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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Let's Go Autocamping] 곰돌이네 가족의 덕유산 오토캠핑

월간산
  • 입력 2004.12.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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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광주에 살고 있는 정제호씨(37) 가족은 요즘 오토캠핑 가는 재미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1년 전 처음으로 오토캠핑을 시작했을 때, 초겨울이라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은 잊은 지 오래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추위를 더 잘 견디며 자연을 즐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11월의 첫번째 토요일 오후. 오늘은 다음카페 오토캠핑동호회 팬오스(Fanos)의 정기모임이자 호상사 정기캠핑이 있는 날이다. 장소는 정씨 가족이 처음으로 오토캠핑을 시작한 덕유산자동차야영장. 이곳은 여름 두 달 동안만 개방되는 곳이지만, 호상사의 정기캠핑 덕분에 이번 주 한시적으로 공개됐다.

오전에 업무를 정리하고 정오경 아이들과 함께 짐을 챙겨 광주를 빠져나왔다. 이번 캠핑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인 문남숙씨(33)와 은지(9), 혜윤(7), 호림(4) 등 일가족 5명이 출동했다. 주말이라 교통체증 탓에 이동시간이 제법 걸렸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는 요령이 생겼다. 덩치 큰 오토캠핑 장비를 차 위의 루프캐리어(roof carrier)에 수납하고 내부 공간을 확보해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토요일 오후 4시 - 캠프장 도착

가족 모두 힘 모아 야영지 만들기

88고속도로를 거쳐 무주 삼공리의 덕유산 국립공원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경. 무주구천동 계곡의 가을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마지막 단풍을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을 헤치고 야영장으로 향했다. 지난봄에 이어 세번째 찾는 곳이라 아이들도 시골집에 온 것처럼 좋아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텐트를 설치할 장소를 정하는 것. 야영장은 계곡가에 위치했어도 넓고 볕이 잘 들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참가자들이 많아 빈 곳이 제법 됐다. 명당으로 꼽는 식수대 부근에 차를 세우고 텐트 칠 자리를 평탄하게 골랐다. 그리고 텐트와 리빙쉘(living shell·거실용 대형 텐트) 설치에 들어갔다. 이 일은 아빠 엄마뿐 아니라 막내 호림이까지 힘을 모아야 빨리 끝낼 수 있다.

가족 모두가 하루 동안 머물 집이니 될 수 있는 한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강아지(큰딸 은지의 별명)와 곰돌이(둘째 혜윤이의 별명)는 짐 나르는 것을 돕다 힘이 들었는지 어느새 딴 텐트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래도 막내 똘똘이(호림이의 별명)는 펙을 박는 아빠를 돕겠다며 망치를 들고 왔다갔다 분주하다.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지만, 야외에 나오면 아무래도 남자들이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토요일 오후 6시 - 저녁 준비

모닥불 옆에 모여 앉아 즐거운 식사

텐트와 리빙쉘 설치가 끝날 즈음 해가 지기 시작했다. 계곡은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기 때문에 미리 미리 밤을 준비해야 한다. 휘발유 램프를 훤하게 밝히고 모닥불도 피웠다. 해가 지면 금방 추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화로의 숯불 주변으로 몰려든다. 불 피우기도 해가 있을 때 해두는 것이 좋다.

리빙쉘 안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이 역시 야외에서는 아빠의 몫이다. 곰돌이네는 캠핑을 떠날 때 냉장고의 먹을 것을 몽땅 쓸어 담아 온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냉장고 정리의 날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차려 먹는다. 그래도 아빠 솜씨가 좋아선지 가족 모두 맛있어 한다.

“한 달 내내 업무에 쫓기다 보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가족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캠핑을 다닙니다. 처음에는 별로 내켜하지 않던 아내도 이제는 캠핑 도사가 됐습니다. 그 매서운 겨울바람 맞으면서도 씩씩하게 잘 해왔잖아요.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적응을 더 잘하더군요.”

오토캠핑을 다닌 덕분에 아이들이 활달해진 것도 큰 수확이란다. 특히 내성적이던 맏딸 은지의 성격이 변한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였는데, 이제 캠프에서 만난 다른 집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되었다.

아빠 정제호씨는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기술등반을 즐기던 전문 산악인이다. 물론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사업체를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탓에 옛날같이 산에 다니지는 못한다. 대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웃도어 활동, 오토캠핑에 열정을 쏟고 있다.

“처음에는 산에서의 야영생활을 떠올리고 접근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오토캠핑만의 색다른 뭔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 살다보니 오토캠핑 즐기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더군요. 그러니 함께 캠핑 가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지요. 오죽하면 애들 담임선생님이 너희 집은 얼마나 잘 살기에 그렇게 캠핑을 자주 가냐고 물을 정도니까요.”

야영장의 어둠이 짙어지면서 팬오스 카페 회원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한 달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텐트 설치를 도와주고 식사도 준비하다보니 어느덧 밤은 깊어진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일찍 잠들기 힘들 것 같다.

일요일 - 구천동계곡 트레킹

늦가을 정취 만끽한 하루

정제호씨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어젯밤에 도착한 친구 정성현씨 가족과 함께 구천동계곡 트레킹에 나섰다. 막내 호림이는 누나들 보다 큰 형이 온 것에 무척 고무된 모습이다. 아빠와 형 사이를 오가다 아예 형의 등에 업혀서 가고 있다.

덕유산 계곡은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두 가족은 그들 속에 섞여 한참동안 오르다 인월담에서 계곡을 건너 칠봉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라시대 인월화상이 창건한 인월암으로 가기 위해서다.

길은 험해지는데도 아이들은 힘든지 모르고 잘도 걷는다. 막내 똘똘이는 형에게서 아빠로 옮겨가며 산천 구경하는 재미에 신이 났다. 절에 도착해 잠깐 쉬며 대웅전도 둘러봤다. 산중 사찰에서 일요일 오전의 조용한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어른들은 요리 준비에 들어가고, 다섯 명의 아이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어울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족이 한 데 모여 한가한 시간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직장과 학교에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여유가 없다. 그러나 오토캠퍼 가족들은 다르다. 한 달에 하루 이틀이지만, 오직 우리 가족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들이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게다가 오늘처럼 친구 가족과 함께 하면 더욱 뜻 깊은 캠핑이 될 것이다.

/ 협찬 호상사 www.e-sierra.co.kr

/ 글 김기환 기자 ghkim@chosun.com

/ 사진 김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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