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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Let's go MTBing] 강원도 고봉 계방산을 자전거로 넘다

월간산
  • 입력 2005.01.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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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청골~어리목재~계방산 능선~갈골~을수골 9시간 고행 답사

수청골 초입의 산판길.
수청골 초입의 산판길.
눈이 많지 않지만 겨울 느낌이 나는 12월 중순의 계방산(1,577m) 라이딩을 갔다.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계방산 산행이야 대개 운두령에서 시작해 정상을 오른 후 노동리로 내려오지만, 자전거를 가지고 올라간 계방산은 수청골~어리목재~계방산 능선~갈골~을수골로 코스로 잡았다.

진작부터 계방산을 통해 을수골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을수골은 안쪽이 막힌 막창이라 자전거 코스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같은 라이딩 동호회의 정종면님이 창촌리 수청골로 들어가서 계방산 능선을 달린 후 을수골로 내려오자고 제안했다. 을수골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 같았다. 도저히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곳인데, 마음이 통하는 분이 라이딩을 제안하니 뛸 듯이 기뻤다.

약속 날 새벽 4시 일행과 천호대교 밑에서 만나 44번 국도를 따라 산행 들머리인 창촌리 수청골로 향했다. 창촌리에 도착해 차를 세운 뒤 자전거를 조립하고 복장을 갖춘다. 초겨울의 계방산 능선 바람을 생각하며 방풍복장에 특히 신경을 쓴다. 완벽한 준비(?)를 갖춘 후 수청골 들머리로 들어선다.
아침 무렵 폐부를 찌르는 신선한 공기가 마냥 상쾌하다. 서울은 이상고온이다 평년기온보다 높다고 하는데 여기는 예외인 것 같다. 수청골 입구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시작부터 굵은 자갈이 깔린 노면을 라이딩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아침의 찬 기운을 떨쳐 버리고자 약간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나아간다. 간간이 길 주변에 농가가 있어 지나갈 때마다 개들이 짖어댄다. 부뚜막에서는 연기가 올라온다. 겨울 아침나절의 평화롭고 활기찬 풍경이다. 마지막 농가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서니 산판길의 흔적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서 호젓하게 라이딩을 즐기며 10분쯤 오르니 산판길은 끊어지고 계곡이 나타난다. 

준비해간 가벼운 하이킹 신발로 갈아 신는다. 어차피 어느 정도 ‘묻지마 라이딩’은 예상했던 바였다. 자전거를 들쳐 메고 계곡을 오른다. 조금 가니 다시 라이딩하기에 좋은 산판길이 나타났다. 이미 갈아 신은 신발을 또다시 갈아 신기 귀찮아 그냥 자전거에 올랐다. 라이딩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급경사 구간이 나타났다. 역시 자전거를 메고 10~15분 정도 오르니 바로 어리목재에 도착한다.

 

어리목재를 지나 계방산 능선을 향하는 라이더들.
어리목재를 지나 계방산 능선을 향하는 라이더들.

계방산 능선에는 이미 눈 쌓여 있어

어리목재는 왼쪽은 소계방산(1,456m), 오른쪽은 계방산으로 연결된 갈림목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리목골로 내려갈 수 있었으나 눈앞의 잡목숲을 뚫고 지나갈 생각을 하니 귀찮고 짜증스러워 오른쪽 능선길을 택해 올랐다. 이 선택이 잘못 됐다는 것은 곧 알게 됐다. 이미 계방산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능선은 전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았다. 잡목숲 또한 짙어 발목을 잡는다. 급경사에 눈까지 있어 두 발 전진에 한 발 후퇴하는 고난의 연속이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어리목재를 향해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답사팀.
어리목재를 향해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답사팀.
악전고투하며 오른 주능선에서의 조망은 과히 일품이다. 북쪽으로는 하얀 면사포를 쓴 듯한 설악의 연봉이 보이고, 점봉산, 오대산, 삼양목장까지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다. 저기 용평스키장도 보인다. 계방산 정상에는 몇 명의 등산객이 보인다. 그들도 놀라고 우리도 놀란다. 그들이 오늘 이 계방산 산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등산객이고 사람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계방산 주능선은 호령봉을 거쳐 오대산 비로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이다. 매번 느끼지만 강원도의 싱글트랙은 경기도와는 다르다. 보기에는 라이딩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붙어보면 잡목들이 핸들에 걸리고 낙엽 쌓인 바닥은 미끄럽다. 멧돼지가 판 구멍들에 바퀴가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오늘도 이것 때문에 몇 번이나 앞으로 날아간다. 다행이 바닥은 푹신한 낙엽과 눈이어서 아무 탈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계방산 능선을 자전거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사람의 꽁무니만 따라갈 뿐 잡목들 때문에 도저히 다른 신경은 쓰이지 않는다. 행동식으로 싸간 점심을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산속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버린다. 긁히고 넘어지길 몇 번, 주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몇 개 넘으니 국립공원 표지석이 있는 안부에 도달한다.

성취감의 감동이 밀려온다. 다들 말이 없다. 이 안부에서 왼쪽이 오늘의 하산길인 갈골 시작점이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끌고 내려갈 수 있으나 약간 내려가니 메고 내려가기조차도 힘들어진다. 아주 오래된 표지기가 보이나 길이 너무 희미하고 잡목들이 우거져 있었다. 가뜩이나 눈에 빠져 반쯤 젖은 신발이 계곡물에 빠져 완전히 젖어버렸다. 시간이 지체되어 갈 길을 재촉하지만 계속되는 잡목은 전진을 방해한다.

을수골 상단은 개척산행 코스

지친 몸을 이끌고 전진하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이것이 확실한 길인지도 회의가 와서 일행이 모여서 작전회의를 한다. 만약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움직이지 말고 모닥불을 피우고 비박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막막 산중이라 비박을 마음먹었지만도 걱정이 앞선다.

을수골 최상류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
을수골 최상류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
 날이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끝없이 내려온 것 같으나 눈과 낙엽과 잡목들이 우리의 의지를 꺾고 있다.  아, 그런데 앞에 가던 분이 소리를 지른다. 길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오후 5시30분경이 되어서야 첫번째 농막에 도착해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도 길이 만만치 않고 이제까지 내려온 길과 비슷하게 이어져 있다. 물론 길을 제대로 찾았으면 좀더 편한 길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약간 더 고생한 뒤 계곡 오른쪽 위로 난 소로를 찾아 하산을 재촉했다. 한 5분 내려 왔을까 물길을 건너니 길은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산판길로 바뀐다.

조금 뒤 라이딩하기에 최적인 길이 나타났다. 을수골이다. 이 계곡 막창을 자전거로 넘으려고 얼마나 많이 동경해 왔던가. 그런데 수청골을 넘어서 이곳까지 온 과정을 짚어보니 좋은 상상이 산산이 깨져버린다. 을수골을 따라 다운힐을 하니 이제야 사람의 손때가 뭇지 않은 계곡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날은 어두워지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이 뚜렷이 보이니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라이딩이 흥겨워진다.

내린천 발원지 표지석 앞에 선 일행.
내린천 발원지 표지석 앞에 선 일행.
 다운힐 중간에 오른쪽으로 내린천 발원지 비석이 보였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을수골을 뒤로하고 9시간의 계방산 라이딩을 마치기 위해 차량이 있는 곳으로 페달질을 한다.

참고로 계방산은 강원도 홍천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전체적인 산세는 완만하지만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다섯번째로 높은 산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앉아 생각하니 참으로 허망했다.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그 높은 계방산의 어느 계곡에서 비박할 궁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명의 이기는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라이딩을 함께한 정종면님(수산)과 김인석님(나이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글· 사진 지광희 산길MTB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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