에 접한 목장 입구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는 2시간쯤 걸린다. 

info

교통 내비게이션에 ‘남송악’을 입력하면 남송이오름 남쪽 편의점 앞으로 안내한다. 여기서 오설록티뮤지엄 방면으로 345m 간 후 우회전, 480m 더 들어서면 들머리다. 제주버스터미널에서 모슬포항을 오가는 151번 급행버스가 ‘오설록’ 정류장에 정차한다. 여기서 오름 들머리까지는 2km 거리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주변 볼거리(지역번호 064)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오름 앞, 넓은 서광다원 중간에 항공과 우주에 관한 다양한 전시관을 갖춘 제주항공우주박물관 (800-2000)이 볼 만하다. 한국전쟁 때 하늘을 날았던 구형 비행기부터 최신 전투기까지 볼 수 있고, 항공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행기 조종도 가능하다. 이밖에도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체험공간이 잘 갖춰졌다. 워낙 넓은 공간이어서 둘러보려면 두세 시간은 잡아야 한다.  jdc-jam.com 

동광가든 흑오겹살.
동광가든 흑오겹살.

맛집  동네 맛집으로 알려진 동광육거리 근처의 동광가든(794-1888)은 흑돼지오겹살이 맛있다. 두툼하게 잘라 숙성 과정을 거친 흑오겹살 1인분(200g) 2만2,000원. 소늑간살과 목살도 같은 가격이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