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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곤충이야기] 집게벌레 - 암컷은 몇 주간 안 먹으며 알 돌봐

월간산
  • 입력 2010.04.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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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를 먹는 좀집게벌레.
꽃가루를 먹는 좀집게벌레.

대개 곤충들의 삶이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알을 낳아 그 중에 재수 좋은 몇 마리가 살아남아 후손을 잇는 방식이다. 따라서 일단 알을 낳은 다음에는 운에 맡길 뿐, 어미가 별다른 수고를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고정관념 속에서도 알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성애의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집게벌레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집게벌레는 이름처럼 배 끝에 집게가 달린 곤충이다. 원래 곤충의 배 끝에는 저마다 한 쌍의 꼬리털(尾毛)이 있는데, 보통은 부드럽고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있어 더듬이와 같은 감각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집게벌레의 꼬리털은 단단하고 한 마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핀셋처럼 물체를 집을 수 있는 특수한 도구 역할을 한다. 열고 닫기가 가능한 집게의 특징에서 북한에서는 집게벌레를 ‘가위벌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전갈이 배를 들어 올려 꼬리 끝의 독침을 휘두르듯 집게벌레도 배를 구부려 집게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집게벌레는 산에도 살지만, 가끔 사람 집에도 들어와 산다. 필자가 중학생 시절 집에서 사로잡은 집게벌레를 한참동안 키워본 적이 있다. 보통 화분을 들춰보면 그 밑에 숨어 있거나 집안의 축축한 곳, 장판 아래 같은 곳에서 집게벌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집게벌레의 습성은 빛을 피해 어두운 곳에 숨기를 좋아하고 어딘가 좁은 틈에 몸을 붙이고 있어야 편안해한다. 야행성이라 밤중에 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다니며 낮에는 쉴 만한 곳을 찾아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후미진 구석을 파고든다. 만약 건드리면 성질 사납게 배 끝의 집게를 들어올려 위협 동작을 취하는데, 기본적으로 이렇게 집게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된다. 그렇지만 집게로 사람을 세게 물어서 큰 해를 줄 정도는 못된다. 서양에서는 집게벌레를 이어위그(earwig)라고 부르는데, 그 유래에는 사실 잘못된 미신이 숨어 있다.

집게벌레가 잠자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 고막을 뚫고 뇌를 파먹은 다음 머릿속에 알을 낳는다는 무시무시한 속설이 전해지는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마도 집게벌레의 위협에 공포를 느낀 누군가의 상상이 사실처럼 퍼졌던 것 같다.

핀셋처럼 물건 집을 수 있어 가위벌레라고도

집게벌레의 집게는 또한 먹이 사냥용으로도 쓰인다. 집게벌레는 원래 잡식성이라 사람이 먹는 여러 가지 음식물 부스러기로도 쉽게 키울 수 있다. 그렇지만 곧잘 집게를 이용하여 다른 곤충을 덮치기도 하는데, 지나가던 곤충을 집게로 꽉 움켜잡으면 꼼짝없이 도망가지 못하고 잡아먹힌다. 또 먹이가 부족해지면 같은 집게벌레끼리도 가끔 잡아먹는 경우를 보았다. 어떤 집게벌레는 과일이나 꽃을 먹어치워 과수의 해충으로 보고된 바도 있지만, 반대로 진딧물이나 애벌레를 잡아먹어 익충 역할도 하므로 집게벌레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대적이다.

집게벌레는 암컷과 수컷의 집게 모양이 서로 다르다. 암컷은 대개 길쭉하게 쭉 뻗어 아무런 돌기가 없는 단순한 모양이지만, 수컷의 집게는 좌우 비대칭으로 한쪽이 크게 휘어지거나 집게 중간에 이빨 모양의 돌기나 혹 같은 것이 나 있다. 수컷들끼리 마주치면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집게를 휘둘러 칼싸움하듯 싸우는데, 그 모습은 마치 딱정벌레목의 사슴벌레 수컷들이 큰 턱을 맞부딪치며 겨루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몸이 크고 집게가 잘 발달한 수컷이 당연히 싸움에 유리하며 집게의 발육 정도는 애벌레 시절의 영양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의 집게는 암컷의 선택을 받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땅 밑에서 알을 돌보고 있는 끝마디통통집게벌레. 2.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마로브집게벌레. 3.죽은 곤충을 집게로 집어먹는 큰집게벌레의 어린 유충. 4.바닷가에 주로 사는 민집게벌레는 전 세계에 널리 살고 있다.
1. 땅 밑에서 알을 돌보고 있는 끝마디통통집게벌레. 2.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마로브집게벌레. 3.죽은 곤충을 집게로 집어먹는 큰집게벌레의 어린 유충. 4.바닷가에 주로 사는 민집게벌레는 전 세계에 널리 살고 있다.

이후 암컷은 땅 밑에 굴을 파고 조용히 숨어서 20~30개의 알을 낳는다. 보통 암컷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지만, 집게벌레의 암컷은 알에서 애벌레가 태어나 무사히 둥지를 떠날 때까지 돌보는 게 큰 특징이 있다. 필자가 길렀던 집게벌레 역시 굴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몇 주간 오로지 알을 돌보는 데 헌신했는데, 축축한 땅 밑은 사실 여러 가지 세균이 번식하기 좋아 알을 그대로 두면 썩기 쉬운 환경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집게벌레 암컷은 부지런히 알을 핥아 세균을 제거하고 한 자리에 알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물어다 자리를 옮김으로써 병균의 번식을 막는 것을 관찰했다. 또한 이때 다른 곤충이 접근해 알을 해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를 하는데, 같은 종의 수컷도 예외는 아니어서 알을 돌볼 때는 그 누구도 절대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뱃속에 저장된 물질 토해내 애벌레 먹여

부화할 때가 된 알은 타원형으로 변하고 곧 애벌레가 태어나면 암컷은 또한 자기 뱃속에 저장한 물질을 토해 애벌레를 먹인다고 한다. 그리고 연약한 애벌레가 무사히 한 번 허물을 벗고 굴을 떠날 때가 되면 비로소 암컷의 역할이 끝나는데, 이 때 힘이 빠져 죽은 암컷은 그대로 자신의 몸을 애벌레들에게 마지막 먹이로 내놓고 만다. 이렇게 후손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집게벌레의 모성애는 초기 진화 단계에서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집게벌레는 전 세계에 약 2000종 이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에는 19종이 알려져 있다. 일부 종은 전 세계에 공통으로 널리 분포하는 범세계종이며, 특수하게 기생성이거나 동굴에만 서식하는 종류도 있다. 고마로브집게벌레(Timomenus komarovi)는 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집게벌레로 수컷은 매우 긴 집게를 자랑한다. 주로 낮에 활동하며 꽃가루 등을 먹고 살며 뒷날개가 발달하여 날아다니기도 한다. 성충은 죽은 나무껍질 속에서 월동하며 가끔 창고나 사람이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들어와 겨울을 나기도 한다. 고마로브는 러시아의 저명한 식물학자 이름이다.

끝마디통통집게벌레(Anisolabella marginalis)는 인가에 자주 들어오는 집게벌레로 날개가 전혀 없어 바닥을 기어다니며 다리에 흑백 얼룩무늬가 있다. 민집게벌레(Anisolabis maritima)는 바닷가에 주로 사는데, 밤에 돌아다니다가 주로 죽은 동물을 먹어 치우며 전 세계에 살고 있다. 좀집게벌레(Anechura japonica)는 숲에서 생활하며 꽃가루나 진딧물 등을 먹고 산다. 작은 날개가 있지만 날지는 않는다. 큰집게벌레(Labidura riparia)는 모래땅을 매우 좋아하며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수컷의 집게가 매우 크고 강해 강한 육식성을 나타내는 집게벌레다.


/ 글·사진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pulmuchi@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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