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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산 중턱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인생을 미끼로 시간을 낚다

윤성중
  • 입력 2024.03.18 07:55
  • 수정 2024.03.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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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산에서 낚시하기

친구와 둘이서만, 조용한 호숫가나 저수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나누는 대화는 분명 특별할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낚시터에서 이뤄지는 이 소통은 질적인 면에서 카페나 집, 회의실에서 나누는 대화와 달리 수준이 꽤 높을 것이라고 상상해 왔다. 어라? 그렇다면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서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는 어떨까? 친구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때 낚싯대에 걸리는 건 물고기가 아니라 ‘공기’일 것이다. 공기와 더불어 대화를 통한 따뜻한 분위기도 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주변의 낚시 전문가를 찾았다. 낚시를 즐길 법한 몇몇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친구들 대부분은 나의 제안에 어리둥절해했다. 산에서 낚시하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이렇게 답했다. “산에서 고기를 잡을 데가 있어?” 혹은 “지금 산에 있는 계곡은 거의 다 얼었을 텐데?” 이런 답을 들을 때마다 나는 또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산에서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낚는 거야. 시냇물이나 계곡, 호수가 있는 산으로 가는 건 아니야. 당연히 미끼도 필요 없어. 낚싯대만 있으면 된다고!” 

친구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했다. 친구들을 설득하는 건 잠깐 보류했다. 낚시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봤다. 그들은 나의 의도를 이해할 것 같았다.

낚시 잡지 월간 <붕어> 편집부에 전화했다. 나는 또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월간<산>입니다. 산에서 낚시를 하고 싶은데요, 같이 하실 분이 있을까요?”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 우리 내부 편집자는 딱 한 명이에요. 이 사람이 낚시를 좋아하긴 하는데, 바깥에 잘 나가질 않아요. 우리는 거의 대부분 외부 작가들이 글을 써서 줘요. <낚시춘추> 같은 데 전화해 보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월간 <낚시춘추>(역시 낚시 잡지) 편집부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그가 대답했다. 

“뭐요? 산에서 낚시를 한다고요? 아, 음, 음. 쿨럭! 아, 우리 기자가 있는데요, 이 친구가 무척 바빠요. 지금 자리에 없는데, 쿨럭!! 아마도 바빠서 못 할 겁니다. 자리에 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낚시춘추>에선 이후 연락이 없었다.

나는 다시 나와 함께 산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재작년에 알게 된 삼정도(가명) 형이 걸려들었다. 그는 나에게 미스터리한 인물로 분류되어 있다. 그는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음(내가 봤을 때 그는 평상시 패셔너블하게 차려입거나 유명해지려고 애쓰는 행동 등을 일절 하지 않는다)에도 온갖 유명인들과 친했다(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 여럿과 ‘맞팔’을 하고 있다!). 그에게 또 설명했다. 

“형, 산에서 낚시 하실래요?” 

형이 대답했다. 

“으응? 그래, 어떻게 하는 건데? 해보자! 재미있겠다!” 

그는 단번에 수락했다. 나의 의도를 간파한 천재거나 혹은 산을 좋아하는 산꾼이거나 혹은 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우선 낚싯대를 구해야 했다. 동네에 있는 낚싯집에 갔다. 길고 굵은, 프로들이 사용하는 낚싯대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비쌀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께 장난감 낚싯대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주인아저씨는 이리저리 진열장을 뒤적이다가 작고 귀여운 플라스틱 낚싯대를 꺼냈다. ‘메기 낚싯대’라고 했다. 주인아저씨가 낚싯대를 나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녀분들이 아주 어린가봐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낚싯대와 더불어 ‘찌’도 샀다. 알록달록하고 둥근 모양의 찌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면 낚시하는 기분이 배가될 것 같았다.

이윽고 약속한 날이 됐다. 나는 배낭에 낚싯대를 꽂고 아차산으로 갔다. 전철역 밖에서 삼정도 형을 만났다. 형은 배낭에 꽂혀 있는 낚싯대를 보고 웃었다. 형은 전날 새벽까지 축구(아시안컵)를 보느라고 늦게 잤다고 했다. 

“스마트폰 알람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왔어!” 

나는 그가 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산을 정말로 좋아하거나 산에서 낚시하는 이번 프로젝트에 굉장한 기대를 걸고 있거나 아니면 나를 아주 좋아하는 거라고 여겼다. 우리는 천천히 산으로 향했다. 용마폭포공원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섰다.

삼정도 형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의 ‘대기업’에서 일한다. 일이 아주 바쁜 모양으로 그는 늦은 밤 퇴근하면서 나에게 자주 전화했다. 수화기 속 그의 목소리는 늘 지쳐 있었다. 산에서 듣는 그의 목소리는 그것보다 약간 더 생기 있었다. 산에서 하는 낚시를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달까? 아니지, 이 형은 나와 산행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나는 형에게 가장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형! 형은 그 유명한 사람들과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형이 대답했다. 

“응, 그냥 어찌저찌해서 알게 된 사이야. 일부러 만나려고 연락하거나 그러진 않고, 친구들하고 술 먹다가 누군가 다른 친구를 데려오고, 그 친구가 또 친구를 데려오고 하는 식이지.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똑같이 물어봐. ‘형이 이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라면서. 내가 유명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다들 의아한가봐.” 

나 역시 그것이 의아했다. 왜냐하면 내가 알기로 그는 평상시 회사와 집만 오가고 중간에 자주 술을 마신다. 여행을 한다거나 마라톤을 한다거나 산에 아주 열심히 다니는 등 취미생활을 깊게 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아주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제한된 환경에서 이토록 여러 사람과 알고 지낸다는 건 그가 대기업에 다녀서일까? 아니면 그의 타고난 성격 덕분일까? 이를테면 누가 뭘 하자고 제안해도 별 뜻 없이 “재미있겠다! 해보자!”고 하는 무난한 성격 말이다. 나는 이걸 시험해 보고자 오르막 중간에서 길이 희미하고 더 가파른 절벽 쪽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형은 예상대로 별 뜻 없이 답했다. 

“그래! 가보자!”

가파른 길의 중턱에 이르자 평평한 지대가 나왔다. 여기가 낚시하기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배낭에서 캠핑용 의자 2개와 낚싯대 2개를 꺼냈다. 그리고선 형에게 말했다. 

“형, 여기서 낚시하죠!” 

형이 말했다. 

“그래, 좋아.”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손에는 낚싯대를 쥐었다. 우리는 낚싯대를 쥐고서 흔들었다. 줄 끝에 찌를 달려고 했는데, 찌에 달린 무수히 많은 바늘이 옷에 걸려 빠지지 않았다. 옷에 걸린 찌 바늘을 다 빼고 바닥에 그냥 놔뒀다. 우리는 낚싯대를 흔들면서 잠깐 고요함 속에 있었다.

그러다가 형은 낚싯대를 쥐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회사 얘기를 했다. 회사 얘기를 하면서 그는 대체로 무표정했다. 얼굴이 사막 같았다. 건조한 회사 생활, 텁텁한 일상! 그는 입에 먼지가 잔뜩 들었는데 뱉지도 못하고 우물우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삶엔 오아시스가 없는 걸까? 형에게 질문했다.

“형! 형은 그럼 성취감을 어디서 찾아요? ‘뭔가 해냈어!’ 이런 느낌을 최근 어디서 느꼈죠? 성취감 같은 게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을 텐데요?”

“글쎄, 어떤 날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일에 막 매달려서 ‘홈런을 쳐야 돼!’ 이런 스타일이 아니거든. 나쁘게 말하면 그런 게 없어서 약간의 우울감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고, 좋게 말하면 안분지족이지 뭐.”

“오늘은 안분지족 스타일 산행이네요, 산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어때요 형, 산에서 낚시하는 기분이?”

“음, 글쎄다. 낚싯대 없어도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낚싯대를 들고 있는 것 자체가 재밌긴 하네. 색깔도 예쁘고.”

형이 이날 입고 온 옷은 낚시 브랜드(태클리서치)에서 만든 플리스 재킷이었다. 그는 이 옷을 어느 아웃도어 매장에서 싸게 얻었다(그는 이 옷이 낚시 브랜드에서 만들었다는 걸 몰랐다). 또 그가 멘 배낭은 요즘 유행하는 뚜껑 없는 ‘롤 톱’ 방식인데, 이건 아는 후배가 준 것이다. 이른바 그는 계획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떤 상황에 절묘하게 딱 맞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별 탈 없이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머문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래도 포르투나 여신(로마 신화에 나오는 운명과 행운의 신)이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포르투나 여신과 함께 찍은 인증샷이 형의 인스타에 곧 올라올지도 모른다). 형도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아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는 한편으론 대충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어보니 대략 맞았다.

“형, 혹시, ‘인생 대충 살자’가 콘셉트예요?”

“대충? 대충이 아니라 허물렁허물렁하면서 견고하지 않은 거지.”

나는 형이 너무 대충 대답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무거운 질문을 했다. 

“형, 최근에 ‘인간은 이런 존재다!’라고 깨달은 게 있을까요?”

“갑자기 뭔 심각한 질문이야. 그냥 뭐, 일상적인 거지. ‘인간은 나약하기도 하고, 간사하기도 한 존재, 인간한테 뭘 바라냐?’ 뭐, 이런 거?”

형은 어떤 걸 물어봐도 평온하게 대답했다. 세상사에 초연해 보였다. 허공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흔드는 모습이 영락없이 시간을 낚는 어부 같았다. 순간! 우리를 향해 등산객 두 명이 올라왔다. 그는 등산객들이 들으라는 것마냥 이렇게 말했다.

“거 참, 고기가 잘 안 잡히네.”

등산객들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르막을 올라 사라졌다. 우리는 한동안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서 사람들이 우글대고 있을 도시를 내려다봤다. 조용히.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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