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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테마특집 썰매 투어링 | 안반데기 르포] 안반데기 고랭지 채소밭에서 썰매 끄는 겨울나그네~

월간산
  • 입력 2017.02.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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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고산 산책길 따라 즐기는 썰매 백패킹의 매력

드넓은 설원을 썰매를 끌며 가로지르고 있다.
드넓은 설원을 썰매를 끌며 가로지르고 있다.

이제 겨울철 우리나라 땅에서 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특히 올겨울은 추위가 늦게 찾아오며 1월 초까지 푸근한 겨울날씨가 계속됐다. 썰매 투어링을 시도하기 위해 눈 쌓인 임도나 설원을 찾기 시작했다. 강원도 지역 산꾼과 산악스키 동호인 인맥을 동원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의 대답은 하나로 모아졌다.

“올해는 큰 눈이 내리지 않는 한 강원도 산 임도에서는 눈 보기 어려울 겁니다. 그나마 백두대간 줄기나 대관령 등 고도가 높은 곳이라면 눈이 좀 쌓여 있을 거예요.”

날이 계속 따뜻했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산행을 나섰던 대간 종주팀이 예상치 못한 많은 눈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내리자마자 모두 녹아 버렸다는 것이다. 고도가 낮은 임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대관령으로 가면 확실히 눈을 볼 수 있지만 너무 잘 알려진 곳이라 피하고 싶었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 지도를 보고 찾은 곳이 바로 강릉시 왕산면의 닭목령 북쪽의 임도였다. 고루포기산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이 임도는 해발 700~800m 고도에 조성되어 있다. 이 정도 높이라면 눈이 남아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답사 전날 강릉 쪽에 비까지 뿌렸다.

“음지에는 눈이 많은 편인데, 햇빛이 드는 쪽은 바닥이 완전히 드러난 곳도 있네요. 썰매를 끌고 갈 수는 있겠지만 별로 좋지 않아요.”

겨울이면 안반데기는 언제나 설원

깊게 쌓인 눈을 헤치며 전진하는 기자.
깊게 쌓인 눈을 헤치며 전진하는 기자.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임도를 정찰하고 돌아온 사진기자 염동우씨의 말대로 상황이 안 좋았다. 설경을 기대했지만 임도 분위기가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이 상태로는 제대로 된 썰매 투어링 촬영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플랜B’로 생각해 둔 안반데기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눈이 있을 만한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위치한 안반데기는 1965년에 고랭지채소 재배를 위해 개척됐다. 해발 1,100m의 고지로 고루포기산(1,238.3m)과 옥녀봉(1,146m)을 잇는 능선 동쪽의 구릉지에 조성된 마을이다. 국내 최대의 고랭지채소 경작지로 고도가 높아 겨울이면 많은 눈이 쌓이는 곳이다. 주능선을 따라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대관령 목초지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안반데기’라는 지명은 떡메로 떡쌀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지형이 평평하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 주능선 동쪽으로 경사가 완만한 지역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안반데기는 겨울철이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하지만 능선에 세워진 풍력발전기의 관리를 위해 언제나 진입로의 제설작업을 해둔다. 길이 얼어붙어도 체인을 장착한 사륜구동 차량은 어렵지 않게 접근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찾는 사람이 많아 탐방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새롭게 조성하고 있다. 그래도 한겨울이면 여전히 인적이 드문 곳이다.

닭목령에서 남쪽으로 600m 떨어진 삼거리에서 서쪽 안반데기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이내 구불구불한 산길이 시작된다. 길바닥에 깔린 얼음과 눈을 보고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고도를 높였다. 이렇게 산길을 타고 오르자 하얗게 눈이 쌓인 안반데기 마을 중간의 피덕령에 도착했다.

고루포기산과 옥녀봉 사이의 고갯마루인 피덕령은 주차공간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 안반데기 썰매 투어를 시작하기 좋은 장소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옥녀봉이나 고루포기산 방면으로 난 눈길을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안반데기는 강릉바우길이 지나가는 곳이다.

트레커 뒤로 그려진 썰매의 궤적이 인상적이다.
트레커 뒤로 그려진 썰매의 궤적이 인상적이다.
썰매에 짐을 싣고 보기에도 완만한 옥녀봉 방면의 강릉바우길 17구간 ‘안반데기 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물과 야영장비, 의자와 테이블까지 제법 많은 장비를 실었지만 썰매는 큰 저항 없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노면이 평탄한 곳에서는 거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움직였다. 느긋하게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설원의 낭만 즐기기 좋은 곳

눈밭에 앉아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눈밭에 앉아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넓은 설원 뒤 능선에 세워진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멀리서도 뚜렷하게 들렸다. 바람개비 같은 날개가 돌아가며 만들어낸 그림자가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크기가 대단한지 줄지어 서 있는 풍력발전기들이 괴물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랭지채소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설원 한가운데 자리잡은 팔각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너무 넓은 곳이라 눈에 띄는 목표를 정해 두고 걷지 않으면 쉽게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팔각정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리며 바람을 피했다. 다행히 고산지대치고는 바람이 잠잠했고 날씨도 좋았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설원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며 천천히 썰매 투어링을 즐겼다.

몸이 조금 풀리자 넓은 도로를 벗어나 채소밭을 횡단하며 설원에 흔적을 남겼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낸다는 짜릿함을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짐이 가벼운 편은 아니었지만 썰매 덕분에 비탈진 설면도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배낭을 메고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옥녀봉에 세운 풍력발전기로 올라가는 갈림길 근처의 평탄한 눈밭에 짐을 내리고 쉘터를 쳤다. 날씨는 좋았지만 그냥 눈밭에 앉아 식사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쉘터 속에 자리를 펴고 앉아 바람을 피하며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설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번에 찾은 안반데기는 최적의 썰매 투어링 장소였다. 적설량이 적은 겨울시즌에도 눈이 쌓여 있을 확률이 높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채소밭 사이로 거미줄처럼 길이 나 있어 설원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바람이 심하고 춥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 호젓한 트레킹과 야영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진짜 겨울의 낭만을 느끼고 싶다면 안반데기를 추천한다.

안반데기 썰매 투어링 정보
도암댐 방면 찻길도 썰매 끌기 좋아

안반데기로 가려면 동쪽의 닭목령이나 서쪽 도암댐에서 도로를 타고 올라야 한다. 횡계나들목에서 가까운 도암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깝지만 겨울에는 이 도로에 눈이 두텁게 쌓여 차량 통행이 어려울 경우가 많다.

횡계에서 갈 경우 용평골프장을 지나 도암댐으로 이동한다. 스키장 진입로는 언제나 깔끔하게 제설된 상태다. 하지만 골프장을 지나 산 속으로 들어서면 길에도 두터운 눈이 깔려 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레 통과하면 계곡이 넓어지며 도암댐 상류로 나서고, 잠시 뒤 왼쪽에 안반데기로 오르는 갈림길이 보인다.

눈 때문에 차량 통행이 끊어지면 이 도로가 썰매 투어코스가 된다. 초입의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눈 덮인 도로를 미끄러지듯이 오른다. 산길은 비탈진 밭 옆을 지나 구불구불 안반데기를 향해 오른다. 도암댐 인근 삼거리에서 안반데기 입구인 피덕령까지 거리가 약 4km.

닭목령은 영동고속도로 강릉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옛 대관령길 방면으로 진행한다. 성산면소재지 인근 성산삼거리에서 태백, 임계 방면 35번국도를 타고 닭목령을 거쳐 안반데기로 진입한다. 닭목령에서 안반데기 피덕령까지는 약 5km 거리다. 겨울에도 수시로 제설작업을 하는 길이라 체인을 감은 사륜구동 차량은 접근이 가능하다.

안반데기에는 강릉바우길 17구간이 조성되어 있다. 피덕령을 중심으로 남쪽 옥녀봉 일대에 6km의 ‘안반데기 구간’이, 북쪽 고루포기산 일대에 ‘고루포기 구간’ 9km가 조성되어 있다. ‘고루포기 구간’보다 ‘안반데기 구간’이 경사가 완만해 썰매 투어링에 무난하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능선을 따라 이동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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