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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Let's Go MTBing] 금강산 MTB 라이딩

월간산
  • 입력 2004.12.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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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동호회 60여 명 참가해 성황리에 마쳐

금강산의 이름이 계절에 따라서 금강, 봉래, 풍악, 개골산이라고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 분단을 알게 되고, 이 산의 슬픔을 알면서 ‘왕이불거’(往而不居·갈 수는 있어도 살 수 없는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왕이불거 금강산-’ 이번 라이딩을 준비하면서 붙인 주제다. 이번 라이딩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땅 어느 곳에서나 자전거를 타고 가서 쉬고 머무를 수 있으나, 이곳은 자전거를 타되 머무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산세대의 2세들이 40~50세가 될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부모의 고향을 북에 둔 자식들이 자전거로 당신들의 고향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금강산이라는 상징성에 기대가 됐다.

준비한 3개월의 지루함도 잊은 채 느긋하게 출발장소인 올림픽공원 북2문으로 나갔다. 벌써 회원의 대부분이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해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 일찍 나오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수지MTB의 협조로 31톤 트럭에 자전거 60대를 싣고 국도를 타고 북으로 향한다.

새벽 5시 반, 간성의 금강산콘도에서 개별 출발한 화도바이크팀과 조우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북측 출입증을 목에 걸고 통일전망대로 향한다. 남측 출입사무소에 출국수속을 마치고, 버스 2대로 나누어 탄 우리는 민간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3중 철책으로 경계를 두른 남방한계선에 도달하니 여기가 바로 비무장지대다.

대형 트럭으로 자전거 수송

철책선을 보니 분단을 실감하며 모두들 말이 없다. 철책을 따라 서서히 버스는 아군초소를 통과해 DMZ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4km가 비무장지대. DMZ를 설명해야할 스물을 갓 넘긴 어린 안내원이 왕년에 군에 다녀왔음직한 우리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군사분계선은 뚜렷이 보이지 않고 그저 녹슨 팻말 하나만 인적 없는 길가에 휑하니 서있다.

북쪽에 도착하니 북한군인이 차에 올라 잠시 검문하고 다시 출발한다. 여기부터가 북한 땅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새로이 펼쳐지는 세계에 차창으로 눈을 돌리고 모두가 조용하다. 처음 보는 세상이 이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신기한 모양이다.

20여 분을 달리니 금강산 자락이 눈에 들어오고, 예전에 선박으로 드나들던 장전항으로 가서 입국심사를 했다. 그리고는 라이딩 출발지인 온정각으로 방향을 바꾼다. 자전거 통관수속이 늦어져서 잠시 온정각에 쉬면서 앞산 옆산으로 눈을 돌려가며 금강산을 바라본다.

운송차가 도착하자 자전거를 내리고 출발준비를 한다. 협찬사의 광고판을 자전거에 달고 등에 메고, 신발을 갈아 신고, 헬멧을 쓰고, 60명이 흩어져서 라이딩 준비에 정신이 하나 없다.

그렇게 자전거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건만, 아들 녀석 앞바퀴에 바람이 없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프로의 실력으로 튜브를 갈아 끼고 앞을 보니 이미 선두는 온정각을 벗어나고 있다. 이번 라이딩은 SBS의 신 부장님이 동행취재하고 있다.

앞선 북한의 호송차량에 방송카메라가 있어서인지 밤새 버스를 타고와 피곤할텐데 초반부터 광란의 질주가 시작됐다. 대열은 면발 늘어나듯 늘어졌다. 운송차를 주차하러간 이교섭씨가 돌아오는 것을 확인도 못하고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앞으로 달려가 차를 정지시키고 대열을 정비했다.

모두들 마음이 들떠 제정신이 아니다. 첫날 코스는 구룡폭이다. 설악의 대승폭과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라고 한 구룡폭을 향해 달린다. 조금 철 지난 단풍숲을 지나 처음 보는 바위산들을 보며 가파른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오른다.

동양화 속을 라이딩하는 기분

절벽 사이에 솟아난 소나무들 그 자체가 동양화다. 사실 동양화의 추상성을 전문가가 아니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선 쉽다. 보는 대로 동양화를 연상하는 데 누구나 어려움이 없다. 계곡의 맑은 물은 온 산의 단풍빛이 반사되어 연두색 쪽빛이다. 참으로 맑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와 달리 금강산 계곡엔 사람 사는 집 한 채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이마에 땀이 고일쯤 목란관에 도착했다. 구룡계곡에 지어놓은 단 한 채의 식당으로 다리와 더불어 제법 운치가 있어 등산객의 발길을 멈춘다. 뒷 모퉁이에 들어가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한적한 계곡에 갑자기 나타난 집을 유령의 집인양 여기저기 둘러본다.

발 빠른 사람들은 구룡폭포까지 가서 그 장대함을 보고 입에서 감탄을 쏟아내고 있다. 하늘을 가릴 듯한 절벽 너머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정말 장관이다. 몇몇은 산세를 눈에 담고 담느라 가지를 못한다.

산행에서 돌아와 목란관에서 북한 농산물로 만든 늦은 점심을 시장기를 달래가며 먹었다. 창밖에는 단풍이요, 옆에는 계곡이요, 그 위는 수십 길의 절벽이다. 자주 올 수 없음이 서운함으로 와닿는다.

이제 하산길이다. 진행자로서 사고 걱정이 앞선다. 아니나 다를까 등마루MTB 여성회원 한 분이 체인을 감아올리더니 남정네들을 제치고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걱정되어 속도를 줄이라고 손짓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늦가을 금강산의 맑은 공기도 마시며 시원스레 달렸다. 마지막 고갯마루에 멈춰 서서 힘껏 달리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라이더는 달려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구룡폭에서 내려와 숙소인 금강산호텔로 직행했다. 늦가을 오후, 사방이 산이요 단풍인 산중의 금강산호텔은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호텔에서 여유 있게 식사하고 어둠이 깊은 온정각을 내려와 쇼핑도 하고 평양교예단 관람도 했다. 동행한 산길MTB의 몇몇 자녀들은 서커스라고는 생애 처음 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부모와 함께 그들의 추억은 영원하리라. 이렇게 설레임과 긴장, 호기심 속에 하루를 보내고 내일은 삼일포로 향한다.

아름다운 풍광에 젖었던 삼일포 코스

삼일포는 강릉의 경포호처럼 바다와 인접한 민물호수로 그 경치가 수려하다. 어제 정신없이 대열을 흐트러트리면서 달리던 라이딩 스타일을 바꿔 이번에는 등속주행을 한다. 북한의 마을을 지나고 들녘을 지나며 일하는 농부도 보고, 마을 어귀에서 서성이는 주민도 보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저씨도 본다. 간간이 근무 중인 초병도 눈에 띈다.

한적함은 우리네 들녘과 다를 바 없지만 왠지 허전함이 느껴진다. 들은 넓은데 경작은 반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양양으로 이어진다는 철길을 건너 야산으로 접어든다. 노송과 단풍이 어우러진 임도다. 그리 길진 않아도 참 멋진 산중 길이었다.

오르막을 오르니 연세 드신 두 분이 뒤로 처치고 모두들 허리를 굽혀서 페달링에 분주하다. 의정부 가젯트팀에서 오신 부부 중 여성이 남편을 앞지른다. 맑은 공기에 형형색색의 단풍이 여유롭게 서있는 노송 숲길을 달리는 기분은 우리만 안다.

고갯마루에 오르니 저 밑으로 호수가 보인다. 직감으로 다 왔구나 싶으니 이 멋진 길을 도로 내려가기가 조금은 서운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 곁에 있으면 한가로이 데이트하거나 시나 한 수 읊을 만한 그런 곳, 조용하고 아늑했다.

호수는 둥글지 않아서 여기저기 산모퉁이를 내밀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들 디카에다 추억 담기에 여념이 없다. 노처녀 김상희씨는 여기서도 남자타령이다. 아들과 함께, 부부가 함께,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에서 4형제가 함께, 그리고 가슴 아파 살아생전 안 보려고 고집 피우시는 아버지의 고향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대신 온 이곳, 모두가 수많은 느낌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참가한 6명의 청소년들이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 통일이 되어 있을지….

삼일포를 눈에 담고 다시 고개를 향해 오른다. 다시 올라가도 좋은 경치다. 정상에서 대열을 정리하고 다시 온정각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앞서가는 호송차에 가장 앞선 자전거보다 조금 빨리 달리라고 주문하고 뒤에 섰다.

그리고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페달을 밟으라고, 정신없이 달리라고, 대한지적공사팀 몇몇이 바람을 밀치고 치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막내 초등생 상민이도, 상훈이도, 중학생 병관이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땀을 줄줄 흘린다. 수동이는 아빠를 추월해 달리고, 그래도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려야한다. 달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다.

온정각까지 숨을 몰아쉬며 달리니 앰뷸런스가 보이지도 않는다. 후미가 다 들어올 무렵 첫 자전거는 벌써 차에 실리고 있었다. 산길MTB의 명예를 위해 사비를 지출해 참가자 전원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신 정종면, 장좌진, 신현만님과 진행에 힘써주신 오정민, 이창수, 이범석님께 이 글을 빌어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 참가하신 개별회원과 화도, 수지, 등마루, 가젯트, 엠사랑클럽 회원님들께도 동호회의 발전을 빌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올린다.

/ 글·사진 양병완 산길MTB클럽 www.sangilmt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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